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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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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도구
각 분야에서 고유한 성과를 낸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부른다. 그리고 전문가에게는 저마다의 도구가 있다. 자기만의 도구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들의 도구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다만 평범함을 특별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담겨있었다.
바버의
도구
존John은 바버Barber다. 이발을 한다. 깔끔한 구두를 신고 셔츠를 팔뚝까지 걷은 다음 포마드를 머리에 발라 단정하게 넘긴다. 수염을 가지런히 손질하고 이발 도구를 일렬로 늘어놓은 것 역시 손님을 맞기 전 중요한 준비과정 중 하나다. 한 사람의 손님을 맞기까지 그가 하는 일들은 일종의 의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건 바버숍이 단지 머리를 자르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경험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바버숍이란 프랑스 최초의 이발사 장 바버Jean Barbers의 전통을 계승하는 남성 전용 이발소다. 포마드를 발라 한쪽으로 가지런히 넘기는 리젠트 스타일 헤어를 전문으로 한다. 거기에 전통 습식 면도와 눈썹 손질 등 일반 헤어숍과는 조금 다른 서비스를 제공한다. 남미식, 유럽식, 미국식 등 다양한 콘셉트가 있지만 존이 바버로 일하는 밤므Bombmme는 영국식을 표방한다. 정장을 고집하고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로 멋을 낸 공간에서는 격식을 중시하는 신사의 품격이 느껴진다.
존이 사용하는 도구는 여느 헤어숍과는 다르다. 바버 전용 가위는 기본이고 내·외국인 모발에 모두 사용 가능한 바리깡, 면도를 위한 크림과 면도기가 대표적이다. 특히 면도기는 법적으로 일반 헤어숍에서는 사용이 금지되는 도구다. 그게 바버숍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다. 한국에 바버숍이 유행한 건 채 5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존의 말투나 표정, 행동 하나하나가 바버 문화를 대표하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Manners maketh man!’ 존은 바버의 매너가 손님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걸 아는 사람이다.
요리사의
도구
안효주는 셰프다. 초밥을 쥔다. 잘 지은 밥을 조미하고, 먹기 좋은 크기로 생선을 썰고,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한 다음, 익숙한 손놀림으로 한입 크기의 초밥을 완성한다. 초밥을 하나 만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채 5초도 걸리지 않지만, 그에게 5초는 곧 38년 동안의 진심이다. 1978년 어느 날, 그 시절의 청춘들이 그랬듯 그는 자신의 젊음을 믿고 무작정 상경했다. 세계를 평정하는 권투선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배고픔 앞에서 단단하게 쥔 주먹을 펴야 했고, 선배의 소개로 들어간 일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밥을 벌었다. 하루에도 몇 백 개의 초밥을 만들며 힘들고 지루한 기분이 들 때마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묵묵함이 곧 스승의 가르침이었다. 언젠가는 일본에서 한 만화가가 찾아와 그에게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초밥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초밥은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한국 편에 실렸다. 하지만 그는 유명세나 기술을 뽐내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고 최고의 기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겸손은 다르다. 그것은 결코 저절로 찾아오는 법이 없다. 도구에 대해 묻자 그는 사시미 칼도, 최고급 식재료도 아닌, 마음 그 자체를 이야기한다. 화가 난 사람의 손끝에서는 독이 나오고 그것이 음식을 상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요리사 안효주의 도구는 평온한 마음이 담긴 손끝이다.
수리기사의
도구
윤이식은 수리기사다. 카메라를 고친다. 그가 물려받은 ‘제일카메라수리’는 원래 예지동 시계 골목의 터줏대감이었는데, 6년 전 새로 지은 세운스퀘어로 장소를 옮겼다. 회사에서 회계 일을 하며 장부와 씨름을 하던 그가 카메라 수리기사를 하게 된 건 25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수천 개의 카메라를 손봤지만 여전히 수리는 고독한 실험의 연속이다. 다양한 매뉴얼들이 머릿속에 있지만 새로운 증상이 계속 나타난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몇 시간 동안 몸을 웅크린 채 해결책을 찾다 보면 온몸이 아프다. 특히 등이 자주 뭉치는데, 그건 아이들이 잘근잘근 밟아줘야 사라지는 통증이다.
다른 사람이 고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맥가이버가 된 듯한 기분이랄까. 카메라 회사들이 더 이상 필름 카메라를 생산하지 않고, 아날로그 제품들은 중고 사이트 정도에서나 찾을 수 있는 요즘 같은 때에는 카메라 수리점 역시 귀한 공간이다. 그래도 전에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는데, 이제는 손에 꼽을 정도가 됐다. 그러다 보니 홈을 맞춰서 돌리는 도구, 틈에 끼워서 빼는 도구, 작은 핀셋이나 드라이버 같은 것 역시 직접 하나하나 만들어서 사용해야 한다. 아날로그 수리기사의 도구는 그렇게 외롭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도구가 마누라보다 소중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여기서 적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예술가의
도구
디황D-Hwang은 작가다. 그림을 그린다. 쇠를 녹여 기괴한 모양의 오토바이를 만들고 가끔 담배도 피운다. 그는 정부에 저항하는 글을 써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건 암묵적인 사실이다. 미술작가라는 통상적인 호칭이 있지만 차라리 구도자라는 관념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는 검은색 물감으로 캔버스를 채운다. 그에게 검정은 죽음이자 안식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잠을 자듯 한없이 무겁고 낮은 감정이 그의 표정 안에 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그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으면 한다. 좋거나 나쁘거나 예쁘거나 멋있는, 어떠한 감정의 파고도 틈입할 수 없는 가장 순수한 상태의 감상을 원한다. 마치 베토벤의 교향곡을 처음 들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의 도구는 붓과 물감이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칠할 수만 있다면 그게 너구리털이든 개털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한편 그의 작품 중 ‘지구가 꺼질 때의 좌선’ 시리즈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곧 수행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작품 안에서 붓으로 하나의 선을 그려 내리는 동안 그는 명상의 상태로 빠져든다. 도구와 그림이 서로에게 전도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디황에게 도구는 몸속의 에너지가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통로이자 비상구다. 몸이 가진 내력 그 자체다.
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