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mming In The Light And Wind

어린 시절, 나의 이야기를 찾아서 : 뮤지션 계피

맑은 물방울을 닮은 계피는 올봄 발매한 동요집 [빛과 바람의 유영]을 소개하면서 그 안에 숨겨진 내밀한 이야기를 전해왔다.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마음을 잔잔히 울린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가만히 상상 했다. 계피의 긴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감정선이 도드라지는 성 장 영화나 과거를 샅샅이 조사하는 탐정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고. 어 느 쪽이든 두 시간의 러닝타임에 아주 긴 서사를 담은 그런 영화일 테지.

Scene #01 

계피와 동요

지난봄, 동요집 [빛과 바람의 유영]이 발매되었어요. 요즘 어 떻게 지내고 있나요? 

동요집이 나오고 단독 공연 준비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눈 깜짝할 새에 봄이 다 갔네요.

 

솔로로 무대에 오르고 팬들을 만나는 건 어땠어요?

사흘 내내 공연이 끝난 뒤 사인회를 진행했는데, 사인회도 오랜만이었고 이전과 달리 팬들과 대화를 많이 해서인지 인상 깊었어요. 대화하려고 사인회를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많 은 이야기를 묻고 듣게 됐어요. 첫날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서는 마음에 담아둔 말을 우르르 쏟아내신 여자분이 있었는 데요. 감정이 너무 많이 담겨서 목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 하는데 그게 계속 생각이 나요. ‘이런 맘으로 내 노랠 듣는구 나….’ 하고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됐죠.

 

이번 앨범은 동요집이라는 점이 눈에 띄어요.

사실 몇 년 전부터 저의 가족사를 정리하는 개인 작업을 시작 했어요. 내가 어떤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는지, 내 뿌리가 어딘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면서 진행한 저만의 프로젝트인데요. 평소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고, 친척들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였죠. 엄마랑 아빠가 어린 시절에 어떻게 자랐는지,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부모 님을 어떻게 양육하셨는지, 부모님은 조부모님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많이 묻고 들었어요. 그러면서 어린 시절에 제가 부모님께 말하지 않은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느끼게 됐어요. 그 결과물이 바로 [빛과 바람의 유영]이에요.

 

단순히 동요를 묶은 앨범이 아니었네요. 가족사를 정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마음 깊숙이 항상 어떤 종류의 불편감이 있었는데 커서도 사 라지질 않더라고요. 그걸 해결해보기 위해 원인을 찾아내려 간 거였어요.

 

찾았어요?

찾았어요. 찾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릴 때 많이 외로웠거든 요. 아이의 눈으론 세상을 왜곡하기 쉬운데, 그 왜곡된 시각 을 가진 채 성장한 것 같아요. 잘못된 시선을 점검하기 전까 지는 성인이 되고도 그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게 되고, 그래서 불편감이 남아 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 면서 제가 느낀 외로움은 엄마가 저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 에 생긴 게 아니란 걸 알게 됐어요. 단지, 엄마가 저와 교감하는 데 서툴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아이는 모르잖아요. 그런 대화를 하다 보니 엄마에게 제 마음 깊이 숨어 있던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왜곡된 시선은 바로잡았고요?

시선은 어느 정도 바로잡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어린 시절의 시선에서 비롯된 감정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오해한 지점을 알게 되었다고 곧바로 사라지는 게 감정이라면 모든 게 간단해지고 고민할 필요도 없겠죠. 멜랑 콜리한 동요가 그렇게 많은 걸 보면, 이런 감정은 많은 사람 이 겪는 인생의 일부분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감정이 깃들어서일까요. 수록된 동요들은 밝고 씩씩하 다기보단 서정적이고 잔잔한 느낌이 들어요.

[빛과 바람의 유영]에는 제가 좋아한 노래들을 먼저 담고자 했어요. 그러고 나서 제가 직면한 감정이 많이 깃든 동요들로 선별했죠.

 

어릴 때 ‘똑같아요’, ‘학교종’보다 ‘섬집아기’나 ‘노을’을 불렀 군요. 어떤 아이였어요?

말을 잘 안 하는 아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이 엄마를 학교로 호출해서는 아이가 말을 안 한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 었어요. 엄마에게 무슨 일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더라고요. 정말 아무 일도 없었거든요. 동요의 분위기가 마냥 밝지만은 않아서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분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런데 딱히 사연이 있는 건 아니었어 요. 성인이 되고도 그때 왜 말을 하지 않고 지냈는지 알 수 없 었어요. 전학을 온 것도 아니고, 교우 관계나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학교생활도 평범하게 했는데, 어린 시절 저는 어딘가 갇혀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 아이였어요.

 

앞서 말한 불편감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아요.

네. 당시에는 부모님이 자녀와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절 키울 때의 나이는 지금의 저 보다도 어리거든요. 부모님의 성장 환경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부모님은 전쟁 직후 태어난 세대인데요. 당장 먹고살기도 바쁜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자식들과 교감할 겨를이 있었을까 싶어요. 부모님이 당신의 부모님과 정서적 인 교류 없이 성장했기 때문에 자녀와 교감하는 방법을 모르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라요.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공통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동요집 [빛과 바람의 유영]

온전한 솔로 앨범이어서 사적인 이야기를 담기 좀더 편했을 것 같아요.

개인적일 수 있다는 게 솔로 작업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었어요. 그렇지만 안 좋은 점도 많아요. 모든 과정에 손이 엄청나 게 가거든요. 녹음 스케줄을 정하는 것부터 편곡자와의 어레인지까지, 혼자 다 하려니 힘들더라고요.

 

음악에 어울리는 세션을 일일이 찾는 것도 쉽지 않았겠네요.

그 요령은 이전에 하던 디자인 관련 작업에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있는 밴드 가을방학에서는 아트 디렉팅이 라고 하긴 그렇지만, 디자인과 관련된 것들도 담당하거든요. 여러 디자이너를 만나보고 한 명의 작업자에게 가을방학 앨 범에 맞는 디자인을 요청하는 일이죠.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디자이너에게 없는 것을 해달라고 하면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제가 원하는 걸 작업자에게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걸 나눠달라고 하는 게 훨 씬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걸 몸소 느낀 거죠. 그래서 ‘개똥벌 레’ 세션을 찾을 땐 본인의 음악 색깔이 ‘개똥벌레’와 닮아 있 는 사람을 찾고자 했어요. 편곡자에게 편곡을 요청할 때도 레퍼런스를 제시하되, 본인의 음악 색을 살려달라고 전달했죠.

 

전 어릴 때 자주 부르던 ‘옹달샘’이 이번 앨범에서 가장 반갑더라고요. 특히 마음 가는 곡이 있나요?

‘섬집아기’요. 포털사이트에서 섬집아기를 검색하면 섬집아 기괴담부터 나오거든요. 곡이 느리고 잔잔한 데다가 아기가 혼자 남아 있는 내용이잖아요. 사실 지금 보면 방치에 가까 운 상황이어서 무서운 동요로 불리는 것 같은데, 이런 흐름은  2절이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2절 노랫말 을 보면 엄마는 일하는 중에도 아기가 보고 싶어서 빨리 돌아 가려고 하거든요. 물리적으론 방치지만 정서적으론 아닌 거 죠. 사람들이 제 앨범으로 ‘섬집아기’ 2절을 접하고 따뜻한 곡인 걸 알게 되면 좋겠어요.

 

듣고 보니 앞서 이야기한 계피의 어린 시절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아…! 그런 생각은 못 해봤는데, 정말 그러네요. ‘섬집아기’의 엄마는 마음을 다해 돌아가는 상황 이지만, 아기한테 구구절절 말하지는 않아요. 엄마가 설명하지 않으니 아기는 엄마가 자기를 그리워한단 걸 당연히 모르고 있죠. 맞아요, 맞네요. 저도 어릴 땐 엄마 마음이 그렇다는 걸 몰랐 어요. 다 커서도 실은 잘 모르고 지냈고 요. 엄마 맘을 알게 된 건 앞서 말한 개인 프로젝트 때예요. 그때야 ‘아, 엄마가 내 생각을 이렇게나 많이 했구나.’ 하고 깨달은 거죠.

 

이번 앨범 들으면서 가족 생각을 많이 했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계피의 가족 이야기가 깃들어서 그랬나 싶기도 해요.

발 매일엔 이 앨범을 틀어두고 온 가족이 따라 부르기도 했어요. 사실 이 앨범을 통해 지금 들려주신 그런 감상을 나누고 싶었어요. 제 가족사에서 시작한 이야기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인회에서도 팬들에게 가족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사람들 마음이 다 비슷하다는 걸 느끼면서… 뭉클했어요. 저의 깊은 감정들이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겪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가만 보니 앨범에 등장하는 가족 구성원이 계피의 가족 구성원과 똑같네요.

맞아요. 부모님과 1남 1녀로 이루어진 가족이에요. 형제로는 오빠가 있죠. 트랙 리스트를 보면 ‘꽃밭에서’에서 아빠, ‘오빠 생각’에서 오빠, ‘섬집아기’에서 엄마 얘기를 하고 끝나거든요. 처음엔 이런 구성이 제 개인사를 너무 드러내는 건 아닌 가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이전 작업에서는 항상 어떤 상황을 빌려서 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했는데, 지금은 위탁할 데 없이 직접 표현한 느낌이거든요.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동요에는 성인이 되어 꾸리는 새 가족 이야기는 담길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빛과 바람의 유영]에는 있어요. 유일한 신곡인 열 한 번째 트랙 ‘2019’에 담겨 있거든요. 작사, 작곡, 편곡을 맡아준 형광소년이 제 남편이에요(웃음).

 

앗. 퍼즐 조각이 맞춰진 기분이에요. 계피의 온 가족이 들어 있네요. 이번 앨범으로 동요에 관해 많이 생각했을 것 같아요. 동요를 뭐라고 정의하면 좋을까요?

그러게요. 저도 이 질문을 듣고 나서야 그 정의를 생각해보고 있네요. 아이들이 가요를 부르면 귀여우면서도 어쩐지 불편 하잖아요. 역시 아이로서의 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요? 그런 언어로 만들어진 노래가 동요고요.

01. 가을방학, ‘새’ 뮤직비디오   

02. 가을방학, ‘베스트 앨범은 사지 않아’ 뮤직비디오

 03. 가을방학, ‘David’ 뮤직비디오

Scene #02 

계피와 영화

이번 호 주제가 영화예요. 영화와 음악의 접점이라면 역시 사운드 트랙을 빼놓을 수 없겠죠. 좋아하는 영화 OST가 있나요?

멋있게 “있다!”고 대답하고 싶지만, 영화 볼 때 이야기에 푹 빠져서 음악을 하나도 못 듣는 타입이에요. 똑같이 뮤지션인 남편은 저랑 달리 귀신같이 음악이 어땠다 저땠다 이야기하는데 저는 기억이 하나도 없죠.

 

무려 배우 송중기와 OST에 참여하기도 했는데요?

<티끌모아 로맨스>(2011)는 OST에 참여한 게 아니라, 정확히는 기존에 있던 노래가 OST로 쓰인 거였어요. 제가 보컬 로 참여한 우쿨렐레 피크닉의 곡 ‘The water is wide’를 배 우 송중기 씨가 영화 OST 용도로 녹음했고, 송중기 씨의 보 컬 트랙과 원래 녹음되어 있는 제 원곡을 이어 붙여서 듀엣으로 완성한 거죠. 저는 영화를 위해 따로 작업한 적이 없으니 같이 녹음한 건 더더욱 아니었어요. 제 경험과 닿아 있지 않아서 그런지 영화 OST는 사실상 해본 적이 없는 기분이에요.

 

이어 붙인 트랙이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군요(웃음). 그렇다면 관객의 시선에서, 영화 OST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저처럼 영화를 보고 음악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어쩌면 좋은 의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OST에 대해 잘 모르고,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하는지도 몰라서 언급하기가 조심스러운데요. 그런데도 이야기하자면 OST는 다른 음악과 달리 영화를 살리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는 생각이 들어요. OST 삽입으로 관객을 작품의 서사, 장면, 분위기에 푹 빠져들 수 있게 하는 건 대단한 일 같거든요. 음악이 아닌 작품의 내용을 돋보이게 하는 거죠. 가령, 영화 <죠스>(1975) OST는 정말 유명하잖아요. 빠밤, 빠밤, 빠밤 하는 그거요(웃음). 그 정도가 되지 않는 이상 기억을 못 하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물론 작년에 크게 흥행한 <라라랜드>(2016) 같은 경우는 다르죠. OST인 ‘City Of Stars’가 영화 못지않게 떴잖아요.  <라라랜드>처럼 음악이 전면에 등장하는 전면에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라면, 기억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좋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OST 작업은 어땠어요? 뮤지션으로서의 앨범 작업과는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아요.

OST 작업에는 OST를 관할하는 음악감독이 있기 때문에 그 분의 요구를 웬만하면 다 반영하는 식으로 작업해요. 물론 작업 스타일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제가 보컬에 담아낸 표현 중에 그분이 고르는 것을 최대한 반영하는 식으로 협업 하는 거죠. 대부분 제 음색이나 분위기에 맞춰 의뢰하기 때문 에 스타일을 바꿔 달란 요청은 많지 않은데요. 간혹 특정 감 정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정확하게 ‘이런 감정을 표현 해주세요.’ 하는 식인데, OST 작업이라면 그 요구 또한 반영 하려고 노력해요.

 
 OST는 아니지만, 독특한 프로젝트에 음악이 사용된 적도 있죠. 컬래버레이션 뮤직비디오라고 해야 하나요?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2015)와 제가 보컬로 활동하는 가을방학 3집 수록곡 ‘새’를 결합한 뮤직비디오가 있었죠. 정확히는 컬래버레이션이라고 하기도 모호한 작업이죠. 그것도 송중기 씨와 함께한 OST랑 감상은 비슷해요. 영화사에서 원래 있는 노래를 가지고 제작한 거여서 제가 크게 관여할 일 이 없었거든요. <앙>을 보고 난 뒤 음악 사용에 OK 한 게 전부였어요. 완성된 영상을 보고 음악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 죠. 따뜻하고 소박한 느낌이 특히 그랬어요.

 

OST가 영화에 음악을 삽입한 거라면, 뮤직비디오는 음악에 영상을 담은 게 아닐까 싶어요. 가을방학의 [세 번째 계절]은 전곡이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지기도 했잖아요.

매우 큰 프로 젝트였죠. 정말 힘든 경험이었어요. 앨범에 수록된 열한 곡의 뮤직비디 오를 제작하기 위해 저랑 가을방학 멤버 바비 씨, 촬영감독 세 명이 머리를 굴려 아이디어를 냈죠. 노래 속에 있는 내러 티브를 영상으로 정확하게 구상하는 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맞아떨어지는 아이디어가 많이 채택됐어요. 앨범 녹음 막바지에 진행한 프로젝트라 굉장히 힘에 부친 기억이 나요.

 

하나하나 연출을 한 거네요?

전문적인 건 아니지만, 그런 셈이죠(웃음).

 

가볍게나마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연출가가 영상 제작에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요?

잘은 모르지만, 연출가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 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닌 만큼 함께하는 사 람들 머릿속엔 저마다 생각이 있을 테니까요. 상황에 맞춰서 해야 할 일이 엄청 많을 것 같아요. 좋은 경영자의 마인드가 중요할 거란 생각이, 어렴풋이 들어요.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서 최선의 것을 끌어내는 역할이니까 머릿속에 있는 것만 요구하면 서로 힘들지 않을까요? 아마 본인이 제일 먼저 지칠 거예요.

 

가을방학 단독 공연 때마다 새로운 영상을 제작해서 보여주 잖아요. 저는 그 영상들이 매번 기대되더라고요. 한 편의 단 편영화 같다고 느꼈거든요.
 
공연에 삽입하는 영상도 전부 저희가 제작하고 있어요. 뮤직 비디오와 제작 과정은 비슷한데, 멤버들과 회의를 통해 하나 하나 맞춰가면서 만들고 있죠. 가을방학은 매년 12월이면 연 말 공연 <다들 잘 지냈나요>를 진행하는데요. 2018년에는 ‘올해의 단어’를 테마로 영상을 만들었어요. 올해의 단어라는 아이디어는 회의 중에 나온 건데, 올해의 단어에 관해 이야기 하다 보면 각자 이번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하게 되고, 우리 이야기를 관객이 공유하면서 관객 자신도 올해의 단어를 생각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어요.

#01 낮 

망원 한강공원 자전거 도로 자전거를 세우는 계피. 그녀 주위로 자전거 몇 대가 지나간다.

 

#02 낮 

망원 한강공원 반짝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03 낮

망원동 자주 가는 카페를 멍하니 응시한다. 

뮤직비디오나 공연 영상은 음악을 중심에 두고 만들어진다 는 점에서 원작이 있는 영화하고도 비슷한 것 같아요.

원작이 영화화되는 것을 싫어하는 분도 있던데, 저는 원작이 있는 영화도 흥미롭게 봐요. 다른 장르의 작품을 굳이 영화로 만든다는 자체가 애정을 표현하는 셈인데, 원작과 꼭 비슷하다거나 그보다 나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원작이 있는 영화 중에 특히 마음에 드는 영화가 있다면요?

<제인 에어>(2011)요. 개인적으로는 원작과 동등하게 좋았어요. 침침한 분위기의 여자 주인공은 제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와 거의 부합하는 모습이었죠. 어릴 때부터 생각하던 제인 에어의 얼굴이었어요. 《제인 에어》라는 소설을 좋아했기 때문 에 더 좋게 느껴졌지 싶어요.

 

영화 취향이 궁금해요.

저는 대중적인 걸 좋아해요. 따지자면 컬러 영화, 유성영화, 장편영화를 선호하죠. 독립영화보다는 상업영화를 좋아하지만, 독립영화 중에서도 흥행에 성공해서 상업화된 작품들 있 잖아요. 그런 영화들도 좋아해요. 장르로 따지면 드라마 마니아예요. 예외가 있다면 히어로 장르? 최근엔 <어벤져스> 시 리즈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어요(웃음).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인이 있나요?

영화 보는 건 좋아하지만, 영화 자체에 관심이 있는 거지 감독이나 배우 등 개인에는 특별한 관심을 두진 않아요. 물론 이런 경우는 있어요. 좋았던 작품을 모아놓고 보니 같은 감독인 경우요. 그럴 땐 마냥 신기해요. ‘와!’ 하고 감탄하게 되죠. 언젠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와 <포레 스트 검프>(1994)의 시나리오 작가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아, 역시!’ 하게 되더라고요. 두 작품 보셨어요? 생각 해보니 비슷하죠?

 

네.

너무 좋죠?

 

네.

신기하죠?

 

네! 어쩐지 역할이 바뀐 것 같은데요(웃음). 영화가 끝난 뒤 스 태프 롤 보는 거 좋아해요?

네. 새카만 화면에 글자가 지나가는 걸 보고 있으면 나름의 재미가 느껴지거든요. 간혹 외국 영화 스태프 롤에 한국 사람 이름도 나오는데, 그런 걸 발견하는 재미도 있죠. 저는 <어벤 져스> 시리즈가 전 세계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 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훗날엔 신화로 분류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사람들이 상상하는 빤한 판타지를 훌륭하게 구현 한 작품이잖아요. 그런 작품엔 어떤 스태프가 참여했을까 관심 있게 보는 건 즐거운 일이죠.

 

최근엔 밴드나 밴드 멤버에 집중한 영화도 많은 것 같아요. 계피의 삶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영화가 될 것 같아요?

아, 정말이지 안 만들고 싶어요(웃음). 60세쯤 되면 자기 삶을 자서전으로 담고 싶다고 하던데 그날이 오면 생각이 달라지려나요? 영화로 만든다고 해도 다룰 만한 이야기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영화화된다면… 내용은 모르겠지만, 아주 작은 규모의 독립영화 아닐까요?

 

영화는 우리의 삶에 크고 작게 관여하고 있어요. 일상에서 영화가 미치는 영향을 실감한 적이 있나요?

강하게 영향을 받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다만, 어떤 에피소드 가 마음에 남아 있다가 오랜 시간에 걸쳐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겠죠. 영화를 보면서 느낀 감정이나 생각이 차곡차곡 쌓여 오다가 노랠 하면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식으로요. 예전에 는 영화를 보며 느낀 바를 그대로 제 안에 받아들였어요. 영 화 주인공이 저인지, 제가 영화 주인공인지 구분이 안 될 정 도로 그 감정에 깊숙이 침투했어요. 그게 20대의 저였다면, 30대가 되니까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예전보다는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같은 객관적인 감상 을 좀더 하고 있어요.

 

오늘 음악과 영화를 넘나들며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앞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까요?

앨범이 발매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지금은 [빛과 바람의 유영]에 집중하려고요.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것들을 계속해서 음악에 담으려고 해요. 아, 이번 주 일요일엔 로마에 가요. 부모님과 9박 10일로요. 이 책이 발행될 즈음이면 다녀온 뒤겠네요!

Scene #03 

계피와 영화

No. 01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데이빗 핀처 | 멜로, 로맨스

 

“이 영화가 왜 좋은지를 생각하면 슬퍼지면서 따뜻한 기분도 들고, 주인공을 닮고 싶어지기도 하고, 주인공을 닮은 누군가의 사랑이 떠오르기도 하고… 사람 사는 게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도 돼요. 한마디로 감동의 모든 걸 갖춘 영화죠.”

No. 02

<미스 리틀 선샤인>(2006)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 드라마

 

 “절대로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사춘기 소년이 “우와아아아아악!” 하
고 소리 지르는 장면을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어요. 봉준호 감독이 약간 ‘루
저 끼’ 있는 이 배우를 좋게 여긴 듯한데, 그 배우가 <옥자>(2017)에도 출연해 반
가웠어요.”

No. 03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안소니 루소, 조 루소 | 액션, SF

 
 “마블의 각 캐릭터 사정을 알게 되면 마블 유니버스의 조각이 맞춰지면서 그들이 
친구처럼 느껴져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10년간 고생하셨습니다. 흑흑.”
 

Epilogue

계피와 애니메이션

에디터 – 어? 최고의 영화 목록에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없네요. <토이 스토리>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계피 – <토이 스토리>? 너무 좋죠. 하지만 영화가 아니잖아요.

에디터 – 왜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죠.

계피 – 아! 저는 <토이 스토리2>(1999)가 정말 좋았어요.

에디터 – 애니메이션 좋아해요?

계피 – 디즈니, 픽사는 개봉하면 꼭 봐요. <업>(2009)도 굉장히 좋았죠.

에디터 – 요새 3D 애니메이션도 많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계피 – 얼마 전에 <미녀와 야수>(2017) 보면서 아이고…(웃음). ‘원작과 이렇게나 달라졌구나.’ 하고 확인히는 정도였죠. 그래도 디즈니나 픽사 작품은 늘 기대하며 보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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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 장소 협조 찬찬커피로스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