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lph Lauren, The Song For The Earth

랄프 로렌의 지구를 위한 찬가

패션은 시대의 변화를 읽는 나침반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패션은 시대의 기술, 윤리, 법, 과학에 대한 태도를 하나로 묶어 ‘옷을 선택하고 입는’ 인간들에게 나가야 할 삶의 방향을 부여해 왔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진정성으로, 이 단어는 원래 고대 로마시대 리더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자신의 의도대로 대중을 움직이고 상대의 동의와 승복을 얻어내는 능력을 뜻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명품 브랜드일수록 이 진정성을 유지하는 데 힘을 쏟는다. 

그렇다면 21세기 패션의 진정성은 어디에서 올까? 과거 진정성의 척도가 헤리티지와 장인 의식, 역사가 빚어낸 브랜드 자체의 스토리텔링 능력이었다면, 오늘날의 척도는 지속가능성과 환경에 대한 존중이다. 코로나 이후 패션 시장의 지형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차세대 소비자인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환경윤리에 대해 심도 깊은 기준과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랄프 로렌은 지속가능성을 주요 경영 의제로 수용하고 미래를 위한 로드맵을 그린다.

지속가능성이란 숙제

패션 산업은 노동집약적 성격을 갖고 있다. 직물의 획득과 가공 및 후처리 과정에서 환경을 파괴해 온 게 패션 산업이다. 최근 경영의 화두로 자리한 지속가능성 개념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친환경을 위한 노력 이외에도 공정무역을 통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지불, 지역사회봉사,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육체 장애의 유무에 상관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친화적인 제품 디자인을 선보이는 포괄적 디자인 철학, 심지어 직장 내 중책을 맡는 젠더 비율을 평등하게 조율하는 문제까지 다양한 삶의 양상을 아우른다. 

환경운동에서 회자되는 말 중 그린워싱이란 게 있다. 초록색을 뜻하는 그린과 화이트 워싱의 합성어로 기업이 경제적 이윤을 목적으로 친환경적 특성을 허위로 과장해 상품을 광고하거나 홍보하고 포장하는 행위를 말한다. 옷 한 벌이 만들어지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며 형성된 이해관계가 사슬처럼 얽혀 있다. 많은 브랜드가 겉으로는 친환경을 외치지만,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 전체의 정체성, 아이덴티티를 혁명적으로 바꿔야 하는 긴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해온 관행을 타파하고 기업의 내면적 형질을 완전히 변화시켜야 한다. 이런 점에서 랄프 로렌이 보여주는 지속가능성 전략의 깊이와 밀도는 놀랍다.

랄프 로렌, 변화를 디자인하다

2019년부터 랄프 로렌은 매년 ‘세계 시민권과 지속가능성보고서 Global Citizenship & Sustainable Report’를 발행한다. 랄프 로렌의 지속가능성 노력을 주목하게 된 데는 보고서의 행간에 담긴 ‘진정성의 힘’ 때문이다. 랄프 로렌은 ‘변화를 디자인하라Design the Change’라는 지속가능성 전략을 전사적으로 채택했다. ‘영원한 스타일의 창조, 환경 보호, 더 나은 삶의 옹호’라는 세 가지 주제 아래 지속가능성의 숙제를 풀어간다. 

2019년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100% 재생 에너지 사용이란 목표는 이미 달성했고, 2025년까지 제품 생산에 사용될 면과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캐시미어, 울, 가죽, 지속가능한 데님에 이르기까지 각 소재별 100% 친환경 재료의 사용을 목표로 삼고 있고, 전 세계 1억 7천만 개의 플라스틱 병을 리사이클을 통해 없애겠다는 목표도 잡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회 내의 소수집단을 위한 디자인과 2025년까지 경영에 관여하는 여성 시니어 리더의 비율을 25퍼센트까지 올리겠다는 목표까지, 지속가능성의 다양한 의제를 이렇게 절묘한 균형감각으로 풀어가는 기업은 드물다.

지구와의 화해, Earth Polo

랄프 로렌은 2019년 4월 18일, 어스폴로Earth Polo 셔츠를 출시했다. 오랫동안 랄프 로렌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은 폴로셔츠를 재활용 플라스틱 병에서 추출한 실로 제작해 ‘어머니로서의 지구Mother Earth’와의 화해와 복원의 의미를 담았다. 놀라운 건 이 상품은 물을 사용하지 않고 제품을 염색하는 공정을 도입해, 과거 패션 제품의 생산에 과도하게 사용된 수자원을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모든 어스폴로제품은 평균 열두 개의 플라스틱 병으로 만들어진다. 이 프로젝트는 영국의 환경 관리 기업인 퍼스트마일First Mile과 의 협업을 통해 이뤄졌다. 퍼스트마일은 폐기물 처리 및 리사이클링 분야의 세계적인 기업이다. 재활용 플라스틱에서 추출한 고품질의 실로 만든 어스폴로는 지금껏 지속가능성 의제를 기업 전체의 숙제로 삼아 노력해 온 랄프 로렌의 소중한 결과물이다. 

탁월한 기업은 시대의 변화와 그 기미를 잘 읽는다. 기미幾微란 ‘느낌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나 상황의 되어 가는 형편’이란 뜻이다. 한자로는 미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것들, 평소에는 애써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살펴본다는 뜻이다. 직물을 짜는 베틀을 뜻하는 기幾 자엔 갈림길, 방아쇠란 뜻도 있다. 변화의 기미를 읽는다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것들’을 미세한 눈으로 보고 새로운 길을 트기 위한 방아쇠를 당긴다는 뜻이 담겼다. 소비자의 감성을 울리는 데만 치중하는 스토리텔링이 아닌 스토리 ‘두잉Doing’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때 브랜드는 진정성 있는 인간의 품격을 갖게 된다는 점을 랄프 로렌의 어스폴로는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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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글 김홍기 포토그래퍼 김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