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ginning Of Relationship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기

정신없이 뛰어가던 완두가 멀리서 나를 한 번 돌아본다. 까만 눈동자가 그렇게 작은데도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대로 나에게 다가올 때가 있고 아직 한참 더 놀고 싶을 땐 고개를 휙 돌려 멀리 가버린다. 완두와 나의 거리가 또다시 좁혀질 때까지 천천히 따라 걸으며 했던 생각을 여기에 옮긴다. ‘우리는 늘 다시 만났다.’

산책의 방법

작업실에서 창문을 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낮은 산이 보인다. 목줄 산책을 답답해하는 완두를 풀어 놓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한번 찾아가 봤는데, 시야도 넓고 푹신한 흙길이 좋아서 이제 매일 가고 있다. 안산 자락길, 궁동공원, 연희동 둘레길. 산책로가 아주 길지는 않아도 일단 진입하면 나무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한적해서 좋은 곳. 간혹 마주치는 사람이 있긴 해도 홍제천에 비하면 텅텅 비어 있는 수준이다. 

완두와 나는 점심시간 다 지나고 난 뒤, 혹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헤드랜턴을 가지고 그곳을 찾아간다. 완두를 풀어 놓고 함께 걷다가 적당한 곳에 앉아 팟캐스트를 하나 듣는데 그 시간이 좋아서 요즘에는 거기서 마실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간다. 작은 그릇에 물을 부어 놓으면 완두는 가끔씩 와서 물을 마시고는 또 멀리 가버린다. 우리 쪽으로 사람들이 올 땐 완두를 불러서 잡아 놓고 지나가면 다시 풀어준다. 이렇게 한두 번 반복하는 동안 30분,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완두도 이젠 지쳐서 내 옆에 나란히 앉는다. ‘성공이다, 성공.’

줄을 풀어주는 이유

도시에서 함께 살아보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이제 목줄 산책을 연습시키려고 했다. 훈련도 관계 형성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무엇보다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돼서 매일 사람들을 피해 숲을 찾아가고 있다. 줄 없이 뛰는 완두 모습을 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작은 집에서 나와 함께 보내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 뒷모습과 멀리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가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건넨다. 뛰는 것만으로 저렇게 기뻐할 수 있나. 완두가 나랑 지내는 걸 어떻게 생각할까.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함께하게 될까. 긴 여행을 한번 가볼 수 있을까.

완두가 숨을 가쁘게 쉬며 멀리서 다가오는 게 보인다. 관계가 지속되면서 점점 잃기 싫은 존재가 된다. 함께 있는데도 언젠가 이별할 게 두렵고 완두 마음을 오해하고 있을까 봐 겁이 난다. “강아지가 죽기 전에 딱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그 얘기를 들어볼 거야?” 친구가 물었을 때 나는 못 듣겠다고 대답했다. 완두가 이런 삶을 좋아하고 있을지 나는 늘 확신이 없다. 모든 걸 내가 정했으니까. 완두는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나는 그래서 줄을 놓아줬던 것 같다. 물론 뛰어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지만, 줄을 놓아준 진짜 이유는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말 못 하는 완두가 실컷 놀다가 다시 나를 찾을 때면 나는 거기에 의미부여를 많이 했다. “떠날 기회를 줬는데도 안 떠나다니. 어쩔 수 없네.” 혼잣말도 해보고.

관계의 시작점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이라는 일본 드라마에서 주인공 아키코는 길고양이 한 마리를 거둔다.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필요한 것을 잘 챙겨주는 아키코는 그 고양이에게도 역시 좋은 인간처럼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가 사라져 버리는데, 아키코는 이렇게 한마디 할 뿐이다.

“가버렸네.” 

일본인의 기본 정서인지 혹은 작가의 억지 설정인지 몰라도 나는 그 장면에서 깜짝 놀랐고 또 관계에 대해 여러 번,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를 찾았었다. 지금도 내가 그처럼 행동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 장면을 아끼고 한편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키코는 고양이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처럼 대해준 게 아니었을까. 고양이가 원래 있던 곳으로, 혹은 어딘지는 몰라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갔다고 믿어주는 사람처럼 보였다. 갑자기 잃게 된 미래의 행복을 아쉬워하기보다 잠시라도 와준 것을 신기하게, 감사하게 여기는 사람.

여기서부터, 어쩌면 관계의 시작을 ‘보내주는 마음’에서부터라고 여기면 어떨까. 원래 없었던 것을 기억하기.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존재로 대해주기. 그런 점을 짚어내고 나면 나를 향해 걸어오는 그 단순한 장면이 잊지 못할 풍경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완두의 어미인 진주는 길을 떠도는 하얀색 진돗개와 담장을 두고 코 인사만 하다가 어느 날 담을 뛰어넘었다. 이제는 늙었다고 생각했던 아홉 살 때 이야기다. 할아버지한테 잡혀서 혼쭐이 난 그날부터, 완두가 진주의 배 속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이젠 볼 수 없는 진주를 떠올리면, 자꾸만 집을 뛰쳐나갔다가 지쳐서 돌아오던 모습만 생각난다. 늘 도망갈 궁리를 하던 까만 눈. 완두에게서도 가끔 그 눈이 보인다. 나는 못 나간다고 길을 막으면서도 나를 지나쳐 뛰어나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동물과 함께 사는 게 이런 것일까. 내 안의 욕심과 사랑을 매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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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