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할 즈음마다 먼 책방으로 달려오는 T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내가 책방을 열고 지금까지 이 작은 곳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두 군데를 거친 후 퇴사했다. 프리랜서로 만 1년을 무사히 버틴 것을 축하하자고 연락했을 때 그는 바쁜 기색을 내비쳤다. 우리는 긴 연휴를 마치고서야 만났다. 직장인과 다르게 환한 대낮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약속한 시각보다 늦은 그는 미안하다는 말, 그리고 커다란 한숨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T는 언제나 무거운 가방을 여러 개 들고 다닌다. 보기만 해도 묵직한 짐을 내려놓는 모습이 확실히 평소보다 지쳐 보였다. 요즘 일이 잘 안되냐고 물으니 고개를 저었다.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꽤 멋진 프로젝트들을 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럼 그렇지. 그는 능력이 좋은 데다 성실하기까지 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대량 정리해고나 취업난 같은 글자가 뉴스를 채우는 시기에 일이 많은 게 얼마나 감사하냐고 하니, 그는 큰 숨을 다시 내쉬었다.
T: 아침에 일어나면 노트에 한 줄을 쓰면서 시작해요. 오늘의 문장은 ‘나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 였어요.
나: 너무 비장한데요?
T: 이 정도 마음은 갖고 시작해야 하루를 버텨요.
나: 어제는 뭐였는데요?
T: ‘세계는 넓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널렸다.’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회사에서의 일상을 남들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답답하고 꽉 막힌 조직 생활을 마치고 그는 새 삶을 시작했다. T가 처음 뛰어든 일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디자인 툴을 꾸준히 배우려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작은 차 하나에 몸을 싣고 수도권이라면 여기저기를 다 누볐다. 그렇게 많은 사람과 만나고 나니, 자연스럽게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는 솔깃한 제안도 받게 되었다. 굵직한 작업이 이어졌다. 그 무렵 T는 ‘프리 워커’나 ‘N잡러’라는 말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 같았다고 했다. 공유 오피스로 출근하며 주어진 스케줄을 완벽하게 소화했고, 한 고개를 무사히 넘고 나면 오래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었다. T는 본격적으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인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는 곧장 느긋한 마음을 잃었다. 불안의 전조등이 환하게 켜졌고 액셀을 밟을 차례였다. 언제까지 프리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니 일단 일을 최대한 벌이기로 했다. 그리고 벌인 일을 훌륭하게 해내야 했다. 그래야 재계약의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일을 단 하나도 허투루 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다’, ‘잘’해야 하는 것이다. 결과물의 퀄리티를 고려하면 잠을 극도로 줄여야 했다. ‘잠 좀 자면 안 돼?’라는 반항기 가득한 생각부터 잠재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회사 생활 못지않은 굴레를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졌다.
T: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패턴을 못 끊는지 모르겠어요.
나: 프리랜서의 불안이 무엇인지 다 이해하는데. 그래도 몸이나 마음이 망가지면 안 되니까요.
T: 안 그래도 걱정되어서 아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저더러 너무 처절해지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나: ‘적당히’가 너무 힘들죠.
T: 이런 얘기 너무 지겹죠? 저희 타로나 봐요.
불안의 극점에 도달한 날에는 긍정적인 사고 회로도 소용이 없다. 그러면 그는 가방 속의 네모난 타로 카드를 꺼낸다. 테이블 위에 톡톡한 담요를 깔고 카드를 펼쳐 한 장을 뽑는다. 그런 날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영험한 힘에 기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카드를 섞고 만지는 손길마저도 정성스러운 사람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는 내게도 마음에 드는 카드를 한 장 골라보라고 권했다. 패가 그리 나쁘지 않아서 공연히 기분이 좋아졌다. T는 이런 마음으로 카드를 섞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자영업자인 동시에 월세를 내기 위해 일종의 프리랜서로 사는 나는 그의 마음을 너무 잘 안다. 나 역시 불안을 떨치기 위해서 자유 시간을 온통 업무로만 채우며 4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인정한다. 이 병엔 어떤 해결책도 없다는 것을. T와 나는 애초부터 회사에 구속되거나, 자신을 구속하면서 이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우리는 불안의 굴레 속에서 당분간 어딘가를 축내거나, 뻥 뚫린 구멍을 메꾸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런 그에게 얇고 작은 책 한 권을 선물하고 싶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는 ‘도대체’ 작가의 고백으로부터 받은 힘을 T와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타인의 불행으로 나를 지탱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떤 날은 같은 달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나눌 존재가 필요하다. 각자의 베란다에서 노란 불을 켰다, 껐다, 반복하면서 함께 울고 있는 누군가를 확인하고 싶은 밤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저도 울면서 달리고 있습니다’를 여러 번 곱씹는다. 그리고 ‘다행히 가끔 웃을 수 있는 일들이 생깁니다’를 이어서 말한다. 그러면 다음날의 뜀박질이 조금은 할 만하니까. 출근길에는 바다 언니가 된 듯 S.E.S의 ‘달리기’를 열창하며 액셀을 밟는다. 아무것도 모르겠고, 일단 울고, 가끔 웃자고 생각하면서.
저도 울면서 달리고 있습니다. 달리면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 그렇게 달린 후에 어떤 풍경을 보게 될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울면서라도 가볼 수밖에요. 다행히 가끔 웃을 수 있는 일들이 생깁니다. 그때마다 더 달릴 힘을 얻으며 조금씩 살아가다 보면 원치 않아도 달리기가 끝나겠죠.
– 도대체 《뭐라고? 마감하느라 안 들렸어》 中
We Around Project <한밤의 구석진 고민 의자>
권투 선수가 링 위에서 싸우다 잠시 쉬어가는 구석의 의자 ‘코너스툴(Corner stool)’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단어’로 된 고민을 가진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떠오르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것을 다시 읽고 쓰며 작은 의자에 머물다 간 그들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