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YE OF THE SOUTH

남국의 시선

남국의 시선

사람들은 종종 여행을 꿈꾸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자신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그곳은 동경의 공간인 동시에 머문다 하더라도 영원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평안과 휴식이라는 욕망이 집결된 이 파라다이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씩은 자리하고 있는 여행의 이미지일 것이다.

여행자의 설렘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계

나의 첫 해외 여행지였던 괌. 13년 전의 이야기지만 여전히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괌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고 떠난 여행에서 나는 새로운 세상에 도착했다. 국경을 넘어가본 적이 없던 꼬마였기에 그 풍경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렬했고,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나와는 다르게 생긴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시선들, 처음으로 나는 이방인이 되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낯선 세상에 들어온 것이다. 분명 시간은 똑같이 흐르고 있는데, 어제의 나는 어디로 가버린 건지 오늘의 나는 낯선 풍경을 보며 낯선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처음 마주하는 풍경들 앞에서 사진을 찍고, 땅 위를 걸었다. 새로운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있다는 것, 얼마나 큰 설렘인가. 

처음 그곳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털모자를 쓴 채 비행기를 탔는데 내려 보니 어느새 여름에 닿아 있었다. 내가 만난 여름 중에 가장 멋진 여름이었다. 밤공기, 선선히 부는 바람, 바람에 섞인 그 나라의 냄새, 분주히 움직이는 여행자들. 그런 기억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생생한지, 그 뒤로 여행을 생각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괌을 떠올리게 됐다.

그곳이 최고의 파라다이스라서도 아니고, 특별히 다정했던 나라여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나에게 처음으로 여행의 설렘을 준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의 뜨거웠던 괌은 지도 위에서도, 현실에서도 다시 찾을 수가 없다. 여행에서 마주한 설레는 풍경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판타지와 여러 번 뒤엉켜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냈다. 괌에서 보고 느낀 풍경들이지만 그곳은 더 이상 괌이라고 지칭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매우 현란하다. 아름다움과 낭만적인 감정들이 섞여있는 곳에서는 원래 있던 곳에서부터 물리적 거리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마치 다른 차원으로 온 것처럼. 지도에서 찾을 수 없는 단 하나의 곳으로 가는 것이다. 작열하는 태양과 바다를 머금은 바람,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 눈부시게 반짝이는 햇살. 눈에 담긴 그때의 풍경은 조각조각으로 남아 머릿속에서 다른 장면을 만든다. 어떠한 기억은 사라지기도 하며 어떤 것은 왜곡되어 더 강렬해지기도 하고, 그렇게 남국은 어딘가 실재할 것 같지만, 이제 그저 머릿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장면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 작업에는 익숙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세상이 있다. 여행을 하며 바라본 풍경이 있기도 하고 여정이 담겨 있기도 하며, 또 내가 꿈꾸던 여행의 판타지가 반영되기도 했다. 짧게 스친 모습들은 드로잉이나 간단한 글로 남았고, 머릿속에 남겨진 풍경과 판타지들은 어슴푸레 뭉그러져 캔버스 위에 흐른다. 

처음 이 작업을 시작한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였다. 종종 눈을 감고 기억 속의 남국을 떠올릴 때면 문득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웠다. 종이를 꺼내 기억 속의 남국과 내가 꿈꾸던 여행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몇 번 더 여행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딱딱 소리를 내는 플리플랍을 신고서 해변을 거니는 것만 같았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누워 여유롭게 햇빛을 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작업을 끝내고 나면 붓을 들고 서있는 지금의 내가 또다시 낯설어지곤 했다. 내가 느낀 감정처럼, 이 그림을 보는 이들도 잠시나마 먼 곳에 닿아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딘 순간과 언젠가 느꼈던 여행의 설렘을 떠올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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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전진우

글·그림 이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