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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마음을 담아

아침마다 한 장씩 편지를 썼다. 책상 앞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고마운 사람’을 떠올렸다. 처음엔 새까만 어둠만이 눈앞에 있었지만, 이내 고마운 사람들은 줄지어 나타났다. 줄의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면, 눈을 뜨고 바로 그의 이름을 카드로 옮겼다. 잠시 그 사람에게 고마운 점을 생각하다 떠오르는 몇 문장을 추려 적었다. 손바닥만 한 카드에 적힌 짤막한 메시지. 편지의 끝은 늘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선아 드림’

존 크랠릭 아저씨의
이야기

밥을 먹고 바로 낮잠을 잔 어느 오후였다. 더부룩한 느낌으로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EBS의 <지식채널E>에서 멈췄다. 평소 좋아하던 프로그램이기도 했지만, 그날의 타이틀이 ‘실패한 인생’이었던 게 한몫을 한 것 같다(기분 나쁜 잠에 빠진 날은 그런 울적한 단어가 마음을 흔들기도 한다). 5분짜리 영상은 절망에 빠진 남자가 감사편지를 쓰기 시작해 변한 것들을 보여줬는데, 보고나니 어쩐지 소화가 되는 듯 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영상에 나온 남자의 이름, ‘존 크랠릭’을 검색해보았다. 그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고 출판한 책도 있었다.

얼마 후 서점에서 그의 책을 샀다. 책에는 영상에 담긴 이야기가 더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존 크랠릭은 파산 지경에 이른 가난한 변호사였다. 결혼생활도 파경을 맞았고, 자식들과 사이도 좋지 않았다. 우울증과 외로움에 시달리던 그는 크리스마스에 아들에게 받은 선물에 대한 답례로 감사편지를 쓰게 되었고, 그게 ‘감사편지 프로젝트’의 시작이 되었다.

봉투에 주소를 적으려는 순간 나는 아들 주소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애가 로스앤젤레스 서부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디 사는지는 몰랐다. 나는 한 번도 그의 아파트에 가본 적이 없었다. 아파트가 어떻게 생겨먹은 지도 몰랐다. 룸메이트도 한 명 있었는데 나는 그 애를 만난 적이 없다. 여자친구도 있는 것 같았는데 그 아이 역시 만난 적이 없다.
– 존 크랠릭의 《감사의 습관》중에서

이 부분을 읽다 그런 상상을 해봤다. 퇴근하고 자취방에 들어가려는데, 우체통에 편지가 하나 꽂혀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리고 그 편지가 고향 집에 있는 아빠에게서 온 편지라면…. 아마, 감동하겠지. 엄마도 아닌 아빠라면.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날 밤은 아빠와의 추억에 사로잡혀 어린 시절에 대한 단꿈을 꿀지도 모르겠다. 존 크랠릭의 아들도 그러했는지 바로 아빠에게 감사하다고 답장했다. 그는 아들의 반응에 묘한 힘을 얻어 이리저리 그런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친구에게, 부하 직원에게, 아파트 배관공에게, 단골 미용사에게, 고양이를 입양해준 여자에게…. 수많은 편지는 하나씩 쌓여 365통에 이른다.

엠마 부인에게
브로디(고양이)를 맡아 돌봐주시고, 또 입양하도록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녀석은 맘에 드는 고양이죠. 정말 장난기 많고 사랑스러우며, 애정이 넘쳐요. 우린 그 녀석에게 좋은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싶어요. 그래서 당신이 그 녀석을 구하기 위해 쏟은 희생적 수고의 결실을 꼭 보여줄 겁니다. 감사를 표하며, 존
– 존 크랠릭의 《감사의 습관》중에서

매일 아침,
한 사람을 떠올리며

그의 이야기를 엮은 책과 영상은 감사편지로 인한 드라마틱한 변화를 낱낱이 보여준다. 망해가던 회사가 살아나고, 안 좋던 가족 관계도 좋아지고, 누군가 돈을 빌려주고 빌린 돈을 갚기도 하는 일들. 그런 것들이 신기하긴 했다. 하지만 망해가는 회사도 없고, 가족 관계도 문제없고, 빌려주거나 빌려야 할 돈도 없는 내겐 그저 ‘멋지다’는 감상 정도에 지나지 않는 일들이었다. 다만,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나는 비로소 나만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지만, 알 수 없었기에 ‘감사편지’를 써보고 싶어졌다. 

혹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흐지부지 될것을 걱정하며 나름의 규칙을 만들었다. 출근해서 자리에 앉기 전, 컴퓨터 전원버튼을 누르지 않고 펜과 카드부터 꺼내 들기로. 그리고 그날그날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만 카드를 썼다. (쓰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한 시간을 앉아서 편지만 쓴 적도 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오전 중 처리해야 하는 일에 지장이 가서 썩 좋지 않았다.)

고마운 누군가를 떠올리면, 그가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반가웠다. 하나둘씩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다 보니, ‘나, 꽤 부유한 삶을 살아왔구나’라는 배부른 생각도 들곤 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 편지가 길어질 수 있었지만 최대한 짧게 끊어냈다. 하고 싶은 감사의 말을 머릿속으로 몇 문장으로 줄여내고, 그 말만을 옮겼다. 처음엔 해야 할 얘기가 생각이 안 나면 어떡하지, 싶기도 했는데 고마운 누군가에게 해야 할 말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내가 당장 심장마비로 죽는다면 사람들은 궁금하게 여길 것이 틀림없다. ‘이 남자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마지막까지 수많은 감사편지를 써 왔어. 외로웠던 게 틀림없어.’ 그 생각은 나를 피식 웃게 만들었다.
– 존 크랠릭의 《감사의 습관》중에서

아직 답장은
못 받았지만

답장을 기대하며 집 앞의 우체통을 열어보기도 했지만, 아직 받은 편지는 없다. 문자 메시지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사람은 있어도, 손편지는 아직이다. 처음엔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며칠 전 사진 한 장을 보고 더는 답장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사진을 찍은 주인공은 몇 주 전에 편지를 부친 한 여자였다. 그녀는 오래 아팠다. 그리고 난 그런 그녀에게 긴 시간 연락하지 못했다. 감사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먼저 떠오른 사람이었지만, 갑작스러운 편지를 부치는 것이 실례는 아닐까 고민되었다. 그래도 고마움에 대한 한 문장이 지워지질 않아 일단 썼고, 더 망설이지 못하도록 부쳐버렸다. 건강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지만, 그런 건 적지 않았다. 그저 고마웠던 일에 대한 짧은 편지였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고 그녀의 블로그에 사진 한 장이 올라온 걸 발견했다. 그녀의 방으로 보이는 사진의 한쪽 구석엔 내가 보낸 카드가 붙어 있었다. 아주 작아 누구도 그게 편지인지 모를 수 있겠지만, 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 방 안에는 햇빛이 잘 들어왔고, 그녀의 얼굴이 나오지 않았지만 어쩐지 ‘난 전보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답장에 대한 생각은 사라졌다. ‘수취인 불명’ 등으로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 이상, 편지는 누군가에게 전해졌을 것이고 그건 적어도 상대의 기분을 망쳐놓진 않았으리라. 

‘나는 비로소 나만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는 문장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나만의 우표

편지를 쓰고 우표를 사러 갔다가, 우체국에서 진행하는 재미있는 일을 알게 되었다. 원하는 이미지를 넣어 우표로 만들어주는 서비스인데, 간단한 신청만으로 만들 수 있다. 왠지 이 우표에 추억의 사진을 넣어 편지를 부치면, 받는 이의 행복에 우표 크기만큼의 설렘이 더해질 것 같아 주문했다. 가격은 4천원~1만원까지 다양하고, 인터넷으로 접수하면 10일 이내에 제작하여 배송해준다. 옆의 QR코드를 찍으면 나만의 우표 페이지로 연결되니, 관심이 있다면 이곳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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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