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DREAM

꿈꾸는 엄마로 산다는 것

STILL DREAM, 꿈꾸는 엄마로 산다는 것

‘넌 꿈이 뭐니?’ 이런 질문을 들었던 기억을 더듬어본다. 생각보다 한참 더 오래전으로 돌아가야 떠오른다. 선생님, 친구들, 많은 어른들이 그런 질문을 했었다. 이제 내 꿈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엄마가 되면 또 어떨까. 누가 물어주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말을 건네며 꿈을 찾아가는 엄마들에게 물었다. 꿈꾸며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건가요?


매일,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정연화 | 포토그래퍼

언제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나요?

원래는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근데 다니는 회사마다 1년 이상 버티질 못했어요. 삶에 대한 호흡이 느리고 옛것을 좋아하는 저에게 패션처럼 흐름에 민감하고 앞서가야 하는 일이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방황하다가 문득 흑백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필름카메라로 친구들을 찍고, 할머니 댁에 가 어린 친척 동생들을 찍었죠. 그때는 방송국 의상디자인팀에서 일하는 중이었는데, 결국 임신 후에 그만뒀어요. 사진을 찍다 보니 아이들과 가족의 모습을 담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누군가의 성장과 행복의 순간을 담아주는 게 그들에게도, 저에게도 너무나 큰 선물처럼 느껴졌어요.

아이를 낳기 전과 후, 일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을 것 같아요.

일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전체적인 태도가 변했어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일 자체에 욕심도, 큰 의미도 없었어요. 출산 후 기나긴 육아의 터널을 지날 때 진정한 자아 찾기가 시작된 것 같아요. 친정 엄마가 전업주부셨는데, 헌신적인 사랑이 정말 감사했지만 속상한 마음도 컸어요. 그래서 저는 자기 일을 가진 엄마가 되자고 다짐했죠. 

출산 후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이 더 절실해졌어요. 당장 할 수 있는 건 시우 사진을 찍는 일뿐이라서 자연스레 시우와 친구들, 주변 아이들 사진을 찍었어요. 아이와 지내는 시간을 줄이고 싶지 않아 매일 새벽 서너 시까지 공부하면서요.

 

작년 가을에는 을지로에 ‘디어퍼플스튜디오’를 오픈했죠. 준비하는 데 힘들지 않았나요?

계획 없이 시작한 거라 공사 비용과 여러 가지 일정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비용 절감을 위해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지인들 도움을 받아 남편과 직접 공사를 했어요. 봄에 시작해서 가을에 끝났으니 꽤 오래 걸렸죠. 

시우도 몇 달간 을지로에서 같이 먼지 마시고, 페인트칠하고, 소품 사러 곳저곳 다니고…. 생각해보니 함께 고생했네요. 아이가 자라고 있는 덕분에 그런 상황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진 속에 시우가 모델로 많이 등장해요. 시우는 사진 찍는 엄마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제가 한동안 시우 사진을 찍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 요즘 왜 내 사진 안 찍어?”라고 묻더라고요. 아무래도 엄마가 자기 사진을 찍고 보고 하는 걸 애정의 척도 중 하나로 생각하나 봐요. 하트 뿅뿅 하는 곳(SNS를 이렇게 표현해요.)에 자기 사진을 올리라고도 해요. 

한번은 키즈룩북 촬영을 편집하고 있는데 자기가 모델을 할 테니 찍어달라고 한 적도 있어요(웃음). 요즘은 자기도 사진을 찍고 싶대요. 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인데 포토그래퍼가 추가되었어요.

 
 

엄마가 된 후에도 계속해서 꿈을 이뤄나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내가 나로 살아가는 방법이에요. 나이가 들고 이제 물리적으로는 늙고 퇴화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성장하는 기쁨을 느끼게 됐어요. 엄마든 아빠든 꿈을 꾸며 사는 건 가족이 함께 성장해나가는 의미 있는 일 같아요. 아이는 부모에게 배우고 부모는 아이에게 더 많은 걸 배우잖아요. 건강하게 마음을 돌보며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믿어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또 다른 꿈이 있나요?

저의 오랜 친구들과 목적지도, 정해진 시간도 없이 로드 트립을 떠나고 싶어요. 마음에 드는 장소 아무 데나 내려서 사진 찍고, 마음을 빼앗긴 곳이면 하염없이 그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는 여행이요. 20년쯤 된 아주 오래된 꿈이에요. 평생 운전을 못 할 줄 알았는데 2년 전부터 하기 시작했어요.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달까요!


dearpurple.kr

거창하지 않더라도 ‘나의 일’이라면

조한아 | Hanahzo 대표

욕실용품 브랜드를 창업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참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그 많은 일 중에 하나가 그림 그리기였는데, 막상 일해보니 2차원적인 평면 안에서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게 답답했어요. 그래서 잠깐 동안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다가 더 늦기 전에 과감히 직장을 그만뒀죠. 

저만의 색감과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오브제를 고민하다가 천연 비누를 택했어요. 제가 씻는 시간을 참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비누를 만드는 사람 중에 젊은 층은 거의 없어서 자신만만하게 그 첫 번째 주자가 되어보자 했죠. 그래서 ‘한아조’의 첫 아이템이 비누가 된 거예요.

창업했을 때 뭐가 가장 힘들었나요?

안 힘든 게 없었어요. 전공 분야도 아니고, 경력도 자금도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으니까요.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는데 그때는 아이도 없었고,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버틸 만했어요. 콩깍지가 쓰였었나 봐요(웃음). 

막상 만들어보니 비누가 정말 어려운 녀석이더라고요. 화학식을 이해해야 하고, 온도와 습도, 원재료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하고…. 예쁘게만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 큰 오산이었던 거죠. 실패도 엄청 했어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하다 보니 비누를 독파하는 데만 5년이 걸렸네요.

 

 

남편분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요.

사실 남편이 아니었으면 지금 한아조는 없었을 거예요. 한아조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되어서 아이가 생겼거든요. 그때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다 멈추려고 했어요. 입덧도 심하고 몸이 불편하니 자연스럽게 의욕도 없어지더라고요. 그때 남편이 포기하면 안 된다며 발 벗고 나서줬어요. 본인 일도 내려놓고 온갖 궂은일을 다 해줬죠.

브랜드를 만들 때 모든 고민을 함께 나눈 사람이거든요. 한아조라는 이름도 남편이 지었으니 아마도 저보다 더 애틋할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왜 성공한 남자들 보면 아내의 내조가 중요하다고들 하잖아요. 예전엔 그 말이 이해가 안 갔는데, 정신적인 지주라는 게 정말 큰 힘이 되더라고요.

일과 육아, 이제는 둘 다 포기할 수가 없겠어요.

일하면서 저 자신이 발전하고, 뭔가를 성취하는 기쁨을 얻는다고 하면, 아이는 존재 자체가 기쁨이에요. 두 기쁨이 참 다르면서도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아이라는 존재는 이미 내 일부이니, 나를 위한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이고, 내 기쁨과 아이의 기쁨이 결국 이어져 있어요. 참 신기한 일이죠.

 

 

한아조는 이제 여러 명의 직원과 함께해요. 혼자 작업할 때보다 책임감이 커졌죠?

그럼요. 이렇게 진짜 리더가 되어본 건 생전 처음이니까요. 시스템이 다 갖춰진 체계 안에서의 리더와 허허벌판에서의 리더의 존재감은 비교도 할 수 없어요. 대표로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잘 이끌 수 있을지 끝없이 고민하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면서 우리의 공동체적 자아실현 방향을 맞춰가고 있어요.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아조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세에 물들지 않고, 더 한아조다운 제품 만들기. 다음 목표라기보다는 언제나 같은 목표예요. 한아조 제품을 만드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Pause Your Life’. 잠시 동안은 시간을 멈추고 여유를 즐겼으면 해요. ‘삶의 휴식’에 관한 이야기를 담는 다양한 아이템을 계속 선보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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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나를 일으켜주기까지

유수경 | 푸드디렉터

‘푸드디렉터’는 어떤 일들을 하나요?

푸드디렉터는 음식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해요. 업체나 지역 단체 등에서 의뢰를 받아서 촬영, 기획, 마케팅 전반을 진행하죠. 주된 업무는 레시피 개발과 콘텐츠 제작, 바이럴 마케팅이고, 간간이 다른 작업들도 하고 있어요. 

푸드코디네이터를 양성하는 아카데미에서 사진과 콘텐츠 제작에 관한 강의도 나가고, 《위매거진》 독자분들에게 저만의 레시피도 공유하고 있죠.

호텔조리학을 전공했지만 곧장 그 길로 가지는 않았다고요.

요리가 대중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건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 같아요. 티브이에 스타 셰프가 출연하는 요리 프로그램과 먹방이 생겨나고, 푸드크리에이터들도 유튜브나 다른 온라인 채널을 통해서 앞다투어 개인방송을 시작했잖아요. 

그전에는 요리사가 된다는 게, 특히 여자가 요리 업계에서 성공하는 게 참 힘든 일이었어요. 요리가 좋아서 선택했지만 여러 가지로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길을 가려고 했죠.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요리의 길로 발을 들인 계기가 궁금해요. 

5~6년 전쯤 섬유근통증후군이라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진단받았어요.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기를 몇 년씩 반복하면서 일상 생활이 힘들어지더라고요. 매일 밤 전신에 설명하기 힘든 고통이 찾아왔어요. 

 

여러 논문을 뒤져가며 병의 가장 큰 원인이 스트레스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고 건강한 생활을 하면 스트레스가 완화돼나아질 수 있다고 하는데, 그냥 요리가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SNS에 계정을 만들었어요. SNS가 뭔지도 잘 모를 때였지만 그냥 재미로 소소하게 음식을 만들었고, 이왕이면 예쁘게 찍어서 올려보자 했어요. 누가 보든 말든 그냥 제가 좋아서 시작한 게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요.

그렇게 시작한 SNS 계정에는 가족을 위한 건강식 메뉴가 가득해요. 

아버지가 30년째 당뇨를 앓고 계신데도 다른 합병증 없이 아주 건강하세요. 그건 저희 엄마가 고집하시는 정성스러운 식단과 밥상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건강식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 남편과 아이도 위장이 예민하고, 특히 아이는 어릴 때 잠깐 아토피를 앓은 적이 있어서 먹는 건 늘 신경 쓰거든요. 

조미료가 없는 대신 만드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복잡하지만, 정성을 다해 육수를 내고 여러 가지 조리 방법을 시도해보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위매거진》의 ‘가족의 식탁’에는 매번 딸 은솔이가 등장해요. 엄마의 직업에 아이도 영향을 받나요?

맞아요. 우리 은솔이 꿈 목록 중에 사진작가와 요리사가 들어가요(웃음). 엄마가 요리하고 촬영하는 모습을 아주 멋있어 해요. 쉬는 날에는 아이와 함께 여행을 가거나 요리를 만들어요. 불을 쓰거나 어려운 과정은 아직 힘들어하는데, 손으로 만들거나 플레이팅하는 건 꼭 직접 하려고 하더라고요. 

아이에게 항상 말해줘요. 은솔이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자랐으면 좋겠다고요. 그게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 은솔이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또 다른 꿈이 있나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콘텐츠 제작과 동영상, 사진 촬영 같은 바이럴 마케팅에 필요한 일을 가르쳐드리고 싶어요. 언젠가부터 이런 문의가 많이 들어와서 지금 천천히 준비하는 중이에요. 몸이 점점 나아가면서 아이와 비행기 타고 여행 가자는 약속을 많이 해요. 그렇게 하나하나 작은 약속들을 지키면서 살고 싶어요.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게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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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꿈을 키워가는 길

박아영 | 동그라미 마켓 대표

‘동그라미 마켓’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둘째를 임신했을 때 동네 작은 공방에서 취미로 뜨개질과 미싱을 배웠어요. 부드러운 면 소재에 레이스를 달아 블랭킷과 턱받이를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웃음). 몇 장 더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했더니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그때 비슷한 취향을 가진 분들에게 판매를 해봐도 좋겠다는, 조금은 무모한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출산 선물 세트를 만들면서 동그라미 마켓을 시작했어요.

어릴 적 꿈과 현재 직업이 맞닿아 있나요?

대학을 졸업할 때쯤 막연하게 키즈 드로잉 카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공도 살리고 싶었고, 평소 워낙 아이들을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쳤었는데, 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현실에 맞게 직업이 바뀌었어요. 아이 낳기 전까지 꽤 오래 웹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동그라미 마켓을 열게 됐죠. 어릴 적 생각하던 것과는 다르지만, 아이들을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공통점은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아이들 옷을 만들며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창업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요.

어느덧 3년이 되었네요. 육아를 하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정말 큰 도전이었어요. 가정에 헌신하는 삶에 지쳐갈 때쯤 아이 옷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업을 시작하고 유지하는 게 정말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래도 스스로 해보고 싶은 일을 생각해냈다는 것 자체로 기뻐서 계속 가보고 싶었어요. 제 열정과 주변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아동복 브랜드라는 특성상 일과 육아가 분리되어 있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다섯 살 제림이와 네 살 아준이, 연년생 남매를 키우고 있어요. 다행히 육아와 일이 자연스럽게 함께 이루어질 때가 많아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아이들을 모델로 촬영하는데, 초기에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두다 보니 서로 힘들 때가 많았어요. 지금은 요령이 생겨 되도록 자유롭게 함께 놀면서 일해요. 공원에 가서 아이들이 뛰어놀 때나 소꿉놀이를 할 때, 바닷가에 놀러 가서 모래놀이를 할 때 촬영을 하기도 해요.

 

동그라미 마켓과 아이들이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애초에 내 아이에게 입히고 싶은 옷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에요. 지금도 그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디자인부터 착용감, 소재 선택까지 아이들이 예쁘고 편하게 입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업하다 보니 제림이, 아준이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동그라미 마켓의 시작이 곧 태어날 둘째를 위한 용품들이었다면 지금은 편하고 예쁜 드레스나 블라우스를 제작하게 돼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제 디자인도 같이 자라고 있어요. 요즘은 제림이 취향을 반영하려고 하다 보니 동그라미 마켓에 조금씩 핑크 컬러와 꽃 패턴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요즘 어디에서 행복을 찾나요?

아내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가 아닌 사회의 일원으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느끼는 성취감이 커요. 제가 만든 옷을 입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 갑자기 반짝하고 영감이 떠오를 때, 시장에서 보물 같은 원단을 발견할 때…. 일을 하며 느끼는 기쁨은 확실히 육아에서 오는 것과는 다르니까요. 하지만 제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은 아이들이에요. 아이들과 아낌없이 서로를 사랑하면서 그 에너지로 다시 힘을 내죠. 아이들은 행복 그 자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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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일러스트레이터 양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