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To Disappear

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잘 사라지기 위해

소비에 관해 생각해 보다가 한없이 가벼운 마음이 인다. 나는 무얼 사고 무얼 없애며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바라본 완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물건들의 지도

나는 완두에게 새로운 물건을 사주는 일이 별로 없다. 늘 써야 하는 것들만 반복해서 사는데 곧장 떠오르는 것은 먹이와 배변봉투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먹이와 배변봉투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저런 물건들에게는 “안 사면 안 될까?”라고 늘 묻는다. 그 질문에 물건의 대부분이 탈락되어 나는 또 먹이와 배변봉투만 사는 생활을 하고 있다.

먹이도 아니고 배변봉투도 아닌데 벌써 세 번이나 사게 된 물건이 있다. 바로 리드줄. 길에서 새나 고양이를 보면 필사적으로 따라가려고 하는 바람에 줄이 두 번 끊어졌다. 이리저리 살펴보면 만듦새가 좋은 물건이라 물건 탓을 할 수는 없다. 먹이와 배변봉투가 아닌 소비여서 내가 참 아쉬워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줄을 끊고 뛰어가는 완두를 부랴부랴 따라가 붙잡고서, 나는 주변이 차도가 아닌 것에 감사할 뿐이다. 매일 산책을 두세 번 나가야 하기 때문에 끊어진 리드줄은 그 자리에서 바로 주문한다. 극성스럽고 과격한 완두가 가끔 부담스럽고 걱정되지만, 결국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모습은 완두의 이런 특징들, 어쨌든 개별성이라는 걸 안다. 완두가 이제 없다고 상상해 볼 때가 가끔 있는데, 그럴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완두는 늘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먹이와 배변봉투, 리드줄. 몇 가지 단어들의 지도를 보면 그 여정의 목적지가 건강, 특히 장건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잘 사는 것까지 이야기하기 전에 나는 완두가 탈 나지 않고, 잘 먹고 잘 쌌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완두 똥을 확인하며 하루치 안도감을 얻어 나간다. “짠 거 먹었으니 멀리 산책 다녀오자.” 이를테면 이 문장이 우리의 신념이랄까.

소비와 데스 클리닝

소비라는 단어를 계속 되뇌었더니 의미가 흐려져서 사전을 찾아봤다. 사라질 소, 쓸 비. 간단히 말하면 써서 없애는 일이 소비인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소비란 좋은 물건 사는 걸 넘어 잘 쓰는 것, 알뜰하게 써서 잘 없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불안한 마음을 채우려고 쌓아두지 않는 것. 적당함을 계속해서 갱신하며 점점 비워가는 것까지도 아마 소비의 영역일 것이다.

소비의 주체인 나도 잘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적당히, 다양하게, 알뜰하게 소비하다가 짐 없이, 빚 없이, 누군가에게 피해주지 않고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 일전에 ‘데스 클리닝Death Cleaning’이라는 단어에 관해 들은 적 있다. 스웨덴 작가 마르가레타 망누손Margareta Magnusson의 책 《내가 내일 죽는다면》에 소개된 개념이었다. 연령에 관계없이 자기의 죽음을 가정하고 주변을 정리해 보는 것, 유서를 적어보며 죽음 이후의 일들이 혹여나 주변 관계에 피해를 주지 않는지 따져 본다. 대비도 해놓고. 또 반대로 도움이 될 것 같은 일이나 물건이 있다면 살아 있을 때 나누기도 한다. 데스 클리닝이라는 행위는 죽음을 대비하는 걸 수도 있고, 한편으론 삶을 정비하는 일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 스웨덴에서는 이 ‘청소’가 유행이라는 얘기까지 있었다.

나는 ‘소비’와 ‘데스 클리닝’이라는 두 단어가 거의 같은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그러고 나자 이내 삶의 비밀스럽고 사랑스러운 아이러니도 엿볼 수 있었다. ‘산다는 건 존재하는 게 아니고 사라지는 일에 가깝다.’ 모든 순간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식의 사유가 일상에 미치는 낯선 아름다움에 한동안 빠져서 지낼 수 있었다.

아예 가지지 않기

내가 잘 버리고 잘 없애는 삶을 떠올려 보는 사이 완두가 산책을 바라는 눈으로 나를 본다. 겉옷 없이 새로 자라나는 털로 사계절을 나고 신발 대신 두터워진 발바닥을 가진 개. 새로운 물건 없이, 원래 가진 것을 죽을 때까지 잘 쓰다가 가는 삶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완두는 나가서 뛰어노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없어져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것도 추가로 가지지 않고 강가의 돌처럼 바람과 물살에 깎여 사라지는. 나는 가끔 이렇게 완두를 새롭게 인식하곤 한다. 내가 낯선 생각을 받아들일 때마다, 함께 살고 있는 완두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내가 오늘처럼 계속해서 세상을 낯설게 볼 수 있다면, 내 주변도 계속해서 새로워지는 걸까? 그건 어쩌면 한 존재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방법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써야 하고, 완두는 아예 가지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각자 꾸려나갈 삶의 형태가 다르지만, 삶이 어이없게 쌓인 채로 끝나지 않도록 각자 잘 써야 한다는 점은 같다. 나는 버리고 완두는 뛴다. 허비하지 않고 소비하기 위해. 잘 사라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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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