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ity I Saw Through Your Eyes

가장 보통의 도시, 평양

우리가 몰랐던 평양의 이면

 

면적 2,629㎢, 인구 약 250만 명, 고려 시대에는 서경으로 불린 북한의 수도 평양. 보편적인 개념으로만 익숙한 이곳은 딱딱하고, 음침하고, 적막한 도시로 그려진다. 이렇다 할 모양도, 뜨겁거나 차가운 온도도, 크고 작은 소리조차도 없을 것 같은 평양은 아무리 색을 칠해도 대비가 또렷한 흑백 이미지로 완성될 뿐이다. 호주의 한 사진작가는 평양을 “컬러풀”하다고 말한다. 그는 평양에서 생각지도 못한 색깔과 활기를 보았고, 그 보통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닉 오재의 사진집 《컬러풀 오더: 평양의 행복》을 넘기며 새로이 평양을 그려본다. 흑백 도시에 색깔을 하나둘 더하고, 사람의 온기도 한 주먹담고, 약간은 귀엽고 흥겨운 음악도 추가한다. 이제야 진짜 평양과 닮아 보인다. 대한민국 여권으로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할 날을 상상한다. 상상 속 평양은 더는 우울한 도시가 아니다. 환하고 행복한 여정을 그리며, 명랑한 도시로 떠날 채비를 시작한다.

 

 

“북한은 어딘가 암울하고, 엄격하고, 폐쇄적인 공간으로 주로 묘사된다. 외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한에 존재하는 다양한 색채, 스마트폰, 외국인들을 향한 환대나 그들의 여가생활 등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컬러풀 오더’ 작업은 일제 해방 70주년을 맞은 북한의 엄격히 제한된 일정과 장소 안에서 이루어진 사진 작업이다. ‘컬러풀 오더’는 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비밀스러운 베일 뒤에 감춰진 공간의 모습과 북한 사람들의 인간성과 활기를 포착함으로써 그러한 추측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들의 따뜻한 환영과 다채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이 작업은 선입견과 논란을 벗어나 북한도 여느 나라와 같이,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로 가득 찬 다른 모든 세계와 하나 될수 있는 곳임을 전하고 싶다. 비록 그들의 행복이 외부세계로부터 제외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닉 오재, 《컬러풀 오더: 평양의 행복》 작업 노트

사진작가 닉오재

 
반가워요 닉. 독자들에게 당신을 소개해주세요.
 
안녕, 여러분. 호주 멜버른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비주얼 아티스트 닉 오재예요. 아날로그 매체로 사진과 영상 작업을 하고있죠.
 
건축 전공이라니, 의외인걸요?

건축을 공부하면서 잠깐이지만 이 분야에서 일하기도 했어요. 건축은 사진 작업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요. 사진을 찍는 스타일이라든지 관심사 같은 부분에서요. 사진과 영상은 비슷하지만, 확실히 다른 분야라고 생각해요. 두 작업은 다른 태도를 필요로 해요. 하지만 사진과 영상 모두 끊임없는 호기심에서 시작되죠. 그래서 저는 어떤 작업을 하든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사진과 영상을 두루 다루는 건 제 작업에 많은 도움이 돼요. 더 깊은 생동감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거든요. 저는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싶어요.

당신의 사진은 도시의 매력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어요. 보고 있으면 여행 가는 기분이 들어요.

저는 어느 장소를 담고자 할 때 단순히 장면의 한 순간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경험한 내용들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해요. 만일 제가 어느 장소의 특정 구역, 특정 이미지에 관심이 있다면 저는 사진을 찍기 전에 그 구역이 해당 장소에서 어떤 위치를 가지고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보려고 하죠. 이런 작업은 장소에 역사성을 불어넣음으로써 사진을 더욱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요. 

작년에 한국에서 평양을 담은 사진집 《컬러풀 오더: 평양의 행복》을 출간했어요. 한국인에게 평양은 미지의 도시여서 무척 흥미로웠어요. 평양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한국인이 흥미로웠다고 하니 특히 고마운데요! 저는 특정 장소를 제 나름대로 해석하는 걸 좋아해요. 평양이란 도시는 제가 경험하고 싶은 곳 중 하나였고 비자만 있다면 여행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죠. 때마침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연세대학교에 가게 됐는데, 그 전에 중국에 들렀다가 평양으로 가는 여행을 하기로 했어요. 

 

 

북한 여행은 한국인에게 아직도 생소하게 느껴져요.
 
북한 여행 상품은 최근 많은 나라에 개방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영 파이오니어 투어Young Pioneer Tours에서 기획한 패키지 투어로 다녀왔

어요. 이 여행은 비자를 받은 소수의 여행자를 대상으로, 여행사가 모든 일정을 철저하게 계획하면서 진행돼요. 잘은 모르지만 여행 상품도 북한의 어떤 기관과 연계된 것 같다고 느꼈어요. 프로그램에 자유 시간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어딜 가든 통제되듯 보호받는 상황은 정말 흥미로웠죠.

방문하기 전에 상상한 평양의 모습은 어땠나요?

회색 콘크리트로 가득 찬 어두운 도시일 거라고 생각했어요.어딘지 모르게 갑갑하고 희끄무레한 곳일 것만 같았죠. 하지만 평양에 닿자마자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어요. 모든 사람이 미소를 띠고 환영 인사를 건넸거든요. 평양은 상당히 분주했고, 활기찼으며, 놀랍게도 건물들은 회색이 아닌 파스텔빛으로 물들어 있었어요. 평양에서 본 첫 번째 광경은 많은 사람이 기차역에 모여 대형 옥외 TV에서 나오는 북한 뉴스를 보고 있던 풍경이에요. 날씨는 따뜻했고 모든 게 살아 있는 것같았죠. 생동감으로 가득했어요.

평양을 컬러풀하다고 했죠. 어떤 점이 가장 그렇던가요?

앞서 얘기한 콘크리트 건물이요. 다채로운 색상에 감탄했어요. 저는 북한이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회색 빌딩이 즐비한도시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 종류의 갑갑함은 없었어요. ‘전혀’ 없었죠. 파스텔 색상의 아파트 단지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그건 마치 하늘로 솟구쳐 오른 영화 세트장처럼 보였어요. 어떤 건물들은 다른 것에 비해 특히 도드라졌고 그런 모습이 엄청나게 다채로워 보였죠. 말 그대로 “컬러풀!”이었어요.

《컬러풀 오더》에서 본 ‘지하철, 평양’이 인상 깊어요. 엄청 화려하더라고요.

북한의 기차 시스템은 제가 가장 기대하던 것 중 하나였어요. 다양한 장식과 역의 디테일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외 가장자리 주변은 꽤 거칠었어요. 고급스러운 펜던트와 유리 장식에 대조되던 축축한 냄새가 기억에 남아요.

 

평양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났나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길거리나 공원에서 만났고 전부 평범한 시민이었어요. 물론 언어장벽 때문에 매끄러운 의사소통은 불가능했지만,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대화에 연연하지 않았어요. 끝도 없이 우리를 환영했죠. 평양 사람들이 건넨 선명한 환대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제 작업은 평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우리는 함흥과 원산에도 들렀어요. 날씨가 무척 뜨거운 날 원산 외곽에 있는 울림 폭포에 갔는데, 언덕을 오르는 내내 시민들에게 함께하자는 말을 들었어요. 그렇게 여러번 그들의 소풍에 합류하면서 소주도 몇 번이나 마셨죠. 무려 집에서 만든 소주였다고요(웃음)! 그들과 소주를 마시면서 여긴 상상하던 북한과는 완전히 다르단 걸 몸소 깨달았어요.

닉이 본 평양을 한마디로 이야기해주세요.

‘잘 정돈된 도시이자 이상하리만큼 활기찬 곳’이요.《컬러풀 오더》를 한국에서 출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2015년 서울에서 공부할 때 출판사를 운영하는 친구를 알게 됐어요. 작년에 그녀가 먼저 연락을 주었고, 우린 평양 작업을 책으로 만들어 출판하기로 했죠. 의견은 메일로 주고받았고 가제본은 무려 우편으로 받았어요. 출판은 클라우드 펀딩으로 진행했는데, 아주 훌륭한 시스템이더라고요. 이 모든 과정은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즐겁고 유쾌했죠. 

호주에서도 사진집을 독립출판했는데, 원래 출판에 관심이 많았나요?

네. 멜버른에 돌아온 뒤, 제 개인 전시의 일환으로 지금의 《컬러풀 오더》 축소판을 자가 출판했어요. 한국에서 출간된 《컬러풀 오더》는 그 책을 토대로 진행된 작업이에요.

《컬러풀 오더》에 수록된 평양 모습은 유난히 친근하게 느껴져요. 

아마도 필름 사진이라 그런 것 같아요. 디지털 카메라와 필름 카메라는 결과물의 결도 다르지만, 과정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저는 아날로그 매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필름 카메라 작업을 선호해요. 작동 방식부터 촬영, 결과물까지 모든 과정이 즐겁거든요. 아날로그 매체에는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매 순간이 흥미로워요. 필름 카메라의 가장 큰 매력은 아주 세세한 차이로 결과물이 크게 달라지는 거니까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서 생활하기도 했어요.

한국에서는 친절한 사람들만 만났어요. 언제나 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죠. 다들 배려심이 깊었고 음식도 맛있어서 생활하는 데 문제될 건 없었어요. 특히 좋았던 건 대중교통이 무척 편리했다는 점이에요. 유학생이 살기에도 전혀 어렵지 않은 시스템이었죠.

 

한국인에게 북한은 미지의 세계예요. 한국과 북한이 어떻게 다른지, 또 얼마나 닮아 있는지 궁금해요. 

당신과 내가 다른 것처럼, 한국과 북한의 차이는 무궁무진해요. 하지만 유사점은 명백하죠. 두 곳 모두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다는 거. 여행객에게 보이는 친절이 아니라 사람 자체를 환영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두 나라 모두 저를 행복하게 해주었죠.

한국에 머무는 동안 구룡마을 프로젝트도 진행했더라고요. 재개발 지역에 흥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

저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아웃사이더 성향이 있거나 숨겨진 것들이 제 흥미를 끌죠. 구룡마을은 일종의 탄력성을 가지고 있는 곳 같았어요. 저는 구룡마을처럼 곧 사라질 것들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부지런히 남기고 싶어요. 그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고요.

인스타그램에서 다양한 도시 사진을 봤어요. 여행을 좋아하나요?

다양한 외국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서 자주 여행을 떠나요. 일년에 한 번 이상, 몇 주 동안 새로운 도시를 여행하고 그 여행을 위해 언제나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가본 도시 중 가장 매력적인 곳은 어디였어요?

리우데자네이루. ‘정글이 도시를 만나다!’ 딱 그거였어요. 건축을 전공했기 때문에 건물이나 구조물을 사진으로 담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닉의 사진은 우리의 일상, 혹은 삶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많은 건축물을 더욱 멋지게 담고자 하는 야망이 있어요. 그것은 당신이 말한 것처럼 삶의 일부, 일상의 파편을 보여주는 작업이기도 하죠. 저는 사람들이 건물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이 건축으로서 얼마나 성공적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제 말이 이해가 되나요?

그럼요. 건물 역시 삶의 터전이니까요. 닉과의 대화는 정말 즐거웠어요.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실래요?

제 작업에 관심을 가져줘서 정말 고마워요. “캄사합니다.

멀고도 가까운 도시 

평양 상상하기

《컬러풀 오더》가 담은 평양의 장면들을 본다. 평범한 장소를 한국으로 옮겨와, 평양의 그곳과 맞닿아 있는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놀이터와 기차역, 평양을 전혀 모르는 아이와 평양을 잘 아는 어른. 희끄무레한 도시, 미지의 평양을 마음껏 상상해본다.

이유안 | 4세

부산의 놀이터 마니아

태어난 지 이제 갓 39개월. 동네 놀이터를 다 꿰고 있는 이 아이는 북한도, 평양도 모르는 부산의작은 사나이다. 순수한 눈으로 본 평양의 놀이터는, 이곳의 친구들은 어떨까 궁금한 마음에 닉 오재의 ‘유치원&협동 농장, 동봉’, ‘유치원, 동봉’ 사진을 건넸다.

“여긴 어디예요? 진짜 재밌어 보여요. 유안이 친구들이 있네요. 시소랑 미끄럼틀을 같이 타고 싶어요. 미끄럼틀밖에 안 보이는데, 다른 건 더 없어요? 우리 동네에 있는 공룡 미끄럼틀로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어요. 놀러 오면 유안이가 선물도 줄 거예요. 이 친구들은 미끄럼틀을 진짜 좋아하나 봐요. 이렇게 많은 애들이 전부 미끄럼틀에 올라가 있잖아요. 담장 너머에 있는 애들은 미끄럼틀을 타고 싶어서 여기만 쳐다봐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왜 표정이 슬플까요? ‘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 친구 현우랑 지연이랑 비슷하게 생긴 친구들이 있네요. 이 친구들을 만나면 ‘좋아해요.’라고 말해줄 거예요. 제가 여기에 간다면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서 음매~ 하는 얼굴로 같이 사진도 찍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가는 동안 친구들이 다 집으로 가버리는 거 아닐까요? 놀이터 뒤에 있는 저 집이랑, 저 집으로.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면 재밌을 것 같은데…. 내일 여기에 갈래요. 엄마 차 타면 강원도 수풀에 갈 수 있잖아요. 여기는 강원도 수풀 속 놀이터지요?”

이강원 | 59세

한국의 철도 기관사

1978년 12월 18일,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철도청 부기관사로 발령받고 85년도에 기관사로 진급하며 일평생 기찻길 인생을 살아온 사람. 부모, 형제, 아내, 딸과 함께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찻길에서 보내며 무사고 운전 100만 킬로미터를 달성한 그에게 닉 오재가 담은 ‘지나가는 기차’1~2, ‘지하철, 평양’ 사진을 건넸다. “평양은 서울(한양), 경주와 더불어 역사 교육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예요. 김일성 가계 3대에 걸쳐 공산주의 통치로 이어지는 북한의 수도이자 선택받은 시민들로 구성된 신진계획도시라고 알고 있죠. 평양을 떠올리면 회색 도시가 가장 먼저 생각나요. 평양냉면과 대동강, 류경호텔도요. 어릴 때 교과서에는 북한 사람들이 빨간색이거나 늑대, 뿔이 달린 사람으로 그려졌어요.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란 걸요. 어느 나라 어느 곳이나 기차역은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어요. 사진 속 평양역의 특이한 점은 양쪽 벽면 구조와 천장 조명 시설이 무척 화려하게 건축되었다는 거예요. 이런 규모의 역이 한국에 있었다면, 승객의 편의를 위해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제일 먼저 설치되었을 거예요. 사진 바깥 쪽에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한편, 기찻길은 한국과 다를 게 없네요. 최근 남북 철도를 잇는다는 뉴스가 많이 나오잖아요. 남북의 기찻길이 이어지면 부산이나 목포에서 열차를 타고 서울과 평양을 거쳐 중국과 러시아로 갈 수 있을 거예요. 옛 독립 운동가들이 기차를 타고 갔던 것처럼요. 오늘날 철도 계획은 유럽까지 물류와 승객을 수송하는 것에 목적을 두는데, 기찻길이 이어진다면 꼭 기차로 유럽 여행을 떠나보고 싶어요. 어느덧 수십 년을 달려온 기찻길에서의 삶을 정리해야 할 시기가 왔어요. 얼마 전에는 인생 2막도 철도인으로 살고자 철도문화해설사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유라시아 횡단열차가 북쪽으로 힘차게 달리게 될 머지않은 미래에, 40년 이상 체험으로 습득한 철도 지식을 이야기하며 관광 열차에 몸을 싣고 북한으로 달리는 꿈을 꾸어 봅니다. 그 열차에 가족들이 타고 있고, 평양에 내려 함께 여행을 한다면 기쁠 거예요.”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Nic Oj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