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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사키 서점의 하루하루, 선샤인 클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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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사키 서점의 하루하루>, <선샤인 클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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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가도 되나요?
얼마 전에 나는 메모지에 ‘천천히’라는 세 글자를 써서 책상 앞 벽에 붙여놓았다. 그리고 조급한 마음이 들 때마다 습관적으로 눈을 들어 그 글자들을 읽는다. ‘천. 천. 히.’ 얼마 전에 본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나는 루저가 아닐까? 내 인생은 망한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런 그들 역시 결국은 이렇게 말한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냥 우리 천천히, 그리고 씩씩하게 걸어가요.”라고.
추운 날씨에 시달리다 홧김에 도서관에 가서 오키나와 가이드북을 빌렸다.(당연히 오키나와에 갈 일은 없다.) 이 가이드북은 오키나와의 작지만 개성 넘치는 가게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대부분 대도시를 떠나 오키나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젊은 사장들의 가게다. 그리고 그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속도’, ‘자신이 좋아하는 만큼’,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이라는 말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읽고 있자니 딱히 반박할 말은 없는데 그냥 짜증이 난다. 어딜 가나 ‘자신’, ‘자신’, ‘자신’이다. 자신이라는 건 그렇게나 소중한 것일까? 자신이 원하고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면 만사형통일까? 만약 그렇게 살 수 없다면 그런 인생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걸까? 이렇게 짜증이 심해진 걸 보니 시베리아 대평원의 오두막에서 혼자 보드카만 홀짝이면서 사는 노인네처럼 마음이 좁고 괴팍해진 게 분명하다.(시베리아 대평원의 오두막에 혼자 사는 노인네라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얼마 전, 10년 만에 대학 동창들을 만났는데 누가 이상한 소문을 냈는지 하나같이 “너 아주 ‘잘’ 살고 있다며?” 라고 물었다. 솔직히 그런 말을 들으면 복장이 터진다. ‘남의 속도 모르고, 네가 한번 살아봐라.’라는 말이, 사회적으로는 인정받지만 집에 오면 폭군인 남편과 사는 마누라에 빙의되기라도 한 것처럼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다.
외적인 조건을 보자면 그렇기도 하겠지. 나는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 남편도 그렇다. 우리는 지옥철이나 야근이나 실적의 압박에 회사원들만큼 자주 시달리지 않는다. 나는 변두리의 한적한 동네에서 작은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에 산다. 동네에서 작은 카페도 한다. 내 멋대로인 가게라 추우면 아예 문을 닫아버린다. 짬짬이 잡지에 글도 쓰고 책도 두 권 쓰긴 썼다. 내 아이들은 동네에 있는 작은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무럭무럭 잘 큰다.
그러나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런 생활에도 애로사항은 상당하다. 요즘 나는 회사 다니는 사람을 제일 부러워한다. 남편이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더 부럽다. 우리 집 마당은 코딱지만 하고 더럽다. 집은 욕이 나올 정도로 춥다.(쥐가 나온 적도 있다.) 카페에는 손님이 없고 나는 방글라데시 수준의 인건비도 벌지 못한다. 책은 냈지만 잘 안 팔린다. 대안학교? 적지만 학비도 들고 아이들의 미래도 걱정이 되어 언제까지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일반 학교에 보냈더라면 이런 걱정 안 해도 될 것을 가끔 후회도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나에게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는 것이다. 나는 매 순간, 모든 것을 혼자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왜 사람들이 독재자를 기다리는지 알 것 같다. 모든 걸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심지어 자신만의 속도를 정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만큼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색하고,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내는 것은 정말 귀찮고 짜증 나고 무섭고 어렵고 심지어 끝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도쿄의 유명한 고서점 거리 진보초를 배경으로 한 <모리사키 서점의 하루하루>는 바쁘게 살다 모처럼 여유가 생긴 어느 일요일의 오후에 틀어놓고 보면 좋을 영화다. 사실 보기 전에는 서점을 운영하며 (간단하게) 자아를 찾고, 주변 사람들은 늘 따뜻한 (그리고 판에 박힌) 조언을 해주고, 결국 (뭘 먹고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는 결말의 무책임하고 전형적인 일본 영화가 아닐까 했는데, 보고 나니 어쩐지 헌책방에 가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는 영화였다.
평범한 회사원 타카코는 1년 넘게 만나던 회사 선배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심지어 약혼녀 역시 같은 회사의 직원. 충격을 받고 회사까지 그만둔 후 집에 누워 시간을 보내던 그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어린 시절에는 가까웠으나 성인이 된 후로는 연락도 해본 적 없는 삼촌 사토루다. 삼촌은 느닷없이 자신의 헌책방 위층에 안 쓰는 방이 있으니 거기 와서 지내며 헌책방에서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삼촌의 헌책방이 있는 동네는 진보초다. 세계 최고의 서점거리라는, 170여 개의 조용하지만 알고 보면 개성 있는 헌책방 가게들이 즐비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 동네에서 타카코의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도쿄에 이런 동네가 있는 줄도 몰랐던 타카코는 밤에는 방에 쌓인 헌책들을 하나씩 꺼내어 읽고 낮에는 삼촌의 가게를 지키며 또 그 책들을 읽는다.
타카코는 헌책들을 넘기면서 누군가가 꽂아둔 말린 꽃송이를 발견하기도 하고, 밑줄을 그어둔 부분을 발견하기도 한다. 타카코가 바람이 잘 드는 창가에, 헌책방의 책상 앞에, 불을 켠 침대 위에서 책을 읽을 때 그 시간은 그 책들이 태어난 시대의 것처럼 천천히 간다. 그렇게 이곳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한도 없이 천천히 흘러간다.
“후회하거나 하지 않아요?”
“안 해. 이만큼 나에게 맞는 직업도 없을 거로 생각해.”
“좋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니.”
“그렇지 않아. 지금도 헤매는 일이 수두룩해.”
타카코에게 인생은 아직도 모호한 것투성이다. 그런 타카코에게 묵묵하고 담담하게 살아가는 삼촌의 인생은 확고해 보여 부러울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삼촌의 나이에 가까워진 나는 삼촌의 진심을 알 것만 같다. 삼촌은 이 일이 이만큼 나에게 맞는 직업도 없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체념했을까. 삼촌은 이 나이가 되어도 헤매고 있는 것에 대해 얼마나 큰 자괴감을 느낄까.
바람이 잘 드는, 볕이 따뜻한 창가에 앉아 깨알 같은 글씨들이 가지런히 박힌 헌 책들을 한 장씩 한 장씩 넘기듯이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 좋은 삼촌이 있지 않은 한은 힘든 일이겠지. 그런데 왜 우리는 천천히 살아갈 수 없는 거지? 왜 우리는 이렇게 바빠야 하는 거지? 왜 우리는 이렇게 나 자신을 몰아쳐야만 이 세상에서 겨우 내가 들어가 설 수 있는 자리 하나 만들 수 있을까 말까 한 거지?
얼마 전에 카페로 두 아가씨가 찾아왔다. 회사를 그만둔 이 아가씨들은 내게 헌책방에서 샀다는 헤르만 헤세의 낡은 책 한 권과 꽃다발 한 묶음을 선물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그 아가씨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들이 했던 이야기들도. “나는 괜찮은데, 이 정도면 열심히, 잘 산 것 같고 지금은 그저 잠시 쉬어가는 것뿐인데 왜 다들 날 그렇게 걱정하는 걸까요? 꼭 그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식으로 살아야 하는 건가요?” 글쎄, 나도 뭐라고 답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다. 타카코가 비슷한 질문을 했을 때 삼촌은 이렇게 답을 했다.
“저 지금 시간 낭비를 하는 걸까요?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런 게 아니야. 지금은 잠깐의 휴식이야. 너라는 배는 지금 이 마을에 닻을 내리고 있어. 잘 쉬고 나서 다시 출항하면 되지 않을까?”
<선샤인 클리닝>은 청소부와 웨이트리스 일을 하던 가난한 두 자매가 범죄현장 청소를 하는 ‘선샤인 클리닝’이라는 회사를 만드는 이야기다. 한때 고교 치어리더로 풋볼 쿼터백과 사귀며 잘 나가던 언니 로즈는 지금은 미혼모로 부잣집 청소를 해주며 아들과 단둘이 겨우 벌어 먹고산다. 심지어 그녀는 다른 여자와 결혼한 그 쿼터백과 불륜 관계이기도 하다. 로즈는 그에게 “왜 내가 아니라 헤더와 결혼했지?” 라며 묻고 따지고 싶지만 그가 혹시 자신을 다시 한 번 떠날까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동생인 노라는 나이 든 아버지에게 얹혀서 되는 대로 살아가면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해 괴로워한다. 로즈가 매일 거울을 보면서 ‘나는 강하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승리자다’ 하고 주문이라도 걸듯 되뇌고, 노라가 불안하게 비틀거리며 살아가는 이유는 엄마의 자살을 목격한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이기도 하다.
로즈는 학교에서 자꾸만 문제를 일으키는 오스카를 사립학교에 보내기로 마음먹지만 그들에게는 돈이 없다. 그래서 남들이 다 꺼리지만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바로 범죄현장을 청소하는 일이다. 그들은 죽은 사람이 최후를 맞은 자리를 치운다. 누군가 자살했다면 여기저기 튄 피와 살점들을 박박 닦아내야 한다. 침대에 누운 채로 부패했다면 매트리스를 통째로 갖다버려야 한다. 구역질 나는 일이긴 하지만 이것은 큰돈을 벌게 해주는 그들의 일이다. 오스카를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햇살처럼 빛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그들에게 이 일은 너무나 소중하다.
그러나 그들의 밝아 보였던 미래는 로즈 없이 청소를 나갔던 노라가 실수로 고객의 집에 불을 지르면서 끝이 나게 된다. 이제 자매애는 깨졌고 로즈는 돈을 물어내기 위해 다시 부잣집 청소 일을 나가야 한다. 미래는 다시 어두워졌다. 두 자매는 다시 희망 없이 낮은 자존감을 겨우 일으켜 세워가며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가야 할 것이다.
로즈와 노라가 누군가가 죽은 장소를 청소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엄마가 죽은 욕실이라는 마음속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청소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죽은 사람이 흘린 피를 세제로 닦아내면서 그들은 사람들이 왜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하는지를 생각한다. 시체가 썩은 물이 밴 매트리스를 버리면서 죽은 후에는 어떤 것들이 남는지를 똑똑히 본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혼자가 된 할머니를 대신해 집을 청소해주면서 그들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상처를 돌보아주기도 한다.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은 엄마의 욕실을 청소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죽음을 그저 죽음으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너무 어리고, 또 너무 갑작스러워 미처 갖지 못한 애도의 시간을 갖는 것. 그러면서 그것이 나의 탓이 아님을 아는 것.
나는 로즈와 노라처럼 보잘것없어 보이거나 때로는 남들이 꺼리는 일을 하면서도 자기 일을 소중히 여기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었다. 그건 어쩌면 나에게는 그럴 자신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나는 꿈을 이뤘다. 지금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은 내가 예전부터 바라마지 않던 것들이다. 결혼하기를 바랐고, 아이를 낳기를 바랐다. 단독주택에서 살기를 바랐고, 글을 써서 돈을 벌기를 바랐다. 좋은 친구들이 곁에 있기를 바랐고, 캠핑하거나, 텃밭 농사를 짓거나, 여행을 갈 수 있기를 바랐다. 카페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랐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를 바랐다. 다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배가 불렀는지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을 바라기도 하고, 지금 내가 이루고 얻은 것들을 지겨워하기도 한다.
<무라사키 서점의 나날들>에서 왜 내게 이렇게 잘해주느냐는 타카코의 질문에 삼촌은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에도 실패하고 미래는 막막하던 시절,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출판사를 3년 만에 그만둬야 했다. 그는 이 세상에 내가 있을 자리가 없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했다고 고백한다. 그때 누나가 조카인 타카코를 낳았다. 작디작은 타카코가 이불에 쌓여 새근새근 자는 걸 보니 어쩐지 조금 더 힘을 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여행하고 미친 듯이 책을 읽으며 어둠을 뚫고 나가기 위해 애를 썼다. 그가 온갖 곳을 떠돌아다니다 결국 닻을 내린 곳이 여기, 진보초였다.
“세계를 여행하면서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이 어릴 때부터 잘 알던 곳이라니 웃음이 나왔지만,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란 걸 알았으니까.”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마음가짐. 이 영화에는 ‘가치 있는 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치를 만드는 사람은 강하다’는 대사가 나온다. 범죄 현장 청소하는 일하건 손님도 없는 헌책방에서 일을 하건 아니면 어딘가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을 하건,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가치 있는 자리에 있어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건 그 일을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열심히 찾아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슬프게도 우리 중 대부분은 그 일을 찾거나 그 일을 하며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긴 하지만, 또 맞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수 없고, 인생은 우리 뜻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사는 게 그렇게 두렵고 막막한 것일 테지.
그럴 때 나는 그저 천천히, 그리고 씩씩하게 다가오는 것들을 맞이하면 된다고 나 자신을 다독인다. 천천히, 그리고 씩씩하게.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 두려울 일이 없을 것만 같다.
모리사키 서점의 하루하루 森崎書店の日々
휴가 아사코 감독 | 드라마 | 일본 | 109분
회사를 그만두고 방에 틀어박힌 타카코. 그녀를 걱정하는 삼촌은 그녀에게 책의 거리 진보초에 있는 자신의 헌책방에서 일할 것을 제안한다. 책을 가까이하지 않던 그녀는 헌책방에서 책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서서히 변하게 된다.
선샤인 클리닝 Sunshine Cleaning
크리스틴 제프스 감독 | 드라마, 코미디 | 미국 | 91분
고등학교 시절 퀸카였지만 싱글맘으로 사는 로즈, 툭하면 회사에서 잘리고 아버지에게 얹혀사는 그녀의 동생 노라. 둘은 각종 범죄현장을 치우는 청소대행사 ‘선샤인 클리닝’을 차린다. 그들은 과거에는 스스로 반짝였지만, 지금은 반짝거리게 청소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지금은 반짝거리지 않는 걸까?
에디터 이현아
글 한수희 일러스트 유예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