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visible Hand That Makes A Movie : Overseas Director Essay
알프레드 히치콕, 미셸 공드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Overseas Director Essay
날 더 무섭게 해 봐
알프레드 히치콕
천재 아니면 마술사겠지
미셸 공드리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기억
고레에다 히로카즈
알프레드 히치콕
You’re The Scariest
날 더 무섭게 해 봐
어린 시절 너무 일찍 히치콕을 접한 탓에 웬만한 무서운 이야기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 어른이 됐다. 등줄기에 오한이 들게 하는 것은 골목길 구석에 웅크린 처녀 귀신이 아니라 머리 위를 맴도는 새 떼이고, 머리칼을 쭈뼛 서게 하는 것은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는 그 여자가 아니라 귓가를 맴도는 소름 끼치는 현악이다.
텔레비전이 켜졌고, DVD 한 장이 플레이어에 들어갔고, 홈시어터에 불빛이 들어왔고, 몇 번의 리모컨 조작 후 화면이 시작됐다. 여자의 높게 틀어 올린 머리를 쪼아대던 한 마리의 새를 기억한다. 지나치게 평면적이라 색종이처럼 보이던 물빛 배경에서 이상할 만큼 입체적이던 여자의 얼굴, 불길함이 뼛속 깊이 스며들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그 기분 역시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새장에 갇힌 새와 새를 통제하는 사람의 손길이 오래 비칠수록 나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고, 그건 어린애의 경우에도 어김없었다. 한두 번 부리로 사람의 머리를 쪼는 게 다였던 새는, 한두 번 부리로 쪼는 게 가능한 또 다른 새를 모아 거대한 흑과 백을 만들었다. 사방에서, 팔방에서 돌진하여 인간이 더는 생활할 수 없을 만큼 여기저기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부리를, 날개를, 발톱을 사납게 흔들어대던 새의 움직임을 ‘공격’ 말고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때 느낀 감정을 ‘공포’ 말고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어린 나는 공격과 공포 앞에 좌절했다. 그건 너무나 무서운 영화였다. <새>(1963)를 본 그날엔 베개에 이마를 푹 박은 채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는 몇 번이고 빌었다. “제발 우리 학교 운동장에만 오지 마세요. 제발 우리 학교 운동장에만 오지 마세요.” 아무리 잔인한 악당이어도 아이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순진한 믿음이 박살 난 하루였다. 새 떼는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사정없이 쪼아대기 바빴다. 믿는 신도 없이 일단 빌고 보는 이 밤도 안전하지 못하단 생각에 나는 이불 속에서 훌쩍이며 울었다. 운동장에 하나둘 자리를 만들던 검은 새와 회색빛 정글짐이 보란 듯이 건네던 그 차갑고 섬뜩한 기운을 어떻게 잊을까. 이젠 어린이란 보호막을 걷어내고 훌쩍 큰 어른이 되었지만, 새 떼만 보면 여전히 등줄기가 서늘하다. “무서운 얘기 하자!”고 달려들던 어린 나는 세상 모든 괴담이 시시하단 걸 너무 일찍 알았다.
“좋아. 그래서 페어베일 철물점 뒤에 있는 창고 같은 곳에서 나랑 산다고? 퍽이나 재밌겠다.”
사랑은 스릴, 쇼크, 서스펜스
4만 불. 한화로 자그마치 4천 8백만 원이다. <싸이코>(1960)의 마리온이 훔쳐 달아난 돈 말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대단히 큰돈을 한 번에 쓴 일은 없어서 4만 불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감도 잘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액수를 수표가 아닌 현금으로 거래하는 건 불법이라는 걸 보니 어느 정도인지 대충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마리온은 현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사장의 심부름으로 은행에 가게 됐지만, 태연한 얼굴로 집에 돌아와 현금 뭉치를 침대에 던져둔다. 연인 샘과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도망치는 그녀. 나는 그 ‘유명한 살인마’가 등장하기 전까지 영화를 보면서 싸이코란 당연히 그녀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간이 너무 크잖아.’라는 기분 때문이었는데, 돈이 사라지면 회사 사람 모두가 그녀가 범인인 걸 알아채는데도 그 돈을 가지고 도망칠 수 있단 걸 좀체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싸이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마리온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본다면 “아, 이거?” 하고 아는 척할 수 있을 테다. 샤워 커튼을 열고 씻고 있는 그녀를 무차별하게 찌르던 검은 형체와 알몸으로 죽임을 당하며 손을 뻗는 마리온의 모습, 흑백영화인데도 선명히 보이는 듯한 검붉은 피의 형태, 뜬눈으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 그녀의 얼굴…. 무섭다. 돈도, 인간의 욕심도, 싸이코의 칼날도, 핏자국도 아닌 사랑이. <싸이코> 속 사랑이 한층 무섭게 느껴진 건 장면에서 점차 커지는 현악 음량과 빨라지는 리듬, 이에 섞여드는 물줄기 소리, 그리고 마리온의 비명 같은 ‘소리’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공포를 겨냥한 소리와 공포인 줄 몰랐던 사랑이 만나 불안의 극치를 달리는 <싸이코>는 그렇게 시대를 풍미한 스릴러가 된다. 개봉 당시에는 욕실 살인 장면을 보고 졸도하는 관객이 속출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고 하니, 내가 지금 소름이 돋아 몸서리 친 것도 대단히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덕업일치만큼 재밌는 게 또 없지
‘히치콕 덕후’들의 덕업일치 결과물 훑어보기
첫 번째 덕후, 프랑수아 트뤼포
<히치콕 트뤼포>(2015)
켄트 존스 | 다큐멘터리
1962년,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일주일간 인터뷰를 요청한 프랑수아 트뤼포. 이 둘의 만남은 1966년 《히치콕과의 대화》라는 책으로 출간되었고, 극장판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졌다. 히치콕을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은 트뤼포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인터뷰란 명목으로 일주일간 쉬지 않고 그와 대화를 이어갔다. 명감독들이 히치콕에 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 장면과 <현기증>(1958), <싸이코>(1960), <새>(1963)를 깊게 파고드는 덕후의 결과물 <히치콕 트뤼포>. 현실감 있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나는 히치콕이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란 걸 믿을 수 있게 됐다.
두 번째 덕후, 알렉상드르 오 필립
<78/52>(2017)
알렉상드르 오 필립 | 다큐멘터리
독특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으로 알려진 알렉상드로 오 필립은 <78/52>를 통해 <싸이코>의 샤워 살인 장면만을 집요하게 분석한다. 78번의 카메라 셋업과 52번의 쇼트로 이루어진 장면임을 의미하는 제목, <78/52>. 이 영화에는 영화감독, 영화배우, 영화편집자, 영화평론가 등 영화계 다양한 직군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히치콕의 모습이 그려지는가 하면 각자의 생각이 모여 또 다른 그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시퀀스의 쇼트를 하나씩 설명하거나 촬영 당시 활용한 대본 등을 보여주면서 짧고 굵게 지나가는 명장면을 긴 호흡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하는 <78/52>. 이 영화는 과연 덕후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미셸 공드리
Are You A Genius?
천재 아니면 마술사겠지
당신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아껴둔 컬러링북을 꼭 챙겨 가야지. 오래된 문방구에서 사 온 조악하고 귀여운 그림들은 당신을 만나 살아나겠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빛깔로 종이 위에 마법을 부려줄 사람은 지구상에 오직 단 한 사람, 공드리뿐일 테니까.
ⓒ ‘Star Guitar’ 뮤직비디오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
‘스타 기타Star Guitar’ 뮤직비디오
난 네가 노래할 수 있다고 믿어
별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다시 찾으려고 하는데,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꿈이었을까. 그 기사를 읽고 나무도, 풀도, 열차 선로도 반드시 노래할 줄 안다고 믿었는데.
포근한 이불 속에서 이리저리 뒹구는 내게 “이거 같이 보자.”며 랩톱을 들이미는 사람이 있었다. 아주 따뜻한 어느 겨울이었다. 나한테 언제나 좋은 영향을 주던 그 애가 가리키는 곳엔 항상 처음 보는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혀 모르던 유용한 사실이나 낯설지만 대단히 멋진 것들이 3월의 새싹처럼 내 마음에서 움틀 준비를 하며 다가오곤 했다. 그날 아침, 그 애가 내민 랩톱 안에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풍경이 있었다. 그저 묵묵히 흘러가기만 하는 편안한 풍경. 푸른 잔디와 맑은 하늘, 전봇대와 알 수 없는 몇 개의 구조물이 박자를 맞춰 보폭을 달리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나는 금방 기차에 올라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승객이 됐고, 창밖 풍경은 열차 진행 방향 반대로 쓱쓱 지나가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선로가 단단해 보여 마음이 안정되는 시야는 꼭 1호선의 그것과 닮아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짝 웃는 찰나, 귓가에 비트가 들려온다. 마치 선로의 풍경이 내는 소리처럼 차분하고 정직하게 착, 착, 착, 착. 궁금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니 파파, 파파파, 파파, 파파파- 좀더 거센 소리가 들려오는데, 그때 나는 확신했다. 풍경도 자기만의 목소리로 노랠 부를 수 있다고.
재즈 뮤지션이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전자 키보드를 발명한 외할아버지를 둔 프랑스 남성이 뮤직비디오로 영상 작업을 시작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성장 환경과 유전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재능의 원천이니까. <수면의 과학>(2006), <무드 인디고>(2013)를 만든 미셸 공드리 이야기다. 공드리는 연주와 노래하는 자연을 케미컬 브라더스의 ‘스타 기타’ 뮤직비디오에 담았다. 인위적인 효과에 기대지 않고 음악에 온전히 몸을 맡긴 풍경의 노래를. 음악이란 예술, 영상이란 예술, 자연이란 예술이 모여 만드는 경이는 그 겨울의 나를 환상이란 단어로 초대했다.
ⓒ ‘Sugar Water’ 뮤직비디오
시보 마토Cibo Matto,
‘슈가 워터Sugar water’ 뮤직비디오
상상에 날개가 돋기 시작했다
상상화를 그리는 날이면 언제나 시간을 역행하는 내 모습을 그리곤 했다. 사람들은 앞으로 걷는데 나는 뒤로 걷고, 사람들은 물을 마시는데 나는 마신 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오늘 0시에서 24시간을 살고, 나는 미래의 0시에서 24시간을 거꾸로 거스르다가 이내 같은 날 자정에 만나 똑같은 출발점에 서는 재미있는 상상. 그러다 보면 어떤 지점에선 거꾸로 가는 나와 똑바로 가는 누군가가 만나게 될 텐데 그런 경우에 들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궁리하곤 했다. 쓸데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일본 뮤지션 시보 마토를 좋아했다. 그들의 디스코그래피는 일명 ‘야자송’. 나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면 노랫말은 잘 안 들리지만 멜로디가 좋은 음악을 골라 듣곤 했는데, 이들의 곡은 야자송에 제격이었다. 성인이 된 어느 날 시보 마토의 ‘슈가 워터’ 뮤직비디오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되어 궁금한 맘으로 재생했는데, 이건… 내 상상화잖아? 두 개로 분할된 화면에 정방향의 여자1과 역방향의 여자2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둘의 이야기는 각자의 시점으로 진행되다가 중간 지점에 이르면 교통사고로 두 인물이 맞닥뜨리게 되는데, “You Killed Me”라는 문장이 화면 전체에 등장한 뒤부터 이들의 상황은 역전된다. 여자1이 역방향으로, 여자2가 정방향으로 바뀌면서 놀랍도록 천재적인, 그러나 무척 자연스러운 흐름이 교차되는 것이다. 뒤집어진 상황에도 보는 사람은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대로 뮤직비디오는 엔딩에 닿는다.
상상화가 존재하는 이유는 상상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일 텐데, 미셸 공드리에겐 상상을 반영한 세계를 만드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CG 없이도, 인위적인 효과를 추가하지 않고 완성해낸 뮤직비디오로 어릴 적 상상을 눈으로 본다. 기가 막히게 짜인 구조를, 원테이크로 촬영된 천재적인 흐름을. 나는 미셸 공드리가 좋다. 양손에 오색빛깔 색채를 쥐고 있는 남자, 손을 펼쳐 세상 구석구석에 색을 입히는 남자, 생동감이 깃든 채도와 빛깔을 골라 멈춰 있는 것들이 숨 쉴 수 있도록 마법을 부리는 남자. 음악이라는 흐름을 타고 아름답게 구성된 그의 또 다른 세계를 나는 상상화 그리기만큼이나 좋아하고 있다.
미셸 공드리의 영화 속에도 우리의 상상은 선명하게 깃들어 있다. 누군가의 머릿속을 파헤치면 분명히 이런 장면이 상상 속에 한두 개쯤은 있으리라. 공드리는 구름처럼 뭉게뭉게 자라난 상상의 실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사람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야…,
고레에다 히로카즈
From His Memory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기억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2004)는 마음이 아프다 못해 아려서 쉽게 볼 수 없는 영화다.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다 결국 영화 보기를 포기했고, 다시 보기까지는 얼마간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의 영화 속 아이들은 자신보다 약하고 여린 것들을 소중히 키워나간다. 그 모습을 끝까지 보고 싶어, 다른 영화들부터 천천히 열어 보기로 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의 코이치는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 밤 사이 쌓인 재를 닦는다. 동생 류 역시 홀로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늦잠 자는 아빠를 깨운다. 이 형제는 가족의 헤어짐 아래에서 각자의 일상을 살며 꿋꿋이 ‘기적’을 빌었다. 한 가정이 떨어져 살아야 하는 이유, 코이치가 재를 닦아야만 하는 이유는 두 형제의 같은 듯 다른 일상에 조용히 감춰져 있다. 코이치와 류, 그리고 친구들이 바랐던 기적은 여행이 끝난 후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야 일어났다. 그 어떤 커다란 사건 속에서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말과 행동, 매일매일의 걸음과 뜀박질 사이에서 ‘진짜’ 기적이 벌어졌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 TV 다큐멘터리 연출가였던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전 작업들을 꾸준한 흔적으로 남겨,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 관객의 마음을 두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원더풀 라이프>(1998)에서는 죽은 사람들의 실제 기억이 영화라는 픽션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리기도 한다. 히로카즈는 픽션이 사람들에게 감정을 이끄는 ‘도취’를, 다큐멘터리는 비판적 의식을 심는 ‘각성’을 전해준다고 했다. 작품마다 다르겠지만 그는 이 두 가지가 영화 속에 적절히 섞인 채로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 것을 목표로 하는 듯하다. 이런 이유로 그의 영화를 볼 때는 조금 먼 거리에서 상황을 지켜보다가도 어느 순간엔 인물의 바로 앞, 어쩌면 더 깊숙한 곳까지 다가서고 만다. 히로카즈는 인물에게 감정을 드러내게 하지 않지만 나는 그의 영화 속 사람들에게 아픔, 또는 그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소소한 일상, 실제 삶을 가까이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방식과 감정을 건드는 이야기의 힘이 함께하기 때문일까. 가만히 영화를 보다가도 문득 힘에 부치는 이유는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히로카즈는 여러 존재의 눈을 빌려 영화 속 풍경과 그 안의 사회를 비춘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아무도 모른다>(2004)에서는 아이의 눈을, <원더풀 라이프>, <걸어도 걸어도>(2008), <태풍이 지나가고>(2016)에서는 죽은 이의 시선을 가져온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어느 가족>(2018)에서는 가족의 관계를 바탕으로 진짜 가족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히로카즈는 영화를 통해 삶을 이야기할 때 자신의 직접적인 언어를 통하지 않고 무언가 사이에 두는 방식을 택했다. 아주 천천한 속도로, 그 배경은 가족의 품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으면서.
죽은 자는 확고한 존재이며 저는 죽은 자의 눈을 통해 지금의 어른을 객관적으로 비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도 어른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아직 완전히 사회 일원이 되지 않은 아이의 눈을 통해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비평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가 세상을 말하며 빌린 눈들은 내가 그리워하는 것들에 가까웠다. ‘죽은 이’는 남아 있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그리움, ‘아이’는 잡히지 않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 두 가지 시작엔 늘 ‘기억’이 있고 이 그리운 기억들이 영화에 비쳐 힘이 들었다. 다른 영화들을 모두 거치고 나서야 드디어 <아무도 모른다>를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영화는 여전히 아팠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었고 그 언저리엔 어떤 빛까지 비쳤다. 아이들이 키우던 화분의 여린 풀들도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작은 집에 그들을 보살필 어른은 없었지만 아이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함께 만들어낸 풍요를 지키러 나란히, 나란히 걸어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속 무언가를 바라보는 고이치의 모습, 그 시선을 기록한다.
무언가를 가만히 바라보는 표정을 바라보는 곳을 비추지 않고 찍으면 관객은 배우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포함하여 프레임 바깥쪽을 상상하며 그 인물의 내면으로 문득 다가갑니다. 그래서 아이를 찍을 때 가장 중요한 연출은 아이를 어디에 둘지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이는 어른 배우도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