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액자를 만들며 보낸 6년을 시시콜콜한 한 장의 일기로.
주변에 액자가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 이러쿵저러쿵 제작 노트를 적어 온 것이 이제 아홉 권이 되었다. 무인양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샀던 줄이 없는 스프링 노트. 살면서 꾸준히 일기나 업무 일지를 쓴 적이 없었는데, 역시 밥벌이는 아무래도 긴장이 된 모양이다. 위로와 격려, 작은 칭찬을 보낸다. (잘 받았습니다.)
7, 8년 전쯤 가구 회사에 다니던 나는 주변 예술가 친구들의 부탁으로 처음 나무 액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급 나무로 고급 액자를 만들어 주세요.”라고 말하면서 다들 돈이 별로 없다던, 그야말로 재미가 있던 시절이었다. 할 일 없는 주말마다 회사에 나간 나는 길게 잘려 쓸모가 없어진 나무 자투리들을 가공해 상상 속 액자를 만들어 냈다. 마치 방금 전까지는 어디에도 없었을 것 같은 심플한 모양의 액자틀. 그걸 손에 쥐었을 때의 기분이란 꽤나 근사했다. 그런데 기쁨은 잠시였다. 그림을 어떻게 고정할 것이며 유리와 배경지는 어디서 구하나. 또 와이어라든지 돔보라든지 액자 뒤편의 철물도 쓸 만한 걸 찾아야 했다. 그런 문제들을 쓱 피하는 대신 나름의 사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액자 제작소는 시작되었다. 포시즌스 프레임, 멜팅 프레임, 걸구네 액자 등등 친구들이 추천해 준 이름들을 뒤로하고 나는 ‘렉탠글rectangle’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직사각형이라는 뜻의 짧은 단어 안에는 무한에 가까운 형태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둥근 액자는 못 만드냐는 문의가 있지만,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진 않다. 2019년에 정식으로 사업자를 낸 뒤로 유리도 직접 자를 줄 알게 되었고 작은 철물을 만 개 단위로 구비해 두고 있기에 이제 작업실에 들어가면 꽤나 든든한 기분이 든다. 물론 아직 배울 것도 갖출 것도 참 많지만 말이다.그 무렵 나는 서른다섯쯤이었다. 6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제 막 액자를 발견한, 그 기분이 아직도 여전한데 말이다.
그간 일하면서 특별히 알게 된 것들이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보았다. 액자라는 물건과의 인연에 관해서 말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의외로 마케팅이다. 내가 전혀 신경 쓰지 못했는데 액자라는 물건을 고르면서 여태까지 저절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가구 회사에 다닐 때 실장님들을 따라 종종 배송에 따라가곤 했다. 며칠간 열심히 만든 가구를 실어다 주고 나면 뿌듯함과 함께 괜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제는 다시 볼 일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남의 집 안으로 들어간 가구였으니 보통은 그렇게 인연이 끝난다. 액자의 경우라면 다르다. 물건 자체가 드러나기 위한 운명이어서 나는 내가 만든 액자를 심심찮게 다시 만나곤 한다. 전시장에서 잠깐씩 보는 것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서도 지금의 위치를 알게 될 때가 있다. 특히 여러 지역에서 초대전을 치르는 작가들은 전국 각지에서 같은 액자로 전시를 열기도 하고 말이다. 서울의 카페나 편집숍 같은 곳에서는 오래전 제작한 액자를 직접 만져볼 때도 있다. (이때 주의해 달라고 경고를 받는 건 제작자인 나도 마찬가지다.) ‘누구누구 전시에서 보고 찾아왔어요.’, ‘좋아하는 가게에서 물어보고 찾아왔어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일 잘하는 마케터의 숨은 도움을 받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물건의 속성에 힘입어 나는 별다른 홍보 없이 이제껏 액자 장사를 이어오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저러나 인생은 새옹지마. 또 그만큼의 불행이 올 것이다. 나는 그저 작은 작업실에 앉아 꼼꼼하게 제작을 해나간다.
마케팅과 함께 또 하나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숨기’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액자의 역할은 한편으로 ‘잘 숨기’가 아닐까. 액자 안에 들어가는 그 ‘무엇’이 잘 보이도록 도와야 하니까 말이다. 신부보다 화려한 하객은 불청객과 같다.
지금은 직업전선에서 물러난 아빠와 함께 액자 제작에 관해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는데, 아빠는 내 액자들을 보면서 늘 혀를 끌끌 찬다. 이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액자라며 거침없이 지적하고, 용이라든지 꽃이라든지 조각을 더해야 하지 않겠냐는 식이다. 치열한 경쟁 사회와 거기서 생존한 사람의 열기가 아빠의 대사에 모두 담겨 있다. 나는 일단 알겠다고 대답한다. 숨기에 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아빠의 열기는 참 멋진 것, 혼자 결정해야 하는 것이 늘 있을 뿐이다. 드러나는 액자와 숨는 액자 사이에서 나는 앞으로도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 ‘적어도 방해는 말아야지.’ 하는 정도면 좋지 않을까?
2019년부터 1, 2년 정도는 의뢰자의 이름으로 폴더를 만들어 제작 노트와 완성된 액자 사진들을 외장하드에 저장해 두었다. 언젠가부터 바빠지면서 이어가진 못했지만, 몇 년간 꽤 많은 액자를 만들었다. 액자 제작자로 사는 것이 이제 익숙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제대로 배운 적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가구를 만들던 방식을 응용해 어떻게든 액자틀은 만들었지만 그 외에 액자를 구성하는 수많은 기술에 관해서는 여태 땅을 기어가듯 배웠다. 유리 가게와 표구사를 드나들며 물어보고 유튜브를 검색해 보면서 말이다.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그럼 더 배워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아빠 말대로 카빙을 곁들이거나, 옻칠을 배운다거나 작품 복원, 배첩 같은 전통 기술을 배워 완성도를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액자에 쓰이는 철물을 직접 제작해 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 내용들이 아홉 권의 노트 곳곳에 기도처럼 적혀 있다. 섣부른 이야기지만, 내가 배우지 못한 걸 배우고 나면 작은 학교 같은 걸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멀리서 소식만 훔쳐보고 있는 오랜 경력의 액자 제작자들과 목수들 그리고 유리 가게 아저씨와 인화 작업실을 가진 친구들을 작은 학교의 선생님으로 초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런 설레는 계획 반대편에는 주말의 낮잠처럼 나른한 생각도 있다. ‘동네에 있는 작은 액자 가게 아저씨로 나이 들어 갈 수도 있지.’ 간혹 부담스러운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나 서울에서의 생존에 마음이 쫓길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열 평 남짓의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소박하게 사는 삶. 가족사진이나 영정 사진을 위한 특별 디자인이 있는 가게가 되려나. 매출은 줄겠지만 거기에는 또 귀한 여유와 작은 새로움이 있을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오래 하려면 다치지 않아야겠지. 차분하게 즐겁게. 창문을 열고 먼지를 털고 열 권째 노트를 펼친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