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Me Your Desk

당신의 책상 위를 채운 것들

책상에 앉아 할 일을 미뤄두고 지난날의 일기와 편지를 꺼내 본다. 남들이 보면 쓸모없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지만 나는 이런 때를 위해 종종 책상 앞에 앉는다. 나에게 책상은 어떤 곳일까. 당신에게 책상은 어떤 곳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멈춘 시간 속에서

오데옹 상점 주인장 정세희

좋아하는 문구 | 연필과 종이를 좋아해요.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모아왔죠. 특유의 거친 표면의 종이 위에 연필이 닿을 때, 그 질감이 드러나는 것이 좋아요. 상점에서도 조각난 종이에 연필로 손글씨를 써서 영수증을 만들어 드리고 있고요. 오데옹에서만 확인받을 수 있는 하나뿐인 영수증이죠.

 

책상의 자리 | 책상은 꼭 해가 드는 곳에 두고 싶었어요. 단지 밝고 어두운 것을 떠나, 바람이 불어 그 빛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살아 있는 느낌을 받는 것이 좋아요. 해가 드는 시간도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데, 그런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작은 행복이죠.

 

주위를 둘러보면 | 책상 주변에 사진 두는 걸 좋아해요.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사진을 보면서 우연히 얻는 것들이 많아요. 크고 거창한 이유는 아니지만 사진 속에서 지난날들을 발견하며 새로운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때가 있죠. 작업을 하거나 영감을 얻기 위해 일부러 하는 일은 아니에요. 아주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소중한 순간이죠. 

 

그곳에 묻어난 성격 | 책상 위에 물건이 마구 흩어져 있는 것 같아 보여요. 하지만 그 안에 저만이 알고 있는 규칙이 있어요. 그냥 막 놓인 건 아니에요(웃음). 무질서함 속에서 질서가 있는 거죠. 평소에 저는 남들에게 산만한 성격으로 비칠 수 있지만 스스로 취향이나 가치관은 확고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책상을 보면서 잊고 있던 저의 일부분과 마주하는 것 같아요.

“책상 앞에 앉아 종이 위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그림을 그려요. 그러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요. 잊혔지만 잊히지 않고,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나게 하는 순간이 좋아요.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책상 앞에서, 아끼는 연필을 들고 가만히 멈춰 있을 때 생겨나죠.”

모든 색을 흡수하는 단 하나의 색

키티버니포니 대표 김진진

자주 꺼내는 물건 | 노트를 좋아해요. 스케줄러부터 디자인을 기록하는 연습장까지, 일할 때는 여러 종류의 노트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양하게 관심 갖고 있어요. 예전에는 몰스킨 다이어리를 자주 사용했는데 작년부터는 호보니치 플래너를 쓰고 있어요. 적당한 크기와 종이 두께로 자유롭게 활용하기 아주 좋아요. 그 외로도, 키티버니포니에서 제작한 노트는 물론이고 해외 여행을 갈 때마다 문구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것들을 하나씩 들여와서 쓰고 있어요.

 

책상을 채우는 과정 | 제 책상 위에는 물건이 많이 없어요. 무언가 흩어져 있으면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서 늘 비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죠. 잘 섞기는 종이들은 꺼내기 쉬운 보관함에 정리하고, 썼던 펜이나 도구들은 제자리에 두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요.

 

그곳에 스며든 색감 | 검정색을 좋아해요. 모든 색을 흡수하는 단 하나의 색이죠. 그만큼 가장 무난하고 편안하지만 동시에 가장 특별한 색이기도 해요. 책상 위에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 검은색으로 맞추려 했어요. 물건이 많아도 이렇게 색을 단조롭게 구성하면 차분해 보이니까요.

 

책상에 묻어난 성격 | 평소에 정리정돈을 좋아하는데 책상에도 제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클립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습관 때문이에요. 스테이플러가 환경 오염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클립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각종 서류나 영수증을 모을 때, 꽂아서 정리하고 북마크 용도로도 활용하고 있죠. 아주 작은 물건이지만 일상 속에서 제법 유용한 도구로 쓰고 있어요.

“매일 밥 먹는 것처럼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 문구용품이에요. 좋아하는 모양, 사용하기 편한 디자인으로 골라 쓰면서 제 습관이 그 물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가만히 일을 하다가도 자주 쓰던 물건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흔적을 찾으면서 소소한 재미를 느끼기도 하죠.”

마음이 가는 곳으로

그림 작가 이슬로

자주 꺼내는 물건 | 다양한 소재에 실험하듯 그리는 걸 좋아해서 종이 말고도 많은 재료를 사용하고 있어요. 천이나 간단한 소품, 나무, 아크릴 등을 꺼내 쓰죠. 문구용품 중에서는 일상에서 하는 행동을 보조해줄 것들을 사용하고 있어요. 메모할 때 필요한 연필이나 수첩, 그림을 도와주는 도구로는 팔레트, 물통, 이젤, 화판 등 생각해보니 정말 많은 것들을 자주 꺼내 쓰고 있었네요.

 

책상을 채우는 과정 | 어릴 때부터 저만의 공간을 꾸미는 일을 즐겼어요.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꺼내 늘어놓고 고민하는 게 일상이었죠. 하지만 정리정돈에 익숙하지 않은 성격이라 늘 애를 먹었어요. 요즘은 손에 잘 닿도록 눈앞에 있어야 하는 것들만 꺼내어 정리하고 있어요. 나머지는 깔끔하게 숨겨두려 노력 중이지만 역시 어렵네요(웃음).

 

책상 앞에서 보내는 시간 | 그림을 그리면서 라디오를 듣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요. 보통 이 세 가지 일을 돌아가면서 반복하고 있어요. 작업하는 시간도 많지만 라디오는 거의 매 시간 틀어두고 있어요. 창작에 대한 영감을 굳이 다른 곳에서 캐내려 하지 않아도 간접적인 경험과 상상에 대한 기회를 라디오를 통해 자연스럽게 얻고 있어요.

 

문구의 역할 | 문구는 사람의 일상이 더 일상적일 수 있도록 조용히 제구실을 다하는 것 같아요. 주인공은 아니지만 절대 없어선 안 될 단역이랄까. 처음 인터뷰를 하게 되었을 때 저에게 특별히 가지고 있는 문구용품이 없어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찾아보니 거의 매일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 많더라고요. 그곳에 있었는지도 모르게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문구용품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늘 제 마음의 방향을 따라가고 있어요. 스스로 끌리는 곳으로 움직이는 게 진짜라고 생각하죠. 그림 그릴 때도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붓을 움직여요. 물감이 잘못 흘러서 책상에 묻기도 하는데 놀라서 닦아내거나 고치지는 않아요. 하고 싶은 대로 했으니 그걸로 됐다는 생각이죠. 이렇게 남겨진, 오랜 작업의 흔적이 묻어난 책상 위를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자라나는 아이들의 공간

살림 가게 숙희 신동숙 대표의 두 자매 

책상 앞에서 보내는 시간 |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책상은 숙제를 하거나 공부를 하는 곳이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만들며 정신없이 어지르는 공간이기도 하죠. 책상 앞에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것들을 마음껏 표현하면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그곳의 공기 | 원래 이 공간은 부엌이었어요. 아이들이 책상 위에서 하는 일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따로 공간을 만들었죠. 가구도 손수 제작했고요. 디자인적으로 기준을 정하고 꾸리지는 않았지만 직접 틀을 짜고 정성 들여 채워갔어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맴도는, 기분 좋은 공간이 되었죠.

 

두고 싶은 물건 | 아이들은 다양한 방면으로 호기심이 많아요. 함께 대형 서점이나 동네 문구점, 화방을 자주 가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필통이나 파우치, 볼펜이나 색연필 등을 자주 구매하죠. 크면 클수록 아이들의 문구 세계는 넓어질 것 같아요. 저도 어릴 때 공부로 받은 스트레스를 문구로 풀었으니, 아이들에게도 좋은 돌파구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책상에 생긴 변화 | 점점 자라면서 스스로 치우고 정리하는 습관이 들었어요. 자잘하게 모으던 것들은 없애고 꼭 필요한 물건들만 꺼내놓고 있죠. 책상에 변화가 생긴 부분을 발견하면서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지금은 두 아이의 책상이 붙어 있지만 이제는 독립적인 공간으로 나눠주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있어요. 각자의 개성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새로운 연필, 지우개, 필통 같은 문구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뭐든 즐겁게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죠. 반대로 어른인 저에게 문구는 추억의 향수로 남아 있어요.”

오랜 시간을 품은

오데옹 상점 주인장 정세희

 

01 우표 보관함

100년 정도 된 우표 보관함이에요. 그 당시에는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으니 집집마다 흔히 있던 물건이었겠죠. 평소에 엽서나 편지, 우표 모으는 걸 좋아해서 아끼는 물건 중 하나예요.

02 잉크 보관함

말 그대로 잉크를 보관하는 도구예요. 이것도 100년 정도 된 물건이죠. 펜에 잉크를 묻혀서 쓰는 게 일상이던 그때 유용하게 쓰였을 것 같아요.

03 손으로 만든 필통

문구류를 너무 좋아해서 한때는 핸드메이드 문구 브랜드를 열어볼 생각도 했어요. 이 나무 필통도 제가 직접 만들었죠.

매일, 돌아오는 패턴처럼

키티버니포니 대표 김진진

 

01 델레나, 알코, 제니스 클립

제조사마다 디자인의 개성이 다르고 나라마다 사용하는 클립 모양이 다양해요. 그날의 기분에 따라, 종이 무게에 따라, 알맞은 모양의 클립을 선택해서 사용하면 좋겠죠.

02 밀란 계산기

계산기를 사용할 때가 많아 책상에 꺼내 놓고 쓰고 있어요. 자주 보이는 물건이니 디자인이 중요하기도 해요.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밀란의 계산기는 아날로그 키보드 같은 특이한 모양이에요. 버튼을 누르는 재미가 있죠.

03 키티버니포니 줄자

회사 디자이너들이 줄자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우리만의 줄자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제작했어요. 독일산 줄자에 가죽 커버링으로 오래 사용할수록 세월이 가진 멋이 드러나는 물건이에요.

그림처럼 맑은 물건들

그림 작가 이슬로


01 카펠레토 나무 팔레트

팔레트를 자주 쓰는데 아크릴, 종이, 비닐 랩 등 여러 소재를 사용해보다가 결국 나무 팔레트에 정착했어요. 이 팔레트는 사용 후 마른 물감이 쉽게 벗겨져 거의 영구적으로 쓸 수 있어요.

02 튤립 섬유용 물감

오래전부터 자주 쓰는 물감 중 하나인데, 점점 국내 화방에서 사라지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입구가 막혀버려서 부지런한 작업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기도 하죠.

03 러시아 지우개

올해 초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어요. 열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쓰려고 러시아의 화방을 둘러보는데 귀여운 지우개가 많아서 친구들에게 선물하려고 구매했어요.

어른과 아이의 도구

살림 가게 숙희 대표 신동숙

 

01 크레욜라 크레파스

크레욜라는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라면 잘 아실 거예요. 부드럽게 그려지면서 무독성이기 때문에 아주 어린아이들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어요.

02 데일리라이크 마스킹 테이프

다양한 패턴의 마스킹 테이프를 좋아해요. 그림을 자주 그려서 벽에 붙일 때 사용하고 있어요. 사실 직접 사용하는 것보다는 모으는 데 의미를 두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웃음).

03 투마이베이비 연습장

숙희를 열기 전, 투마이베이비를 운영할 때 직접 제작한 노트예요. 너무 얇지 않은 종이로 만들어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어른이 편하게 사용하기 좋은 노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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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