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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빌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유해한 콘텐츠가 아닌 한, 어린이가 영화를 보고 어른이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이상할 일은 없다. 작품을 만드는 이의 의도가 ‘우리 모두’를 향해 있다면 더 그렇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는 ‘토이빌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작품과 현실적인 고민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디저트 캐릭터에 녹여낸 <브레드 이발소> 역시 굳이 권장 연령을 붙일 필요가 없어 보인다.
찰흙을 뭉텅뭉텅 뭉쳐 동물을 만들고 팔다리를 요리조리 갖다 붙이며 동작을 바꾸어 보던 어린 날의 고사리손. 손에 쥔 인형은 보통 찰흙 인형이었지만 인형의 재료는 때로 종이가 되기도, 패브릭이 되기도 했다. 양손에 비슷한 모양의 인형을 들고 목소리를 바꾸어가며 엉뚱한 대화를 나누면 그게 곧 한 편의 이야기가 됐다.‘토이빌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어린 시절 어설프게 펼치던 인형 놀이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벽하고 정교하게 구현하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전문 스튜디오다.
스튜디오는 전승배 감독과 강인숙 작가 부부가 운영한다. 전 감독은 대학 시절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하면서 다양한 오브제를 직접 만지며 영상을 만들어내는 제작 과정에 매료되었다. 두 사람은 2006년티브이 애니메이션 파일럿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만났고, 이후 손맛 나고 재미있는 인형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함께 토이빌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시작했다. 클레이를 주재료로 <무슨 일이야?>, <다녀오겠습니다>, <두 소년의 시간> 등 단편 애니메이션을 선보여 왔으며, 2018년 발표한 단편 <토요일 다세대 주택>은 2018 디지콘6 아시아 어워즈의 베스트 테크닉 부문 은상, 2019 뉴욕 국제 어린이 영화제 관객상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의미 있는 상을 수상했다. <토요일 다세대 주택>은 그림책 《쿵쿵 아파트》로 출간되기도 했다.
스톱 모션이란 촬영 대상의 움직임에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여러 프레임으로 촬영한 후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보이게 하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말한다. 모든 작품이 그렇듯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데에도 큰 노력과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 작품의 아이디어는 주로 전 감독과 강 작가가 평소에 나눈 이야기나 무심코 그린 한 장의 이미지에서 나온다.
“아이를 키우면서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이런 문제의 정답을 찾을 순 없겠지만 애니메이션을 통해 대중과 소통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두 소년의 시간>을 통해 우리 삶에는 일등과 꼴찌가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고, <토요일 다세대 주택>은 실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층간 소음을 소재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고 싶어 만든 작품이에요.”
이야기를 발전시키고 캐릭터와 배경을 디자인하면 간단한 재료로 가모델링 작업을 진행한다. 내용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장면을 구상하고 각자가 그린 썸네일을 모아 스토리보드를 완성한 후에는 본격적인 촬영 준비가 시작된다. 인형, 의상, 세트, 소품 등에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고, 하나하나 직접 손으로 완성해 간다. 토이빌의 작품에는 대사가 거의 없는 대신 인형의 미세한 표정과 움직임, 배경의 변화가 이야기의 흐름을 알려준다.
“대사는 캐릭터를 드러내고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에요. 반면 대사가 없으면 보는 이로하여금 인물에 대해 더 많이 상상하도록 해요. 그래서 저희는 캐릭터가 어떤 감정인지 표현하기위해서 매 장면 상황에 어울리는 포즈와 표정을 만들어요. 표정 연기를 위해서 눈썹, 눈꺼풀, 입 모양을 여러 가지로 세세하게 교체하죠.”
일상에서 얻는 이야깃거리와 디테일을 살리려는 노력 덕분에 우리는 작품 속의 친숙한 인물과 공간을 보며 쉽게 공감하게 된다.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 토이빌이 만들어갈 작품들은 내 주변의 사람과 내가 겪은, 그리고 겪을지도 모를 상황을 돌아보고 상상하게 할 것이다.
다녀오겠습니다
새하얀 눈이 뒤덮인 겨울, 집에 있기 심심했던 꼬마 토끼가“다녀오겠습니다!” 외치며 문을 나선다. 아빠는 티브이를 보느라, 엄마는 요리를 하느라 아이의 외출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혼자 놀던 꼬마 토끼는 늑대를 만나고,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아무 의심 없이 집까지 따라간다. 아이들을 방관하는 어른들 때문에 벌어지는 무서운 일들은 어쩌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
두 소년의 시간
두 소년이 같은 길을 지난다. 한 소년은 앞만 보고 달리고, 또다른 소년은 소에게 풀도 주고 양들 사이를 스치며 한 걸음씩 통통 뛰어다닌다. 앞만 보고 달리던 소년은 자라면서도 쉼 없이 공부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바쁘게 늙어간다. 중년이 되어 소년은 빵집 주인이 된 다른 소년을 우연히 마주친다. 그들은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작품은 자신을 돌볼 여유조차 없는 경쟁 사회 안에서 치열함에 지친 이들에게 작은 휴식과 위로를 전한다.
토요일 다세대 주택
염소 청년은 기타 치며 노래하고, 기린 아저씨는 쾅쾅 못질을한다. 진득하게 앉아 글을 쓰려는 코알라 할아버지는 윗집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여간 집중이 안 된다. 고작 5층짜리 공동주택에서 동물 입주민들은 저마다 다른 사정으로 불편을 주고받는다. 불만이 쌓일 대로 쌓여가던 날, 이웃들은 큰 사건을 함께 겪는다. 이들이 평화로워지는 데는 분명 극적인 계기가 필요했지만, 마지막에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짓는 모습은 이웃간의 소소한 배려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1. 캐릭터 구상
“등장인물은 1층의 염소 청년, 2층의 기린 아저씨, 3층의 아기토끼와 엄마 토끼, 4층의 코알라 할아버지, 5층의 곰 아줌마까지 총 다섯 가구 여섯 캐릭터예요. 인물의 나이와 특징을 정하고 주변에 꼭 있을 것 같은 친근한 모습으로 설정했어요.”
2. 인형 제작
“인형의 주재료는 양털이에요. 우선 인형 크기를 정하고 뼈대를 만든 다음, 그 위에 양모를 바늘로 콕콕 찔러가며 형태를 완성해요. 그 다음 표정 변화에 필요한 눈꺼풀과 입 모양, 그리고 옷을 만들어요. 아이들이 어릴 적에 입던 옷도 좋은 재료가 된답니다.”
3. 세트와 소품 제작
“세트와 소품은 인형 크기를 기준으로 제작해요. 등장인물의 설정에 맞게 실제 집처럼 보이려고 소품을 많이 채워 넣었어요. 세트 공간에 캐릭터와 관련된 소품이 많아질수록 인물의 밀도가 높아지고 설정도 잘 전달돼요.”
4. 디테일을 살리는 촬영
“24장의 이미지로 1초를 만들어요. 스토리보드를 토대로 캐릭터와 배경을 세팅하고 조명으로 장면의 분위기를 표현하죠. 이웃 모두가 모인 옥상 장면은 석양을 표현하려고 노란색필터를 사용했고, 바람이 부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넓은 붓으로 인형 머리카락을 조금씩 움직여가며 촬영했어요.”
5. 기획 의도를 담는 연출
“공동주택에 살며 층간 소음으로 고통받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 사람이 태어나서 70대가 될 때까지 낼 수 있는 다양한 소리를 만들고, 그 소리가 이웃에게 소음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고요. 이웃 모두가 평화를 찾는다는 설정을 위해 5층짜리 집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수평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완성했죠.”
6. 후반 작업
“촬영한 애니메이션을 편집하고 합성하는 작업이에요. 인형은 스스로 설 수 없기 때문에 보조 장치가 필요해요. 실제 배우들이 하늘을 나는 연기를 할 때 와이어를 사용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촬영 이후에 보조 장치를 지우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또, 화면 색을 알맞게 보정하고 필요한 경우 컴퓨터 그래픽으로 특수 효과를 만들기도 한답니다. 그렇게 완성될 때쯤 음악감독님과 함께 영상의 소리를 조율하며 작품을 마무리해요.”
“이제부터라도 뭔가 달라지겠어. 그래 다시 태어나는 거야. (…) 헤이 헤이 브레드 이발소! 세이 브레드와 윌크. 나만을 봐줘요. 내 후줄근한 모습도 한줄기 빛 되어 나만을 지켜봐 줘.”
없던 자신감도 생기게 해주는 이 노래는 <브레드 이발소>의 문을 여는 오프닝 곡이다. 노래 가사를 조금만 자세히 보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엿보인다. 바로 이발소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이발소 주인 ‘브레드’ 덕분에 달라지고, 다시 태어나며 용기를 얻는 것! 한국의 어린이는 물론,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애니메이션은 국내 최초로 디저트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정지환 감독의 다짐에서 시작됐다.
“미국에서 7년간 살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빵과 디저트 분야가 눈에 띄게 발전한 모습이 무척 놀라웠어요. 미국보다 더 다양하고 화려한 빵과 디저트를 판매하는 걸 보고 그걸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트렌디하고 참신한 스토리로 풀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브레드 이발소>를 기획하게 되었죠.”
정 감독은 디저트의 특성을 파악해 에피소드를 구상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디저트를 단순히 의인화하기보다 캐릭터의 특징을 살려 인간이 겪는 고민으로 재해석했다. 소보로빵이 얼굴에 난 곰보를 콤플렉스로 여기는 것이나, 브레드의 껍질이 스트레스성 탈모로 벗겨지는 일이 그렇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요소를 발견하고 캐릭터에 녹여내기 위해, 정 감독은 여러 베이커리에서 디저트를 직접 관찰하고 먹어보며 공부했다. 여전히디저트 레시피 영상을 찾아보고 실제로 만들어 보기도 한다는 그는 그렇게 쌓은 지식과 정보로 에피소드 한 편 한 편을 구상해 나간다.
<브레드 이발소>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는 넷이다. 이발사 ‘브레드’, 그의 조수 ‘윌크’, 이발소의 캐셔 ‘초코’와 반려동물 ‘소시지’가 그 주인공. 정 감독은 주로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예능 캐릭터들에서 모티브를 따오지만, 극중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서 주변인 혹은 자신의 성격을 빌려오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윌크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브레드가 현재 자신의 모습을 닮았다고 말했다.
브레드
베이커리 타운 최고의 천재 이발사다. 무심해 보이지만 이발소에 찾아온 손님들의 고민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듣고 해결해주려고 노력한다. 얼핏 돈만 좋아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
초코
매일 심드렁한 표정으로 계산대에 앉아 있는 까칠한 계산원. 택배를 받을 때 빼고는 웃지 않는 초코를 보면 현실에 지친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녀가 과거에 잘나가는 라이더였다는 소문도 들린다.
윌크
소심하고 실수도 많지만 열정적인 브레드의 조수. ‘MILK’의 M이 거꾸로 뒤집힌 채로 태어나 ‘WILK’라는 이름으로 살고있다. 놀림만 당하던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일깨워준 브레드를 마음속 깊이 영웅으로 생각한다.
소시지
브레드와 윌크의 귀여운 반려견, 소시지! 접시에서 떨어져 고양이에게 잡아먹힐 뻔한 위기를 피하고 떠돌아다니다 윌크에게 발견되었다. 귀엽고 착하고 영리하기까지 하니, 이발소에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사회, 역사, 문화, 정치 등에 골고루 관심이 많다 보니 잡다한 지식이 방대해요. 보통 거기서 소재를 꺼내 개발하곤 하죠. 제가 워낙 이것저것 부딪히면서 살아와서 머릿속 지식에 제 경험을 녹여리얼한 상황극을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브레드 이발소>는 <네모바지 스폰지밥>, <날아라 호빵맨>, <닥터 하우스>, <심야식당> 등 그동안 제가 보아온 수많은 콘텐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어요. 영감을 받은 특정한 작품이 있는 것도, 타깃 연령대를 정해둔 것도 아니에요. 다만 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이들이 우울함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그래, 세상은 살 만한 거야.’라는 생각이 들기를 바랄 뿐이에요.”
정 감독의 말처럼 컵케이크, 치즈, 햄버거, 꽃게 과자 등 다양한 등장인물의 고민은 현실 세계의 고민과 맞물려 있다. 하지만 현실에는 브레드처럼 기발한 방법으로 고민을 해결해 주는 이를 만나기어렵기에, 마음으로 위로받을 뿐이다. 머리가 커 놀림당하는 컵케이크에게는 멋진 왕관을 만들어주고, 자신을 진짜 꽃게인 줄 착각해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꽃게 과자에게는 리얼한 바다 생물 분장을 보여주며 지금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멋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브레드. 이런 에피소드들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 같기도 하다. 부모와 아이가 같이 즐겨 본다는 후기가 유독 많은 이유다. <브레드 이발소>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정 감독은 이렇게 대답한다.
“사는 게 힘들죠? 저도 힘듭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간간이 웃을 수 있는 행복한 날도 있으니 우리 절대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요!”
에디터 이다은
자료 협조 토이빌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몬스터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