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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기록하기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와 어깨를 맞대고 펼친 책 한 권. 글이 있든 없든, 글을 알든 모르든,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를 통해 그림책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림책을 함께 보며 깔깔 웃거나 눈물을 훔치던 소중한 시간들. 여기 세 엄마의 그림책 노트에서 각각 다른 색을 띤 ‘사랑’을 발견했다.
김지은 | 공간 디자인 ‘탠 크리에이티브’ 대표
강다희 7세
지은과 다희가 나눈 그림책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
글 라파엘 프리에 | 그림 줄리앙 마르티니에르 |
옮김 이하나 | 그림책공작소
2022년 5 월 19 일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 울어버리는 황당한 장면이 어색하지 않다. 그림책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다. 한 줄의 문장 내지는 귀여운 그림 한 장이, 덧대고 덧대어 꽤나 단단해진 내 마음을 무장 해제시켜 버리니까. 처음 그 요상한 장면을 만들어낸 책은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였다. 정신없이 일하는 엄마를 둔 다희는 두 돌에 첫 기관 생활을 시작했고, 적응이 쉽지 않은 아이에게 아침마다 책을 읽어줬다. 내 무릎 위 작았던 다희의 머리에서는 시큼한 아기 냄새가 났고 따끈했다. 그림책이 막바지에 다다르면 우리는 매번 눈앞이 흐려져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그 뒤로도 꽤 많은 책들이 나와 다희를 울렸다. 특히 나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에게 그림책은 소설이나 에세이보다 좀더 직관적이고 힘 있는 울림을 주는 것 같다.
다희가 꽤 어릴 적부터 종종 읽어주던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은 독특한 소재가 아이의 흥미를 끌었지만, 요즘에 와서야 손이 자주 가는 책이다. 퇴근 후 다희의 유치원 가방을 비우고 다시 채우며 뒷정리를 하다 보니, 오늘 아이를 본 시간이 한 시간이 채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잠들기 전 우연히 집어 든 이 책을 가만히 읽어주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블레즈씨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조금씩 곰으로 변해 간다. 처음엔 이러다 말겠지 하는 마음이지만 점점 더 곰의 모습이 되어간다. 그럼에도 출근은 해야 하는 블레즈씨. 재미있는 건 블레즈씨가 완벽한 곰으로 변할수록 늘 엉망이고 피곤하던 머릿속과 잠자리는 편안해진다. 언제부턴가 잊고 살던 밤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끼며 감정의 변화도 보여준다. 결국 모든 것이 괜찮아졌을 때, 그의 모습은 사람이 아닌 완전한 곰이 된다.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은 자유로운 마음과 함께!
“곰으로 변하면 몸이 막 간지러운 거 아니야? 이제 사람이 아니야?” 다희가 동글동글한 눈으로 내 팔에 기대어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바닐라 푸딩 맨 아래의 캐러멜 시럽을 푹 떠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까만 눈동자가 유난히도 큰 아이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내겐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다. 무언가에 쫓겨 나 자신도, 행복도, 여러 가지 것들을 멀리 두고 사는건 아닌지 떠올리면서.
이윤선 | 에세이 ‘주간육아’ 작가
김이강 6세
윤선과 이강이 나눈 그림책
코딱지 마을의 손가락 침입 소동
글·그림 미르지크·모리소 |
옮김 이주영 | 담푸스
2022년 8 월 17 일
아이는 오늘도 코딱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읽고 유치원 가기 전에 읽고 유치원 다녀와서 읽고 놀다가 또 읽고 잠자기 전 침대 위에서도 읽는다. 지지난 주에도 읽었고 지난주에도 읽었고 이번 주에도 읽었고 어제도 오늘도 읽었다. 읽을 때마다 깔깔거리고 낄낄거리고 으하하 하고 키득키득한다. 뭐가 저렇게 재미있을까 싶은데 나는 아무리 살펴봐도 재미있는 부분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아이와 나의 웃음 포인트는 달라도 아주 많이 다르다. 58개월의 여섯 살 아이는 주로 코딱지, 방귀, 똥, 이런 것에 자지러진다. 다섯살 때도 좋아했는데 여섯 살 되니까 완전 더 심하게 좋아한다. 도대체 왜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왜냐하면… 왜냐하면….”만 반복하다가 바닥을 뒹굴며 웃느라 대답도 못 한다. 내가 방귀와 똥과 코딱지를 재미있어하는 이유를 알게 되는 날은 절대 올 수 없을 것 같다.
책장에 좋은 책들을 많이 꾸려 놓았는데 이런 내 노력도 몰라주고 저놈의 코딱지 책만 주야장천 읽고 있는 아이에게 다른 책들을 슬쩍 권해본다.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가서 꺽꺽거리며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뉴베리상도 칼데콧상도 안데르센상도 이렇게 웃게 만들어 줄 수가 없는데 그래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코딱지에 깔깔 웃고 방귀에 빵 터지고 똥에 자지러지는 아이를 보면서 웃음이 이렇게 쉽다는 게 부럽고 또 부럽다. 아이를 재우고 내가 오늘 몇 번이나 웃었던가 떠올려본다. 하루에 한 번도 웃기가 힘든 어른인 나는 내 웃음이 얼마나 어렵고 비싼지를 생각해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조용히 코딱지, 방귀, 똥을 읊조렸다. 남편이 듣고 “뭐?” 하고 물어볼까 싶어 나만 들을 수 있는 개미만 한 목소리로. 금세 나의 귓가에 아이 웃음소리가 까르르 들리는 것 같다. 그 웃음소리를 떠올리며 나도 결국 씩 웃는다.
어느 날 아이가 코딱지와 방귀와 똥에 웃지 않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오면 온몸을 흔들면서 까르르 웃던 지금 이때가 그리워지겠지. 그러니까 코딱지 책을 마음껏 읽게 둬야겠다. 유통기한이 있는 이 코딱지, 방귀, 똥의 시기를 한없이 즐기도록. 온몸에서 웃음소리가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 같은 이 소중한 때를 가장 아이답게 웃을 수 있도록. 어떤 시절들은 눈부신 아름다움을 한가득 품고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의 모든 시절들이 특히 그렇다.
이정인 | 프리랜서
이세하 7세, 이세원 4세
정인과 세하가 나눈 그림책
산딸기 크림봉봉
글 에밀리 젠킨스 | 그림 소피 블래콜 |
옮김 길상효 | 씨드북
2022년 5 월 14 일
어릴 적 언젠가 엄마가 나에게 그랬다. “요리를 할래, 음악을 할래?”
나의 생활과 재능을 눈여겨보고 두 가지로 점철해 제시했던 엄마는 나를 잘 파악하고 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음악을 선택했지만, 다른 길을 꿈꿔 본다면 여전히 ‘요리’라 말할 수 있다. 나는 음식을 만들고 재료를 접하는 일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산딸기 크림봉봉’이 뭐지? 새로운 음식에 호기심이 가득한 나에게 내 평생 먹어본 적 없는 것 같은 디저트. 책에 묘사된 이 디저트를 만드는 시대별 모습은 그런 내게 옴니버스 영화처럼 다가왔다. 귀엽게 그려진 그림책 소재가 디저트라니! 만드는 과정을 보는 동안 맛이 상상돼 입에 침이 고이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릴 적 엄마가 부엌에서 무얼 만드는지 늘 궁금했다. 진미채 반찬을 할 땐 긴 채를 먹기 좋게 자르는 일도, 밀가루 반죽을 휘젓는 일도 항상 내가 하고 싶었다. 엄마가 가래떡을 썰면 그 떡을 다른 그릇에 옮기는 일마저 즐거이 참여하던 나였다.
그런 취향과 성향이 나의 어릴 적과 똑 닮은 딸 세하를 낳았다. 세하는 책을 읽으며 그림 속 아이들처럼 자신도 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 요리와 미식에 호기심 가득하고 참여하기를 좋아하니 우린 ‘쿵짝’이 잘 맞았다. 같은 음식을 다른 시대 사람이 쭉 함께 향유한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 음식에 깃든 나의 추억을 딸에게 들려주며 함께 맛보는 일도 우리가 즐겨 하는 일이었다. 젓가락 연습을 위한 콩자반 요리, 김장 때마다 소의 부속물을 넣어 끓인 된장국으로 추위를 달랬던 일 등 엄마의 엄마에게서 느끼고 배운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하니까.
현재는 독일에 살며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있다. 각국의 새로운 음식들을 함께 먹는 우리는 음식에 추억을 담는 중이다. 우리에게도 오래도록 기억되고, 곁에 두고 즐겨 먹으며 추억할, ‘소울 푸드’가 있을까? ‘맛있다’는 기억과 더불어 같이 만들거나 찾아가는 여정까지 추억할 수 있는 그런 맛. 그 맛에 대해 우리는 같은 생각과 추억을 간직할 수 있을까. 시대는 변해도 맛은 변하지 않고, 그 음식을 만들고 접하는 마음만은 똑같다는 생각을 할 때 딸과의 대화가 더욱 즐겁게 느껴진다.
에디터 황지명
글·사진 김지은, 이윤선, 이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