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OUND
WEE
SERIES
PROJECT
NEWSLETTER
SHOP
발견담
천국을 안 믿어서 천국이 사라졌나
뮤지션 김사월
그녀와 나눈 대화엔 공백이 가득했다. 긴 침묵과 오래 곱씹는 생각 사이사이 숱한 감정이 모였다 흩어지고 뭉치고 사라졌을 테다. 이 긴긴 침묵에서 뾰족한 답이 나왔느냐 하면, ‘아니’다. 우린 내내 “모르겠네요.”라거나 “그러게요. 어렵네요.” 같은 모호한 문장만 반복했다. 당연하다. 사랑은 그런 거니까. 모르겠는 기분으로 대화하던 시간이 전혀 위태롭지 않았다. 그걸로 충분하다.
3집 준비 중이라고 들었어요. 한창 바쁘시죠?
올가을에 정규 3집이 발매될 예정이라 잔뜩 긴장하고 있어요.작년 말부터 작업했는데 발매를 앞두고 돌아보니 어딘가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응? 죄송이요?
작업할 당시에는 세상이 이렇게까지 침체되어 있지 않았어요.그래서 그땐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제 안에 있는 우울하고 침침한 감정을 꺼내 작업했거든요. 근데 발매를 앞두고 현실이 점점 막막해져서 이런 어두운 앨범을 내는 데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일말의 책임감도 생기고 걱정이 앞서기도 하고, 좀 복합적인 마음이에요. 3집 앨범 제목은 [헤븐]인데요. 이 세상이 천국이 아니어서 제목을 이렇게 짓게 됐어요.
앨범을 만드는 데 “완벽보다는 자유를 추구한다.”고 말한 적이 있죠. 이번 작업은 자유로운 작업이었나요?
예전에 했던 인터뷰를 다시 보면 내가 이런 말을 했나, 이렇게 시니컬 했나, 싶을 때가 많아요(웃음). 과거의 저에게 “도대체 자유가 뭔데?” 하고 묻고 싶은 심정이네요. 지금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다시 이야기해보자면, 제가 추구하는 건 자유보다도 ‘스스로 생각했을 때 후회 없고 싶다.’는 감정인 것 같아요. 최고가 되고 싶다, 완벽해지고 싶다는 욕망보다… 후회를 좀 덜하고 싶어요. 아마 그런 마음을 그땐 자유라고 이야기한 것 같고요. 당연히 자유롭거나 후회 없이 지내진 못했어요. 그래도 최선은 다하려고 한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면 후회도 덜하지 않아요?
아니요. ‘이게 내 최선인가?’ 싶어서 또 후회가 돼요. 그래도 나이를 먹다 보니 욕심을 좀 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전보다는 후회가 많이 줄었어요. 예전에는 앨범을 낼 때 패기로 똘똘 뭉쳐 있었거든요. 지금은 너무 욕심을 부리면 사람이 우울해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알아도 욕심은 자꾸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 사월 씨의 욕심은 뭐예요?
(한참 정적이 흐른다.) 몸과 마음의 건강? 3집을 무사히 발매하고 나면, 예전처럼 활발한 공연은 어렵겠지만 작은 공연에서라도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관객들이 ‘김사월은 건강히 지내고 있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요.
오늘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사월 씨는 “외롭고 슬퍼서 음악을 시작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죠. 외로움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해 줄래요?
(크게 웃는다.) 저 정말 감당하지 못할 말을 많이 쏟아냈네요. 그때는 분명히 진심이었는데, 세상이 워낙 빠르게 바뀌다 보니 생각도 자꾸 변하는 것 같아요. 음… 맞아요. 외롭고 슬퍼서 음악을 만들었어요. 그런데요, 예전엔 ‘난 그러고 싶지 않은데 왜 이렇게 외롭지? 왜 자꾸 슬프지? 나아지고 싶어.’라는 마음이었다면, 요즘은 사람이라면 태어난 그 순간부터 외로워진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외롭고 슬프다는 생각에 너무 빠져 살고 싶진 않지만…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도 있다는 걸 경험하고 나니 슬픔에 대한 감각이 노래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건 맞는 거 같아요.
사람들은 슬프거나 우울할 때 일기를 많이 쓴대요. 사월 씨도 그런가요? 음악도 일기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언젠가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사람은 기쁨과 슬픔을 똑같이 겪어도 슬프거나 괴로운 상태가 훨씬 길게 느껴진대요.같은 양이어도 기쁨보단 슬픔의 시간 축이 훨씬 긴 거죠. 생각해 보면 행복한 건 쉽게 잊어버리게 되고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에요. 반대로 슬픈 건 아주 오래 가요. 행복한 순간을 믿으며 살아야 하는데 저는 슬픔의 시간 축에 영향을 많이 받고 사는 사람 같아요.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도 있지만 그 시간이 정말 길잖아요.
그래서 슬픔이 우리에게서 사라지지 않고 늘 붙어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누구나 잘 지내고 싶어 해요. 태어난 이상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나쁜 감정을 떨칠 돌파구를 찾으며 살아가죠. 하지만 세상은 참 야속해요. 슬픔이나 괴로움은 떨치고 싶어도 쉽게 떨쳐지지 않잖아요. 저는 어떻게든 떨칠 방도를 찾다가 결국에는 음악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해요.
그 말을 듣고보니 행복의 시간 축을 늘리고 싶어서 사랑을 찾는 것 같기도 하네요. 사월 씨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요?
어…. 정말 모르겠어요. 이 세상에 사랑은 계속 있었고, 있고, 있을 거고, 우리는 계속 사랑하고 있어요. 근데 요즘은 연인을 만들고,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는 게 꼭 필요한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책 《사랑하는 미움들》에 “꾸미지 않는 힘을 믿고 싶다.”고 썼죠. 꾸미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옛날 사진을 보면 ‘이때 참 예쁘고 좋아 보이는데 나는 왜 나를 싫어했을까?’ 싶어요. 저는 오랫동안 긴 머리였는데요. 머리를 자른 뒤에 사람들이 이유를 많이 묻더라고요. 긴 머리가 여성성을 강조하는 일종의 ‘코르셋’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제 긴 머리가 여자들이 세상을 사는 데 조금은, 진짜 조금은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잘랐고요. 그런데 머리를 자르고 나서 ‘난 이제 해방됐어!’ 하는 느낌이 들었느냐고 하면, 아니요. 안 그랬어요. 오히려 다른 고민이 꼬리를 물었어요. 제 생각은 계속 달라지고 있는데요. 지금하고 있는 생각은 ‘어떤 모습이건 누구나 차별 받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옛날엔 나의 어떤 점을 싫어했어요?
자기만족이 부족했어요. 지금보다 훌륭해야 하고, 지금보다 멋져야 하고…. 기준도 없이 계속 더 높은 곳만 바라보며 지냈어요. 생각해보면 ‘남들이 보는 나’에 기준을 두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거 같아요.
책에 “쓸모 있는 것이 되려면 욕망 받아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사람들은 제가 생각하는 것만큼 저한테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거든요. 기준을 ‘나’에 두고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는걸 하고, 겉모습에 상관없이 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걸 했다면 그런 생각을 덜 했을지도 몰라요. 남한테 너무 잘 보이고싶어 했던 것 같… 음, 잠깐만요. 정리가 잘 안 돼서요.
천천히 생각해도 돼요. 쉬운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아요.
….
질문을 좀 바꿔볼까요?
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건 어려운 일 같아요. 사실 저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저도 그래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좀더 알게 된 것 같아요.
어떻게요?
강연 같은 데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 그런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예전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저는 이것도, 저것도 부족해 보이는데 이 부족함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인지…. 지금도 어렵게 느껴지지만 조금이나마 알게 된 건,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좀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요. 나만의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나를 굳이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비교가 없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못나 보일 것도, 미울 것도 없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요, 아직도 잠들기 전에 제가 초라해지는 기분을 느낄 때가 종종 있거든요.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해요. ‘내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는데 꼭 나를 이렇게 미워해야 하나?’ 누구나 살아만 있다면 행복을 찾을 수 있어요. 저는 행복하기 위해서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남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죠.
세상은 ‘남을 사랑하려면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이 말이 진실이라면 사랑할 자격을 갖추는 건 너무 어려운 일 같아요.
사실 저는 혼자 서 있는 것도 잘 못 하겠는데 어떻게 남하고 같이 서 있는 게 가능하지 싶어요. 그렇지만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떻든 사랑은 할 수 있다고 봐요. 사랑하면서 방법을 찾고 배우는 거 아닌가, 꼭 완벽하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을 시작할 수 있나 싶고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자신을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하면 좋겠고, 그렇게 배워가면 더 좋겠다는 마음인 거죠.
그럼 결혼은 어떻게 생각해요?
세상이 정해놓은 이상적인 결혼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저는 잘 못 할 거 같아요. 사실 가끔은 두렵기도 해요. ‘언제까지 이렇게 혼자 살 수 있을까? 누군가와 사랑해야 하는 건 아닐까?’그런 생각도 들고요. 그렇지만 혼자서 잘 지내는 것만 해도 제겐 좀 버거워서 지금은 결혼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고 지내요.
사실 비혼이거나 결혼을 앞둔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을 어떻게 생각해요?’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을 것 같아요.
사회적인 결혼도 그렇고, 제가 생각하는 결혼도 그렇고 의미가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에도 결혼한 친구들이 있는데 개중에는 인생을 함께 꾸리는 하나의 팀처럼 보이는 부부들이 있어요. 그들을 보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 팀워크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결혼할 사람을 찾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부부를 보면 참 좋은데 어쩐지 먼 나라 얘기 같죠.
그렇죠? 결혼해서 건강하게 지내는 부부를 보는 건 좋지만, 저는 아직 ‘누군가의 무엇’이 될 자신이 없어요. 구체적인 대상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고요. 지금 저는 자기 자신이라는 역할을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빡빡해요. 하루하루 열심히 지내야만 하죠. 여기서 더 많은 역할이 생기면 불안해질 것 같아요. 그러지 않기 위해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럼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은 어떤 거예요?
‘개인으로서의 나’요. 조금만 욕심 내보자면 ‘음악가로서의 나’요. 사실은 제일 잘하고 싶은 자아죠.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들은 자기소개를 하면 어느 정도 정리될 것 같아요. 김사월을 소개해 줄래요?
《사랑하는 미움들》을 낼 때 작가 소개를 써야 했는데 그게 좀 어려웠어요. 뮤지션으로서 저를 소개할 땐 앨범 이름이나 경력 같은 걸 쓰거든요. 근데 이건 책이니까 그냥 개인으로서의 저를 소개해보고 싶었어요. “메모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커피와 술을 마시고, 늦게까지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썼는데,막상 쓰고 나니 별 거 없지만 마음에 들었어요.
뮤지션으로서의 자아와 작가로서의 자아에 경계를 두고 있군요.
담당 편집자가 책을 쓰자고 제안할 때 이런 말을 했어요. “요즘은 가수도 연기하고 배우도 노래를 부르잖아요. 경계가 허물어 지는 시대인데 가수로 책을 내보는 게 어때요?” 하고요.그 말을 듣고 나니 완벽하게 쓰지 못해도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가라는 자아가 생겼다기보다는 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가벼운 마음이어서 후회도 좀 덜했나요?
아니요(웃음). 지금 보면 좀 쑥쓰러워요. 독자들이 좋게 봐줄때마다 고맙고 민망하고 기분도 좋고…. 《사랑하는 미움들》은 음악 하는 제가 있기 때문에 읽힐 수 있는 글 같아요. 제 음악을 아는 분들, 혹은 좋아하는 분들이 읽는다면 더욱 공감해 줄 것 같은 이야기예요. 그걸로 저는 충분하고요.
다음 책을 생각해 본 적도 있어요?
이 책이 나오고 나서 원고 청탁을 몇 번 받았어요. 감사한 일이죠. 그래서 요즘도 가끔 글을 쓰는데요. 반년 정도 이런저런 글을 쓰다 보니 이제야 글 쓰는 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 다음이 있다면 이젠 제 문장으로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전해보고 싶어요. 말하고 보니 제 패턴 같기도 하네요. 있는 걸 쥐어짜서 1집을 내고 나니 다음엔 밝게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책도 똑같아요. 만약에 다음이 있다면 좀더 밝고 건강한 에너지를 담고 싶은 마음이에요.
오지은 씨가 추천사에서 “김사월, 이 모순적이고도 솔직한 아가씨야.”라고 적었잖아요. 읽으면서 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이토록 솔직할 수 있던 비결이 뭐예요?
제가 묻고 싶어요. 어떤 부분이 솔직해 보여요(웃음)?
데이팅 앱으로 사람을 만난 이야기나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과 만난 이야기…?
저는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이 그 부분을 솔직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저만 지저분하게 사는 건가 싶어요(웃음).
기록해서 보여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책에 좀 세속적인 부분이 있죠. 질퍽질퍽하게 연애 상대를 찾아 다닌다거나 그러다 실패한 이야기라거나…. 이제 그런 기록은 안 하거나 덜하고 싶어요. 3집이 나오기 전이라 그런지 지금 저는 좀 차분하고 다운되어 있는데요(웃음). 사실 엄청 긴장한 상태라 마음을 많이 누르고 있거든요. 지금은 세상에 그렇게 좋을 것도, 싫을 것도,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는 상태예요. 이런 상황이라 솔직하다는 말에 더 공감을 못 하는 것같기도 해요. 모든 게 무미건조해 보여서.
최근엔 결혼도 많이 변한 거 같아요. 식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만 하거나 셀프웨딩을 하거나 동성 결혼식을 하기도 하죠.
저는 사람들이 결혼을 좀더 많이 하면 좋겠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결혼하는 걸 보고 싶어서요. 전 안할 거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다니, 좀 무책임하죠? 하지만 저는 어떤 형태로든 가족이 많아지기를 바라요. 누구나 원하는 방식으로 결혼하고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게 세상을 밝힐 힘이라고 믿거든요.
결혼을 안 할 거라고 계속 강조하는데, 사월 씨는 비혼주의자인가요?
‘꼭 비혼으로 살겠다.’ 그런 건 아니고요(웃음). 그저 결혼에 대해 생각을 안 할 뿐이죠.
결혼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가족을 만드는 방식이잖아요. 먼 미래에 혼자일지도 모를 거란 두려움은 없어요?
두렵죠. 그래서 미래를 위해 돈을 모아 보려고요(웃음). 저는 요즘 비혼 여성의 책이나 SNS에서 많은 위로를 받아요. 최근엔 김하나·황선우 저자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으면서 좋은 에너지를 얻었는데, 성공한 40대 싱글 여성 두 분이 함께 사는 삶을 엿보며 마음이 웅장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구나 싶어졌고요.
두 분 다 너무 멋있죠. 하지만 그런 맘과 동시에 ‘내가 이만큼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성공한 상태로 혼자 늙어간다면 정말 좋을 거예요. 물론 어려운 일이겠죠. 가끔 ‘삶이 정말 얼마 안 남았을 땐 결혼해 보고싶다.’는 상상도 하는데요. 70살 정도에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해보고 싶을 것 같아요.
불행을 각오하게 만드는 사람이겠네요. 어떤 사람일까요?
말장난 같지만, 여생을 같이 보낼 수 있는 사람이요. 70살이면 생이 얼마 안 남았을 때니까 찾을 가능성이 더 커지지 않을까요?
함께할 시간이 얼마 없으면 아쉽지 않겠어요?
사랑에 있어서는 욕심부리지 않고 싶어요. 대신 행복할 수도 없겠죠. 결혼에도 욕심부리지 않는다면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음…. 그런데 누군가는 희로애락이 있어서 아름다운 게 결혼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저는 그걸 다 차단하고 안전한 걸 택하자는 건데, 말하고 보니 자기반성이 들기도 하네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잖아요. 아마 결혼에 로망이 클수록 불행을 느낄 확률이 높아지겠죠.
그렇죠? 근데 그런 모험을 하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랑은 엄청난 거네요…. 지금 사월 씨에겐 연인과의 사랑보다 더 중요한 사랑이 있을 것 같은데 어때요?
좀 낯부끄러운 말인데, 지금 제게 사랑은 음악이에요.
일을 사랑하는 거 너무 건강한 거 아닌가요(웃음).
최근에는 앨범을 준비하느라 작업도 많이 하고 주로 집에 있으니까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저를 표현하고싶고, 제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고, 제가 죽으면 뭐라도 남기를 바랐거든요. 많은 사람이 그걸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제 이야기만 하려고 했는데도 제 음악에 위로를 받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적은 수의 사람이더라도 누군가 제 이야기에 위안받는다는 게 놀랍고 감사했어요.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음악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음악이 제겐 곧 사랑이에요(웃음).
다음 책 이야기를 할 때도 그렇고, 요즘 누군가에게 사랑이나 좋은 에너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어느 날 유튜브에 올라온 제 공연 영상을 보다가 이런 댓글을 봤어요. “그냥 힘들어서 왔어요.” 잘 듣고 있다는 말, 노래가 좋다는 말 전부 고맙지만 힘들 때 제 음악이 도움 된다는 말을 보면 유난히 마음이 가요. 누군가에게 위안 같은 걸 전한건가 싶어서 저도 힘이 나고요.
사월 씨의 책이나 노래를 접하면서 사랑에 회의적이란 인상을 받았어요. 사냥이나 욕망 같은 단어 때문에 실패한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느낌도 있고요.
그런 가사를 쓴 적도 있죠. “믿지 않았지 언제나 사랑에 실패했으니까” 연애를 많이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닌데,다양한 사람과 만나보고 싶은 욕구는 늘 있었어요. 그런 욕구때문에 성숙하지 못한 관계를 경험했던 것 같고요. 그럴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슬퍼졌어요. 저에게도 사랑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온전한 사랑으로 누군가와 평생 이어진다면 좋을 텐데.’ 하는 환상 같은 것도 있었고요.
언제 사랑에 실패했다고 느꼈어요?
제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한 사람을 진정으로 다 사랑하지 못한거 같을 때요. 단순히 이별만이 실패는 아닐 거예요. 그렇다면 만나는 게 성공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누군가를 완전하게 사랑하는 것에 실패했을 때 마음이 많이 아프더라고요.
사랑에 실패했다는 건 사랑했다는 뜻이기도 하겠네요. 어떨 때 사랑에 빠지곤 해요?
저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인데 외로움을 핸들링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무조건 그런 건 아니지만 ‘기대고 싶은 사람이 필요한데 주변에 다정한 누군가 있을 때’ 사랑에 빠졌던 것 같아요. 제가 외로움을 좀더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사랑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다정한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면 외로움이 좀 사라지나요?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사랑이 외로움을 없애주는 건 아니네요?
네.
사랑의 반대말이 외로움은 아닌가 봐요.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에요.
아….
그래서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연애하면 안 되는 거 같아요. 제가 기대고 싶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연애하면 안 됐던 거예요.그래서 너무 많은 연애에 실패한 거죠.
지나간 연애들이 떠올라서 갑자기 슬퍼지네요. 슬픈 얘기를 좀 더 해볼까요? 책에 “당신을 좋아했던 이유가 전혀 생각이 안나요.”라는 말을 들었다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크게 웃는다.) 그런 걸 쓰다니 그 사람에게 좀 미안하네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왜 사랑받지 못 했을까.’라는 생각에 오래도록 잠겨 있었어요. 지금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개인으로서 잘 지내는 내가 있고 사랑이라는 색깔이 그 위에 입혀지는 일같아요. 그래야 누군가를 잘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네요.
정말 그렇네요.
“운명을 안 믿어서 운명이 사라졌나”라는 노랫말도 썼는데 사월 씨는 운명은 없다고 생각해요?
(천둥이 친다.) 운명 얘길 하려니까 천둥이 치네요(웃음). 저는 운명론자는 아니에요. 근데 우연 같은 운명은 있는 것 같아요. (천둥이 길게 친다.) 와, 정말 무섭네요. 운명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란 뜻인가(웃음).
“연애는 나를 살게 할 만큼 달콤했고 나를 죽게 할 만큼 매웠다.”고 했죠. 그동안 어떤 연애들을 해왔어요?
으, 손발이 다 오그라드는 것 같아요. 다들 건강했으면 좋겠고…. (일동 폭소) 저는 사랑했던 사람, 연애했던 사람들을 지금 그렇게 미워하지도 않고, 그때 일 때문에 슬퍼하지도 않아요.그러니까 그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지나간 연애는 왜 이렇게 부끄럽고 잊고 싶은 걸까요?
헤어지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것만 아니면 저는 사랑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헤어진 것만 빼면… 사랑하는 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헤어지는 것보다 헤어지기 전의 나쁜 예감이 싫어요. 같은 맥락에서 연애보다 연애 전의 설렘이 좋고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요즘 저는 ‘앞으로는 연애도 좀 아껴 해야지.’라는 생각도 자주 해요.
아껴서 한다는 게 어떤 의미예요?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지 않고 싶다는 뜻(웃음)?
조절이 가능해요?
아니요.
그럼 아껴서 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나요?
(정적) …사랑은 정말 모르겠어요.
사랑에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해요?
믿음이요. 서로에 대한 믿음, 사랑에 대한 믿음은 당연하고 내가 없을 때의 그 사람에 대해서도 믿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과거의 그 사람도 그렇고, 지금 그 사람의 사적인 부분에도 믿음이 있어야겠죠. 이 모든 것에 대한 믿음. 그게 있어야 앞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노래로 많이 만들어진대요. 그렇다면 지금은 사랑이란 감정이 지배적인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사랑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감정같아요. 부모와의 사랑이든 연인과의 사랑이든 나를 사랑하는거든, 어쨌든 사랑이 없으면 사는 거 자체가 힘들지 않을까요?그래서 우린 사랑하는 행위와 함께 사랑 노래를 듣고 부르는 거 같고요.
지금이 유독 사랑이 필요한 시절이라고 생각하나요?
네. 근데 ‘지금’의 기준이 어디까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 옛날에는 신에 대해서, 노동에 대해서 노래했겠죠? 신을 기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고, 일하기 위해서는 힘을 냈어야 하니까요. 근데 지금은… (정적) …어쩌면 우리가 노래로 부르는건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요. 작게든 크게든 다르게든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사랑하니까 외롭지않아서 너무 좋다.’라거나 ‘사랑을 잃고 나니 너무 외로워.’라는걸 노래로 만드는 거죠.
사랑과 외로움은 같은 선상에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쉽게 정리가 잘 안 되는데요. 지금 우리가 사랑 노래를 만드는 건 어쨌든 외롭기 때문인 것 같아요.
결국 첫 질문으로 돌아갔네요. 사월 씨가 외롭고 슬퍼서 노랠시작했다고 했잖아요.
아…! 그러네요.
괴로워하지 마세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하고, 후회하고, 외로워하고, 사랑도 하고, 미워하고… 그러면서 노래하는 것 같아요, 저.
책에서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될지 궁금하지 않다.”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묻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사랑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제 여생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사랑이요.
샹송의 왕이라 불리는 프랑스 가수 에디트 피아프. 그녀는 미국 공연 도중 권투 선수 마르셀세르당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수많은 연애를 하고 47년간 세 번의 결혼을 했던 피아프지만 그녀에게 세르당은 어딘가 좀 달랐다. 그러나 대단히 특별했던 이 둘의 행복도 오래 가지는못했다. 시합으로 미국에 갔던 세르당은 가능한 빨리 돌아와 달라는 피아프를 위해 배로 귀국하려던 일정을 당겨 비행기를 탔고, 불행히도 이 비행기가 태평양 산봉우리로 추락한 것이다.세르당이 곁을 떠난 뒤에도 그와의 사랑을 이어가고 싶었던 피아프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노래를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노래가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다.
우리 위의 푸른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무너진다고 해도
당신이 날 사랑한다면 무슨 상관 있겠어요
아침마다 사랑이 넘쳐흐르고 당신 손길에 내 몸이 떨리는 한 아무런 문제 없어요
내 사랑, 당신이 날 사랑하는 한 난 세상 끝까지라도 가겠어요
머리도 금발로 물들이겠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달도 따러 가겠어요 재산도 훔치러 갈 거예요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고국도 버리고 친구들도 버리겠어요 당신이 원하신다면
사람들이 날 비웃어도 좋아요 난 무엇이든 할 거예요 당신이 원하신다면
어느날 당신을 내게서 앗아간다고 해도 당신이 죽어서 내 곁을 떠난다고 해도
당신이 날 사랑한다면 아무런 문제 없어요 나 역시 죽을 테니까
우리는 영원히 함께 하는 거예요
거대한 하늘 아래서 더이상 문제 없는 하늘 아래서
내 사랑,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걸 당신도 믿으시죠
사랑하는 연인들을 신께선 맺어주실 거예요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김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