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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통하는 사이 : 손하빈 장금자 모녀

토요일 점심, 간판도 없는 자그마한 공간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무얼 했느냐 물으니 금자 씨가 정성스럽게 만든 채식 집밥을 먹고 하빈 씨와 책 수다를 나누었다는데…. 이것 참 수상하다. 이 모녀, 대체 무얼 하는 걸까? 비가 오던 어느 날 궁금해 죽겠는 마음으로 수상한 그곳의 문을 두드린다. 똑똑, 여기 뭐 하는 덴가요?

장금자 프로젝트

좋아하는 게 많은 엄마, 하고 싶은 게 많은 엄마, 서울에선 할 게 너무 많은 엄마, 오로지 ‘장금자’의 행복을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 건강식을 요리하는 엄마의 공간 ‘금자네 작은 부엌’은 오빠가 찾은 작은 공간에 아빠가 목공으로 꾸린 장소다. 전체적인 공간 기획자는 딸. 장금자 프로젝트 그 첫 번째, 금자네 작은 부엌에서 얼마 전 딸이 ‘건강클럽’이라는 독서 모임을 열었다. 건강에 관한 책을 읽고 건강한 채식 집밥을 먹는 모임. 딸은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도우며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H. instagram.com/jang_keumja

하빈과 금자를 소개해주세요.

금자: 반가워요. 저는 꽃과 자수와 요리를 좋아하는 장금자예요. 좋아하는 게 너무 많고, 좋아하는 게 생기면 다 해보고 싶은 사람이죠. 지금도 하고 싶은 일들을 열심히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하빈: 엄마를 닮아서 하고 싶은 게 많은 손하빈이에요. 현재 에어비앤비 마케터로 일하고 있어요. 직업 특성상 많은 사람을 만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문득 우리 엄마에게도 이에 못지않게 다양한 스토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얘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장금자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죠. 

 

엄마와 딸이 함께 인터뷰하는 기분이 어때요?

하빈: 너무 좋아요. 저는 종종 엄마가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엄마는 ‘여자가 나서서 이것저것 하는 것’을 인정받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왔거든요. 또래 친구를 만나도 자식이나 남편이 아닌 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걸 하고 싶어 하는 분이어서 장금자 프로젝트를 통해 엄마만의 목소리를 내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 덕분에 함께 인터뷰하며 좋은 추억도 남기게 됐고요.

 

모녀의 꽃말은 다툼이란 말도 있잖아요(웃음). 금자와 하빈은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이는데, 어떨 때 싸우곤 하나요?

금자: 딸이 학생일 땐 남편이랑 아들이 ‘두 여자 때문에 못 살겠다.’며 집 밖으로 나갈 정도로 싸웠어요. 백화점에서 비싼 옷을 보고 와선 사달라고 조르거나… 하는 자잘한 이유였죠. 못 이겨서 사주면 한 번 입고 그다음 해까지는 입지도 않으면서(웃음). 

하빈: 당시에는 친구들에게 한 번 보여준 옷은 또 보여주기가 싫었어요(웃음). 이런 자잘한 싸움은 딱 고등학생 때까지만 했어요. 그땐 속된 말로 ‘미친 갈등’ 수준으로 싸웠기 때문에 더는 싸우지 않게 된 것도 같아요. 눈 밑에 점이 있으면 엄마랑 딸이 많이 싸운다는 속설 때문에 엄마가 눈 밑 점을 뺄 정도였거든요. 성인이 된 후엔 떨어진 시간이 길어서 싸울 일도 없었는데요. 환경적인 이유도 있지만, 엄마가 워낙 잔소리하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다투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해라’, ‘~하지 마라’라는 이야기는 지금도 전혀 안 하시거든요.

 

장금자 프로젝트의 첫걸음은 ‘금자네 작은 부엌’이에요. 여기는 어떤 공간인가요?

하빈: 금자네 작은 부엌은 홍제동에 있는 아담한 공간으로, 온 가족이 함께 만든 부엌이에요. 오빠가 월세가 비싼 서울에서 비교적 저렴한 공간을 찾아내고, 은퇴 후 목공을 배우고 계신 아버지가 목수 역할을 도맡아 꾸린 곳이죠. 저는 엄마와 상의해서 공간을 전체적으로 디렉팅했어요. 2-3개월 동안은 월세를 꼬박꼬박 내면서도 오픈하지 않고 제 디렉팅에 따라 아버지가 천천히 공간을 만들어나갔어요. 외부 도움 없이 우리 가족의 힘으로만 완성한 공간이라 무척 뜻깊은 곳이에요.

 

그래서 나무로 된 물건이 많군요. 이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나요?

하빈: 예약하는 분들께 엄마가 손수 채식 밥상을 차려드리고 있어요.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식당은 아니기 때문에 일주일에 최대 세 팀 정도, 제가 인스타그램으로 예약을 받아 진행하고 있죠. 정해진 날 없이, 손님이 원하는 때 열리는 부엌인데요. 고기나 기름, 조미료 등을 사용하지 않은 건강한 한 상을 내어드려요. 엄마 혼자 운영하는 아담한 공간이어서 한 팀에 6인까지만 받아 천천히 꾸려나가고 있죠.

 

금자네 작은 부엌에서 딸이 수상한 모임을 꾸렸어요. ‘건강 클럽’이라고요!

하빈: 얼마 전에 담낭염으로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엄마 덕분에 균형 잡힌 채식 식단을 먹어왔고, 약 대신 음식으로 아픈 곳을 치유하며 자랐거든요. 피부가 좋지 않으면 콜라겐 대신 황태 껍질을, 비타민이 부족하면 영양제 대신 비트를 먹는 식이었어요. 건강한 음식 덕분인지 튼튼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신체 건강에는 걱정이 없었어요. 그런데 서울에 올라오고부터는 거의 매일 고기를 먹고 불규칙한 식사를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문득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건강에 대한 저만의 기준을 세우기 시작했어요. 병상에서 도움이 될 건강 관련 책들을 읽다가,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읽어보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 기획한 독서 모임이에요.

 

건강 클럽은 어땠나요?

금자: 딸이랑 뭐든 작게라도 같이 해보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기 때문에 고민할 게 없었어요. 저는 식사를 준비하고 부엌에 있었는데요. 독서 모임이 진행되는 안쪽에서 계속 웃음 소리가 들려와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하빈: 처음 보는 사람들과 밥을 먹는 게 생경하고도 재밌었어요. 다들 작은 건강 문제를 가진 분들이어서 이야기도 잘 통했죠. 큰 문제라기보다는 지속적으로 관심이 필요한 이슈였어요. 목디스크라든지, 최근에 위가 안 좋아져서 술을 못 먹게 된 분이라든지…. 총 3회로 진행되는 모임이었는데, 첫 모임에서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일이라는 걸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함께 밥을 먹으니까 확실히 어색한 게 사라지더라고요.

건강식을 먹으며 건강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 같아요. 어머니는 건강식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금자: TV에서 병치레하는 노인들을 보다가 문득 우리에게 병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음식이 아닐까 싶어졌어요. 그때부터 약하게 간을 하고, 고기 대신 두부나 된장으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도록 식단을 구성하기 시작했죠.

하빈: 울산에 사시던 엄마가 서울로 이사한 뒤 그러시더라고요. ‘한식이 다 퓨전’이라고요. 금자네 작은 부엌이 추구하는 건 기교를 부리지 않은 한국식 집밥이에요. 화려하게 치장한 음식이 아니라 집에서 엄마가 먹는 평범한 음식을 손님에게 선보이는 거죠. 

 

모녀의 협업은 건강 클럽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아요. 또 어떤 계획이 있나요?

하빈: 건강 클럽에 앞서 생각하던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세상 어딘가엔 우리 엄마처럼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어머니’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자기 취향이 또렷하고, 남 얘기가 아닌 내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어머니들이요. 곳곳에 있을 그런 어머니들을 딸들이 추천하여 엄마 소셜 모임을 만들고 싶어요. 저희 엄마는 장금자 프로젝트로 무언가 해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내년엔 그런 분들과 엄마 모임을 열어 엄마의 친구를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또, 딸과 엄마가 함께하는 소셜 클럽도 만들고 싶고요. 다른 세대를 경험하는 모녀가 모임에 함께하면 서로에 대해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될지도 몰라요.

금자: 작년 말에 양평에 짓던 집이 마무리되었어요. 산으로 둘러싸여 편안하고 조용한 곳인데, 좋은 음식을 먹으며 쉬고 싶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건강한 한 상을 대접하고 싶어요. 그곳에서 된장 만들기 등의 체험도 시작해보려고 아파트에서도 만들 수 있는 아파트형 된장도 개발 중이죠. 자연적인 분위기의 양평에서 장금자 프로젝트ver.2를 이어나가 보려고요.

다정한 두 사람, 하빈과 금자 모녀를 만난 날엔 비가 내렸다. 축축한 우산 끝에 매달린 습기와 스산한 온도를 껴안고 방문한 게 못내 미안했는데, 생각 외로 금자네 작은 부엌은 무척이나 따뜻했다. 먼 데서 불어온 봄바람이 오래도록 고여 있는 듯한 푸근함. 갓 지은 집밥에서 모락모락 피어난 연기 덕분일까, 두 사람에게 스며 있는 다정함 덕분일까. 그녀들에게서 더 근사한 내일을 보며 부엌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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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