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주는 집

The House Gives Me Courage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2년 단위로 이사를 하며 살고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전 임대 계약은 2년.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자의 반 타의 반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러다 보니 이사를 자주 한 편이고, 그 덕분에 여러 지역, 다양한 집에서 살아볼 수 있었다. 사는 곳은 항상 내 예상보다 많은 것을 바꾸었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집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 특별한 집이 지난 2년간 내게 준 것에 대하여.

OO리

분홍색 주택

택배를 주문할 때 주소를 늘 ‘제주시 OO읍 OO리 OO번지 분홍색 주택’이라고 적는다. 행정구역 상 주소만 적었더니 택배 기사님들이 집 근처에서 전화를 하셨다. “근처까지 왔는데 도저히 못 찾겠어요. 집이 어디에 있는 거죠?” 그때부터 주소 끝에 ‘분홍색 주택’이라고 덧붙였다. 그 후론 대부분 헷갈리지 않고 찾아오신다. 눈치챘겠지만 우리 집은 두 집 사이에 낀 작은 분홍색 주택이다. 아주 촌스러운 분홍색으로 외벽이 칠해진 꺼벙하게 생긴 이층집을 처음 봤을 땐 당황스러웠다. 무난한 하얀색으로 페인트칠이라도 다시 할까 했지만, 집에 들어가면 보이지 않으니 그냥 적응하고 살기로 했다. 에펠탑이 싫어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에펠탑 내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는 모파상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것도 같다. 아무튼 이 독특한 색깔 덕분에 집을 잘 찾을 수 있다니 분홍색 주택에 살아 좋은 점도 있다.

우리 집에 오기로 한 친구가 약속 시각이 지났는데 오지 않는다. “여기 길이 이상해. 집이 없어!” “어디쯤이야? 지금 뭐가 보여?” 친구는 “왼쪽엔 대나무, 오른쪽엔 소나무가 있어.”라고 외쳤다. 음 그렇지, 왼쪽엔 대나무 오른쪽엔 소나무가 있지. 정확하게 찾아왔다. 하지만 뭐라 덧붙여 해줄 말은 없다. “길이 아닌 것 같지만 길이니까 흙길을 따라 달려와.”라고 말해줄 수밖에. 무사히 도착한 친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차를 몰고 깊은 숲으로 들어갈 뻔했다.”고 말했다. 여행 온 친구를 옆에 태우고 집으로 향하면 친구들은 늘 “어디까지 가는 거야.”라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안개까지 껴 시야가 좋지 않은 날이면 친구들은 진짜로 얘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나 긴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친구들 반응은 반으로 나뉜다. “나도 이런 집에 살고 싶다.” “나는 절대 못 살아.”

불편한

‘아파트 키드’인 나는 이 집에서 살 수 있을까? 2년 전 제주 북쪽 바다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간 주로 바다 근처에 살던 나는 한라산 자락 중산간 마을에서 살아보고 싶어졌다. 임대로 사는 것의 거의 유일한 장점은 동네를 바꿔가며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적극적으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빈집을 소개받았고 큰 고민 안 하고 결정을 했다. 결정하고 보니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 ‘주택’에 살아본다. 어린 시절부터 아파트에 살았다. 아파트는 대체로 따뜻했고, 어딘가 고장나 인터폰으로 연락을 하면 관리사무소에서 고치러 와주었다. 집을 비운 사이 택배는 경비실에서 받아주었다. 분리수거하는 곳도 가깝고 편의 시설도 멀지 않았다. 아주 당연하게 누린 것들이었다.

내가 처음 살게 된 이 집은 주택 중에서도 생활 난도가 높은 집이다. 일단 단단하게 잘 지은 집이라기보다는 얼기설기 지어진 집이다. 집에 창문이 대단히 많은데 그 창문들이 모두 유명무실한 이중창. 안쪽 창문은 잘 맞물리지 않고, 창틀 옆에 이것저것 덧대어 보수한 흔적이 많다. 그래도 여전히 외풍이 심해서 집이 춥다. 결로도 심해 창틀 곰팡이는 손대기 어려운 수준이다. 계단은 삐걱거리고, 2층에서 발을 세게 구르면 1층 천장의 등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화장실이며 부엌 등에 자잘한 고장도 많았다. 집의 불편함은 생활의 불편함으로 이어졌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은 10킬로가 넘고, 배달되는 식당은 단 한 곳도 없다. 분리수거는 물론 음식물 쓰레기까지 차를 타고 한참 나가야 버릴 수 있다. 전화도 잘 터지지 않아 통신사에 연락해 수리해야 했다. 게다가 세탁실이 밖에 있어서 빨래를 하려면 비나 눈이 와도 빨래통을 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잡풀이 마치 아마존 정글처럼 우거진 마당을 관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가로등도 없어 해가 지면 사위가 칠흑같이 어두워 늘 손전등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집 안에서 처음 주먹만 한 왕거미를 봤을 땐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이제 거미 정도에는 놀라지 않는다. 컵과 종이 한 장을 능숙하게 사용해 거미를 산 채로 잡아 밖에 내보낸다. 빨간 다리가 우수수 달린 지네를 처음 봤을 땐 ‘이사 갈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언제나 적당히 부족하고 단순한 삶이 좋다고 주창해 왔지만 해도 해도 너무 불편한 집. 자동차 번호판에 이끼가 끼는 습한 숲속, 비포장도로 흙길에 있는 이 집에서 2년째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집이 좋다. 이 불편한 집이 마음에 쏙 든다.

15킬로 배낭을 메고 6개월간 남미를 여행한 적이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했지만 막상 무거운 배낭을 둘러메고 길 위에 서자 막막함이 밀려왔다. 나는 장기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이 여행을 무사히 잘 끝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여행이 끝날 무렵 나는 이 가방을 메고 평생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이 들었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목울대 주변이 뜨끈해진다. 사는 데 꼭 필요한 물건만 넣은 내 모든 짐을 내가 오롯이 짊어지고 걷는 일이 나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어깨에 배낭을 메고 걸어보니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까지 불편해져도 상관없는 사람인지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 이 있다. 어디서나 잘 자고 잘 싸는 사람이고 싶었지만, 사실은 화장실이 딸린 안락한 숙소가 좋았고, 푹 꺼진 눅눅한 침대에서는 자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나는 어디서나 잘 자고, 어떤 상황에서도 화장실을 잘 가는 사람이었다. 낯선 나라의 음식을 먹는 일도 즐거웠다. 그러니 나는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살 수 있다. 경험해 보지 않았으면 영원히 모른 채 살았을지도 모른다.

친구가

생기는 집

사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집은, 내 고양이 ‘제제’에게 친구가 생기는 집이다. 이 집에 사는 동안 제제는 나보다 더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하루 종일 창문마다 옮겨 다니며 밖을 구경한다. 어떤 날은 까치가 찾아오고, 어떤 날은 옆집 개가 놀러 오기도 한다. 마당에 둔 밥을 먹으러 고양이 친구가 오면 그 누구보다 제제가 먼저 알아차리고 뛰어가 인사를 한다.

처음 노루가 마당에 온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아침 제제가 창밖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어?” 옆에 나란히 앉아 제제가 보는 방향을 함께 바라보니 노루 세 마리가 느긋하게 마당의 잡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예초 안 한 게으른 나를 칭찬했다. 반딧불이가 집 안에 들어온 날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꼬리에서 두 줄 형광 빛을 내며 반딧불이가 집 안을 날아다니고, 제제는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나도 옆에서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리고 역시 산 채로 잘 잡아 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거미와 지네가 있으면 반딧불이도 있고, 뱀이 있으면 노루도 있는 거지. 거미와 지네, 뱀이 없는 집보다는 반딧불이와 노루가 있는 집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다.

언제나 용감하고 거침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적당히 부족한 채로 단순하게 살고 싶었다. 늘 그랬다. 내가 어디까지 불편하게 살아도 괜찮은 사람인지, 사실 우리는 잘 모른다. 이 불편한 집에서 부족하고 단순하게 사는 동안 내 생각보다 나는 더 용감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이 글을 쓰는 중에 임대 계약 연장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만큼 정성과 마음을 쏟은 집은 처음이라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세입자는 마냥 아쉬워만 하고 있을 수 없다. 부지런히 부동산사이트를 찾아보고 발품을 팔았다. 임대료를 더 주면 세련되고 편리한 주택에서 살 수 있고, 비슷한 금액이면 시내의 널찍한 아파트에서도 살 수 있다. 여러 선택지 중에 합리적인 임대료의 관리되지 않은 낡은 목조 주택을 선택했다. 우리와 잘 어울리는 집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우리 집에 오려다 숲으로 들어갈 뻔한 그 친구)한테 나중에 서울 서촌의 한옥 주택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친구가 “한옥은 항시 손 볼 데도 많고, 오르막에 있는 집은 눈 오면 다니기 힘들대.”라고 말하다 깨달은 듯 덧붙였다. “아, 그래도 지금 너네 집보다는 괜찮지.” 끄덕끄덕.

나는 이 집에서도 잘 살았다. 어떤 불편한 집에서든 살 수 있는 사람이다. 직접 경험한 이 사실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용기를 주는 일인지. 나에게 용기를 준 나의 첫 번째 주택, 작고 꺼벙한 분홍색 주택에서 지낼 날이 꼭 열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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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다운

사진 박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