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TORY OF THE MASTER

나만 빼고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

THE HIDDEN STORY OF THE MASTER

나만 빼고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

누구나 한두 개쯤 비밀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비화’로 일컬어지는 숨겨진 사연들. 몰라도 상관없지만 한번 알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 말이다. 꽤 진지하지만 듣고 나면 허무맹랑한 감정이 드는 이 이야기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쇼핑몰 완판 신화의 주인공

슈퍼맨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클라크 켄트Clark Kent(1938~)는 그야말로 워커홀릭이다. 그는 절대로 하나의 일만 하는 법이 없다. 대외적으로는 ‘데일리 플래닛Daily Planet’ 신문사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지만, 넘치는 근육을 주체하지 못해 때때로 자기보다 약한 악당들을 소탕하며 현상금을 벌기도 했다. 그는 또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에 슈퍼파워를 더해 코믹스에 넘기기도 했다. 이는 후에 만화책과 영화로도 만들어져 짭짤한 저작권료를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식 미남의 전형이자 수많은 적금 통장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도 한 가지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수려한 외모를 따라가지 못하는 최악의 패션센스였다. 그는 늘 듣도 보도 못한 난해한 패션을 선보이며 거리를 활보했다.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거나 미간을 구기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하지만 그의 개성에 주목한 속옷회사 사장은 그를 피팅 모델로 낙점했고, 원색의 강렬한 스판 레깅스 위에 빨간 팬티를 입히는 파격적인 시도로 패션계에 커다란 충격을 불러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클라크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호스트로 출연한 홈쇼핑 방송에서 회전문을 돌며 옷을 갈아입는 퍼포먼스와 자신의 근육질 몸매를 무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날 방송(1998년, NBC 홈쇼핑)에서 기록한 최단시간 매진, 최대수량 판매의 기록은 도무지 깨지지 않는 불멸의 신화처럼 전해지고 있다.

콧수염에 자유와 평등을

프리메이슨Freemason이 아니다. 일명 ‘프리머스타시FreeMoustache’, 즉 ‘콧수염해방연합’이라고 불리는 범세계적 비밀 조직이 있다. 암암리에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프리머스타시의 대표 멤버로는 영국인 찰리 채플린(희극 배우)을 비롯해 마리오(배관공)와 아인슈타인(우유가 아니다), 심지어 히틀러(독재자) 등이 있다. 

그들은 콧수염 해방을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투쟁해왔다. 특히 프리머스타시 연합에서는 예술가들의 행보가 도드라졌는데 살바도르 달리의 경우 독특한 콧수염 손질로 아방가르드한 스타일링에 앞장섰으며, 르네 마그리트는 콧수염이 나지 않는 신체적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그림 위에 콧수염 대신 파이프를 그려 넣는 재치를 선보이기도 했다. 한편 콜롬비아에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고위 간부를 제외한 나머지 경찰은 권위의 상징 콧수염을 기르지 못한다는 내부 규율이 있었다. 이에 프리머스타시 콜롬비아 지부 회원이었던 하급 경찰관 한 명이 국가 위원회에 심의를 청구했고, 무려 17년간 이어진 억압으로부터 콧수염의 자유를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에도 결사대원이 있느냐고? 글쎄, 주변을 돌아보면 멋진 콧수염쟁이들 한두 명쯤 있긴 하던데.

처음인 듯
익숙한 전래동화

언젠가 강담사의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강담사란 고려와 조선시대에 활동했던 이야기꾼을 말하는데, 주로 사랑방에 모여 구전된 이야기들을 확대 또는 변형하는 식으로 입을 터는(?) 사람들을 말한다. 미국의 스탠딩 코미디나 서수남, 하청일 같은 만담꾼들의 먼 조상쯤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러니까 강담사의 다락방 먼지 구덩이 속에서 찾아낸 오래된 책 속에는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러나 어쩐지 낯설지 않은 애매한 성질의 이야기 한 편이 담겨 있었다. 무려 300여 페이지에 걸쳐 궁서체로 쓰인 그 책의 첫 번째 문장은 이거였다. ‘톳기(토끼)의 눈이 어이하여 붉은 줄 아는가?’ 나름 의미심장한 질문으로 시작한 길고 긴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별거 중이던 견우와 직녀는 일 년에 한 번, 음력 칠월 칠석에 만나 저녁식사를 하곤 했다. 그 둘을 잇는 건 까치와 까마귀로 만든 다리였는데, 뭘 그리도 먹었는지 일 년 사이에 직녀의 몸무게가 거의 배로 불어 있었다. 거대한 몸무게를 버티지 못한 날짐승들의 다리는 무너졌고, 결국 직녀는 인간 세상으로 낙하하여 옹달샘이라는 곳에 빠지고 말았다. 직녀가 샘에서 허우적대던 그 순간 마침 그곳을 지나던 나무꾼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 흥부였다. 흥부는 직녀를 구해줄 생각은 안 하고 떠내려온 직녀의 옷을 훔치는 치졸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그는 날개옷을 담보로 직녀와 혼인까지 했다. 직녀는 억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흥부의 성실함과 선함에 마음이 끌렸다

한편 흥부는 직녀의 후덕함이 좋았다. 그는 설렁탕 한 그릇을 사기 위해 인력거를 몰았던 김첨지처럼 직녀의 식대를 마련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일했다. 그는 나무를 해서 밥을 벌었다. 직녀는 끊임없이 먹었고 흥부는 벌목왕이 되어 나무란 나무는 죄다 베어버렸다. 

하루는 숲 속 깊은 곳에서 도끼질을 하던 흥부가 실수로 도끼를 우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다음은? 이미 예상했겠지만 백색의 산신령이 나타나 ‘무엇이 당신의 도끼입니까?’ 하는 식의 진부한 삼지 선다형 질문을 던졌고, 반전도 없이 흥부는 자신의 낡은 쇠도끼를 선택하며 훈훈한 이야기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다. 순식간에 도끼 부자가 된 흥부는 룰루랄라 휘파람을 불며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휘파람 함부로 불지 말라 했던 옛 어른들의 말씀을 잊은 죄였을까, 흥부는 뜬금없이 숲길 한복판에서 커다란 호랑이와 마주치게 되었다. (호랑이가 길고양이만큼이나 흔하던 시절이었다) 

흥부는 선택을 해야 했다. ‘도끼 세 자루로 맞서 싸워야 할까? 아니면 죽은 척을 해야 할까? 하지만 그건 곰에게나 통할 일이잖아.’ 그렇게 망설이다 흥부는 결국 찍소리 한번 못하고 도끼와 가진 재물을 모두 빼앗긴 후에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하지만 금수에게도 정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호랑이는 흥부에게 선심 쓰듯 콩 한 쪽을 건네고 사라졌다. 흥부는 ‘이놈의 콩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야.’ 하며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산에서 비박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흥부는 콩 기둥이 하늘까지 올라간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지는 것처럼 흥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둥에 매달렸다. 천천히 구름을 향해 올라갔다. (중략)

사실 이 부분에서 글자가 지워져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추측건대 하늘에서 거인과의 사투를 그린 부분이리라 짐작할 뿐이다. 여하튼 최종적으로 흥부의 손에 쥐어진 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흥부는 부자가 되었고 직녀는 여전히 많이 먹었다. 한편 그 소식을 전해 들은 흥부의 형 놀부는 주막에서 부대찌개를 만들어 파는 일만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여 완력으로 흥부의 거위를 빼앗아버렸다. 놀부는 어째서 그렇게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걸까? 그리고 못된 짓만 하는 사람들은 어째서 참을성마저 없을까? 놀부는 거위의 배를 가르면 황금이 쏟아져 나올 거라는 그럴싸한 생각으로 칼을 꺼내 들었다. 거위는 도망가기 바빴다. 둘은 벼랑 끝에 섰고, 막다른 길에 다다른 거위는 마치 자기가 날 수 있다는 꿈을 꾸기라도 한 듯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거위는 날 수 없었다. 그는 황금알을 낳는 대신 나는 법을 잊은 아이였다. 

바다에 빠진 거위는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천국에 있는 줄 알았다. 왕과 신하와 궁녀들, 멋진 음악과 해산물 뷔페. 그곳은 용궁이었다. 하지만 거위는 날개와 부리가 포박당한 상태였다. 목적은 달랐지만 용궁의 깡패들은 놀부와 마찬가지로 거위의 배를 가르고 싶어 했다

용왕의 몸보신을 위해서였다. ‘젠장.’ 거위는 그 말을 직접 하지는 않았고 다만 꽤액거리며 자신은 그저 늙고 병든 몸에 불과하다고, 육지생물 중 보양식으로 으뜸이라며 토끼고기를 추천했다. 기다린 귀와 윤기 날리는 하얀 털 속에 감춘 쫄깃한 속살을 천천히, 맛있게 묘사했다. 용왕은 늙었고 판단력이 흐려진 생물이었다. 그는 거북이에게 토끼고기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거북이는 어명으로 토끼를 잡으러 육지로 올라가는데…. (후략)

장엄한 전개에 비해 이 책의 결말은 조금 허무한 편이었다. 토끼를 만나 옥신각신하다 서로의 목숨을 걸고 경주를 한다는 이야기. 부지런한 거북이는 경주에 승리해 잠자던 토끼를 깨웠고, 토끼는 잠에서 깨어나려 눈을 비볐고, 결막염에 걸려 두 눈이 모두 새빨개졌다는 것. 

대서사시의 결말치고는 다소 황당한 마무리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이 궁서체의 이야기가 전하는 바는 비교적 뚜렷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하나였던 이야기를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 쪼개고 쪼개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사실 그게 진짜인지 모함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쓴 강담사는 즐거워 보였고, 할 말을 했으니 이제 충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원고를 마치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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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일러스트 이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