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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nger Than Heaven
나의 최악의 여행지는 예식장이다. 그곳에 가면 늘 배가 아프고 웃음을 잃는다. 천국보다 낯선 그 곳에서 나는 언제쯤 제대로 된 농담을 구사할 수 있을까.
내 주변엔 결혼식 오타쿠들이 있다. 그들은 도장 깨기를 하듯 매주 예식장 순례를 한다. 친구, 친구의 친구, 누나 친구의 결혼식까지. 주말 알바를 하듯 식장에 다니는 그들에게도 나름의 철학이 있다. “하객 숫자로 그가 성공한 인생을 살았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머릿수를 세며 타인의 인생을 평론하는 친구. 그는 점수 매기길 좋아하는 녀석이다. 또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하는 이 투자가 나중에 배가 되어 돌아올 거야.” 그러면서 이제껏 참석한 결혼식과 축의금 내역을 보여준다. 그는 타고난 장사꾼이다. 한편 이렇게 말하는 친구도 있다. “끝나고 피로연이 있대!” 그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라는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녀석이다. “그러니까 네가 기대하는 타인의 결혼식이란 신랑 친구와 신부 친구가 다른 테이블에서 서로 곁눈질하다 결국엔 모텔에 가게 되는 그런 걸 말하는 거지?” 친구는 말없이 눈을 반짝인다.
반면에 나는 날이 갈수록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자리는 피하고만 싶다. 마냥 까불고 싶고, 되바라지고 싶고, 개다리 춤만 추고 싶다. 그런 내게 결혼식은 참기 힘든 이벤트다. 애초에 축하를 잘하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 묵혀둔 정장을 꺼내 입으며 혹시나 가랑이가 터지진 않을까 조마조마해 한다. 가능한 성의 표시만 하고 참석은 피하려 노력하지만, 최근 본의 아니게 결혼식에 가게 됐다.
사촌 동생의 결혼식이었다. 온통 친지와 어르신뿐이었다. 지뢰밭이었다. ‘어떻게든 납작 엎드려 이 전장을 빠져나가자.’ 유령처럼 숨을 참았다.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작은아버지의 여유로운 표정과 달리, 집안의 큰 어른인 아버지의 안색이 좋지 못했다. 웃는 듯 우는 듯 미묘한 얼굴. 나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시외버스에서 똥이 마려워 손톱을 물어뜯는 아버지를 상상했다. 나와 동생을 결혼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안절부절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듯한 표정이 가여웠다. 이 또한 지나갈 겁니다, 아버지. 살며시 아버지의 어깨를 토닥였다.
예식이 끝나고 이름 모를 먼 친척들의 덕담 타임이 이어졌다. “예쁘게 생겼는데 왜 아직?”, “어쩌자고 이런 불효를.”, “자네, 신부님이 되려는 건가?” 마침 해파리냉채의 겨자 소스가 코를 쏘는 바람에 찔끔, 눈물이 났다. 나는 울면서 더는 결혼할 사촌 동생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바늘로 손을 땄는데 끈적하고 검붉은 피가 몽글몽글 예쁘게도 솟았다. “건태는 청첩장 언제 줄 거야?” 살면서 몇 번 만날까 싶은 사람들이 그렇게 물을 때마다 나는 전전긍긍하게 된다.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일련의 과정을 디폴트 값으로 놓고 타인의 삶을 간보는 사람들에게 해줄 대답을 찾지 못한 까닭이다. “어차피 이혼할 거 결혼은 해서 무얼 하겠습니까?” 어머니가 아버지가 내게 결혼에 대해 말할 때마다 늘 그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러면 그들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내 삶에 애정 없는 사람들에겐 그런 농담마저 사치처럼 느껴진다.
나의 부모는 13년을 살다 이혼했다. 내가 열두 살, 동생이 여섯 살 때 일이었다. 부모의 이혼과 함께 사춘기가 왔다. 하지만 본드를 불 용기도, 오토바이를 훔칠 용기도 없던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디즈니 OST를 들었다. ‘그리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엉터리 결론에 “개소리하네.”라고 속삭이며 울었다.
그 무렵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성만 역시 이혼 가정에 살았다. 그는 원룸에 함께 사는 어머니와 동생을 끔찍이 아꼈다. 가족을 향한 그의 애정은 때때로 증오심으로 몸을 틀어 떠난 아버지를 욕하는 데 쓰였다. “그 새끼 내가 가만 안 둔다.” 그러나 ‘아싸’인 우리가 세상에 할 수 있는 복수는 많지 않아서, 기껏해야 마트에서 쿨피스를 훔쳐 먹거나 힘껏 축구공을 차 학교 유리창에 맞추는 게 전부였다.
하루는 성만이 시가를 구해 왔다. 우리는 인적이 드문 아파트 단지 구석에 숨었다. 갈색 개불같이 두꺼운 시가 표면에는 ‘CUBA’라는 그럴싸한 원산지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가 존경스러웠다. 성만은 서툰 솜씨로 불을 붙여 길게 빨아들인 다음 나에게 건넸다. 마구간 맛이었다. 성만은 기침을 참았고, 조금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허물어져 가는 아파트 뒤에 숨어 시가를 나눠 피우는 가난한 아이들. 재개발을 앞둔 5층짜리 아파트는 군데군데 금이 가 있고, 옛날식 베란다에는 쓰지 않는 고무 다라이며 훌라후프같이 쓸데없는 세간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건태야, 나는 남들보다 일찍 결혼할 거다.”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말하지 않았다. 비장한 무언가를 말하려 뜸을 들이는 줄 알았는데 트림을 참는 거였다. “암튼 쿨럭, 일찍 결혼해서 보란듯이 살아볼 거다. 존나게. 남부럽지 않게.” 쿠바산 싸구려 시가 냄새 때문인지, 눈앞에 있는 비루하고 현실적인 풍경 때문인지, 성만의 말은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차마 그의 말에 딴지를 걸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건데?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는, 그의 부모가 누리지 못한 ‘해피엔딩’을 대신 살아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멋있는 척 말을 보탰다. “건태, 너는 누구의 뜻도 아닌 너의 의지대로 살아라. 휘둘리지 말고.”, “뭐래.” 나는 쑥스러운 말은 하고 싶지 않아 짧게 “병신.”이라고 덧붙였다.
나에겐 두 명의 어머니와 두 명의 아버지가 있다. 부모가 두 번씩 결혼한 탓이다. 그렇게 네 명의 부모를 가졌지만 내 삶이 특별히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온 것 같진 않다. 기껏해야 친구와 시가를 나눠 피우고 유리창을 깨고 도벽이 좀 생긴 것 외에는 크게 망가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부모의 숫자가 늘어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부모라는 이름이 조금은 옅어진 것 같아서.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책임하게 걸었던 기대를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얼마 전엔 제주에 사는 진짜 어머니와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한 그녀가 말했다. “도대체 아들은 왜 결혼을 안 하는 거야. 엄마 속상하게.”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는 두 번째 이혼을 진행 중이었다. 아무래도 구제 불능인 그녀에게 나는 화를 내는 대신, 결혼하면 뭐가 좋은지 10초 내로 말하라는 미션을 내렸다. 그녀는 우왕좌왕하다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나중에라도 좋은 점이 있으면 말해줘요. 새로운 사람 소개해 줄게.”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었고, 잠시 후 고개를 들고 나를 쏘아봤다. “너는··· 너무 똑똑해서 탈이야.”
앞으로 내가 또 몇 번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해가 갈수록 신랑 신부에 버금가는 질문을 받을 테고, 또 그때마다 주머니에 챙긴 소화제를 만지작거려야 할지도 모른다. 매번 싸구려 시가 때문에 성격이 괴팍해졌다는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부모에게 하듯 대수롭지 않게 이혼을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 너는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애정 없는 질문에, 당신은 몇 번의 결혼을 예정하는지 농담하고 싶다. 그리고 당신이 결혼이라는 엔딩 이후에도 마주해야 할 삶이 있다는 걸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최근에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 성만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여전히 어머니, 동생과 함께라고 했다. 탈모가 심해져 대머리가 됐다고 했다. 파혼을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여러모로 그가 바라던 복수의 방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삶이 불행했을 거라고 속단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건 누구의 뜻도 아닌 성만 자신의 의지였을 테니까. 언제든 자신의 속도와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녀석이라고 믿고 싶으니까.
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