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 대한 보상

The Compensation For Failure

내가 사는 도시는 수많은 실수와 그것들을 덮기 위한 더 많은 실수로 이루어져 있다.

평소 꼼꼼하지 못한 성격의 나에게 건축이라는 학문은 고문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 도면을 그리면서 가장 헷갈렸던 부분은 모든 단위를 밀리미터로 표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30센티미터는 300밀리미터로, 3미터는 3,000밀리미터라고 굳이 복잡하게 적어야만 했다. 그 큰 건물을 설계하면서 밀리미터 단위를 사용할 줄이야…. 돈 계산을 할 때도, 날짜를 계산할 때도 어느 것 하나 칼같이 정확한 부분이 없던 나에게 건축의 단위는 슈퍼 계산대 앞에 서서 10원짜리 동전을 하나하나 세는 것처럼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일이었다. 용돈이 거의 바닥난 학생이 월말이 다가오면 100원 단위를 쪼개서 계산하는 것처럼 도면에서는 늘 밀리미터 단위를 아껴서 사용했다. 다년간의 스트레스를 통해 깨달은 가장 본질적인 건축의 가치는 ‘완벽함’이었다. 신의 세계를 모사하고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등 건축은 몽상가적 기질을 타고난 직업이다. 그리고 꿈 같은 세계를 실제로 구현해 내려는 패기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 커다란 상상을 실제로 만들어버리는 일은 거듭하면 할수록 참 무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 일하는 동료 건축가 한진이는 2015년 처음 뉴욕 땅을 밟았다. 이제 막 시작하는 건축가에게 뉴욕은 세상의 무대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한진이는 우선 뉴욕에서 맛있기로 유명하다는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손에 쥐고 걷기 시작했다. 뉴욕의 건물은 대단했다. 단순히 높아서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높고, 무겁고, 오래되었고, 심지어 공예적이기까지 하다. 손가락에 끼는 반지처럼 공들여만든 공예품이 구름을 뚫고 올라갈 정도로 높이 쌓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한진이는 자신이 너무나 작은 존재로 느껴져 어지러웠다. 샌드위치 한 입 먹고 건물 올려다보고, 또다시 올려다보고, 그러다 현기증을 참을 수 없어 결국 도시 한복판에 먹은 걸 모두 토해버렸다고 한다. 1800년대에 지어졌다고 적힌 건물의 머릿돌을 본 직후였다.

“아…. 너도 한 번은 꼭 뉴욕에 가봤으면 좋겠다.”

한진이는 뉴욕 이야기를 할 때면 마지막에 이런 조언을 덧붙이곤 하는데, 누가 들을까 겁이 나는 대목이다. 그가 애써 묘사한 얼뜨기 촌뜨기 분위기가 나에게 덧입혀지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같은 해에 나는 처음으로 유럽을 방문했다. 처음 유럽에 도착했을 때, 내가 목격한 것은 건축이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 수년간 상상해 오던 완벽한 도시의 모습이었다. 서울의 시청 광장과는 사뭇 다른, 활기찬 도시의 광장. 그리고 눈을 맞추며 웃는 사람들. 펌프로 끌어 올린 물이 아닌 저 높은 산에서부터 내려오는 자연수, 적당히 걸으면 나오는 그늘과 그곳에 놓인 대리석 벤치, 심지어 세월의 손이 타 기름을 발라 놓은 듯 윤기가 좌르르 흐르기까지 하는….

‘내가 상상하는 도시엔 이곳을 초과하는 가치가 하나라도 있을까?’ 나는 이 도시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상상할 수 없었다. 열흘 뒤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판넬로 지은 조악한 건물들이 드문드문 나타나는 도시. 이곳에선 내가 할 일이 있을것 같았다.

내가 사는 도시엔 벗겨내고 싶은 것들과 떼어내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여러 선택지 중 굳이 오답을 골라 자랑스럽게 꺼내 놓는 바람에 볼 때마다 부끄럽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것들이 싫긴 하지만 굳이 이곳을 떠나 완벽한 곳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는다. 모두를 계몽해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나에게 완벽하지 않은 것이 어디 한두 가지뿐이어야지.

수많은 실패와 실수들. 그리고 절대로 침대맡을 떠나지 않는 이불 킥들…. 그것은 모두 이 도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실패의 낙인을 이마에 새긴 채로 걸어 다니던 재수생 시절, 그리고 삼수생 시절, 노량진 대성학원 옥상에선 63빌딩이 아주 크게 보였다. 나무 의자에 서서 본 63빌딩은 땅에서 보는 것보다 크고 밝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파릇파릇한 재수생 녀석들은 수다를 떨었고,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장수생 어르신들은 시디플레이어를 들고 이어폰을 꽂고 가만히 63빌딩을 바라보았다.

학원이 끝난 후에는 종종 서강대학교에 들러 가만히 앉아 있다 돌아오곤 했었다. 서강대학교는 내 집에서도 학원에서도 가깝지 않았지만 나는 굳이 그곳에 들러 한참을 있다가 버스를 타고 돌아오곤 했었다. 캠퍼스를 따라 걸어 올라가다 보면 호빵처럼 동그란 가로등에서 퍼져 나오는 은은한 녹색이 좋았다. 조명 아래 벤치에 앉아 쉬다 보면 학생들이 번갈아 나와 수다를 떨었는데, 그곳에 가만히 앉아서 대화를 몰래 듣는 것도 좋았다.

“수업은 재수강이 있지만 월드컵은 재경기가 없어~”

담배에 쩔은, 당시엔 아저씨로만 보이던 학생이 능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재수강이 뭔지는 몰랐지만 자기들끼리 쓰는 단어가 괜히 더 재밌게 들렸다.

내가 사는 도시는 수많은 실수와 그것들을 덮기 위한 더 많은 실수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도 반복하는 실수들. 미터를 밀리미터로 변환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것들은 눈에 더 잘 보이게 되었다. 얼마 전 우연히 들른 서강대학교의 가로등은 모두 엘이디로 바뀌어 있었다. 건축을 하지 않았다면 호빵 같은 가로등이 엘이디로 바뀐 것쯤은 몰랐을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못한 나의 도시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도시의 부족함이 나의 부족함과 별개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관심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있기. 어리숙한 주제에 능수능란한 척하기.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걸 알고 있기. 실패를 경험하고 괜찮은 척하기. 잘못을 덮고 모르는 척하기. 그럴 때 느껴지는 쪼다 같은 기운. 그것들은 단연코 최고로 훌륭했던 나를 마주하는 일보다 훨씬 많았다. 생애 한두 번 내가 아는 이들이 나를 주목했던 경험을 제외하고는 늘 부정적인 상황이 나와 함께 있어 왔다. 나라는 사람은 성공의 결과라기보다는 실패의 총합에 가깝다. 모든 부족함을 노력으로 이겨내고 완벽한 사람이 되리라 다짐한 적도 많았지만, 노력은 언제나 나를 배반하는 쪽의 맨 앞에 서 있었다. 이것은 단연코 실패한 인생이다. 바로 어제만 해도 실패한 농담을 후회하며 이가 닳도록 격렬하게 칫솔질을 하지 않았던가.

우리 도시가 부끄러웠던 사람들은 완벽함에 집착했다. 초가지붕을 양철지붕으로 교체하고 한강 변을 콘크리트로 덮어 반듯한 길로 만들어 버렸다. 사람들의 치마 길이를 단속하고 서울 말씨를 쓰도록 장려했다. 요즘 사람들은 무엇이 부끄러운지 자신의 삶을 단속한다. 완벽한 얼굴, 완벽한 몸매, 완벽한 미소를 가진 사람들이 가까운 곳에서 산다. 아름다운 장소, 좋은 사람들, 조심스러운 댓글까지 그들의 삶에선 모든 것이 완벽하다. 매일 아침 나는 아침밥을 먹는 대신 그들의 삶을 게걸스럽게 훔쳐본다. 그들의 삶을 모두 섭취하고 난 후엔 이루 말할 수 없는 포만감이 밀려와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더 이상 무엇도 갈구하고 욕망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자꾸만 물에 쓸려 갔다 다시 돌아오는 잎사귀처럼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는 사람을 지켜보고 싶다. 부족한 것들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싶다. 조금은 부족한 것들이 완벽한 척 전전긍긍하는 모습, 잘해보려 애써봤는데 잘되지 않았던 것들, 그런 것들을 보면 마음이 짠해지고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게 된다. 실패가 곧 교훈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모든 노력이 보상받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노력은 말 그대로 의미 없는 노력이 될 수도 있다. 곧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모든 부족한 것들은 그대로 부족한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부족한 곳에서 아름다움이 깨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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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 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