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는 말 속엔 여러 의미가 있지만 가장 처음은 뭐니 뭐니 해도 ‘좋은 것’이라는 거다. 종종 착하다는 말이 반대의 뜻으로 오갈 때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데, 오늘은 진정 이 단어가 꼭 어울리는 사람들을 만났다. 정현과 유원은 서로의 선한 모습을 바라보며 온전히 지켜주는 사람들이다.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공간, 그 속에선 기분 좋은 언어들이 오가고 있었다.

두 분 첫 인터뷰라고 들었어요. 덩달아 조금 떨리는데요. 각자 소개로 시작해 볼까요?

유원: 긴장되네요(웃음). 안녕하세요, 저는 영상 프로덕션 오운더스탠드Ownderstand를 운영하고 있는 한유원입니다. 개인적으론 영화 작업도 하고 있어요.

정현: 반가워요(웃음). 저는 사진 찍는 임정현입니다. 요즘은 드나스 공간을 좀더 채우고 싶어 여러 시도를 해보는 중이에요. 작은 소품을 만들기도 하면서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두 분은 커플이잖아요.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궁금했어요.

유원: 제가 첫 단편 영화를 준비할 때였어요. 캐스팅 단계였는데 그중에 보살 역할이 있었어요.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 배우가 본래 가진 분위기가 중요한 배역이었죠. 전문 배우가 아닌 사람을 찾고 있던 차에 정현이가 떠올랐어요. 당시에 SNS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거든요. 제가 캐스팅 제안을 하면서 처음 만나게 된 거죠.

 

보살 역할이요? 정현 씨는 제안받았을 때 조금 놀랐겠어요.

정현: 갑자기 연락이 와서 사진 작업을 요청하는 줄 알았는데 연기를 부탁하더라고요. 신기했죠. 그런데 처음엔 걱정이 많았어요. SNS로 보는 사람의 이미지는 아주 단편적이잖아요. 막상 마주했을 때 너무 다르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고민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당시엔 무조건 새로운 경험이 큰 배움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래서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지금의 저였다면 정중히 거절했을 것 같아요. 그때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유원: 제가 봤던 정현이는 차분하고 깔끔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었어요. 실제로 만났을 때도 같았고요. 촬영 후에 영화 포스터 작업까지 부탁하게 되면서 더 친해졌어요. 그러다가… 저는 어느 순간 우리가 사귄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더라고요(웃음).

정현: 사귄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사귀는 게 아니죠. 혼자 착각하고 있더라고요(웃음).

유원: 결국 서로 마음을 확인하는 대화를 하고서 정식으로 만나게 됐어요.

보기 좋아요. 둘이서 드나스 스튜디오DNAS Studio를 함께 오픈했는데 시작은 어땠나요?

유원: 드나스는 스튜디오라기보다 저희 둘이 쓰는 작업실 개념에 더 가까워요. ‘드나스’라는 이름도 요나스 메카스Jonas Mekas 감독의 짧은 영화 <Diaries, Notes And Sketches>(1969)에서 따왔어요. 노트에 스케치하듯 창작자들이 이곳에서 자유롭게 작업하길 바라는 의미를 담았죠. 작업실 공유의 목적이 강한 곳이에요.

정현: 이 공간을 얻게 된 것도 서로 작업실의 필요성을 느끼면서였어요. 마침 좋은 대출 제도를 알게 돼서 바로 건물을 알아보러 다녔죠. 여러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바로 저희 집 아래에 있는 지금 이 공간이 떠올랐어요. 접근성이 좋은 공간은 아니지만 오는 길이 참 아름다운 곳이에요.

 

오래된 공간이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멋진 곳이에요. 정현씨는 원래 종로에 살았군요. 혹시 서울 토박인가요?

정현: 맞아요. 어릴 때는 가회동에 살다가 최근에 평창동으로 이사 왔어요.

 

종로의 변화를 쭉 지켜보며 자랐겠네요.

정현: 그렇죠. 서울을 떠올리면 높고 빽빽한 건물과 도시 이미지가 강한데 종로는 곳곳에 자연이 돋보여요.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도 많이 생겼고요. 아주 도시적인 것들과 또 자연적인 것들, 오래된 것과 새것이 묘하게 뒤섞여 공존하는 동네예요. 제가 어릴 땐 주민들만 있는 한적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젠 외지인들이 방문하면서 조금 활발한 풍경도 생겼죠.

 

종로는 특히 정제된 매력이 있는 동네 같아요. 유원 씨는 김해가 고향이라고 들었어요. 서울을 보는 시선이 조금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유원: 처음엔 이 도시에 큰 환상을 가졌어요. 서울 친구들을 마주하면 조금 긴장하던 시절도 있었고요(웃음). 서울에선 특히 문화적 풍요를 기대했는데 그것도 결국 부지런한 사람이 제대로 누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환경이 중요한 게 아니었던 거죠. 서울 안에서도 동네마다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도 느껴요. 일반화하려는 건 아니지만 서초, 마포, 종로 등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요.

 

그럼 종로 사람으로 본 정현 씨는 어떤 사람이던가요?

유원: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데(웃음)… 매우 검소하면서 차분하고 그렇지만 어딘가 꽉 채워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정현이 말고도 종로에 사는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요.

오운더스탠드 홈페이지에서 두 사람이 여행하면서 찍은 영상들을 봤어요. 유원 씨가 정현 씨를 찍은 컷들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런 시선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네요.

유원: 저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정현이가 여행을 좋아해서 따라다니게 됐어요.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영감을 받기도 했고 여러 감정을 느끼면서 이 순간을 기록하자는 마음으로 찍었던 것 같아요.

 

두 분이 서로의 작업에 영감을 주는 부분도 많을 것 같아요.

정현: 비슷한 경우인데, 저는 사실 영화에 관심이 많던 사람은 아니었어요. 오빠를 만나게 되면서 영화를 접할 기회가 많이 생겼고 그 과정에서 사진 작업에 참고하면 좋을 레퍼런스를 종종 얻게 됐죠. 영화 이미지가 사진 작업까지 이어지는 건 상상 못 하던 부분이었는데 작업 반경이 넓어진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두 분의 작업이 비슷한 톤을 가졌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어요.

정현: 그런 면이 있죠. 그동안 만나면서 서로 많은 부분을 공유했고 예전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을 자주 느끼곤 해요. 스스로 제 사진의 결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깨달을 때도 있고요. 수수하고 깨끗하고 자극 없는 무드를 유지하지만 색채와 대비는 비교적 강해졌어요. 조금 어두운 톤의 이미지를 선호하게 된 것도 변화 중 하나고요.

유원: 서로 감각이 닮아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영화 피드백 중에 ‘착하다’는 표현이 있었는데요. 저희 둘에게 그런 이미지가 일부분 존재한다고도 생각해요.

 

여기서 착하다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유원: 친한 피디님이 제 영화와 글을 보고 주신 피드백이었어요. 영화에는 다양한 소재가 등장하잖아요. 그 안에는 폭력과 갈등, 사랑도 포함되고요. 제 영화 안에선 그런 소재의 묘사가 끝까지 가지 않아요. 그런 면을 착하다고 표현해 주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의 단편 영화 <나는 사람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다>(2019)에서 주인공이 위선적인 인물에게 시비 거는 장면이 있어요. 주인공은 욕설이나 주먹다짐으로 통쾌한 대응을 하지 않고 소심하게 침을 뱉고는 결국 얻어 맞고 말아요(웃음). 어떻게 보면 쪼잔한 표현으로 보일 수 있는데 저는 그런 찌질함이 좋더라고요. 이런 요소가 착하다는 표현과 이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정현: 오빠가 찍는 영화에는 악의가 없어요. 물론 그 안에 갈등과 미움이라는 감정도 있지만 그 뒤에는 반드시 타당한 이유가 있어요. 그저 익숙한 일상의 얘기라는 느낌이 더 많이 들고요. 공감할 수 있는 영화들이죠.

각자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현: 다른 사진을 봤을 때 좋다고 느끼는 점들이 제가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은 점과 같아요. 사진은 결국 찰나의 순간인데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느껴졌으면 해요. 제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거나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면 좋겠고요. 멈춰 있지만 흐르는 것 같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유원: 저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어떤 영화를 봤을 때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체험했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 새로운 무언가는 장르로서 판타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이야기고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표현이지만 동시에 영화를 보고 있다는 걸 인지하게 만드는, 결국은 카메라의 시선으로만 잡을 수 있는 낯선 이미지가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끝으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웃음)? 지면을 빌려남겨 봐요.

정현: (웃음) 즐겁게 하자.

유원: 저희가 이 말을 정말 자주 해요(웃음).

 

함축적인 의미가 있는 말 같은데요?

정현: 연연하지 말고 항상 즐겁게 하자, 그러다 보면 우리가 걱정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날이 오겠지, 하는 의미를 담은 말이에요. 아직은 젊으니까 그냥 지금 재밌는 걸 따라가 보자, 조바심 내지 말고 그냥 우리 하던 거 하자(웃음).

유원: 이런 말을 할 때 보면 정말 보살 같아요. 캐스팅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죠(웃음).

드나스 스튜디오는 창밖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나무가 흩날리는 와중에 새어 들어오는 빛을 보며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공간은 그곳을 다듬는 사람을 닮아간다. 정현과 유원이 그렇다. 풍경처럼 나무처럼 빛처럼. 아무렴, 좋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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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