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arately Together

우리를 자라게 하는 시간:
모르기에 걸을 수 있는 일

“난 집에 있을래요. 엄마 혼자 다녀오세요.”
아이가 초등학생쯤 되면 육아가 편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육아는 산 넘어 산. 아이와 내가 주체 대 주체로 분리되기엔 이르고, 아기 때처럼 온전히 하나일 수도 없는 애매한 시기가 우리에게도 온 것이다.

이연진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 심미적 취향 생활자, 다정하고 느리게 살아가는 엄마로, 숲 곁에서 생활하며 글을 쓰고 가정을 돌본다. 내향적인 성향과 고유한 취향이 육아에 녹아드는 시간을 담은 《내향 육아》, 《취향 육아》를 썼다.

이토록 낯선 매일

남자아이들은 참 알 수가 없어. 맨날 공이나 차고, 땀 나게 뛰어다니고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남자아이들이 《소년 챔프》 같은 만화책을 보며 키득거릴 때 청소년 문고를 끼고 다니던 아이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친해지고 싶었다. 그 애들은 유쾌했다.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어쩜 다 눈물 나게 재밌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들은 너무 멀리 있었다.

지금 내 곁엔 소년이 하나 있다. 내가 남몰래 친해지고 싶던 그 애들과 같은 열한 살 남자아이다. 이 아이 역시 매일 공을 차고 기차처럼 달린다. 사철 땀 젖은 머리칼, 그 아래 놓인 능금빛 얼굴엔 아무런 근심도 비치질 않는다. 취미는 노래 부르기. 특기는 잘 먹고 푹 자기. 갖고 싶은 건 맥북. 어느새 내 코 밑까지 자란 아이의 목덜미에선 제법 소년 태가 난다. 마음이 시간을 따라잡지 못하는 요즘을, 나는 살고 있다.

아이 네 돌쯤 숲이 있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육아가 버거운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그 애 손을 잡고 숲에 들었다. 아이와 가위바위보 하며 숲으로 난 계단을 오르고, 나무 열매를 한 움큼 집어 오고,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면 마음이 나긋하게 풀어졌다. 우리가 매일 딛던 숲. 그 숲을 ‘아는 숲’이라 칭하며 거기 깃든 모든 것을 아끼던 아이는 또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그게 그리 좋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숲에 들곤 했다.

“난 집에 있을래요. 엄마 혼자 다녀오세요.”
슬프게도, 아이가 자라며 가장 먼저 닳는 것은 숲 산책이었다. 요사이 아이는 숲이 지루한 눈치다. 그보다는 제 방에서 저만의 세계를 넓히는 게 더 즐거워 보인다. 숲에 가네, 마네 하는 알력 다툼이 오후마다 벌어졌다. 물론 그 맘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나 이제 꼬마 아니야.’ 느낄 무렵의 나도 그랬으니까.

소년이 온다

다행히 내게도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젤라토나 붕어빵을 사주겠다고 아양을 떨면 아이는 나와 함께 집을 나서준다. 그러다 보니 요즘 우리의 산책로가 완전히 바뀌었다. 목적지는 숲이 아닌 이 동네의 상업 지역. 오솔길 아닌 큰길을 우리는 타박타박 걷는다. 한데, 이 길이 참 묘하다. 털 뭉치처럼 단순하던 아이의 감정을 날실의 잔털까지 풀어낸다. 최근 말수가 준 녀석이 실은 얼마나 굉장한 수다쟁이인지, 요새 학교에서 배우는 노래와 섭섭했던 친구 이름도 다 그 길 위에서 알아챘다.

이 길엔 숲에 없는 경쾌함이 있었다. 하얀 김 뿜는 만둣가게와 달콤한 냄새 퐁퐁 풍기는 붕어빵 포차 앞에서 둘이 약속이나 한 듯 걸음을 멈출 때면 킥킥 웃음이 났다. 아이가 점방 주인들과 친밀한 안부를 나누기 시작한 건 단 사흘 만의 일. 그리고 엊그제. “여름엔 아저씨네 젤라또 집이, 겨울엔 아줌마네 붕어빵 집이 잘돼서 좋아.” 말하는 아이 눈에 담긴 예쁜 진심을 나는 보았다. 왜 그토록 숲만을 고집했을까, 걷는 곳이 달라졌을 뿐 아이는 변한 게 없는데.

남편의 귀가가 이른 저녁이면 우리는 운동장에 간다. 한참을 걸어 닿은 운동장에서 부자가 야구 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공이 그리는 익숙한 포물선. 명랑한 함성과 흐르는 땀방울. 소년들. 알다가도 모르겠고, 그렇게 되고 싶다가도 되고 싶지 않은, 그런 존재들.

잠시 후 땀에 젖은 아이와 팔을 겯고 길을 되짚어 돌아가며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근래 아이가 좋아하여 가장 열심히 부른 건 1970년대 한국 노래들. 정미조와 이용의 노래를 맥락도 없이 섞어 부르며 집에 닿을 무렵, 올려다보는 하늘이 좋았다. 엄밀히는 늘 같은 곳에 앉은 어떤 별을 보는 게 좋았다.

“아 나는 저 별이 너무 좋아.” 아이가 답한다. “엄마, 저거 인공위성 같은데요.” 그렇게 우리는 또 하하 웃고, 팔짱을 끼고, 발걸음 나란히 집을 향한다.

걸으며, 우리는 투명하고 단단해진다. 아이의 성장에 대한 소란한 마음도 그 덕에 가라앉는다. 새로운 우리는 또 새롭게 괜찮지 않을까, 속 좋게 믿어버린다. 그래. 이런 밤 우리 이렇게 걸을 수 있다면 다가올 사춘기의 날들이 낯설어도 무섭진 않겠다. 모르기에 걸 수 있는, 그런 기대로서.

집 아래 언덕에 들어서니 여지없이 숨이 찼다. 때마다 아이가 손을 잡아 온다. 잘 익은 여름 복숭아처럼 따뜻하고 보드라워서, 어느새 마음속에 숨어 있던 착한 기운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미운 친구 손도 먼저 이렇게 잡아줘.” 내 부탁에 공손히 “네.” 답하고는 “와, 편의점이다! 오감자 사주세요!” 외치며 달려가는 내 곁의 소년. 내 곁에 소년이 산다. 자꾸만 넓어지는 세계를 품고, 소년이 온다.

함께 걷는 책

초기 사춘기 형아가 되어가는 아이가 낯선 요즘. 저희가 가장 달게 나누는 시간은 걷는 시간입니다. 그동안 주로 머물던 집과 숲을 빠져나와 상점 가득한 도심을 걷지요. 동경이랄까 성향이랄까, 저는 숲 산책만을 산책이라 여겨왔는데요. 아이 덕에 그 소견이 바뀌었습니다. 발맞춰 걸으며 손잡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이 길도 저 길도 다 좋기만 할 거예요. 즐거운 산책에 힘을 보태준 책들을 소개합니다.

잃어버린 영혼
글 올가 토카르추크 | 그림 요안나 콘세이요 | 옮김 이지원 | 사계절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그림책입니다. 바쁜 삶으로 영혼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여정을 그렸지요.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걸으며, ‘영혼의 속도’란 말을 곱씹곤 합니다. 너무 빨리 걷지는 말아요, 우리.

월든
글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옮김 정회성 | 민음사

걷기에 관한 책이 많지만, 최고를 꼽자면 ‘나는 직업적 산책자다.’ 라고 말한 소로의 《월든》을 빼놓을 수 없겠죠. 숲에서 자급자족하는 그에게 걷기와 생활, 그리고 사유는 하나로 맞물린 예식입니다. 제게 숲 산책에 대한 동경을 심어준 책입니다. 요즘처럼 숲에 들 수 없는 날이 길어지면 《월든》을 읽으며 대리 만족하지요.

David Hockney. a chronology. 40th Ed.
저자 David Hockney, Hans Werner Holzwarth | Taschen

호크니는 숲과 도시를 두루 그린 화가입니다. 한 화가가 젊은 날 그린 미국 도시들과 나이 들어 그린 영국 숲의 대조가 흥미롭습니다. 호크니의 작품들을 떠올리며 걷는 날은 산책이 더욱 풍성해져요. 저는 그가 노년에 그린 숲 연작을 특히 좋아한답니다.

어떤 이유로든, 곁의 누군가가 낯선 날들이 지속된다면 묻고 싶어요.

‘함께 걷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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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글 이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