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rniture Will Remain In Their Hearts

바치 스튜디오 이하연 대표

어린 시절 살던 주택에는 지하 창고가 있었다. 아빠가 사주신 어린이용 의자와 테이블, 미끄럼틀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들이 좋아 나는 자주 창고에 내려갔다.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를 낡은 가구가 아직도 기억나는 이유는 아마도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일 테다. 잠을 자고 올라 타고 뒹구는 어린 시절의 모든 몸짓이 가구와 집안 곳곳에 닿아 있다. ‘바치’와 함께라면, 집에 대한 기억은 행복이란 단어와 함께 떠오를 것이다.

가구와 집 사이의

행복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바치’, ‘바치 포 칠드런’, ‘바치 포 드웰링’이 각각 소개되어 있어요. 어떤 곳인지 직접 소개해 주세요.

바치는 가구를 중심으로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하는 디자인스튜디오예요. 어린이 가구, 침구, 소품을 만드는 바치 포 칠드런bacci for children과 올해 새롭게 런칭한, 가구와 라이프 스타일 제품을 선보이는 바치 포 드웰링BFD, bacci for dwelling 두 개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어요.

 

가구의 매력엔 언제 처음 빠지게 되었나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졸업 후 몇 년간 건축 아틀리에와 인테리어 스튜디오에서 일했어요. 건축 공부를 하면서도 공간 속 가구들이 주는 힘과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어요. 다들 건축 모형을 만들 때 저는 가구 모형을 만들었죠. 주세페 파가노Giuseppe Pagano Pogatsching의 Chair, 지오 폰티Gio Ponti의 Gio Ponti Leggera Dining Chairs in black&cord,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의 Florian Table 등 1920~30년대 건축가들이 본인의 프로젝트를 위해 제작한 가구들을 너무 좋아해서 많이 찾아보고 공부했어요. 그래서 건축 일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개인 작업을 해온 것 같아요.

 

바치는 개인 스튜디오로 시작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하나의 브랜드로 영역을 확장해 나간 과정이 궁금해요.

가구는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다음, 고객에게 배송되고 난 후에야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개인 작업은 취미로 했지만 아이들 가구를 주문받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할 일이 많아졌어요. 제가 원하는 완성도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혼자서는 힘들겠더라고요. 내 아이를 위해 고르는 가구는 분명 특별한 의미가 있고 뭐든 더 신경 쓰게 되거든요. 고객분들에게 제대로 된 가구를 전달해 드리려면 저를 내세우는 작업실 개념이 아니라 상담부터 배송까지 완성도 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아야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생겼어요. 감사하게도 소개를 통해 고객분들이 꾸준히 찾아 주셨고,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여전히 보완할 점도 있고 해야 할 일들도 너무 많아요.

 

어린이 가구를 직접 만들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주변에 아이 엄마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가구를 어디서 살지 고민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때는 아이를 낳기 전이었고 정말 단순히 재미있을 것 같아서 크립이며 소파며 작은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아이들 가구가 어른 가구보다 더 어려운데 돌이켜보면 정말 무모한 생각이었죠.

 

어떤 점이 어려운가요?

사이즈가 작다 보니 일반 가구에 비해 디자인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밀집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같은 곡선을 만드는데도 전체적인 사이즈가 작아지니 형태를 완성도 있게 잡기가 어려워요. 또 아이들 가구는 안전이 중요해서 까다롭고 다양한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고, 소재를 고를 때도 신중해야 하거든요.

 

아이가 태어난 후에 어린이 가구에 대해 좀더 이해하게 됐을 것 같아요.

맞아요.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제 아이의 성장에 맞춰 필요한 가구들을 훨씬 더 디테일하게 생각하며 만들고 있어요. 라운드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죠. 아이가 태어나고 책장이나 모서리가 있는 가구들이 위험해 보여서 모서리 보호대를 검색해 봤는데, 도저히 멀쩡한 가구에 양면테이프와 보호대를 덕지덕지 붙이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모서리도 코너도 둥글둥글한 라운드 책장을 만들었어요. 이렇게 아이들 가구에 조금만 신경쓰면 편하고 멋진 집으로 꾸밀 수 있어요.

바치 포 칠드런의 가구는 단순한 도형에 약간의 디자인을 더한 듯 감각적이에요. 이런 스타일이 자리를 잡기까지 많이 고민했을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제가 지향하는 디자인이나 색감이 많이 반영됐어요. 이제는 디자인 팀원들과 함께 작업하기 때문에 최대한 여러 사람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노력하고 있고요. 저희 가구는 주문 제작 방식이어서 고객분들이 색상과 크기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요. 그래서 기본 옵션에 더 많은 노력을 들여요. 같은 화이트여도 따뜻하고 차분하게, 같은 직사각형이어도 가로세로 비율이 안정적이고 질리지 않게 하는 거죠. 이런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왠지 모르게 좋아 보이는 결과를 만들거든요. 정말 오랜 테스트와 샘플링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치 슬로건인 ‘Balance with Bacci’와 같이 조화로운 삶을 구성하는 디자인 작업을 꾸준히 보여드리는 거예요. 아이 가구지만 어느 공간에 두어도 잘 어울리고 가족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들기위해 노력해요. 단, 위트 있고 재미있는 요소도 과하지 않게 넣으려고 해요. 옷장 ‘빌’을 예로 들자면 전체적 비율과 색상은 차분하지만 U자형 손잡이로 귀여운 포인트를 줬어요. 제가 동화책을 정말 좋아해서 국내외 동화책을 수집하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재미있는 것들을 가구에 적용하기도 해요. 여행하며 스치는 자연 풍경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요. ‘리틀 풋 테이블’은 아이와 제주도 여행을 하면서 만난 들판 위의 소를 보고 만들었어요.

 

만들면서 가장 우여곡절이 많았던 가구를 꼽는다면요?

모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제일 수정을 많이 거친 제품은 침대예요. 침대는 아이들 제품이지만 성인 사이즈로 제작해요. 아이들이 잘 때 생각보다 많은 공간이 필요하고, 엄마나 아빠가 함께 잠들 수 있는 사이즈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빨리 자라거든요. 신생아 때부터 혼자 무리 없이 잠드는 나이가 될 때까지 쭉 사용할 수 있는 가드 침대이자 단독 침대로도 손색 없이 만들고 싶었어요. 구조적, 디자인적으로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죠. 

저희 침대는 대부분 목조 구조물에 스펀지와 폼 등으로 형태를 만들고 원단을 씌워 완성하는 업홀스터리 제작 방식이어서 원단을 섬세하게 다뤄야 하고 마감 스킬이 아주 중요해요. 30년 이상 작업해 오신 분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데, 처음엔 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기를 꺼리셔서 애를 먹었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가구이기 때문에 내장재와 피스 하나까지 안전에 신경 쓰고 있어요. 이제는 몇 가지 모델을 제외하고는 본드 같은 접착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아요.

 

올해 초 BFD를 론칭하셨죠. 공장이었던 공간에 쇼룸을 오픈한 걸 봤는데 가구의 무드가 바치 포 칠드런과는 사뭇 다르더라고요. 새로운 가구를 만들고 싶은 갈증이 있었나요?

아이들 가구로 시작했지만 저희 디자인은 항상 전체적인 공간, 집에서부터 출발해요. BFD는 약 2년 정도 준비 기간을 거쳐 선보이게 되었는데요. 고정적인 오프라인 쇼룸 없이 유랑하는 형식의 ‘노마딕 쇼룸’을 표방하고 있어요. 본연의 개성이 뚜렷한 공간을 찾아다니며 가구와 제품을 각 공간 속에 녹여내려고 해요. 첫 번째 쇼룸이던 성수동 인쇄 공장에서의 모습은 지금 ‘쉬어가다’를 주제로 하고 있는 서촌의 팩토리2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요. 같은 가구도 공간의 크기, 위치, 동네, 계절, 결에 따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요. 이게 바로 가구와 공간의 시너지인 것 같아요. 노마딕 쇼룸을 통해 이런 가구의 재미를 고객분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공간을 떼어놓고 보면 BFD의 가구와 제품에는 디자이너의개성도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하나의 작품 같기도 해서일반 가정의 가구들과 쉽게 어우러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디자인이 나오기까지 어떤 고민을 거쳤나요?

BFD는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과 쉽게 유통되는 가구 브랜드의 중간 지점으로 포지셔닝 하고 싶었어요. 바치 포 칠드런의 경우 원하는 색상, 재질, 크기 등을 조절할 수 있어 수많은 경우의 수가 나오지만 BFD는 저희가 제안하는 사이즈, 색상, 형태의 가구를 보여드리고자 했죠. 일반 가정에 BFD의 가구가 배치된다면 아마 또 다른 모습과 쓰임새가 생길 거예요. 오히려 어느 공간에나 잘 어우러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새로운 쓰임이 저희가 의도하는 부분이자 재미있는 점인 것 같아요. 앞으로는 베이직한 가구들이 놓인 가정집 같은 공간에서도 노마딕 쇼룸을 운영해 보고 싶어요. 빈티지 가구에도 관심이 많아서 재미있는 이야기와 역사가 있는 가구들과 함께하는 공간도 기획해 보고 싶고요.

 

 보여주고 싶은 게 무궁무진하네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가구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가구는 개인의 취향을 표현하는 방법 같아요. 집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에 들이는 물건이잖아요. 취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변하는, 때마다 곁에 두고 싶은 오브제에서 짙게 배어나온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모아 온 가구들을 보면 쌓여가는 본인의 취향을 볼 수 있죠. 공간에 깃드는 역사라고 할까요.

 

어린 시절 어떤 집과 가구들 사이에서 자랐나요?

어린 시절 살던 집은 오래된 아파트였는데 아주 큰 은행나무가 많았어요. 평소에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으시던 어머니께서 작은 베란다를 저와 동생의 놀이 공간으로 꾸며주셨어요. 동생과 베란다에 놓인 소파에 앉아 큰 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새들, 창밖으로 지나가는 국철, 하늘,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어요. 바깥 풍경을 많이 본 것 같아요. 아직도 어린 시절 집을 생각하면 그때의 계절과 냄새, 소리가 떠올라요. 집안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화이트 톤의 모던한 인테리어와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어요. 생각해 보면 그때 화이트 인테리어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풍경도 궁금해요.

저와 남편, 그리고 만 세 살이 되어 가는 딸 아인이가 살고 있는 집에는 큼직한 가구들이 전부예요. 꾸미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 빈 벽을 최대한 유지하고 싶은데 아인이의 그림 그리기 사랑으로 방마다 그림들이 붙어 있어요(웃음). 소파와 사이드 테이블, 의자 같은 제품들은 빈티지 가구로 들여 놓았어요. 결혼하면서 남편이 오랫동안 모아 온 LP 수납장을 만들었는데 저희 집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해요. 아이 방엔 바치 포 칠드런 제품을 사용 중이에요. 신제품이 나오기 전 샘플들을 아인이가 한 번씩 사용해 봐요. 팔지 못하거나 하자가 있는 제품들을 쓰기도 하고요.

살림에 대한 취향도 집을 꾸미는 중요한 요소일 텐데요. 평소 살림에 애착이 있는 편인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예전만큼 살림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지저분한 걸 못 보는 성격이라 최소한의 살림살이를 최대한 정리하면서 살고 있어요. 물건을 살 땐 조금 가격이 나가더라도 오랫동안 쓸 수 있는 걸 선택하는 편이라 7년 전 결혼할 때 살림과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아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후 집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먼저 집에 아이 용품들이 많이 늘어났죠. 뭐든 보이지 않게정리하기를 좋아했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시기별로 사용하는 제품이나 장난감이 바뀌니까 어느정도 아이가 쉽게 꺼내고 넣을 수 있도록 배치하고 있어요. 저희 부부는 연애 기간도 길었고 아이 없이 지낸 신혼도 조금 있었기 때문에 둘만 있는 공간이 익숙했어요. 임신에 대한 고민도 많았죠.각자 일을 좀더 하고 싶었고 혼자만의 시간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어요. 그런데 아인이가 태어난 후 이런 걱정들은 완전히 사라졌어요. 아인이가 자라는 걸 보면서 정말 가족이 되었다는 생각에 매일 감사하며 살아요. 

 

가구의 배치나 모양이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기도 하잖아요.

공용 공간인 거실과 주방은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물건을 많이 두지 않는 편이에요. 거실에는 아이와 편히 놀기 위해 소파와 의자만 두었고, 그때그때 가지고 놀고 싶은 장난감들은 아이 방에서 가지고 나와요. 안방 역시 침대와 작은 협탁, 그리고 남편과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작은 소파가 전부예요. 아이가 그림 그리기를 너무 좋아해서 남편의 서재를 아이 미술 방으로 만들어 줬어요. 책과 인형, 미술 도구를 보관하는 책장과 테이블이 있죠. 아인이는 한쪽 벽면에 본인이 그린 그림을 붙여 놓고 나름 전시회를 열어요. 퇴근하고 들어오면 그날 그린 그림을 벽에 붙이고 작가님처럼 작품 설명을 해주곤 해요(웃음).

 

아인이가 저녁까지 관람객을 기다리느라 힘들겠어요(웃음). 집에 오래된 추억이 담긴 가구나 소품은 없나요?

제가 어린이 가구를 사랑하게 된 계기인 소중한 가구가 있어요. 할머니께서 저희 엄마 어릴 적에 사주신 후 엄마가 저에게, 제가 아인이에게 물려준 소파예요. 몰딩이 우드 프레임으로 된 클래식한 소파인데 부러진 다리도 고치고, 방석 천갈이도 하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어요. 저희 가족의 많은 추억이 담긴 보물 같은 가구예요.

집에 혼자만의 공간도 필요할 것 같아요.

집에서는 최대한 업무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도 부족한데 집이라는 공간에서까지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거든요. 저만의 공간은 오히려 바치 스튜디오인 것 같고, 집에서는 가족과 함께해요.

 

집이 특별히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겠죠?

저희 부부가 LP판으로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데, 아이도 음악 듣는 걸 좋아해요. 셋이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춤추는 시간이 정말 소중해요. 아인이 표정을 보면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게 보이거든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저는 집이 가족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해요. ‘언제든 돌아갈 곳’이라는 집이 주는 안정감이 가족이라는 단어에서도 느껴지거든요. 아인이가 자라서 ‘집’을 떠올릴 때 어떤 단어를 함께 떠올리기를 바라나요?

익숙한 가구가 그 자리에 계속 있고, 익숙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큰 창이 보이는 집. 좋은 음악, 맛있는 음식, 엄마 아빠와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득한 공간을 떠올리길 바라요. 단어로 표현한다면 행복과 웃음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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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사진 이하연 일러스트레이터 윤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