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y In Wonderland

만화 창작팀 모모하시니

부부가 함께 만화를 짓는 모모하시니는 아들 ‘하신’인 듯 아닌 듯, 닮은 듯 다른 듯한 ‘시니’라는 소년이 등장하는 만화를 만든다. 이 세상과 사뭇 다른 이계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들 만화는 적잖이 신비롭다. 인간의 엄마가 선녀이기도 하고, 소년과 메기가 친구가 되기도 하고, 불쑥불쑥 요괴가 등장하기도 한다. 음험하기도, 오싹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귀여운 요괴. 이 신비한 존재로 이야기가 흘러가자 가만히 놀고 있던 하신이 눈을 반짝이며 외친다. “그슨새!” 그슨새? 지금부터 모모하시니의 이상한 세계로 함께 떠나 보자.

일상 속 판타지

판타지 속 일상

만나서 반가워요. 작업실이 정말 귀엽네요.

하신 안녕! 여기는 모모하시니!

현석 반가워요. 이곳은 ‘모모하시니의 만물작업’이라 이름 붙인 모모하시니의 작업실이에요. 원래는 집과 작업실을 따로 두고 지냈는데, 오가기가 불편해서 지금은 한자리에서 생활 공간과 작업 공간을 분리하여 사용하고 있어요. 작업실을 마련한 건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였고 인천에 작업실을 꾸린 지는 인제 3년이 되었네요.

현주 지금 주로 하고 있는 건 ‘오하신’이라는 저희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화 작업이에요. 이 작업과 함께 개인 작업들도 병행 중이고, 이외에도 인천이라는 지역과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을 이것저것 해나가고 있어요. 모모하시니의 만물작업은 이 모든 작업이 이루어지는, 디자인과 만화가 펼쳐지는 저희의 작은 작업 공간이에요.

 

(강아지가 짖는다.) 작업실에 식구들이 참 많네요. 소개해 주실래요?

현주 글 작업을 하는 하신이 엄마 김현주와 그림 작업을 하는 하신이 아빠 오현석이 있고요, 오이와 비누라는 강아지두 마리도 함께 살고 있어요. 유기견이라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두 마리 다 노견이에요. 그리고 이 집안의 막내이자 저희 작업물의 중심이 되는 아이 오하신이 있어요. 다섯살짜리 남자아이죠.

하신 비누 나이는 내가 알아! 할머니야. 비누는 할머니.

현석 맞아요(웃음). 비누랑 오이 나이는 대충 열다섯에서 스무 살 언저리예요. 비누는 저희 집에 올 때 여덟 살이라고 들었으니 지금은 하신이 말대로 정말 할머니죠(웃음).두 마리다 갈 데 없는 아이들이었는데 함께 지낸 지도 벌써 10여 년이 흘렀네요. 아, 그러고 보니 하신이보다 어린 식구도 있어요. 얼마 전에 금붕어들을 데려왔거든요.

 

모모하시니의 ‘하시니’는 아이 이름에서 따온 것 같아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엔 주로 어떤 일을 해왔나요?

현주 이전에도 생활은 비슷했어요. 계속 만화 작업을 해왔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목표를 정하고 저희만의 작업을 한 게 아니라 만화를 수단 삼아 일해왔다는 거예요. 외주 용역이나 상업적인 일들이었죠. 그러다 하신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책임감이 생기기도 했고, 예상치 못하게 세계관이 넓어지면서 하고 싶은 게 하나둘 생겼어요. 내 거, 우리 거라고 부를 수 있는 걸 남겨야겠단 마음이 들어서 이야깃거리를 모아 우리만의 만화 작업을 시작한 거죠.

현석 하신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개인 작업을 하긴 했어요.일상툰을 그렸거든요. 제가 생계를 위해 공사장에서 일했던 적이 있는데 거기서 겪은 일들을 <노하우>라는 이름의 웹툰으로 연재한 거였죠. 이외에도 글 쓰는 분과 협업하거나 또 다른 작업자들과 프로젝트를 해보기도 했는데요. 잘되진 않았어요. 많은 시도가 엎어졌거든요. 그러고 보면 저희는 어떤 형태든 만화 작업을 계속 함께해 왔네요. 다만 하신이가 태어난 이후 그 중심에 ‘시니’라는 가상의 인물이 생긴 거죠.

 

그 작업이 판타지 장르라는 게 흥미로워요. 육아와 판타지에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현주 판타지도 어쨌든 인물이 등장해서 그 세계 안에서 일상을 끌어가는 거기 때문에 크게 다를 건 없다고 생각해요. ‘일상판타지’라는 용어도 있고요. 어떤 세계든 이야기를 꾸려가는 중심인물이 있고, 그 방향을 잡는 건 자신의 몫이니까요. 일상이 곧 판타지라는 생각은 아이를 낳으면서 더욱 확실해졌는데, 그러면서 ‘하루를 헛되지 않게 보내자.’는 마인드도 생겼어요. 일이 바쁘다고 온종일 집에만 있는 날이면 아이의 하루를 헛되이 만드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거든요.그래서 아이가 생긴 후에는 늘 한 번이라도 밖으로 나가고 산책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그 과정을 통해 일상이 판타지스럽게 바뀐다는 생각도 들고요.

현석 저도 비슷해요. 일상과 판타지에 크게 구분을 두지는 않아요.

현주 다른 공간으로 텔레포트 하고 싶은 건 아니고(웃음)?아마 현석 씨는 저랑 조금 다른 느낌일지도 몰라요. 남편이 출퇴근하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 육아를 전적으로 맡아서 해왔거든요. 아이를 안고, 업고, 들고, 먹이고, 재우고….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육아에 매진했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24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요.

일상과 판타지가 다르지 않다는 걸 보면 하신이의 탄생이 특별한 변화를 만든 것 같아요.

현주 일단은 생활이 굉장히 많이 변했어요. 생각지도 못할 만큼 변했죠. 그전에는 하루 일과나 규칙이랄 것도 없이 지냈어요. 저희 부부랑 강아지 두 마리만 생활하다 보니 밤낮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거든요. 오후 두세 시에 일어나고, 아침에 잠들고, 새벽 한두 시에도 강아지들이랑 뒷산으로 산책하러 나가곤 했어요. 근데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이런 생활이 완전히 불가능해졌고 하루가 개편되다시피 했어요. 재밌는 건 생활이 변하니까 생각도 바뀌었다는 거예요. 저도, 남편도 주변에 아이가 없어서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을 하신이 덕분에 처음 봤거든요. 사람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자라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를 보면서 오히려 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죠. 그러면서 삶에 큰 변화가 생겼고요.

 

‘제 생각’이라고 하면요?

현주 누구나 쭉 해오는 보편적인 고민이 있잖아요. 부모, 집,미래에 관한 것들이요. 하신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고민들이 막연하고 단편적이었다면,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비슷한 고민이 좀더 디테일하게 변하고 있어요. 구체적인 방안, 계획이 따라붙게 된달까요. 아무래도 책임감 때문인 것 같아요.

 

아이의 성장과 함께 세계관도 확장되었다고 했는데 그걸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현주 아이가 백일 되는 무렵에 자주 산책 다니던 산으로 이사를 했어요. 처음 2년 동안 수익 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랑 매일같이 산책만 했어요. 하루에 두세번씩 나가서 걷다 보니 날씨와 계절이 바뀌는 게 선명하게 보이더라고요. 그 순간에도 아이는 계속해서 자랐고요. 세상과 아이가 변하는 걸 24시간 내내 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세계가 확장되는 기분이었어요. 생각이 휘몰아쳤죠. 산에서 지낸 2년은 일상 속에서 판타지를 만난 시기였어요.

현석 반면에 저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저 빨리 시간이 지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매일 아이를 보는 일에만 매진하다 보니 그림 그리는 시간이 줄어서 어서 어딘가에 갇혀서 그림만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아이와의 시간이 소중하고 신비로웠지만, 만화가 곧 생계니까 그림 그릴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마음이 조급해진 거죠.

두 분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린 건가요?

현주 저는 그림과는 상관없는 일들을 해왔어요. 옷을 전공했거든요. 서울에 올라와서 옷으로 일을 이어가다가 이 일이 저랑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 뒤로 컴퓨터에 관심이 생겨서 쇼핑몰 웹디자인을 하면서 지냈죠. 그런데 이 일도 어느 정도 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구체적으로 뭘 하고 싶은지보다 그냥 ‘내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함만 있었어요. 그 즈음 금속 분야를 전공한 후배랑 주얼리 브랜드를 만들었다가 망하기도 했죠(웃음). 그러고 나서는 뭘 해야 할지 몰라 한참 하고 싶은 걸 찾으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글, 그림, 만화… 좋아하는 건 많은데 이 모든 걸 아우를 만한 걸 찾지 못해서 겉돌면서 계속 글만 썼어요. 그때 남편이 공사장에서 겪은 일들을 소재로 글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거기에 남편이 그림을 그리면서 만화를 100편 정도 만들게 됐어요. 그게 웹툰 〈노하우〉고요. 그때 이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만화 작업을 시작한 거예요.

현석 저는 열아홉 살 때 본격적으로 만화를 시작했어요. 만화 학원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만난 선생님이 화실을 소개해주셔서 성인이 되고도 10년 정도 화실에 다녔죠. 30대 중후반까지 쭉 화실에서 생활해 왔으니, 만화를 본 기간까지 합치면 거의 평생을 만화와 함께한 셈이네요.

 

만화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해요?

현석 반복되는 게 없다는 점이요. 어떤 컷이든 장면이 전환되면서 그림이 계속 바뀌거든요. 그림이 똑같더라도 연출이 다르게 들어가니까 지루하지 않아요. 그래서 더 흠뻑 빠진거고요.

 

지루하지 않게 하려면 그만큼 손도 많이 갈 것 같아요. 만화에 재능이 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현석 재능이요? 그건 지금도 없어요(웃음). 어릴 땐 재미를 좇아 계속 그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반대로 재미를 찾기 위해 그려나가는 것 같아요. 재미를 찾는 데 집중하는 거죠.

시니와 요괴

별세계 이야기

하신이가 주인공인 만화는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현주 특별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에요. 작업실을 만들기 전부터 만화, 물건, 브랜드 뭐든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알맹이가 없다고 느꼈거든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이 있는 하신이에게 영감을 받았어요. 아이 곁에서 지내다보면 표정에서 ‘순수함’이 보일 때가 있어요. 그때 뭔가가 저에게 확 와닿더라고요. 아이에게서만 볼 수 있는 그 순수함이 너무 좋았어요. 그러면서 하신이가 등장하는 작업을 하고싶단 생각이 싹튼 거죠. 저는 한국적인 것이나 요괴가 나오는 만화를 좋아해요. 아이가 나오는 판타지물에도 흥미가 있고요. 그래서 이 모든 걸 버무린 세계에 제 아이가 주인공인 만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목도 《시니의 모험Siny In Wonderland》이죠.

 

특히 영향을 받은 작가나 작품이 있나요?

현주 아이가 나오는 판타지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일본 만화가 이시키 마코토의 《하나다소년사花田少年史》예요. 하신이 또래의 장난꾸러기 소년이 주인공인데 하루는 사고를 당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거든요. 그때 귀신을 보는 특별한 능력을 갖게 돼요. 아이에게 귀신들이 찾아와서 한을 풀어달라고 의뢰하면서 혼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게 줄거리죠. 좋아하는 만화라 여러 번 봤어요. 

현석 이시키 마코토는 우리나라에선 《피아노의 숲》으로 더 유명한 작가예요. 저도 《하나다소년사》는 무척 좋아해요. 그 외에도 《드래곤볼》이나 《닥터 슬럼프》 같은 작품을 보면서 자랐어요. 거의 일본 만화 위주였죠. 저희 취향은 각자 다양했지만, 그 교집합이 판타지였던 것 같아요.

 

아이와 육아 이야기라면 일상툰이 더 쉽지 않을까 싶었는데 장르가 판타지인 이유를 이제 알겠네요(웃음).

현주 처음엔 저희도 일상툰을 그렸어요. 아이와 함께하는 경험이나 기분을 장르에 상관없이 ‘남겨놓고 싶다’는 생각이 컸거든요. 일상툰을 그리면서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게 아니라 한 번씩 다듬는 과정을 거쳤는데요. 아무리 가공해도 독자들은 만화를 현실 자체로 받아들인다는 게 저는 좀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보호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천차만별일 건데 제가 대변하듯 이야기하는 게 맞나 싶었거든요. 더불어 제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어색했고요. 그래서 아이와 함께한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었어요. 자연스럽게 판타지물이 된 거죠. 하신이를 주인공으로 끌고 오긴 했지만 이 세계관 속 아이는 하신이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에요. 그래서 이야기를 만드는 게 훨씬 자유로워요.제가 만든 세계관 속에서 아이 이야기를 마음껏 꾸리고 모험시킬 수 있어서 더 재미있기도 하고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궁금해져요. 《시니의 모험》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현석 연재하는 작품은 아니어서 당장은 볼 수 없어요. 부지런히 작업하면서 출판을 준비 중이거든요.

현주 기본적인 골격은 만화지만 아트북과 함께 만들 계획이에요. 저희는 내년쯤 이사를 계획하고 있는데 작업실에 독립서점을 겸할 생각이에요. 독립서점이긴 하지만 저희가 출판하는 작업물만 판매하는 폐쇄적인 서점이죠(웃음). ‘모프코믹스’라는 출판 브랜드를 만들어서 저희가 작업한 책만 출간하고 판매하는 서점을 만들어 보려고요.

모프코믹스로 본격적인 출판을 시작하는 거군요. 《시니의 모험》 줄거리를 물어봐도 되나요?

현주 주인공 이름은 하신이 이름에서 따온 ‘시니’예요. 이 아이는 엄마랑 어릴 때 헤어진 소년인데 엄마의 정체는 선녀죠(웃음).

현석 《시니의 모험》과 더불어 《괴스트하우스》라는 작업도 진행 중인데, 이 두 작업의 세계관이 맞물려요. 《괴스트하우스》는 제가 그림을 그리고 글은 다른 친구가 작업하고 있는데요. 마니산 산기슭에 있는 ‘괴스트하우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괴스트하우스》의 주인공도 시니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10대 소년으로 등장해요. 삼촌뻘의 인물과 함께 괴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소년이죠. 괴스트하우스는 세계각지의 요괴들이 숙박하고 가는 숙소고요.

현주 저는 엄마를 선녀로 설정한 적이 없지만 《괴스트하우스》의 시니 엄마가 선녀로 설정되어서 제 작품에서도 캐릭터가 그렇게 구성되었어요. 시니의 엄마가 사건에 휘말려서 아이와 떨어지게 되고, 시니가 그런 엄마를 찾아가는 내용인데요. 여행 중간중간 함께 모험할 친구들을 만나면서 여러 이야기가 중첩돼요. 가장 먼저 사귀는 친구인 삽살개는 구미호의 공격을 받아서 엄마랑 형제를 잃은 강아지예요. 그다음으로 만나는 친구는 커다란 메기인데, 큰 풍선에 물을 담아 그 안에 넣고 같이 다니기도 해요. 메기가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기 위해 마땅한 환경을 만날 때까지 함께 하는 거죠. 이 외에도 숲의 정령이라든지, 한국적인 요괴들을 담아서 모모하시니만의 판타지를 만들고 있어요. 작품이 펼쳐지는 배경은 한가운데 숲이 있고 그 주변을 마을이 둘러싼 구성이에요. 윤회 사상처럼 원으로 그려질 수 있는 세계관을 만들어서 원을 따라 모험을 다니며 모두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한국적인 요소에 애정을 갖게 된 이유가 있나요?

현주 보이는 것, 시각적인 데서 매력을 느껴 선택한 것도 있고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적인 것들을 좋아해요. ‘정’이나 ‘한’ 같은 것들이요. 이런 요소가 담겼을 때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깔끔함보다는 여운이 남는다는 것도 좋고요. 시각적인 부분에서도 한국에서 특히 강조하는 ‘여백’을 많이 활용하는데, 여백을 두면 더 아름다워 보이기도 해요.

 

요괴를 작업에 담으려면 공부도 필요할 것 같아요.

현주 그럼요. 《괴스트하우스》를 쓰고 있는 글 작가가 전통요괴를 무척 좋아하고 지식도 많아요. 반면 저흰 그렇지 못해서 시간 날 때마다 열심히 알아보고 있어요. 책도 많이 보고 자료도 열심히 찾고요.

현석 저는 요괴를 그릴 때 한국적인 요소를 어떻게 표현할까에 고민이 많아요. 요괴가 인간이 된 경우는 어렵지 않은데, 인간에서 다시 요괴로 변할 때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인간인 척 지내던 요괴들이 자극을 받거나 약점이 잡히면 본모습으로 변해서 싸우거나 도망가잖아요. 그런 장면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생각하고, 상상하고, 연습하고 있어요. 책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 편이죠.

새롭게 알게 된 흥미로운 요괴도 있나요?

현석 구미호를 좋아해요. 불가사리도 좋아하고요.

 

불가사리요? 바다에 있는 거…?

현석 (크게 웃는다.) 아니요, 아니요. 한국 전설의 요괴 중에 불가사리라는 상상의 동물이 있어요. 절대 죽일 수 없다는 뜻의 ‘불가살不可殺’이라고 하는데 저도 정확히는 잘 몰라요. 나라에 우환이 있을 때 쇠가 많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는데, 불가사리가 나타나서 그 쇠들을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하신이도 요괴에 관심이 많나요?

하신 그슨새!

 

그슨새?

하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 (숨을 쌕쌕 쉬며) 큰 요괴!

 

큰 요괴야?

하신 작은 요괴!

현주 (웃음) 그슨새는 제주에 있는 요괴인데 비가 오면 나타나서 사람을 꾄다고 해요. 꾀어 가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무서운 요괴죠.

현석 하신이에게 어린이 오디오 클립을 자주 들려주는데 〈비밀요원 레너드의 미스터리〉라는 오디오 클립에서 나온 에피소드예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인데, 그슨새가 비 오는 날 시크릿 에이전시 멤버들을 꾀어서 죽게 만들려고 하거든요. 두 멤버가 벨트를 풀어서 나무에 걸고 목을 넣은 채 “조였다, 풀었다, 조였다, 풀었다”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신이가 그 대목을 듣고 꽂혀서는 “조였다, 풀었다, 조였다, 풀었다” 한동안 그러면서 지냈어요(웃음).

 

으스스한걸요? 그슨새 이야기를 하면서도 하신이는 웃고 있네요(웃음).

현주 아주 밝은 성격이에요.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만나는 사람들이 다들 밝아서 예쁘다고들 이야기해요. 자기주장도 강하고 호불호도 확실한 편이어서… 음, 아닌가? 웬만한 덴 무던하기도 해요. 사실 아직은 저도 하신이를 잘 모르겠어요.계속 알아가야 하는 사이죠.

 

하신이 이름 뜻은 어떻게 돼요?

현주 물 하河 자에 걸을 신姺 자를 써요. 물가를 따라 걷는다는 뜻인데, 유연하고 자유롭게 살길 바라서 지은 이름이에요.

 

참 편안한 이름이에요. 하신이가 요즘 가장 흥미로워하는 건 뭐예요?

하신 카봇 만화!

 

(웃음) 그러고 보면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랑 모모하시니의 만화는 느낌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타깃은 성인인가요?

현주 처음엔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나이 제한을 두지 않고 아이들도 다 함께 볼 수 있는 만화를 기준으로 삼고 있어요. 아이들이 보고도 이해할 수 있다면 어른들도 충분히 볼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어렵게 풀지 않으려고요.

 

만화에도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옛날에 유행하던 만화와 지금 인기 있는 만화에도 차이가 있는 것 같고요.

현석 전체적으로 콘텐츠에 변화는 있었지만 하신이는 시대나 장르에 구분을 두지 않고 모든 만화를 다 좋아해요. 대체로 지금 방영되는 만화들을 보지만 옛날 것도 틀어주면 좋아하더라고요. 〈아기공룡 둘리〉나 〈날아라 슈퍼보드〉 같은 거요.

현주 1940년도에 나온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재미있게 봐요. 〈피노키오〉 같은 거.

하신 (노래를 부른다.) 꼭두각시~ 인형~ 피노키오~

현주 계속 영어만 나오는데도 줄거리를 알아서인지 푹 빠져서 보더라고요.

현석 저도 어릴 때 〈디즈니 만화동산〉에서 〈도널드 덕〉 같은 걸 재미있게 봤는데 아직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보면 훌륭한 작품이구나 싶어요. 제가 어릴 땐 〈로보트 태권V〉나 〈메칸더V〉 같은 작품도 열심히 봤죠.

현주 저는 〈영심이〉(웃음).

하신 나 인제 만화 볼래. 〈헬로카봇〉 보여 줘!

현주 이야기 다 하면 쉬는 시간에 보여 줄게. 우선은 이거(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듣고 있자.

 

아까부터 스마트폰에서 계속 이야기가 들리는데 이게 오디오 클립인가요?

현주 네. 옛날엔 직접 책을 읽어 줬다면 요새는 오디오 클립으로 이야기를 24시간 내내 들을 수 있어요. 영상을 계속 보여줄 순 없어서 대신 택하는 방식이죠. 보통 창작 동화가 많아요. 아까 그슨새 이야기 같은(웃음).

현석 저는 아이와 영상을 같이 보고 싶은데 성장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줄이고 있어요.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30분 정도 보여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시간을 정해두고 있죠.

 

영화도 자주 보나요?

현석 아까 말한 디즈니 고전 애니메이션이나 마블 스튜디오영화 같은 건 자주 함께 봐요. 줄거리를 이해할 수 없어서 전부 다 보여 주진 못하고요, 변신 장면 같은 부분을 떼어서 보여 주는 식이죠.

하신 나 이것도 봐. (팝업북을 가지고 온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하신이 해리포터도 알아?

하신 응?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현주 이번에 선물 받은 팝업북이라 아직 줄거리는 잘 몰라요. 그래도 책이 튀어나오고 움직이는 게 재미있는지 자주 들춰보더라고요.

현석 해리포터 시리즈도 가끔 영화로 보여 줘요. 근데 배경이 어두워서 그런지 아직은 좀 무서워해요. 밤하늘에 부엉이가 날아다니고 하니까.

 

아직은 그런 걸 무서워할 나이군요(웃음). 육아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SNS에서 긴 머리 하신이를 봤는데, 그 사진 때문에 솔직히 처음엔 성별이 좀 헷갈렸어요.

현주 남녀 성별에 확실한 생각이 있어서 아이 머리를 기른건 아니었어요. 애초에 육아할 때 성별 같은 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내거든요. 성별뿐만 아니라 이념적인 부분은 의식적으로 생각을 안 하려고 해요. 하신이 머리는 제가 직접 잘라 줘서 더 그런 것 같고요. 옷도 거의 물려받은 거라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맞는 건 다 입히면서 지냈어요. 이젠 아이가 많이 커서 직접 옷을 사 입히지만 여기저기서 물려받을 땐 선택의 여지가 없었거든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남자 옷, 여자 옷 구분 없이 뒤죽박죽 입히게 됐죠.

 

그래서 하신이 캐릭터가 더 돋보이는 것 같아요(웃음). 작업실에서 하신이도 곧잘 그림을 그리고 노나 봐요. 곳곳에 하신이 그림들이 걸려 있네요.

하신 여기 건담도 그렸어. 나는 점토 놀이도 좋아!

현주 만드는 것도, 그림 그리는 것도 아주 좋아해요. 퍼즐도 좋아하고요. 보통 어린아이들은 덩어리가 큰 블록을 가지고 노는데 하신이는 세 살 때부터 레고처럼 작은 블록을 가지고 놀았어요. 디테일이 있는 장난감들을 갖고 노는 걸 보면 손쓰는 걸 확실히 좋아하는 거 같아요.

네가 살던

고향은

모모하시니는 만화 작업과 더불어 인천을 기반으로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죠.

현주 네. 살고 있는 동네 이야기를 담는 ‘프로젝트 미춸’이라는 작업이에요. 남편은 인천에서 오랜 토박이로 살았고 저는… 얼마 안 됐다고 생각했는데 세어 보니 벌써 15년이 넘었네요. 긴 시간 여기서 지냈지만 인천에 큰 관심은 없었어요. 매일 보는 편한 동네 정도였는데, 이 지역 사람들과 뭔가를 해보고 싶다고 마음먹은 건 아이의 출생지가 인천이라는걸 인식하고부터였어요. 저는 어릴 때 나고 자라온 고향을 떠올리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거든요. 따뜻하고 평안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하신이에게도 인천이 그런 이미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저에게는 인천이 머물다 떠날 도시일지 몰라도 하신이에게는 태어난 곳이니까 좋은 기억으로 남으면 좋겠거든요. 그러려면 제가 인천의 사소한 것 하나까지 이해하고 알려주기 위해 노력해야겠죠.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이에요.

현석 저는 인천에 오래 살아서인지 크게 애정이랄 게 없어요. 그렇지만 프로젝트 미춸을 진행하면서 인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한곳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리니까 사람 만날 일이 거의 없거든요. 저희는 프로젝트 미춸을 통해 동네 곳곳을 탐구하고 조사하면서 여러 창작자의 작업을 엮어 지역 신문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는데요. 이런 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제겐 특별하고 색다른 경험이에요.

 

지역 신문이나 시니가 주인공인 작품들은 나중에 하신이가 읽기도 할 텐데, 그런 걸 생각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 같아요.

현석 어? 그 생각을 못 해봤네요(웃음). 일단 만들어야 아이가 볼 수도 있을 테니 열심히 만들어 보려고요.

현주 저는 항상 아이가 커서 볼 걸 생각해요. 《시니의 모험》은 특히나 그래서 좀더 쉽게 이해되고 이야기가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하게 돼요.

 

두 분은 하신이에게 바라는 점이 있나요?

현주 음…. 별다른 건 없지만 딱 하나 생각하는 건 뭐든 스스로 하는, 독립적인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어요. 아이가 빨리 독립해 버리면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할 테지만 나이가 들어서까지 독립을 못 하는 것보다는 일찍 독립하고 스스로 할 일을 찾아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현석 저희가 길을 하나 정해두고 ‘이거 해 봐.’ 하며 끌고 가는 건 피하려고 해요. 저희 집엔 보이는 게 다 그림 그리고, 손으로 만지고, 만드는 것뿐이어서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는 아이로 지내고 있거든요. 레고를 하거나 종이를 오리고 뭔가를 만들면서요. 근데 혹시 아이가 너무 이런 쪽으로만 노출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울 때도 있어요. 어찌 되었든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게 키우고 싶어요. 그래서 저도 그런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려 하고요.

 

따뜻한 마음 덕분에 하신이에겐 어린 시절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앞으로는 또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나요?

현주 머지않게 《시니의 모험》과 《괴스트하우스》를 출간하고 싶은데 목표대로 흘러갈 수 있을까요(웃음)? 사실 육아하면 서 작업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요. 아이가 잠든 후에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고 아이가 깨어 있을 땐 육아와 함께 생계를 위한 외주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척 바쁘죠. 그러면서 개인 작업까지 병행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

현석 그래서 웹툰을 섣불리 시작할 수가 없어요. 한 번 시작하면 마음대로 멈출 수 없어서 심사숙고 중이죠. 웹툰은 철저하게 시간을 들여 준비하고 다시 시작할 예정이에요.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 쉴 틈이 좀 생길 줄 알았는데 다섯 살이 되어도 저희에게 착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이 없네요.

현주 오늘도 어린이집 안 가도 된다며 어찌나 신이 났는지(웃음). 어린이집보다 작업실에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이 더 많으니까 아무래도 여기가 더 좋은가 봐요. 오늘도 아이 에너지에 맞춰 놀아 주다 보면 하루가 다 가고 진이 다 빠질 것 같네요(웃음).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김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