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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보다 중요한 누군가와
어느 곳보다 중요한
누군가와
여행을 떠난 지 두 달이 넘어간다. 발길 닿는 대로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영국을 돌아다녔다. 으리으리한 아크로폴리스Acropolis나 화려한 런던 아이London eye의 풍경보다 그곳에서 함께한 친구들과의 수다가 더 기억에 남는다. 잊지 못할 그들과 어쩌면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약속을 하며 떠나왔다.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져 간다.
친구가 되는 일에는
나이와 국경 따윈 상관없어요
Pamukkale, Turkey
터키 파묵칼레Pamukkale의 작은 호스텔, 8인실 도미토리 룸에서 드보라를 만났다. 62살 미국인으로 나이보다 동안이며 직업은 요가 선생님. 정확하고 알아듣기 쉬운 영어 발음과 함께 보여주는 선명한 손짓,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어제까지 흐리던 파묵칼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눈부시게 화창했다. 호스텔 1층 중앙에는 넓게 푸른 잔디가 있고 가장자리에 테이블이 있다. 드보라와 나는 자리를 잡고 터키식 아침을 먹다가 옆 테이블에 혼자 있던 스테이시와 합석을 했다. 그녀는 드보라처럼 미국인이며 편집 디자이너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식사한 지 한두 시간쯤 흘렀을까. 문득 햇빛과 터키 차이Turkey Chai(인도식으로 조리해서 마시는 홍차)와 웃음이 있는 이 공간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진짜 여행 왔구나! 이 여유를 마음껏 즐기고 싶어 더 게으름을 피웠다. 우리는 느릿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파묵칼레의 ‘파묵’은 목화를 뜻하고 ‘칼레’는 성城을 뜻한다. 하얀 석회 온천이 멀리서 보면 목화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는 석회층을 보러 가기 전에 성스러운 도시를 뜻하는 로마 유적의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를 구경했다. 주변에 다다르니 백인 소녀가 연주하는 플루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요가 선생님인 드보라는 높은 곳에 올라가 한참 동안 명상을 했고 게으른 여행자인 우리는 천천히 석회층으로 향했다. 석회층의 물은 굉장히 따뜻했다. 발을 담그고 있으면 닥터 피시가 몰려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기분 좋은 온도였다.
아이스크림 같기도 하고 눈 같기도 한 석회층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발바닥 지압에는 최고였다. 눈이 부시게 하얀 석회층과 멀리 보이는 광활한 녹색의 들판. 그리고 푸르다 못해 퍼런 하늘과 그 속의 구름. 자연이 만들어내는 색의 찬미에 눈이 부셨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넋을 놓고 바라보다 에페스Efes(터키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맥주)를 마시러 갔다.
나는 그들에게 내 영어 이름을 부탁했다. 내 이름 ‘유정’은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호스텔 직원은 ‘프린세스’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동양 여자를 정말 좋아하는 터키 남자답다. 스테이시는 ‘줄리’를, 드보라는 ‘세라’를 각각 말했다. ‘케세라세라’라고 시답잖은 말장난을 하는 내게 착한 드보라는 케세라세라 노래를 불러줬다. 덕분에 내 영어 이름은 세라가 되었다.파묵칼레에 머무는 동안 스테이시, 드보라와 함께 다니며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거리를 구경하고 또 춤도 췄다. 가끔 손녀까지 있는 드보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좀 불편한 것 빼고는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입양, 미국 문화, 남자, 미래 등 무척이나 다양했다. 영어가 서툰 나를 배려해 그들은 항상 천천히 말해주었다. 손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드보라. 나로 인해 강해지는 법을 배웠다고 고마워하는 스테이시. 이들 덕분에 나는 관계에 있어 나이나 국경 따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잊지 못할 아테네에서의 첫날 밤
Athens, Greece
“아테네다!” 비가 내리던 한 시간 전 터키와는 다르게 나를 반기듯 눈부시게 화창한 날씨였다. 정말로 신들이 살 것만 같은, 구름마저도 신화 같은 곳. 15킬로그램짜리 배낭을 메고 나의 첫 번째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호스트인 마리Mari가 살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일 때문에 늦는다는 그녀 대신 그녀와 함께 사는 존Joen이 마중을 나오기로 했다. 두 사람을 사촌 관계라고 했다. 티켓 박스 앞에 쭈그려 앉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역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만 같은 사람이 있어 말을 걸어볼까 잠시 망설였지만, 그는 메트로에서 내린 남자와 만나자마자 키스를 했다. 역 한가운데였는데!
존이 오기로 한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다급해졌다. 핸드폰이 없어 역 직원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도움을 청했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그때 존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하얀 피부와 곱슬머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만 존은 어쨌든 아테네에서 유일하게 나를 아는 사람이었다. 눈물이 났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사실 오분 정도가 지났을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마리와 존이 사는 집으로 왔다.
존은 내게 집을 구석구석 소개해주었다. 70년대 만들어진 건물은 굉장히 깨끗했다. 그들의 집은 5층이어서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는데, 존이 직접 엘리베이터 문을 여는 바람에 나는 놀라고 말았다. 방문처럼 문을 열었더니 그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던 것이다. 내릴 때도 그렇게 직접 문을 열었다.
그들의 집은 상상 이상이었다. 전면 창에 테라스 그리고 초록색 러그Rug. 내가 자취할 무렵 꿈꾸던 스타일이었다. “부엌에서 음식을 해 먹거나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돼.” 존은 내게 사과 향이 나는 맥주를 건넸고 우리는 그걸 마시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존과 친해지고 나서 머리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파마 같은 것은 한 번도 한 적도 없다고 했다. 나는 존의 천연 곱슬머리가 신기해서 계속 만져댔다.
해가 지고 나서야 집에 온 마리는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하더니 내게 나가자고 말했다. 나는 주변 산책을 하려는 거라 생각하고 따라나섰다. 그때 마리가 샤워를 하고 나서 빨간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것을 수상하게 여겼어야 했는데. 나가자마자 오래된 빨간 스포츠카에 타고 있던 여자와 마리가 인사를 했다. 마리의 오래된 친구 아말리나. 그녀가 거칠게 몰던 차가 향한 곳은 신타그마Syntagma의 분주한 술집. 그곳에는 마리의 친구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한국 문화에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 한국 영화에 대해 계속 물어보는 친구도 있을 정도로. ‘불금을 보내는 홍대 같아.’ 그런 생각도 잠시 들었다. 친구들과 좀 익숙해졌을 때 나는 낮에 존에게 배운 간단한 그리스어를 구사했는데 모두들 꽤나 즐거워했다. 그렇게 생전 처음 보는 그리스 친구들과 그곳의 음악 그리고 맥주와 함께 아테네에서의 첫날을 보냈다. 맨 얼굴과 잠옷 차림으로. 물론 앞머리마저 바짝 올린 채!
스쿠터 드라이버 멜리나
Athens, Greece
아테네에서 만난 두 번째 카우치 서핑 호스트는 멜리나Melina였다. 스쿠터에서 내리며 헬멧을 벗자 금발 머리가 흘러내리던 모습이 그녀의 첫인상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5층짜리 건물은 할머니의 것이고 각각 다른 층에 사촌과 친언니가 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멜리나는 한국말로 말한다. “나 재벌 2세 아니야.”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그녀의 집에는 하루 종일 한국 노래가 나왔다. ‘별에서 온 그대’의 한 장면이 모니터 배경화면으로 돼 있고, 뜬금없이 나에게 최신 연예정보를 묻곤 했다. 지금 일하는 주얼리 숍이 한국에도 있는데, 이미 서울 지점에 지원했고 며칠 뒤가 면접 날이라는 얘기도 했다. 한국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나는 시장에서 장을 봐와 남자 친구에게도 해준 적 없던 계란말이, 따끈한 흰밥을 차려주기도 하며, 열흘이나 그곳에 머물렀다.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멜리나와 함께한 열흘 동안은 항상 그녀의 스쿠터로 이동했기 때문에 교통비가 들지 않았다. 그녀의 등 뒤에서 아테네의 바람을 맞으며 스쿠터를 타고 달리고 있으면 내가 영화 <비트>의 정우성이 된 기분이 들어 두 팔을 벌리곤 했다.
이대로 지구 끝까지 달리고 싶은 마음으로. 언젠가 멜리나와 하루 종일 스쿠터로 아테네를 누비고 돌아와 저녁 늦게 짜파게티를 끓여 먹은 적이 있다. 여행하는 동안 조리법을 잊어버린 걸까. 물 조절을 잘못하는 바람에 우린 퍽퍽한 짜파게티를 먹어야 했다. 오일도 잘못 뜯어서 벽에 뿜어져 버렸는데, 그땐 둘 다 웃음이 터졌다. 그날 짜파게티를 급하게 먹은 멜리나는 그만 체하고 말았다. 부랴부랴 손끝을 따고 손과 손목을 어설프게나마 지압해주던 기억들. 함께 지내는 동안 멜리나는 꺼내기 어려운 가족 얘기와 미래에 관한 얘기를 해줬고, 나는 그런 그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아테네를 떠나기 전날, 멜리나는 친구들을 불러 한식 파티를 열었다. 때마침 인터넷으로 주문한 한식 재료들이 도착했고, 김치찌개, 떡볶이, 참치전, 계란찜, 찜닭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삼겹살과 소주까지 대동해 우린 밤새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한국어를 꽤 잘하는 토냐와 씨엘을 좋아하는 쓰리잡 가수 블라시스, 의대생 휴메이나까지, 우리는 그렇게 아테네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물론 DDR 마니아인 멜리나의 성화로 달밤에 취중 DDR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당신이 카우치 서핑을 하고자 한다면?
카우치 서핑이란 ‘자신의 소파Couch를 내준다’는 개념으로 현지인들이 여행 온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거처를 무료로 제공하는 커뮤니티이다. 이를 단순히 무료 숙박 시스템이라고 여기면 오산이다. 공짜라고는 하지만 그들에게 저녁을 대접하거나 기념품 정도는 주는 것이 예의이기 때문에 아무 준비 없이 이용하는 공짜 호스텔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는 얘기다. 카우치 서핑을 하기 위한 절차도 꽤 많고 써야 할 글도 많아서 영어를 잘 못하는 내게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차라리 돈 주고 싼 호스텔에 묵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위험부담도 크다. 나는 정말 운 좋게 천사 같은 이들만 만났지만, 사실 갑자기 허락을 거둔 호스트가 둘이나 된다. 피렌체에서 만나기로 한 호스트는 만나기 불과 두 시간 전에 페이스북 메시지로 사촌이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성수기에 호스텔 예약도 안 하고 핸드폰조차 없던 나는 그야말로 ‘멘붕’ 상태로 다른 호스텔을 찾아 헤맸던 적이 있다(그날 그 호스트 페이스북에는 놀러 간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그래도 내가 카우치 서핑을 계속하는 이유는 호스텔에 머물면서 여행자로 그 나라를 접했을 때와 호스트의 친구로서 접했을 때 정말 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호스트와 전부터 친분을
쌓고 친구가 된 상태에서 머무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나는 이 시스템을 정말 추천한다.
내가 블로그에 올린 카우치 서핑 후기를 보고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들은 왜 너에게 무료로 잠자리를 제공하고 밥도 주고 가이드 해주는지 궁금해했다. 아무래도 한국 사람들에게 이런 무조건적인 친절은 어색할 것이다. 나는 카우치 서핑 경험이 많은 멜리나에게 내 친구들의 질문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외마디 대답을 들려줬다.
“why not!”
에디터 전진우
글·그림·사진 김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