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quat Has Bloomed

식물이 있는 생활
비파꽃이 피었다

비파나무는 늦가을 사이 꽃이 핀다. 남부에서는 사철 잎이 지지 않으며 잎도 꽃도 모두 쓰임이 좋아 집집마다 약을 대신해 키운다는 말도 있다. 가을에 꽃이 펴서 이듬해 봄에 열매를 맺는데, 색도 크기도 살구를 닮은 열매의 모양이 악기인 비파를 닮아 비파나무라 불린다.

두 해 전 겨울, 호랑나비 번데기 하나를 선물 받았다. 마른 나뭇가지에 비스듬히 매달린 작은 번데기는 초여름 풀빛을 닮은 초록색이었다. 나뭇가지와 번데기 사이에는 가늘고 흰 견사 한 줄뿐이어서 줄이 떨어질세라 조심스레 유리병에 담아 베란다 가장 추운 곳에 두었다. 봄까지 깨우지 않으려면 바깥 기온과 되도록 비슷한 조건을 유지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번데기가 우화할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3월 중순이었다. 고치색이 짙어져 있었다. 아무리 새시가 낡고 외풍이 심하다 한들 닫힌 창문 안은 애벌레가 고치를 틀던 정원의 겨울보다 따뜻할 것이다. 나란히 놓인 구근 화분에서도 이미 튤립과 은방울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바깥은 아직 겨울이었다. 집 앞 벚나무에 꽃이 피려면 열흘은 더 기다려야 했다.

매일 번데기 색이 짙어지고 머리 모양도 선명해졌다. 날이 추워 어쩌나 걱정하면서도 내심 설렜다. ‘나비 우화 시간’을 검색한 뒤 매일 아침 일찍 알람에 맞춰 고치를 살폈다. 그러나 정작 나비가 깨어난 것은 어느 늦은 오후였다.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있던 나와 고양이 모르게 나비는 혼자 고치를 벗고 나와 접혀 있던 날개를 펴고 있었다. 4월의 첫날이었다.

나비는 천천히 젖은 날개를 말렸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높은 건물 사이를 통과하던 빛이 마지막으로 집 안 깊숙이 닿는 순간 나비가 날개를 팽팽히 당겨 천천히 한 번 펼쳤다가 접었다. 첫 날갯짓이었다. 뭉클했다. 나는 얼른 꿀물을 탔다. 며칠만, 벚꽃이 필 때까지만 데리고 있다가 날려주면 될 것이었다. 그전에라도 날고 싶어 한다면 베란다에서 날 수 있을 테다. 고양이가 아무리 문을 열어달라 애원해도 모른 체할 참이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나비는 죽었다. 홀로 겨울을 났던 작은 식물용 유리온실 구석에서, 한 번 제대로 날아보지도 못한 채로. 깨어난 나비를 바로 밖으로 내보냈어야 했다는걸, 고치를 벗고 나온 나비에게는 꿀물 빠는 일 따위보다 얼어 죽더라도 희미한 번식의 가능성을 찾는 일이 더 중요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속이 상해 눈물이 났다. 죽은 나비는 막 꽃이 피기 시작한 집 앞 벚나무 아래 묻혔다.

며칠 전 베란다 창문 너머로 흰나비를 보았다. 겨울의 두 번째 절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딘가에서는 비가, 또 어딘가에서는 눈이 오는 오후였다. 꽃은커녕 잎마저 다 지고 없는 이 계절에 어쩌자고 벌써 깨어났을까.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내 비파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렴, 아가야. 거기 꽃이 있단다. 꽃이 아주 많단다.

꽃이 없는 계절에 태어나는 나비가 있듯, 나비도 벌도 없는 계절에 피어나는 꽃도 있다. 아래 지방에서는 겨울에 꽃 피는 것이 대수롭지 않을지 모른다. 남부 수종들 중에는 상록활엽수가 많다. 잎이 넓은데 사철 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중 어떤 나무들은 겨울에도 꽃이 핀다. 동백나무가 그렇다. 차나뭇과에 속하는 이 나무는 늦가을 꽃이 피는 차나무들보다도 개화 시기가 늦다. 보통 1월에서 4월에 꽃이 피는데, 아니 한겨울에 피는 꽃은 누가 수분을 해주나 걱정했더니 동박새가 한다고.

한겨울에 꽃이 피고, 그 꽃의 꿀을 먹으러 새가 찾아온다니,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게다가 동박새는 처음 그 모습을 보면 조금 현기증이 날 정도로 귀엽다. 12센티미터 정도의 동그랗고 작은 몸집에 노란색과 녹색, 흰색의 털을 가진 이 새는 목소리도 무척 곱다. 그러나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주식이 벌레도 열매도 아닌 꽃의 꿀이라는 것. 곤충도 동물도 잠드는 계절에 피어나는 동백꽃에게 동박새는 귀한 손님이자 희망이 아닐지.

남부 지방의 겨울 꽃과 상록수 이야기는 한 편의 판타지 같다. 듣다 보면 절로 생애 한 번쯤 따뜻한 남쪽 마을에서 정원을 가꾸며 살고 싶다. 그곳에서라면 겨울마다 나무들을 이고 지고 실내로 들어와 종일 청정기를 돌리거나 식물등(실내에서 생장하는 식물의 부족한 햇빛을 보완하기 위해 사용하는 식물용 조명)을 비추느라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한겨울에도 꽃이 피고 새들은 그 꽃에 꿀을 먹으러 날아들 것이다.

올해 작업실 실외에 있던 나무들은 S씨에게 가는 대신 대부분 작업실에 남았다. 월동이 안 되는 것은 모두 작업실 안으로 옮겼다. 그 바람에 작업실 안쪽 방은 그야말로 정글이다. 발 디딜 틈이 없다. 창가 쪽 나무에 물이라도 줄라치면 이 나무 저 나무를 밀어가며 고개를 숙이고 기어들어 가야 한다. 실내에서 나무들이 처음 맞는 겨울이 걱정스러우면서도 뿌듯하다. 온실을 갖는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지난해 겨울에는 월동이 안 되는 나무들을 모두 S씨에게 보냈다. 그런데 지내보니 겨울철 식물 관리가 만만치 않았다. 팔지도 못할 식물을 상점 곳곳에 두고 돌보는 일이 얼마나 수고로웠을지 뒤늦게 알고 후회가 막심했다(그러면서도 도무지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들만은 어떻게 해도 내 손에서는 분명 죽을 것이 분명해 올해도 보내고 말았지만). 나무들에게도 조금 미안했다. 빌려 쓰는 물건도 아닌데 가장 1년 중 가장 긴 계절 내내 남의 손에 맡기는 건 어쩐지 온당치 않은 기분이었다(아카시아 나무들아 미안…). 아니, 실은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비파나무 때문이었다. 비파나무에 꽃대가 맺힌 것이다.

지난해 비파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았다. 올해도 9월이 다 지나도록 꽃대 맺힐 기미가 없었다. 새잎도 부지런히 내고 키도 쑥쑥 크는데 왜 꽃은 보여주질 않을까. 올해는 봄에 알비료도 듬뿍 줬다. 장마에는 처마 아래로 자리도 옮겼다. 그 바람에 비가 줄곧 쏟아지는 한여름에도 이삼일에 한 번은 꼬박 물을 주러 출근했다. 못 나가는 날이면 아래층 동료에게 비파나무만 좀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다. 유독 첫째를 편애하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인가.

비파나무가 작업실에 있는 나무 중 가장 아름다운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미모로는 아카시아 프라비시마를 못 따라간다). 기특한 것으로도 순위가 한참 밀린다(레몬 나무가 올해 주먹만 한 열매를 열 알이나 맺었다. 붉은 자귀는 사철 쉬지 않고 꽃을 피우고 있다). 정이 깊은 나무들도 따로 있다(겨울을 함께 보낸 크리핑 로즈메리와 올리브 나무여. 동지들이여). 그렇다고 아픈 손가락인가 하면 그도 아니다(죽다 살아나 뒤늦게 꽃까지 피우는 목수국아. 내가 정말 너를 몹시 아낀단다).

그러니 이 마음은 분명 첫째라서 인 것이다. 비파는 내가 키우게 된 첫 나무다. 그간 나무라 불렸어도 마음으로는 내심 나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릴 수 있는 그런 작은 나무들 말고, 잎을 잘라가며 애써 외목대를 만들어 나무 형상으로 키운 여리고 고운 화초들도 말고, 마주 서면 내가 고개를 한껏 들어 올려보아야 하는, 굵고 단단한 목대를 가진 진짜 나무가 생긴 것이다. 그런 나무가 내 곁에서 꽃까지 피워주면 얼마나 기쁠까. 그런데 그런 날이 정말로 온 것이다. 내가 나무들 추울까 봐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에, 나무들 넣을 자리를 만들며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비파나무 꽃은 조용히, 갈색 솜털 옷을 입고 찾아왔다. 한로寒露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꽃대는 이미 사나흘 전부터 올라와 있던 모양이었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 가지들을 살피니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 가지에도 저 가지에도 꽃대가 쑥쑥 솟아 있었다. 날마다 그토록 세심히 살폈건만 어째서 나는 늘 결정적 순간은 놓치고야 마는가. 스무 날쯤 더 밖에서 돌보던 나무들을 11월의 시작과 함께 모두 실내로 옮겼다. 천장에 닿는 비파나무 가지들은 울며 잘라냈다. 그러고도 닿을 것 같은 가지 두어 개는 줄로 묶어 밑으로 당겨 주었다. 보일러가 도는 작고 따뜻한 방이 나무들로 꽉 찼다. 이른 추위에 떨던 나무들은 곧 마른 잎을 떨구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요즘 비파나무에서는 매일 작고 흰 꽃들이 새로 피어난다. 자귀나무도 가지마다 붉은 꽃술을 더 풍성하게 터뜨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크리핑 로즈메리는 연보라색 꽃들이 곧 잎을 이길 기세다. 방 안은 온통 꽃 향으로 가득하다. 나무들이 들어오고 나서 종일 창문을 조금 열어놓는다. 바람이 들라고, 그 틈에 꽃 향이 멀리 퍼져나가라고. 그 향기를 맡고 겨울에 깨어난 나비들이 찾아와 준다면 기쁠 것이다. 꽃으로 가득 찬 이 방에서 우리가 함께 무사히 겨울을 나고 봄을 맞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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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