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Records Make Clear Footprints

일러스트레이터 정인하

꾸준한 기록은 꼭 마라톤 같다. 나는 지금껏 그 마라톤에 참가해 완주한 적이 없다. 출발선에서 신발 끈을 묶으며 시간을 끌다가 기권하거나 중간에 잠깐만 쉬려다 영영 주저앉아 버렸다. 일러스트레이터 정인하는 기록에 관해서라면 끈기 있는 마라토너다. 무려 10년 동안 말로 뱉지 않은 내밀한 이야기와 흘러가는 생각들, 여행의 생생한 추억과 자라나는 아이의 변화를 모두 노트에 옮겨 왔다. 적당한 거리에서 관찰한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 습관처럼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들면서 진짜 그리고 싶은 게 뭔지 명확히 깨달아 갔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걸음걸음 내디딘 발자국은 돌아볼수록 선명하게 빛난다.

보통의 동네

평범한 사람들

지하철역에서 내려 댁까지 걸어왔어요. 여기가 바로 《부드러운 거리》에 나오는 그 동네인가요?맞아요.

 《부드러운 거리》는 결혼 전 신림동에 살 때 대부분 작업하긴 했지만 이곳 산본과 동네 사람들도 등장해요. 2015년에 결혼하면서부터 산본에서 살고 있는데, 아파트와 나무가 많아서 아이 키우기 참 좋은 동네예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모든 사람들이 어려운 시기잖아요. 저도 대부분 집에서 보내요. 하루 한 번 아이와 집 근처 놀이터나 산책로에 다녀오고 장 보러 후다닥 마트 가는 것 말고는 외출이랄 게 없어요. 월요일부터 목요일엔 아이를 보고 금, 토, 일엔 일을 해요.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엄마가 와주셔서 그때 주로 밖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하고요. 남편은 게임 회사 프로그래머인데 요즘 들어 야근이 너무 심해서 주중에는 거의 아이 자는 모습만 보고 일요일에 아이랑 같이 할머니 집에 가서 놀아 줘요. 평일에 못 보는데도 일요일엔 아이가 아빠한테만 가 있는 게 신기해요. 양반다리하고 앉아 있으면 가운데 빈 공간에 엉덩이를 대고 앉더라고요. 사이즈가 딱 좋은가 봐요.

 

저기 무언가 빼곡하게 들어찬 방이 보이는데, 작업방인가요?

네. 예전에는 카페에서 작업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여러모로 갈 수가 없어서 집에서 일해요. 주로 그림책과 어린이 읽기 책에 그림을 그리고, 단행본 작업도 해요. 요즘에는 ‘모닝 페이지’도 틈틈이 하고 있어요.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서 창작자의 창조성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권하는 프로젝트인데 아침에 눈뜨자마자 의식의 흐름대로 종이 세 장을 채우는 거예요.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됐는데 아이 낳고는 못 하다가 이제 금, 토, 일 시간이 생겨서 일주일에 3일이라도 쓰고 있어요. 일어나서 바로는 아니더라도 시간 날 때 꼭 하려고 해요. 생각나는 대로 쓰고 그리죠.

혼자 있더라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 계속 쓰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사실 해야 할 일만 하기에도 벅차서 개인 작업은 거의 못 하고 있어요. 육아 일기도 그래요. 아이랑 너무 달라붙어 있으니까 오히려 덜 쓰게 되더라고요. 뭔가를 생산해 내려면 ‘일단은 모닝 페이지 먼저 하고 난 다음에 처리하자.’ 생각하면서 당장 해야 할 일을 외면하는 기술이 필요해요. 꼭 필요한 일은 먼저든 나중이든 하게 되어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종이세 장 채우기나 육아 일기나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안 하면 그만이잖아요. 그래서 더 의식해서 하려고 해요. 당장은 별거 아닌 생각 같아 보여도 나중에는 다르게 받아들여져요. 작업으로 확장할 만한 것도 나오고요. 그게 좋아서 계속하는 것 같아요.

 

외면하는 기술 덕분에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었군요. 더 오래된 습관도 있다고요.

혼자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노트에 생각나는 걸 적거나 그려요. 꽤 오래된 습관인데, 지금 사용하는 B6 사이즈의 노트를 꾸준히 쓰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인 것 같아요. 남편한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나는 어디에 가든 어떤 상황이든 노트와 펜만 있으면 괜찮아.” 호기롭게 한 얘기지만 정말 어딜 가든 그 두 개만 있으면 마음가짐이 아주 나빠지진 않을것 같아요. 심심하거나 슬프거나 혼란스럽거나, 글로 적으면 한결 나아지니까요. 그래서 외출할 땐 꼭 노트와 펜, 읽을거리를 챙겨요. 자연스럽게 기록이 습관이 됐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린 지는 7~8년쯤 됐어요.

ⓒ정인하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음… 내 그림을 찾아가는 과도기였던 것 같아요. 처음 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뷔했을 때는 패션 잡지와 자기계발서 위주의 단행본 표지, 내지 작업을 했어요. 트렌디하고 진취적인 여성을 표현하는 작업이 많았죠. 사실 저는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 아닌데 초반에는 할 수 있는 일은 거르지 않고 다 해내려다 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다 점점 내가 잘하는 게 뭔지, 뭘 원하는지 고민하게 됐고 그런 고민과 함께 그림도 변하더라고요. 선이 좀 구불구불해지고 힘이 빠진 듯하게 바뀌었어요. 그림체가 포트폴리오와 점점 달라지니까 편집자님이 이 방향은 아닌 것 같다고, 수정을 여러 번 하다가 그대로 일이 엎어졌어요. 

그때 한창 신림동의 한 카페에서 일을 하던 시기였는데, 카페 2층 창가 쪽 긴 테이블에 앉으면 맞은편에 횡단보도가 보였어요.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리기 딱 좋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서 있었죠. 일하다가 지루해질 때쯤 창밖의 사람들을 노트 귀퉁이에 하나둘 그리기 시작했어요. 목적도 부담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그린 그림이 낑낑대며 공들여 그린 것보다 더 마음에 들었어요. ‘아. 드로잉이 이렇게 즐거운 거였지.’ 하고 새삼 느끼곤 했죠. 그 창가 자리에 앉아 있다 보면 자꾸자꾸 그리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서,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면 아쉽기도 했어요. 주변을 잊고 그림에만 몰두할 정도로 재미있었어요.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고요. 그렇게 노트 위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나중에는 사람들을 그리러 일부러 나가게 됐어요.

 

그 그림들을 모아 만든 책이 《부드러운 거리》죠?

맞아요. 《부드러운 거리》는 2014년에 독립출판물로 먼저 만든 책이에요. 제가 직접 책방을 돌면서 입고시켰는데, 그 당시 책방을 운영하셨던 편집자님이 이후에 출판사에 들어가셨고 같이 책을 만들어보자고 연락을 주셔서 정식으로 출간 했어요. 

 

그림체가 무척 러프하면서도 사람마다 특징이 잘 잡혀있는 것 같아요. 관찰하면서 특히 눈에 잘 띄는 사람들이 있나요?

사람마다 흥미가 생기는 부분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릴 사람들을 미리 생각해 놓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딱 떨어지는 체형보다는 노인의 느슨한 몸이나 아주머니의 두툼한 몸통, 아저씨의 허리가 없는 통짜 몸매를 종이에 옮기는 게 즐거워요. 우리 머릿속에 이상화된 모습은 큰 키에 늘씬한 몸에 티브이 광고에나 등장할 법하지만 사실 평범한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잖아요. 체형, 키, 옷차림, 걸음걸이, 서 있는 포즈 모두 다르죠. 언뜻 보면 평범한 사람이 그림이 되는 순간 매력이 살아날 때가 있는데 아마 고유의 것을 간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는 어여쁜 모델들을 그리곤 했어요. 더 어릴 때는 공주님이나 순정만화 주인공을 그리길 좋아했고요. 그림으로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알아가면서 그리고 싶은 대상도 바뀐 것 같아요.

그런 변화가 그림책 《밥.춤》에도 나타난 것 같아요. 세탁소, 호떡 가게, 목욕탕에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여성의 몸짓을 경쾌하게 춤추듯 표현했어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시작할 때는 역동적인 사람의 몸을 그리고 싶다고만 생각했는데 풀다 보니 저도 모르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을 등장시켰어요. 《밥.춤》은 원래 전에 다니던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의 졸업 전시 작품으로 낼 캘린더용 그림이었어요. 캘린더는 2011년에 작업했는데 책은 2017년에 나왔으니 엄청 오래 걸렸죠. 출판사에서는 그림이 있으니까 글만 붙여서 책을 내자고 했고 저도 너무 좋다고 금방 나오겠다고 그랬는데, 5년 넘게 걸렸어요(웃음). 글이 안 나왔어요. 글 붙이는 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림만 나열한다고 그림책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 오래 고민했어요. 완성된 책의 글은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번뜩 떠오른 걸 막 적고 나서 다듬은 거예요. 다행히 거의 수정 없이 갔지만 그림책 작업이 마냥 즐겁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 그림 순서를 바꿔볼까, 이 부분을 조금 다르게 해볼까 고민하다 보면 몇 달이 훌쩍 가버려서 할수록 세심한 작업이란 걸 느꼈어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궁금해요.

담백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자주 생각해요. 빈 공간이 있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그림을 좋아하고, 더하기보다는 빼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사람을 그릴 때도 무조건 닮게 그리기보다 제가 끌린 부분에 초점을 맞추려고 해요. 그런 담백함은 사람 사이의 거리감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거리감이요?

만약 사람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관찰했다면 그들이 갖고 있는 기운을 강하게 느끼거나 정서적인 관계를 형성했을 거예요.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사람은 참 단순하고 귀엽게 보여요. 느슨하게, 덧붙이지 않고 덜어내도 괜찮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평범하다고 생각하던 걸 그렸을 때 독특한 나만의 분위기가 나온다는 걸 깨달으니 익숙한 것들을 좀더 멀리서 보게 되었어요. 그런 시선이 동네와 사람들을 좋아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고요.

거리감을 유지한다는 건 개인 성향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어릴 때 어떤 아이였나요?

최대한 남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엄청난 에너지를 쓰는 아이였어요. 있는 듯 없는 듯 하다가 학교 끝나면 막 뛰어서 집에 가는 아이요. 친구들이 그러는데, 헤어질 때 “안녕!” 하고 다시 할 얘기 있어서 부르려고 뒤돌아보면 벌써 저기까지 가 있었대요(웃음). 집에 가면 그날 있던 일을 엄마한테 조잘조잘 얘기했어요. 엄마는 제 이야기를 듣고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으시고 항상 즐겁게 들어 주셨어요. 지금은 밖에서 있던 일이나 본 것들을 남편한테 미주알고주알 얘기해요. 어릴 때 성향이 쭉 이어졌나 봐요. 

 

말과 감정을 삭인다는 게 답답하지 않았어요?

어릴 때는 그런 성격이 불편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오히려 편안해요. 예전엔 내가 이 상황에서 이 감정을 느끼는 게 맞는지, 이상한 건 아닌지 스스로 검열했어요. 일기에도 안 좋은 얘기만 왕창 써 놨어요. 언젠가 들춰본 적이 있는데 “내가 힘든 일만 적어서 나중에 보면 기쁜 일은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하겠다.”고 적어 두었더라고요(웃음). 지금은 뭐든지 그냥 흐르는 대로 둬요. 뭘 느끼든 이상하단 생각도 더 이상 안 들어요.

 

일기를 비롯한 기록이 생각을 움직이는 큰 바퀴인 것 같아요.

그런가 봐요. 생각나는 걸 계속 적어야 속이 후련해요. 생각이 들어서 적는다기보다는 적으면서 생각한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적어야 생각이 돼요. 생각이라는 건 참 가벼워서 금세 사라지지만 종이에 옮겨 적으면 무게가 생겨요. 사소한 말들 사이사이에 중요한 것들이 꼭 들어가 있어요. 그건 저에게 일종의 도구여서 기록을 못 하면 생각의 도구를 하나 잃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림 그리는 것도 어릴 때부터 좋아했나요?

네. 초등학교 때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만화책 같은 거 만들어서 애들한테 보여주고 돌려 봤죠. 미술을 전공하면 졸업 이후에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고등학교는 인문계로 진학했어요. 그때 사건이 좀 있었는데요. 야자 시간에 순정만화풍의 예쁜 여자를 그리고 있었는데 감독 선생님이 종이를 뺏으면서 “너 뭐야. 신데렐라 콤플렉스야?” 하는 거예요. 제가 그림 그리는 게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기 초의 고요한 야자 분위기 속에서 그 순간이 너무 부끄럽고 충격적이었어요. 그 이후에는 그림을 잘 안 그렸어요. 다들 열심히 공부하니까 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 와중에도 만화 동아리에 들기는 했지만요(웃음). 그렇게 그림을 마음 한켠에 품고 있다가 수능을 봤고, 진로를 많이 고민했어요. 알아보니 입시 미술을 안 해도 지원할 수 있는 학교가 있어서 시각디자인과에 가기로 결정했어요.

입학하고 보니 어땠어요?

정말 좋았어요. 다른 게 아니고 이미지를 배운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장학금도 받아가며 열심히 학교생활을 마쳤죠. 막상 졸업하고 보니 시각디자인과가 유명한 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자기 디자인도 하고 브랜드에서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데 저는 그런 걸 할 기회가 없었어요. 주로 기계적인 작업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조금 방황하다가 일러스트레이터 쪽으로 방향을 틀고, 에이전시에 들어가서 일을 받아서 작업하기 시작했어요. 2006년 전집 그림책으로 데뷔해서 일하다가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에 들어가서 또 그림을 공부했어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지금도 이 일이 재미있어요?

네, 너무 재미있어요. 갈수록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 상상하던 어른이 된 나의 모습과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닮아 있어요? 

어릴 때는 여러모로 서툴고 힘들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상상은 못 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사는 게 다 비슷해 보였어요. 삶의 수순이 고민해서 선택하는 것이라기보다 정해진 것처럼 보였거든요. 초등학교 졸업하면 중학생이 되는 것처럼 개인의 의지 없이도 알아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같았어요. 그러다가 20대가 되어보니 문득 에스컬레이터는 멈추고 어디로든 갈 수 있게 된 거에요. 삶의 형태가 너무 다양해서 방향을 잡아야만 했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제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20대 중반쯤 노트에 10년 뒤의 바람을 적어 놓은 적이 있는데 마침 10년이 지나 그 노트를 발견한 일이 있었어요. 일러스트레이터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으면 좋겠다, 내 일을 가지면 좋겠다…. 대개 이런 내용이었는데, 대단한 성공은 아니지만 얼추 그렇게 되어 있긴 하다며 감사하던 기억이 나네요.

시소 한 가운데서

블로그에서 ‘임신 수영 일기’를 봤어요. “내가 ‘임산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로서 내 임신을 경험하는 것이다.”라는 문구를 보고 임신과 출산, 나아가 육아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임산부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었다면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풀 일도 없었을 거예요. 저는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이래야 해.’ 하는 성역할의 틀에서 나름 자유롭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겪는 동안에는 저도 모르게 주입된 인식들이 강하게 새겨져 있다는 걸 알았어요. 임신하고 배가 불러와도 저는 계속 저였는데 말이죠. 사실 임신 때는 신체의 변화가 놀랍긴 하지만 그다지 힘들진 않았어요. 본론은 출산 이후죠.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를 잃는 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하잖아요. 뭘 하든 아이 욕구가 우선순위가 되니 나라는 사람은 쉽게 희미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작가님이 희미해지지 않게 붙들어준 건 뭐였어요?

일을 하고 있다는 것과 제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게 중심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됐어요. 출산 후에 얼마 되지 않아 《부드러운 거리》의 마무리 작업을 해야 했는데, 컨디션 회복도 덜 됐고 잠도 부족한 시기였지만 잠시 아이와 떨어져 일을 한다는 게 또 다른 기쁨이었어요. 출산이라는 엄청난 경험과 함께 이어지는 육아에 얼떨떨한 와중에 카페에 혼자 나와 일을 하는데 꼭 바다 한가운데서 헤엄치다가 섬에 쓱 올라와 있는 것 같았어요. 지금도 시소 한가운데서 팔을 벌려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는 것처럼 일과 육아의 균형을 잘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좋은 엄마의 기준은 늘 현실보다 높은 것 같아요.

항상 부족하다고 느껴요. 선우는 순하면서도 자기 고집이 있는 아이예요. 산책 나갈 때도 가고 싶은 길로만 가려고 해서 그냥 따라가 줘요. 그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산책도 놀이도 제가 주도하기보다 아이가 하는 걸 도와주고 보살펴주고 다치지 않게 해주는 게 엄마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너무 컨트롤을 못 하나? 엄마가 너무 끌려다니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렇다고 또 아이의 생활을 주도했다면 ‘엄마가 너무 애를 끌고다니나?’ 하고 고민했을 거예요. 나만큼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가 칭얼대면 금세 불안해져요. 계속 왔다 갔다 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엄마와 아이가 고유한 관계를 쌓아가면서 불안이 조금씩 없어지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육아 일기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어떤 마음으로 쓰고 있나요?

선우가 지금 25개월인데 육아 일기는 태어난 지 67일째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아이와 달라붙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어제 같아요. 그런데 또 조금만 지나고 보면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상황이 변하더라고요. 아이는 생각보다 쑥쑥 자라고 익숙해질 만하면 상황이 또 변하고 변해요. 아이의 모습, 가지고 노는 장난감, 생활 패턴…. 지나간 것들은 너무 애틋하기만 하고요. 소중한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있어요. 처음엔 아이가 컸을 때 보여주면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쓰다 보니 역시 푸념이 자꾸 섞여 들어가요. 그림에 색깔도 점점 없어지고요. 아무래도 선물로는 적합하지 않겠죠(웃음)?

푸념이 좀 섞여야 힘들었단 걸 알아주지 않을까요(웃음)? 남편분과의 관계는 어때요? 아이를 낳고 두 분 사이에 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아요.

조리원에 있다가 집에 와서는 남편이 보름 정도 휴가를 받아서 아이를 같이 돌봤어요. 그때 참 좋았어요. 손발이 잘 맞았고 생명의 신비함을 함께 나누는 게 행복했죠. 그런데 남편이 회사로 복귀하고 곧 야근이 많은 회사로 옮기게 되면서 육아와 가사의 추가 저한테 점점 기울어지더라고요. 남편은 일이 많아 힘든데 집에 와도 쉴 수가 없으니 지치고, 저는 저대로 지쳐 기쁨보다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꾸 하게 돼요. 남편은 야근이 너무 힘들다고 하고, 저는 야근해서라도 일하고 싶다고 말하죠. 아이가 부모와 밀착해 생활하는 시기가 길지 않은데 이 시기를 온전히 함께 보내지 못하는 것 같아 저도 남편도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하는데 주말에는 남편은 쉬기 바쁘고 저는 일하기 바빠서 그것도 쉽지가 않네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래도 의지 될 때가 많죠?

그럼요. 남편은 든든한 가족이에요. 아이 낳으면 남편에서 가족이 된다는 말 싫어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웃음). 남편과는 소개팅으로 만나 7년을 연애했어요. 동갑인 저희는 친구처럼 서로 이름을 불러요. 이건 좀 엉뚱한 고집인데요. 남편 처음 만났을 때 휴대폰에 ‘민진영’ 세 글자로 저장해 놓은 걸 아직까지 한 번도 바꾼 적이 없어요. 내심 서운해하는 것 같은데 전 이 이름 석자의 거리감이 왠지 좋아요. 가끔 보면 처음의 감정도 들고요.

 

두 분이 최근에 다녀온 여행지가 궁금해요.

작년에 남편 회사에서 포상 휴가가 나왔어요. 선우를 데리고 가네 마네 고민하다가 휴가 기한이 다 돼서 결국 둘이 다녀왔어요. 12월 말에 1박 2일로 후쿠오카에 갔는데, 정말 많이 싸웠어요. 그 전까지 같이 여행 가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거든요. 짧은 일정으로 가는 해외여행이다 보니 둘 다 너무 피곤하고, 여행하는 동안 즐거워야 한다는 압박이 생겨서 그랬나 봐요. 다시는 이렇게 여행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코로나19가 터질 줄 알았으면 그때 사이좋게 잘 지낼 걸 그랬죠(웃음). 올해는 1월에 선우랑 셋이 호캉스를 갔는데 아이랑 같이 있으니까 호텔 복도만 걸어도 재미있더라고요.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어요.

 

혼자 하는 여행도 좋아하세요?

좋아해요. 같은 곳을 가더라도 일행이 있는 것과 혼자 하는 여행은 꽤 다른 결로 펼쳐지는 것 같아요. 만약 뭔가 신기한 걸 봤을 때 일행이 있으면 “와 저것 봐. 신기하다.” 하고 곧바로 이야기하고 상대방에게 공감을 받잖아요. 하지만 혼자 보게 되면 발화하지 않고 신기하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머금어요. 저는 말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그 순간이 답답하지 않기 때문에 혼자 여행하는 것도 좋아하나 봐요. 뭔가 차곡차곡 마음속에 이야기가 쌓이는 느낌이 좋아요. 그리고 쉴 때 자연스럽게 그것에 대해 적어 봐요. 노트 위의 일들도 일종의 여행 같아요. 여행 속의 여행. 그 여행을 제대로 한 게 2014년 제주도에서였어요. 혼자서 5~6일 정도 있다가 그 당시엔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와서 이틀 정도 같이 지내다가 올라왔는데, 그 기간에 어디를 갔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하나하나 다 기록했어요. 밥 기다리면서 막간을 이용해 식당을 그리는 식이었죠. 너무 좋은 기억이었어요. 그런 여행 한 번 더 해보고 싶어요.

기억에 남는 여행이 또 있어요?

베트남 여행도 좋았어요. 그때도 혼자 먼저 갔다가 남편이 왔어요. 하노이에 있다가 남편을 만나서 밤 기차를 타고 ‘사파’라는 지역으로 갔는데 침대 칸 2층에 제가, 1층에 남편이 타고 갔어요. 아래 칸에 남편이 있다는 게 너무 든든하고 좋아서 계속 불쑥불쑥 내려다봤어요. 타지에서 주위에 아무도 없이 혼자 지내다가 아는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거잖아요. 소매치기가 있다고 해서 늘 조심하면서 다녔거든요. 남편 몸이 두꺼운 편이라서 더 안심이 됐는지도 몰라요(웃음). 여행 중에 잠을 잘 못 잤는데 남편 오자마자 꿀잠을 잤어요. 사파에 도착하니 고산지대라 그런지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안 보였어요. 혼자 밤에 걸어 다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남편이 옆에 있으니까 그런 걱정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두꺼운 몸이 한몫했네요(웃음). 그러고 보면 여행은 누구와 가는지도 참 중요해요.

그렇죠. 스타일이 맞아야 하니까요. 초등학교 친구들이랑 세 명이서 교토에 간 적이 있는데 친구 중에 한 명이 계획을 짜고 저는 따라다니는 쪽이었어요. 그 친구를 따라서 공항에서부터 2만 보를 걸었어요.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옛날에 셋이서 부산에 갔을 때도 몸살이 났었거든요. 그 생각을 못 하고 좋다고 또 따라다니다가 결국…(웃음). 저는 여행 가서는 무리하지 않고 계획도 큰 줄기만 짜는 편이에요. 너무 많은 걸 보기보다 편안하고 깊이 있게 순간을 느끼고 싶어서요. 지난 여행을 돌아봤을 때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정되어 있잖아요. 많이 본다고 해서 풍요로워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남편은 어디를 가든 잘 맞춰줘서 같이 가는 게 재미있어요. 남편과 함께라면 아까 말씀드린 사파처럼 조금 더 용기를 내야 하는 낯선 곳에 갈 수도 있고요. 혼자 간다면 일본이나 대만처럼 안전한 곳으로 마음이 기울어요.

 

주로 아시아 쪽이네요?

남편은 유럽이나 캐나다처럼 웅장한 자연이 있는 곳을 가보고 싶어 하는데 저는 아시아를 많이 찾게 돼요. 취향인 것 같아요. 재래시장이나 골목 사이사이 구경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골목에 잎이 무성한 화분들이 놓여 있으면 더할 나위 없죠. 그런 러프한 느낌을 좋아해요.

 

선우가 조금 더 크면 꼭 함께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어요?

선우랑은 어딜 가도 다 좋을 것 같은데 지금은 발리에 가고 싶어요. 저와 남편을 서로 소개해 준 친구 부부가 있는데 둘째가 선우랑 친구예요. 발리에 있는 멋진 풀빌라에 가서 같이 뛰어놀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요즘 같아선 이루기 힘든 바람이지만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모두 다른 방법을 찾을 거예요. 노트에 적는다고 생각하고, 10년 후에 세 가족은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나요?

10년 후면 선우가 초등학생이겠네요.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겠지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랐으면 해요. 그리고 저랑 그림책을 같이 읽을 수 있을 만큼의 감수성은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가족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지만, 저는 지금보다 좀더 많은 책을 만든 상태이기를 바라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제대로, 많이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정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