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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부부의 책갈피
두 사람의 연애가 제도화된 질서 속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어떤 불편함이 늘었다. 결혼과 관련한 사회 내의 질서들은 우리의 욕망을 자신들에게 맞추기를 원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우리는 나의 불편이 아니라 당신의 불편 속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그의 이야기
요즘 아들 연우가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무서워요!”이다. 며칠 전에는 바다 구경을 시켜주려고 부러 데려간 해변에서 달려오는 파도를 보고는 녀석이 또 무섭다고 하여 나와 아내가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연우의 무서움은 아주 당연하기도 했다. 반복의 경험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무뎌진 감각을 보이는 어른과는 달리 아이는 사물과 그것의 움직임을 낯섦 속에서 생생하게 체험하는 중이다. 생각해보라, 어른에게는 파도가 일정 시간 나에게 다가왔다 다시 멀어지는 물의 움직임이라는 지식이 있지만, 아이는 파도가 자신에게 다가왔다가 다시 저만치 멀어진다는 지식이 없으니 말 그대로 얼마나 역동적이겠는가. 그러고 보면 무섭다는 감정은 무언가를 예민하게 느끼는 감각의 결과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우가 세상에 없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한 시인의 책 출간을 축하하는 한 자리였다. 처음 보는 분이었는데 나에게 결혼을 했는지 또 아이는 있는지를 묻더니 결혼은 했으나 아직 아이는 없다고 하자 대뜸 겁먹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오지랖을 부리는 거였다. 속으로 참 예의가 없으신 분이구나 하고 말았지만 며칠 그 기분 나쁜 조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사실 그이의 무례한 질문과 ‘고나리’ 질은 문제였지만 그이의 말이 나의 속내를 들여다본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나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마땅히 겁을 내고 두려워해야 하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한 생명에게 지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어찌 그렇지 않을까.
아내는 나에게 종종 겁이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내가 겁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아내가 아직 부부가 아니었을 때, 나는 결혼을 앞두고 덜컥 무서워졌다. 두 사람의 연애가 제도화된 질서 속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어떤 불편함이 늘었다. 결혼과 관련한 가족과 사회 내의 질서들은 우리의 욕망을 자신들에게 맞추기를 원했다. 가령 가족 내 특정 행사들은 우리의 행위와 동선을 제한했으며, 사회적 시선들은 이른바 정상 가족의 범주 속으로 나와 아내가 들어가라고 독촉하는 듯했다. 이른바 ‘결혼은 현실이야.’라는 말이 귓전을 울리며 나에게 여러 생각들을 강요했고, 나는 그 시그널로부터 어떤 위험요소를 느낀 것이다.
나는 결혼과 관련해서 누군가의 생생하고도 애정 어린 말과 지식을 원했다. 그중에서도 아는 형이자 시인의 말이 좋았다. 그는 나에게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대체로 남자에게 유리한 제도적 측면이 있으니 항상 아내의 욕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의 불편은 아내의 느끼는 것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늘 적을 거라는 말이었다. 요즘 말로 뼈를 때리는 말이었다. 멍청하게도 나는 나의 불편을 대하는 시선 속에서만 아내의 불편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저 말을 들은 후 내가 무감한 사이 아내가 느낄 수 있는 불편의 목록을 떠올리고 또 알아보려 애쓴다.
알 수 없는 움직임으로 밀려오는 생활의 압박 속에서 아내가 혼자서 무서웠던 적이 없길 바라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한 지붕 아래 같이 생활하는 과정에는 함민복의 시처럼 긴 상을 들고 좁은 문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 같은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그때 둘 중 하나는 꼭 뒤로 걸어야 한다. 나는 그때마다 뒤로 걸으며 앞으로 걷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자리는 내 차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나에게 세상에 나보다 더 귀한 이가 있다고 알려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세상을 살며 느끼는 불편과 두려움을 덜어주는 사람 중 하나가 꼭 나였으면 좋겠다.
그녀의 이야기
세기 초입,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소설과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연달아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제는 그런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상상력 자체가 전혀 새롭지 않다고 여겨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한때는 일종의 낯설게 하기 효과를 발휘했던 저 소설과 영화의 제목은 이제 와 보면 너무나 구태의연한 느낌을 줄 뿐이다.
그 이후에도, 현재까지도 수많은 연애와 결혼에 관한 서적과 티브이 프로그램과 영화 등의 콘텐츠 제목에서 우리는 미침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역시 21세기 초반에 대학생이 되어 부지런히 여러 매체의 혜택을 접하고 살아온 내게 ‘결혼’이라는 명사와 ‘미치다’라는 동사는 자연스럽게 만나는 단어들로 여겨진다. 결혼과 미침이 결혼이라도 한 것처럼. 둘이 만나 하나의 고유함을 이루는 것처럼. 어쩌면 이것은 21세기식 속담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속담이라는 게 일정 정도 삶에 대한 지혜와 교훈을 담고 있고-물론 거기에는 또한 일정 정도의 실제 삶의 세부에 관련한 통계가 반영될 것이다-시대에 따라서 새롭게 해석할 여지도 풍부하게 갖게 되는 말이듯, 이 글이 작성된 2020년 4분의 3분기 이후의 어느 시점에서 당신과 또 다른 당신은 저 말을 나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결혼이라는 것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말하기가 비교적 쉬운 편인 보통명사보다는 오히려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고유명사에 속하는 게 아닐까 싶다는 것이다. 누가 결혼을 말하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연애나 결혼에는 어떤 특정된 관점이나 태도가 불가능하다. 그것은 연애나 결혼에 따르는 개인적인 요소가 가변적이기도 하기 때문이지만, 그보다는 개인의 확고함이나 일관성이 무용한 환경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더욱 생각해보게 된다. 언젠가부터 뉴스의 중요한 한 꼭지를 차지하고 있는 결혼은 젊은 세대의 경제력, 출산율, 노령화 지수 등등의 말들을 거느리며 결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들, 결혼을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에 더욱 깊은 상처를 내는 말이 되었다.
결혼을 하던 당시에 대학원을 다니던 학생이었던 나는 간간이 하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면 별다른 수입도 없던 처지였다. 별로 가진 것 없는 나를 믿어준 남편과 항상 무조건적으로 나를 믿어준 부모의 힘으로 가능한 게 결혼이었다. 지지와 믿음 더하기 지지와 믿음. 사람이 사람에게 갖는 지지와 믿음, 그 불가피하고도 불가해한 지속과 연결의 힘이 어쩌면 ‘미침’의 다른 말이 아닐까. 그것은 나와 네가 속하는 견고한 울타리를 짓고 보수하는 힘이 아니라 있던 울타리를 트고 부수어 더 넓은 세계를 상상하는 힘이지 않을까.
강화길의 소설이 그려내는 세계의 양상은 다양하고 다층적이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그가 사람의 마음, 혹은 심리를 다루는 데에서 그 소설의 특별함을 말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복잡하고 다단하고 미묘하고 시시각각 변화를 거듭하는 세계인 인간의 마음 하나를 집요하고 충실히 파고들어, 그 어둠을 한순간이나마 밝혀 보여주는 듯한 “불빛”을 독자 스스로 발견하게 한다. 누구에게나 “갑작스레” 꺼지기 마련인 그것은 그 자신이 되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는 듯이.
인용한 부분은 단편 <괜찮은 사람>의 도입부다. ‘그’는 ‘나’에게 청혼하듯이 함께 살고 싶은 집이 있다고 말하고, 우리는 함께 그곳으로 가는 도중이다. 하지만 조수석에 앉은 나는 내내 몸과 마음의 불편과 불안에 시달린다. “지난 일요일, 그가 나를 밀쳤다”는 사실 때문이다. 여기에는 한 편의 사실과 한 편의 의심이 뒤섞여 있다. 실제로 그가 나를 계단 아래로 밀었다는 것, 나를 밀게 된 그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됐다는 것. 결코 정확한 해석과 판단이 불가능해 보이는 장면이 “우리는 결혼할 것이다”라는 결연한 말로 이어지며 이 단편은 결혼에 대한 섬뜩한 알레고리가 된다.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단정 짓는 듯한 말은 사실 아무것도 판단하거나 결정하지 못한/않는 채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추락과 고양의 반복을 기꺼이 감당하게 되는, 나의 가장 친밀한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힘은 언제나 알 수 없이 우리의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다.
글 김나영, 송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