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림책을 한 권 골랐다. 그림책의 그림은 보여주지 않은 채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의 상상력으로만 그린 그림은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연지우(여덟 살)
“털실로 동물을 입혀줄 때 얘가 생각났어요. 강아지예요. 강아지가 왜 보라색이냐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 보라색이라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강아지야. 닥스훈트야. 이름이 뭐냐고? 잠깐만, 지금 지어야 돼…. 얘는 ‘빛나는 바다’야.”
왜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을 읽어주었나요? 지우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달인 12월의 겨울을 먼저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책장 한구석에서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을 발견했죠.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털실 이야기예요. 주인공 애너벨이 끊임없이 나오는 상자 속 털실로 자기 스웨터, 친구들의 스웨터를 다 만들고 남은 털실로 동물 친구들에게도 스웨터를 만들어주는 부분이 좋았는지, 털실 옷을 입은 동물을 그려줬네요. 이런 신비한 털실이 있다면 동물 친구들에게 털실 옷을 만들어주고 싶었나 봐요.
허수영 옷과 여행, 아이들 사진 찍어주기가 취미인 엄마
김민유(일곱 살)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강아지들이 모두 신이 났어. 큰 케이크도 먹고 시원한 사이다도 먹고…. 어떤 개들은 고기를 서로 먹겠다고 싸우고 있어. 혀로 날름날름 핥아먹는 개도 있어. 맛있는 것 많이 먹으니까 좋겠다. 잠도 늦게 자고. 엄마가 야단도 안 치잖아.”
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을 읽어주었나요? 언젠가부터 민유가 개를 무서워했어요. 길에서 작은 개를 만나도 슬슬 피하더라고요. 그런 민유에게 들려줄 멍멍이 이야기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 민소(민유의 언니)가 어릴 적 즐겨 읽던 책을 찾았어요.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 속 개들이 한밤에 파티를 여는 이야기예요. 내용이 흥미로워서 민유에게 들려주면 자연스럽게 호기심과 친근함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죠.
조인숙 소규모 출판 ‘버튼티’ 대표
김소울(여섯 살)
“부엉이예요. 이건 토끼고. 이건 나무예요. 그리고 이건 별을 잡아서 올리는 그림이에요. 그리고 요고는 팝콘이 이렇게 하늘에서 튀는 거예요. 팝콘 색깔이 예쁘죠. 이건 하늘인데 검은색이에요. 밤이었으니까요. 아! 부엉이는 세 마리예요. 이거는 나무에 있는 부엉이고, 밑에는 밑에서 올려다보는 부엉이고, 위에 떠 있는 부엉이예요. 이제 더 설명해줄 거 없어요.”
왜 《달이 좋아요》를 읽어주었나요? 평소에 소울이가 밤하늘의 달을 좋아해요. 그래서 달 이야기를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풀어놓은 이 책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깊은 숲 속에 사는 아기 부엉이가 달 여행을 떠나는 내용인데 달에 살고 있는 토끼들을 만나서 같이 보름달을 만들러 가고 함께 달이 계속 빛날 수 있게 색을 칠하기도 해요. 재미있죠? 연필로 그린 세밀화의 느낌도 참 좋더라고요.
전소연 특수교사이자 사진작가 《가만히 거닐다》, 《오늘 당신이 좋아서》 저자
이로운(여덟 살)
“나도 목욕하는 걸 좋아하는데 친구들이랑 함께 큰 목욕탕에 가서 목욕하고 놀고 싶어요. 동물 친구들이 함께 있는 게 좋았어요. 사이좋게 지내는 게 행복해 보여서 거품이랑 방울이 합해져서 하트가 되었어요.”
왜 《빨래하는 날》을 읽어주었나요? 시냇가에 놀러 온 엘레나가 동물 친구들과 함께 빨래하면서 겪는 내용을 담은 그림책이에요. 새롭게 만난 동물 친구들은 자신들의 빨래하는 모습을 따라 하는 서툰 엘레나를 도와주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로운이가 알고 있던 이야기이지만 그림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어요.
김남영 캔들&천연비누 브랜드 ‘향기로운 토끼코’ 대표
연하준(다섯 살)
엄마 “이게 뭐예요?” 하준 “응, 자동차. 이 자동차는 이렇게 생긴 빨간 자동찬데, 파란 자동차로 변했는데 창문도 파란색이야. 바퀴는 검은색인데 엄마가 좋아하는 자동차.” 엄마 “비둘기 책을 읽고 왜 자동차를 그렸어?” 하준 “비둘기 눈이 이렇게 동그란데 자동차 바퀴도 물렁물렁해서.”
왜 《비둘기는 목욕이 필요해요!》를 읽어주었나요? 하준이는 자동차가 나열된 그림책을 주로 읽어요. 아직 소근육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릴 수 있는 그림의 종류가 매우 한정적이에요. 평소 그리는 그림의 90퍼센트가 자동차고, 10퍼센트가 사람인데 혹시나 이 책을 읽어주면 어떤 그림을 그릴까 무척 궁금했어요. 책을 읽어주니 깔깔대며 웃더라고요. 씻기 싫어하는 비둘기의 내용인데 역시나 아무 상관 없는 자동차를 그렸네요(웃음).
허수영 꿀 모으는 것을 좋아하고 별명이 모기(mogi)인 엄마
김서율(여섯 살)
“친구가 생일파티에 기분이 너무 좋아서 케이크 위로 뛰어 올라갔어. 그리고 케이크 공주가 되었지. 진짜 맛있겠다. 엄마! 내 생일엔 멋진 해적 공주를 초대하고 싶어.”
왜 《너의날》을 읽어주었나요? 곧 있으면 서율이의 생일이에요. 《너의날》은 ‘생일은 아주아주 특별해’라는 내용을 담은 책이죠. 서율이에게 생일에 대한 재미있는 상상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서 이 책을 읽어주었거든요. 생일의 설렘을 안겨주고 싶었어요.
노미경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키즈 크래프트’ 대표
장차윤(일곱 살) · 장차인(아홉 살)
장차윤 “염소와 늑대가 만나서 누구세요? 하고 물으며 놀라는 모습이에요. 해님도 구름도 뒷동산도 다 이 둘이 만나서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장차인 “결국 늑대가 염소를 잡아먹었을 거야.”
왜 《폭풍우 치는 밤에》를 읽어주었나요? 영화로도 제작된 늑대와 염소의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예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늑대 가부와 염소 메이는 폭풍우 치는 밤에 만나 서로의 우정을 지키기 위해 계속 노력하잖아요. 깜깜한 오두막에서 나눈 둘의 대화를 듣고 그린 아이들의 상상력 풍부한 그림이 흥미로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차영은 아이들 책과 한글놀이기구를 개발하는 ‘장차’ 대표
송지오(세 살)
“나누(나무)야. 나누가 커. 하늘에 나누야. 구름 있어. 나무, 나무. 파란색 나무. 이거 봤어?”
왜 《바닷속에는》을 읽어주었나요? 지오가 요즘 좋아하는 건 자동차와 물고기예요. 툭하면 스케치북을 들고 와서 저에게 물고기를 그려 주라고 하죠. 게다가 엄청 큰 물고기를요. 몇 번 시범을 보여줬더니 부쩍 물고기 모양에 가까운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유일하게 그릴 줄 아는 물고기가 등장하는 책을 읽어줬는데, 왜 그런지 몰라도 이 책을 읽고 나무를 신나게 그렸네요. 이걸 그렸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붓으로 선을 긋더니 갑자기 점을 찍었어요. 그리고 나누라고 했다가 나무라고 고쳐 말하네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김이경 어라운드 편집장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나까지 소녀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순간적으로 동심에 물들었다가, 마음이 공기 중에 붕 뜨다가, 우울해지기도 한다. 우울해지는 이유는 어른이 된 나를 스스로 인지하게 되는 경우다. 사실 아이가 그린 그림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주제 없는 끄적거림이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상상력으로 그린 그림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 열심히 설명한 것은 마냥 귀엽다가도 마음에 주먹질해댔다. 엄마가 아이에게 읽어준 책들을 나도 슬쩍 읽어보았지만 역시나 나에게 그럴만한 동심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수시로 봐야겠다고 혼자 다짐해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