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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조크든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좋거든요).” 90년대 X세대의 옷차림을 취재한 뉴스 인터뷰에서 젊은 여성의 한마디는 정말로 진심 가득한 대답이었다.
우연히 만난 어른들끼리 잠시 서서 대화를 나누는 순간은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친 어른들은 그냥 눈인사만 하고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내가 목격한 대다수의 어른은 길 한가운데 잠시 서서 서로 안부를 묻곤 했다. 한 손으로 상대방을 살짜쿵 터치하기도 하며, 입을 가리고, 손을 절레절레 젓는 등 최대한 다정하고 유쾌한 모습이었다. 순간 목적을 잃어버린 어린 사람은 딴청을 피우고, 소매를 잡아끌고, 다리에 매달려 몸을 비비 꼬며 어른들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른들을 올려다보면서 그들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했다.
어른들을 관찰하면서 결코 놓치지 않았던 부분은 서로가 서로의 어깨 너머 풍경이 되는 순간의 표정이었다. 방금 전까지 살갑게 웃던 얼굴 근육이 인사를 나누고 고개를 살짝 돌리며 점차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순간이 나에겐 너무나 어색하고 이상하게 다가왔다. 터져버린 봉제선 사이로 튀어나온 재킷의 안감처럼 세상의 안쪽과 바깥쪽이 뒤집어져 버리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는 비밀이 불쑥 튀어나와 버린 것 같았다.
이 표정의 어느 부분이 이상한 것인지, 그렇다면 어른들은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나 역시 알지는 못했다.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멀뚱멀뚱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적대적으로 보일 수가 있다. 서글서글한 미소를 잃지 않기 위해 뒤돌아서까지 헤죽거리며 다니는 건 왠지 수상해 보인다. 언제까지 웃고 언제부터 웃지 않아야 어색하지 않을지 그것이 참 난감한 문제였다. 나는 그래서 이상하게 웃는 법을 개발했다. 눈을 찡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는데 윗니와 아랫니는 보이지 않도록 입술은 오므렸다. 길에서 아는 어른을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나는 어색한 순간마다 그렇게 웃었다. 아빠는 사진 찍을 때마다 이상하게 웃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웃음을 짓다가 어느 순간 멈춰야 하는 그 어색함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이게 그냥 웃는 거라고 우겼고, 아이러니하게도 어색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발한 이 이상한 웃음법은 어린 시절의 사진첩을 모두 어색함으로 오염시켜 버렸다. 당시엔 웃기지 않으면 웃지 않는 것이 진심 어린 행동이라고 생각했었다.
오랜만에 세 친구가 모여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친구와 나는 음식을 주문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이번 주말에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처음으로 만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자친구 부모님을 만나러 갈 때 무엇을 사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너무 고급스럽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너무 비싸지도, 너무 싸지도 않은 선물이 뭐가 있을까?” 그렇게 말하는 친구 앞에서 나는 나만의 게임을 시작했다. 건축가로서, 때로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고리타분한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모든 행동에 대한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습관이 있다. 진실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진실과는 가장 거리가 먼, 오히려 콘셉추얼한 사람에 더 가깝다. 현상과 원인을 파악하고 근본으로 돌아가 분석해 보는 것이 내가 즐겨 하는 게임인 것이다. 무언가를 할 때는 빈 땅에 건물을 지을 때처럼 지형부터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친구에게 꼭 무언가를 선물해야 하는지부터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분들이 어떤 분들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좋은 선물을 고를 수가 있겠어?” 그래도 나름 친구를 위해 내린 유연한 결론으로, 작고 예쁜 케이크를 사 가는 것을 추천했다. “하얀 생크림에 빨간색 딸기가 얹힌 것으로. 처음 만나는 자리니까 귀여운 게 좋을 거 같은데, 서래마을에서 파는 거. 너희 집 근처 아니야? 알려줄게.”
“음….”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한 친구가 뒤늦게 도착했다. 자리에 앉으면서 동시에 “아 오늘 존나 춥네.”를 연발했다. 엉덩이가 의자에 닿자마자 슈트를 벗으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냐고 물었다. 여자친구… 부모님… 선물… 오물조물하는 친구의 발음 속에서 대략 세 단어를 캐치한 그는 무슨 이런 쉬운 일로 고민하냐는 듯 말했다. 왼손으로 재킷을 의자에 내려놓으며.
“홍삼 해. 홍삼. 제일 무난해.”
“응 그럴까…?”
진심이 조금도 담기지 않은 친구의 한마디에 나는 감탄했다. 홍삼은 물건이 아니고 함축된 언어에 가까웠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의도가 달리 보일 수도 있는 케이크와는 다르게 홍삼은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나는 잊지 않도록 핸드폰에 메모도 해두었다. <홍삼: 너무 가볍지도, 너무 고급스럽지도 않은 선물> “그래 넌 어떻게 지내는데?” 홍삼으로 선물을 정해버리고 나서 우리는 만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친구들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니다. 나도 그 대화에 함께했으니까 우리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우리의 대화는 실용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노하우를 전수받고 몰랐던 것들을 알려주고 조심해야 할 것을 서로 전달한다. 우리의 대화에서 나를 제외하고 싶던 이유는 그것은 내 진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화의 주제가 되었던 자동차나 비트코인 같은 이야기는 뉴스를 통해 들었기 때문에 어렴풋이 알긴 하지만 나는 그런 데 관심이 없다. 나만 그런 것일까? 친구들도 어쩌면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은 한쪽으로 미뤄 놓고, 모두가 알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러는 것처럼, 정말로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득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90년대 뉴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X세대의 옷차림을 취재한 뉴스 인터뷰에서 기자는 어느 젊은 여성에게 물어본다. 왜 이렇게 옷을 입었느냐고.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좋거든요).” 젊은 여성의 한마디는 정말로 진심 가득한 대답이었다. 이유가 어째서 중요한가? 좋아한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우리는 언제부터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것일까?
대화가 무르익으며 남자들은 돈 벌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돈에 환장한 사람들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전략을 짜고 실행 계획을 논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예측하고 계획하는 것. 그것은 어른들의 게임이다. “이런저런 규제가 풀리고, 현금이 풀리는데 가만히 있으면 바보지. 우리 조금씩 돈을 모아서 투자를 하는 게 어때? 어디가 좋을까?” “난 잘 모르겠어.” “넌 건축을 하는 애가 왜 이런 걸 몰라?” “몰라. 난 ‘이런 거’ 안 해. 잘 몰라.”
대화는 슬슬 지루해져 갔다. 내가 친구들의 투자 지식에 대해, ‘이런 거’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나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는 것이라고 묻지도 않는 말에 대답하는 것이며, 나는 ‘이런’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선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아…형은 작가라서 이런 거 모르는구나.” 같은 건축업계에 종사하는, 내 의도를 정확히 알아차린 누군가는 나를 비꼬는 듯 이야기하기도 했다.
우리의 대화는 어린 시절 바라본 어른들의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웃음은 홍삼 같은 것이라서 감정을 전하는 목적으로만 사용되지는 않는다. “식사하셨습니까?” “다음에 또 봐요.” 같은 언어로도 사용된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 나는 배꼽이 빠질 것처럼 웃기도 하지만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웃기도 한다. 무언가가 필요해서 돈을 쓰기도 하지만, 뭐가 필요한지 몰라서 돈을 쓰기도 한다. 어린 시절 대화를 마치고 뒤돌아서는 어른들의 얼굴에서 발견한 표정은 안감과 겉감이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는 수시로 안감과 겉감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웃음과 마찬가지로 돈은 사람을 진심에서 분리하는 일을 한다. 세상을 등지고 사는 사람에게 그래서 돈은 아주 수치스러운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다. 용역을 제공하고 돈을 벌면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모든 일에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내가 돈을 쓸 때도 있지만, 돈이 나를 쓸 때도 있다. 내가 웃을 때도 있지만, 웃음이 나를 웃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색함을 이기지 못해 얼굴이 꿈틀거리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제발. 아무리 어색하더라도… 어릴 때 카메라를 보고 웃던 그 바보 같은 표정만큼은 나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 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