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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샹포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안녕하세요>를 보고 나와 카르티에 라탱을 배회하다 다시 여러 극장을 마주한다. 골목의 어느 극장 푯말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parasite’,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상영하는 극장을 발견했다. 바르셀로나의 시네마 말다에서 <버닝>을 본 날의 기록에서 언급한 적 있지만, 해외에서 한국영화를 보고 ‘1인치라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은’(2020년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으로 화제가 되었다) 현지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에도 그들의 반응을 살피거나 영화가 끝이 난 이후 개개인과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다. 일단, 평일 저녁 9시쯤 시작한 영화라 관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열 명 남짓). <기생충>은 칸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전 세계 최초 공개)로 상영한 뒤 한국(2019년 5월 30일) 다음으로 프랑스(2019년 6월 5일)에서 개봉했다. 당시는 2019년 9월, 개봉한 지 벌써 3개월이 지나 상영관도 많이 준 상태였다. 사실 한편으로는 이 지점-개봉한 지 3개월이 지난 영화를 아직 상영하고 있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또 하나 충격받았던 것은 프랑스에서는 <기생충>이 전체관람가라는 사실. 이야기가 잠깐 샜는데, 두 번째로는 소위 말하는 ‘진상 관객’을 이곳에서 만나 관객들의 반응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경험하기 힘들 일을 여기서 겪다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던 이 이야기는 아래에서 풀어보도록 하겠다.
2019년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것으로 시작해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작품상의 4관왕에 이르기까지 한국영화, 아니 아시아영화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영화 <기생충>. 비영어권 영화 중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이자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석권한 세 번째 작품(1946년 빌리 와일더의 <잃어버린 주말>, 1956년 델버트 맨의 <마티>)이기도 하다. 2월 10일 자로 아카데미를 포함해 전 세계 영화제외 시상식에서 거머쥔 트로피만 174개, ‘오스카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외국어영화’ 1위(잉마르 베리만의 <화니와 알렉산더>, 이안의 <와호장룡>과 공동 기록)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당시(2019년 9월)에도 이미 여러 기록을 갈아치운 상태였는데, 프랑스 평단과 관객들에게 만점에 가까운 평을 받으며 개봉 18일 만에 봉준호 감독 자신이 가지고 있던(<설국열차>, 67만 849명) 스코어를 깨고 역대 프랑스 개봉 한국영화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 개봉한 지 꼭 30일이 되던 7월 4일 한국영화 최초로 프랑스에서 100만 관객을 달성했는데 이는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역대 아시아 영화 중 최고 성적에 해당한다. 시간이 늦어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parasite’라는 글자 앞에 멈춰 섰고 홀린 듯 티켓을 구매했다.
상영 시간이 임박했던 터라 자리에 앉은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영화가 시작된 것으로 기억한다. 유럽의 대부분 극장처럼 자유석이라 평소 한국에도 선호하는 좌석인 ‘제일 뒷열 사이드 쪽’에 앉았다. 영화가 시작된 지 5분에서 10분 정도 지났을까, 커플로 추정되는 둘이 들어와 내 옆 옆 옆자리 쯤(그러니까 제일 뒷열 중간 정도)에 앉았다.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신경이 곤두섰지만, 이제 들어왔으니 그러려니 하려던 찰나 속닥이던 남자가 극장 밖을 나간다. 결정적인 순간은 지금부터인데, 아니 글쎄, 극장에 혼자 남겨진 여자가 스크린을 향해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찍는 것 아닌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국내 개봉 당시 감독과 배우들이 상영 전 무대인사로 참여한 시사를 봤는데,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극장이 어두워졌고, 스크린에는 이미 투자제작사 타이틀이 뜨며 영화가 시작됐는데 무대인사 사진을 보내고 메신저 하느라 정신없던 ‘진상 관객’이 바로 옆자리에 있었던 일이다. 영화 시작했으니 휴대전화 그만 봐달라는 이야기에 되레 당당하게 “아직 영화 시작 안 했는데요?”를 시전하며 메신저를 계속하다 자리까지 옮기던 그녀 때문에 초반부에 집중을 못 했던 터. 같은(이라기엔 더 심각한) 상황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믿을 수 없으면서도, 빨리 말려야 하는데 싶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혹시나 그 짧은 찰나에 “네가 무슨 상관인데? 왜 나한테 뭐라고 해?”라며 되려 뻔뻔하게 나올 가능성을 상상하며 ‘“내가 이 영화 배급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는데 당장 영상을 지우지 않으면 우리 회사 법무팀에 너를 넘길 거야.”라는 선의의 거짓말(?)로 응해야지’라는 말도 안 되는(하지만 그 당시엔 나름 설득력을 갖췄다고 생각한) 시나리오까지 구상했다.
심호흡을 하고 한 칸 더 옆으로 옮겨 그녀와 가까워진 뒤 낮은 목소리로 상영 중 촬영이나 녹화는 금지인 거 모르냐, 당장 멈추라고 말했는데 “화장실에 간 내 남자친구를 위한 거”라는 아주 황당한 대답을 들었다. 두 차례 더 그만하라고 말했지만(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모습에 당황해 법무팀의 ‘ㅂ’도 꺼내지 못했다) 무시한 채 촬영하는 그녀에게 내가 또 목소리 내는 것은 극장의 다른 관객에게도 피해일 것 같아 나가서 직원을 찾았다.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함께 상영관으로 들어왔는데, 이미 그녀의 남자친구는 돌아왔고, 영상 촬영도 멈춘 상태였다. 글로 풀어 길어졌지만 5분 정도 되는 짧은 순간 벌어진 일이다. 직원도 다시 한번 그런 일이 있으면 나를 불러 달라고 속삭이며 나갔고, 나 또한 무언갈 할 수 없는 찝찝한 상태로 자리에 앉았다. 이후 내내 그들의 태도에 신경을 쓰느라 영화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극장은 동일한 시청각적 체험을 하도록 의도된 공간이다. 함께하는 관객들과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행위인 ‘극장에서 영화 보기’ 중에는 자연스레 서로의 반응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상영 환경을 갖추고 훌륭한 프로그램을 선보여도 영화 관람을 위해 극장에 모여든 관객들의 자세가 엉망이라면,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경험으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걸 사람들이 자주 망각하는 듯하다. 무척이나 아쉬운 마음을 안은 채 극장 밖을 나섰다.
‘진상 관객’ 때문에 그날 느꼈던 감정과는 별개로 쌩 앙드레 데 자르는 다른 극장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는 아주 훌륭한 공간이다. 1971년 프랑스의 프로듀서인 로저 디아만티스가 설립했으며, 3개의 관(각 172, 141, 182석의 규모)을 운영하는 카르티에 라탱의 독립예술영화관이다. 특이한 점은 1·2관과 3관이 떨어져 있다는 것. 나는 용케도 1·2관과 붙어 있던 매표소를 먼저 본 덕에 티켓 구매와 영화 관람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물론 3관 역시 골목 하나만 꺾으면 되는, 4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내실 깊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다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관객 참여형 기획(‘사이클’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다)이 무려 네 가지나 된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먼저, ‘쌩 앙드레 데 자르의 발견’(Découvertes du Saint-André)은 매일 오후 1시 상영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독립 다큐멘터리나 실험영화를 상영하는 섹션이다. 사고의 자유를 지키고 싶어 하는 창작자들에게 기회를 배분하며, 대중들이 또 다른 시각의 영화를 발견하는 기쁨을 주기 위한 기획이라고 전한다. 한마디로 쌩 앙드레 데 자르가 배급사 역할까지 하며, 자체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는 창작자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2년 이미 15편 이상의 영화를 발표했다.
두 번째로 ‘무료 토론회’(tribune libre)는 매주 목요일 진행하는 오픈 포럼을 뜻한다. 주제당 12편의 영화를 선정해 토론하는 시간인데,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해 영화를 사랑하는 이와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다.
세 번째로 ‘다시 보기’(voi revoir)가 있다. 매일 오후 3시 15분 상영 섹션은 관객의 참여로 상영작이 결정된다. 일종의 관객 프로그래머처럼, 관객들이 사전에 신청한 영화 중 선정해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것이다.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고전영화나 본인이 사랑하는 작품 등을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누구나 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청소년’(junior)은 타깃층을 어린이와 청소년, 가족 관객들로 확대하는 프로그램이다. 방학과 주말 오전 11시 30분, 수요일 오후 3시 15분에는 일반적인 영화 상영과 다른 행사를 기획해, 청소년들이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다양한 예술 형식을 학습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준다. 이렇게 세심하게 관객과 창작자를 챙기는 사려 깊은 극장이 카르티에 라탱에 있다니, 다시 한번 파리 시민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Saint-André des Arts
A. 30, rue Saint-André des Arts, 75006 Paris, France
H. cinesaintandre.fr
T. +33 1 43 26 48 18
씨네21의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칸국제영화제의 <미치광이 피에로> 포스터에 매료되어 무작정 프랑스로 떠난 것이 유럽 극장 여행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극장에 찾아가 머무르는 동안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적어보려 합니다.
글·사진 이나경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