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재료의 산책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옛말이 있다. 속담을 한 번 더 읽어 보면 떡을 먹을 때 보통 동치미나 나박김치와 같은 국물김치를 함께 곁들였구나, 예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무는 전분 소화 효소인 디아스타제Diastase를 많이 지니고 있어 소화를 돕는다고.
돌이켜 보면 대학 자취생활 내내 직접 사본 적이 없다. 커다랗고 새하얀 무를 보고 있자면 마치 큰 도화지와 색연필이 내 앞에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조금 두렵고 막막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바보처럼 피해만 다닌 것을 후회하고 있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는 무말랭이가 밑반찬으로 나오는 식당에 부러 찾아가기도 했다. 김치찌개를 전문으로 하는 가게인데, 나는 그곳에 무말랭이를 먹으러 간다. 평소에는 잘 찾아 먹지도 않으면서 그 집에만 가면 두세 번 더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은 아마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무국, 무김치, 무나물 등의 익숙한 요리들에서 벗어나 조금은 낯선 방법으로 무를 다뤄봤다. 익숙지 않은 재료를 다루는 동안 어쩐지 생각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진 것만 같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는 말처럼 음식도 그러리라 믿고 있다. 앞으로 나는 어떤 재료를 새롭게 만나고 얼마나 다양한 것들을 볼 수 있을까. 천천히 알아가고 싶다.
RECIPE 01
다섯 가지 식감의 재료를
한 그릇에 담아내다
나는 음식물을 꼭꼭 씹지 않고 삼켜버리는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감이나 복숭아도 딱딱한것보다 물컹하게 푹 익은것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종종 오래도록 씹고 싶은 음식들이 찾아오는데 이번에 그 재료들을 한 그릇에 담아 모아보았다. 유자청에 절였던 무피클의 아삭함, 퀴노아Quinoa(쌀보다 조금 작은 모양의 곡물)를 넣고 지었던 밥 알알의 꼬들꼬들함, 두부를 으깨 톳과 함께 무쳤던 두부톳나물의 오돌오돌함. 육지와 바다에서 묵묵히 자라난 그들은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처럼 입 안에서 연주를 해댄다. 무, 톳, 퀴노아 모두 강한 맛을 지닌 식재료가 아니다.
재 료
무 70g, 톳 30g, 퀴노아 50g, 그린빈 6~8개, 방울토마토 6~8개, 참깨 1~2Ts, A (양파1/4개분 간것, 식초 4Ts, 마요네즈 4Ts, 꿀 2/3ts, 두반장 1ts, 된장 1ts, 후추 적당량)
* Ts(테이블스푼), ts(티스푼)
만드는 법
톳을 미지근한 물에서 10~20분간 불린다. 퀴노아를 헹구고 냄비에 퀴노아와 물을 1:2비율로 넣은 뒤 중불에 올린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가끔 뒤섞어주며 13~15분 가량 익힌다. 물이 없어졌을 때 불을 끄고 뚜껑을 닫아 2분가량 뜸을 들인다. 그린빈은 끓는 물에 20초 가량 담궈 데친다. 무를 5센티미터 길이로 채썰고 방울 토마토는 반으로 자른다. 볼에 A를 함께 넣어 섞은 뒤 준비한 모든 재료와 참깨를 넣고 잘 뒤섞는다.
RECIPE 02
무청을 고소하게 볶아
따뜻한 밥과 뭉치다
무청은 생각보다 익숙한 재료이다. 무가 수확되면 마치 바닷가의 오징어처럼 허공에 나란히 걸려 건조되고, 시래기로 재탄생 한다. 우리 밥상에선 된장국, 나물, 조림 등에 다양하게 쓰인다. 보통 무청은 말린 채로 판매되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무가 수확되는 계절에는 윗부분도 함께 구매할 수 있다. 말리지 않은 무청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기가 있는데, 이를 간단히 볶아 멸치조림이나 마른새우볶음과 함께 잘게 다져 밥과 뭉쳐 먹으면 맛이 좋다. 시레기 된장국을 끓여 보온병에 담아 무청주먹밥과 함께 들고 밖으로 나가보면 어떨까. 아직은 옅은 따스함이 남아있는 겨울햇살에 의지해 올해의 마지막 야외피크닉을 기록해보는 것도 좋겠다.
재 료
무청 50g, 참기름 1Ts, 청주1Ts, 간장1½Ts, 설탕 1ts, 가쓰오부시 2g, 참깨 1Ts, 밥 적당량, 소금 한꼬집, 식용유 적당량
* Ts(테이블스푼), ts(티스푼)
만드는 법
무청은 깨끗하게 씻어 5밀리미터 정도의 폭으로 잘게 썬다.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중불에서 무청을 볶는다. 숨이 죽으면 가쓰오부시와 청주, 간장, 설탕, 참깨를 넣고 함께 볶는다. 볼에 따뜻한 밥과 볶은 무청, 소금을 넣고 주걱으로 잘 섞는다. 손에 식용유를 약간 묻히고 밥을 뭉쳐서 모양을 잡아낸다.
RECIPE 03
무를 부드럽게 삶아
사천풍 소스로 조리다
중국 사천지방을 대표하는 음식 마파두부麻婆豆腐. 중국의 진마파陳麻婆라는 할머니의 가게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져 마파두부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마파두부는 돼지고기와 두부를 중국 전통 고추장과 된장에 걸쭉하게 볶아낸 음식인데, 한국요리의 칼칼한 맛과 흡사해 거부감이 없다. 두부를 대신해 가지나 당면 등을 넣어도 별미지만, 사실 무야말로 숨겨진 적임자다. 볶기 전에 잠시 데쳐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지만, 무는 다양한 장과 궁합이 잘 맞는다. 된장찌개에 들어갈 재료들을 이것저것 골라보는 듯한 가벼운 마음으로 기정의 요리들을 내 주머니와 냉장고 사정에 맞춰 마음대로 바꿔보자.
재 료
무100g, 돼지고기 간것100g, A (다진 대파10cm, 다진 마늘 1Ts, 다진 생강 1/2ts), B (첨면장 1Ts 혹은 굴소스와 고추장을2:1로 섞은 것, 간장 1Ts, 청주 1Ts, 설탕 1ts), 두반장 1ts, 물 또는 육수 ¾컵, 전분 1Ts, 참기름 1Ts
* Ts(테이블스푼), ts(티스푼)
TIP 무는 순백의 재료다. 맛이 쉽게 배는 속성 덕분에 다양한 음식에 자유자재로 사용이 가능하다. 그중에서도 참기름, 생강과의 조합이 매우 좋다. 볶음이나 조림요리를 생각한다면 이 두 가지 부재료와의 조합을 추천하고 싶다.
만드는 법
무는 1.5~2센티미터 두께의 육각으로 썬다. 냄비에 무가 잠길 정도의 물을 넣고 중불에서 10분가량 익혀 건져놓는다.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돼지고기를 볶기 시작해 고기 색이 변할 즘에 A와 두반장을 넣고 볶는다. 어느 정도 볶은 뒤 물 또는 육수와 삶아놓은 무, B를 넣고 보글보글 끓인다. 마지막으로 전분을 물에 잘 풀어 조금씩 부어가며 저어준 뒤 불을 끈다.
에디터 전진우
글·사진 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