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영어를 못하지만 여행을 좋아합니다
남미를 6개월간 여행했고, 그전에는 1년에 두세 번씩 해외여행을 다녔다. 프랑스나 영국, 태국, 미국 등 목적지는 다양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외국어에 능통할 거라고 미루어 짐작하곤 한다. 오늘 조금 용기 내어 그 오해를 풀려고 한다. 고백이기도 하다.
영어 능력이 필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고백한다. 나는 영어를 못한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겸손한 표현인 줄 아는데 정말 못한다. 우선 나는 겸손한 편이 아니다. 오히려 잘하는 건 잘한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는 타입이다. 그러니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정말 그렇다는 이야기다. 언제부터 못했냐면 영어라는 걸 처음 접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못했다. 조기교육 같은 걸 받을 기회가 없었던 나는 알파벳만 외우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알파벳을 얼마나 빨리 외웠던지 영어 천재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로 한 번도 영어를 잘한 적이 없다. 수학은 전교에서 손에 꼽을 만큼 잘했고, 국어도 거의 만점을 놓치지 않는, 공부를 꽤 잘하는 학생이었음에도 (겸손이 뭐죠?) 영어 성적은 늘 형편없었다.
영어를 못하는 우등생인 채로 5년이 흐르고 고3 수험생이 되었을 때 영어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내 영어 성적표를 보고 무척 놀랐다고, 이러다가는 영어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을 거라고. 나도 예상했던 이야기였다. 어떻게 하면 영어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영어 독해 기출문제집을 많이 풀어보라고 했다. 그때부터 시중에 판매하는 영어 독해 책을 죄다 사서 풀었다. 풀고 풀고 또 풀었다. 내 손을 거쳐 가지 않은 문제집이 없었다. 영어를 공부했다기보다는 수능 영어 문제를 푸는 기술을 습득한 것이다. 가까스로 적당한 점수를 받고 대학에 진학했다. 주입식 교육이 통했다.
대학교에 가면 저절로 살이 빠지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영어도 잘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럴 리가. 학교에는 토익 점수가 기준 이상이 되면 수업 대신 3학점을 인정해 주는 제도가 있었고, 나는 끝내 그 점수를 받지 못해 학점을 얻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토익 점수를 요구하지 않는 앞서가는 마인드의 회사에 합격했다. 공인된 영어 성적 하나 없으면서 운 좋게도 취업까지 성공했다. 영어 쓸 일이 없는 팀에서 회사 생활도 잘 해냈다. 정말 사는 데 영어는 별로 필요가 없었다. 아니, 영어 실력이 필요하지 않는 곳을 요리조리 잘도 찾아다니며 잘 살았다. 하지만 새해 결심 목록에는 늘 다이어트와 더불어 영어가 있었다. 둘 다 매년 실패했다. 수학을 잘하면 대개 과학을 잘하는 것처럼 국어 성적이 좋으면 영어도 잘할 거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어를 잘하는 나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어를 잘할 수 없다는 걸 영어 회화 학원에서 진작 깨달았다. “어제 뭐 했니?”라고 묻는 원어민 선생님 앞에서 진짜 내가 했던 일은 말하지 못하고, “슈퍼마켓에 가서 사과 하나, 아이스크림 두 개 그리고 우유를 샀어요.”라고 말하고 앉아 있자면 마음이 답답했다. 나는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이고, 더 많은 이야기와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인데 이런 무의미한 이야기나 하고 있다니. 그렇다면 영어공부를 해서 내 이야기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았겠지만, 나는 영어로 나누는 겉핥기식 대화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학원을 그만둬 버렸다. 매번 그런 식이었다.
대학생 때 사촌들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갔다. 다행히 사촌 오빠가 영어를 꽤 잘해 모든 상황에서 앞장서 영어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한 걸음 뒤에서 편안하게 여행을 이어갔다. 영어를 못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 네덜란드에서 사촌 오빠가 하루 먼저 독일로 떠나는 일이 생겼다. 나는 다음 날 어린 사촌 동생과 함께 따로 독일에 가야 했다. 이번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있을 수 없다. 한국에서 미리 구매한 유레일패스를 네덜란드 기차역에서 개시해 독일행 기차에 타야 한다. 나는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영어는 못하지만 다행히 낙천적인 나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유레일패스를 꺼내 기차역 카운터에 탁 올려놓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I Want To Go To Frankfurt. How?”
직원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유레일패스에 시작 도장을 찍어주었다. 성공! 나는 조금 부끄러우면서도 동시에 기뻤다. 의미만 전달하면 되는 거구나. 훗, 별거 아니네. 남은 여행 중 오스트리아 기차역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 12인치를 주문하며 “Twenteen Inch”라고 말한 건 지금까지도 사촌들이 모이면 나를 놀리며 꺼내놓는 이야기다. 하지만 점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Twelve Inch’ 샌드위치를 건넸다. 아, 이건 내가 진짜 몰라서 그런 건아니고, 실수다. 확실히 실수.
아무튼 이 여행을 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영어를 못해도, 어떻게든, 나는 밥을 시켜 먹고 기차를 탈 수 있다. 음, 어떤 사람들은 영어의 필요성을 느끼고 반성을 하며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게으른 나는 매번 쉬운 쪽으로 생각해 버리는 편이다. 종종 한국인 승무원 하나 없는 외국 국적의 비행기를 탔을 때, 기류 변화로 비행기가 흔들릴 때, 영어로 관련 안내 방송이 나올 때, 두 번째 문장부터는 잘 들리지 않을 때, 나는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친구가 그럴 때면 그때 “Why I Die?”라고 물으라고 알려주었으니 괜찮다. 괜찮나?
아무튼 이후로도 수없이 여행을 다녔다. 대부분 혼자 하는 여행이었다. 영어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없이 여행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를 단단히 했다. 비행기 갈아타는 법을 여러 번 찾아 외웠고,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도 완전히 숙지한 채 여행을 떠났다. 일단 숙소까지만 가면 그다음은 수월하다. 여행에 기대하는 게 많지 않다. 그저 낯선 거리를 걷다가 아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사고 싶은 걸 사면 된다. 그거면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에서 어리바리하게 보이면 표적이 되기 쉽다. 안전을 위해서는 태도가 중요하다.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걸으며 대신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여 지하철 노선도와 길 이름을 찾아 읽는다. 헷갈리더라도 머뭇거리면 안 된다. 잘못 가서 다시 돌아오더라도, 일단 직진. 그런 식으로 ‘나는 영어를 못하는 게 아니라 말수가 적은 거예요.’라는 인상을 풍기게 하는데 늘 성공했다. 덕분에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나에게 자주 길을 묻는다. 저도 몰라요. 저는 길도 영어도 모르는걸요.
물론 영어에 능숙했다면 나의 여행이 달라졌을 거라는 걸 잘 안다. 남미를 여행할 때도 내가 스페인어를 조금 더 잘했다면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다양한 곳에 가봤을지도 모른다. 파리로 가는 비행기 옆자리 프랑스 여성에게 파리에 대해 물어보고, 현지인 맛집 정보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그 집에 놀러 가고, 친구가 되고, 인연을 이어가고, 이런 여행이 진실된 여행인 것 같다고 늘 생각했다. 나는 언어 실력이 부족해서 이런 여행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여행은 늘 반쪽인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다. 아쉬웠다.
하지만 이제 안다. 영어를 잘했더라도 그런 여행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말이 잘 통하는 한국에서도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낯선 사람이 불쑥 곁에 다가오면 고양이처럼 경계한다. 가까운 사람 몇 명과 다정한 마음을 나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오랜 여행 경험으로 이제는 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는 여행이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는 곳에서 휘적휘적 걷는 여행이다. 여행지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와도 억지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된다. 느긋하게 일어나 가고 싶은 곳을 향해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 나의 여행에서 언어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조금 불편할 뿐이다.
이건 비밀인데, 여전히 매년 새해가 되면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한다. 반면에 다이어트는 리스트에서 빠진 지 오래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 나는 어떤 몸을 가졌는지와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영어를 못하는 나는 조금 덜 사랑하는 것 같다. 다시 태어난다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이번 생은 그른 것 같다.
에디터 정다운
사진 박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