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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같은 행복
일러스트레이터 육공사
육공사, 604, 유꽁사라고 불리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취미에 관해 이야기해달라고 하니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저는 귀엽고 마음 쓰이는 것들을 모으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진 속엔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진 어떤 시절을 자극하는 물건으로 빼곡했다. 그것은 빈티지 인형이고, 오래된 피겨이며, 귀여운 토이카메라와 문방구 앞에서 한참을 발 동동 구르게 만든… 다마고치였다.
만나서 반가워요. 인사로 시작해 볼까요?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레이터 육공사예요. 1인 브랜드 ‘스튜디오604’를 운영하고 있고요, 카카오 이모티콘 ‘안 움직이는 오잉크’를 그렸어요.
오늘은 취미와 여가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취미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에 굳이 하게 되는 일 같아요. 마음이 좋아서 하게 되는 그런 일이요. 좀더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기꺼이 내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고도 행복하게 만드는 그런 일!
아, 명쾌하네요. SNS에 만화를 게시하고, ‘혼자 보는 일기’라는 메일링 서비스도 하고 있죠. 구독자들의 여가를 채워주는 일일 텐데, 그걸 생각하면 어떠세요?
너무 좋아요. 세 시간 남짓 작업해서 보내는 만화가 여기저기서, 아무 때고 읽힌다고 생각하면 작업에 쏟은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벌어들이는 기분이에요. 가만히 앉아서 어디든 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메일에 답장을 주시는 구독자 중에는 출근길 버스에서 읽는다, 자기 전에 읽는다, 하면서 그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럴 때 읽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되는 것도 좋아요. ‘출근길에 함께할 순 없어도 오늘도 익명의 독자분과 버스에서 수다를 떨었구나.’ 싶죠.
SNS를 통해 작가님 취미가 요가와 댄스라는 걸 알게 됐어요. 몸 움직이는 걸 좋아하시나요?
아니요(웃음). 정말 안 움직이는 편이에요. 집순이 대회가 있다면 입상할 자신이 있을 정도로 집을 좋아해요. 하루 종일 작업하며 앉아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보니 최소한의 운동에너지라도 쓰기 위해 찾아낸 나름의 몸짓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는 성가시지만 움직일수록 그 성가심을 잊어간다는 점이 재밌죠. 참고로 요가는 골반 위주, 댄스는 아이돌 위주로 하고 있답니다(웃음).
인터뷰에 앞서 숨겨둔 취미를 하나 알려 주셨죠. 90년대 장난감들을 모으고 있다고요!
‘리카짱’이라는 일본 인형과 미니어처, 가챠 토이, 다마고치, 마이크가 달린 카세트 레코더, 토이카메라, 캠코더 등을 모으고 있어요. 꼽아 보니 죄다 앉아서 가지고 노는 것들이네요. 20대 초반에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다마고치가 별 계기도 없이 문득 생각났어요. 혹시나 하고 중고장터에 검색해 봤는데 마침 판매 중인 게 딱 하나 나오길래, 보자마자 사야겠다 싶었어요. 패키지 모양이나 버튼 누를 때 감촉 같은 게 선명히 떠올랐거든요. 그걸 시작으로 모으다 보니 수집 범위가 점점 넓어졌어요.
인형이나 다마고치 같은 장난감은 흔히 ‘어린애들이 갖고 노는 거’라는 인식이 있어요. 그래서 ‘키덜트’라는 단어도 생긴 게 아닐까 싶어요.
다행히 그런 이유로 기분 상할 일은 없었지만 ‘어린애들이 가지고 노는 거’라는 표현에는 좀 아쉬움이 있어요. 뉘앙스가 “그거 뭐 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거~”잖아요. 어른과 어린이 둘 다 기분 나쁘게 만드는 비하적 요소가 섞여 있어서 유쾌하진 않아요. 저는 장난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애들 장난감으로 나오는 게 알록달록하고 동글동글 귀여운 걸 어떡해요. 그런 말씀 마시고 어른 것도 이렇게 좀 만들어 주면 좋겠어요.
부모님이 기함하실까 봐 몰래 모은다고 귀띔해 주셨는데, 이 인터뷰가 공개되면 어쩌죠?
괜찮아요(웃음). 부모님 몰래 모으는 이유는 장난감 수집하는 걸 숨겨서가 아니라 코로나19 이후로 제가 많이 어려운 줄 알고 계셔서거든요. 엄살을 조금 떤 적이 있는데 두 분 다 크게 놀라셔서 저를 안쓰럽게 여기고 계시죠. 그런 취급이 생각보다 따뜻하여 얼마간은 유지했음 싶은데, 제 컬렉션을 보면 기가 차서 웃지 않으실까 싶네요. 제가 장난감 좋아하는 건 이미 알고 계시지만 이 정도 규모인지는 모르셔서 아마 이 인터뷰를 본다면 ‘저것만 다 팔아도 먹고 살겠다.’ 하실 거예요. 근데 저 이거 못 팔거든요…. 당분간은 조금 더 숨기고 살겠습니다.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도 사람마다 방식은 좀 다를 것 같아요.
장난감 커뮤니티만 봐도 다양해요. 다마고치 육아일기를 매일 기록하시는 분도 있고 공략집을 만들어 공유하는 분도 있어요. 구경하다 보면 재밌긴 한데 저는 직접 가지고 노는 편은 아니고, 장난감으로 파생되는 다른 활동을 즐기는 편이에요. 가령 뜨개질로 다마고치 집을 뜬다든가 하면서요. 오히려 뜯기 아까워서 쭉 미개봉으로 두고 어쩌다 누가 플레이한 걸 구입하게 되면 잠깐 켜보는 정도지요. 제 수집은 예뻐서 혹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렇게 생긴 것이 제 수중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역할을 다한다 여기고 있어요.
해외 직구도 불사하신다고요. 이런 수고를 감안하고 계속 모으는 이유는 뭐예요?
명백히 소유욕과 기다림의 설렘 때문입니다.
가장 아끼는 장난감을 소개해 주실래요?
‘라쿠라쿠 다이노군’이라는 공룡 키우기 다마고치예요. 초등학교 2학년 때, 문방구에 들러 세일러문 스티커 인형 새로운 버전이 들어왔는지 확인하는 게 하굣길 루틴이었는데요. 그날따라 못 보던 민트색 게임기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사장님께 물어보니 “다마고치”라고 하시는데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어요. 저걸로 공룡을 키울 수 있다니! 그 모습이 집에 가서도 계속 생각나서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 지갑에서 만 원을 훔쳤어요. 어린 마음에도 부모님이 절대 안 사줄 것 같았나 봐요(웃음). 다음 날 문방구로 달려가 다마고치를 사 와서 신나게 가지고 노는데, 사준 적 없는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으니 엄마한테 바로 걸렸죠. 그래도 생각만큼 크게 혼나진 않았어요. 엄마가 되게 어이없어하신 기억이 나요.
그 장면이 선하게 그려져요(웃음). 한정판이나 연식에 대한 욕심도 있나요?
그럼요. ‘브라이스’라는 인형을 모을 때 극에 달했어요. 비교적 자주 발매하는데도 이름 앞에 ‘몇 주년 기념 컬래버레이션, 100체 한정!’ 이런 걸 달고 나오거든요. 덕후 맘을 잘 알아서 발매 몇 달 전에 사진부터 보여주고요. 그럼 발을 동동거리다가 발매하는 날 00시 00분 땡 하는 순간 카드를 긁는데, 저 같은 사람이 많아서 돈이 있어도 못 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도 포기를 못 하고 중고장터에서 프리미엄 가격으로 웃돈을 주고 사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집착에 가까워지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은 일찍이 타협하기로 했어요. 한정판은 금액도 엄청나기 때문에, ‘어렵게 한정판 하나 사느니 잔잔바리 여러 개를 취하자!’라는 것이 수집 모토가 되었죠.
구입하는 것도 그렇지만 관리가 어렵잖아요.
주로 옛날 제품이다 보니 색이 바래는 건 기본이고 깜빡하고 배터리를 끼워 둔 채 보관했다가 누액으로 인해 작동이 안 된다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요. 부지런해야 하죠. 저는 그렇지 못한 편이라 마음 아픈 상황도 많이 발생해요. 왜 항상 갖고 난 뒤엔 소홀해지고 마는 걸까요.
수집품이 쌓이면 쌓이는 대로 걱정스러울 것 같아요. 수많은 장난감을 앞으로 어찌할 생각인가요?
의외로 제가 지저분한 걸 두고 보지 못해서 붙박이장 하나를 싹 비워 넣어둔 상태예요. 그래도 계속 사다 보면 분명히 감당못할 날이 오겠죠. 다행히 지금은 만화 연재와 일에 더 집중하고 있어서 수집은 잠깐 쉬어가는 기간인데요. 조만간 창고로 쓰는 방을 정리하고 선반을 짜서 수집 공간을 만들어 보려고 해요. 그럼 수집은 또 시작되겠죠….
결코 놓을 수 없는 취미네요. 우리 인생에서 취미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일도 물론 즐거워서 시작했지만 모든 순간이 즐거울 순 없거든요. 그럴 때 돈이 안 돼도 좋은, 목적이 없어도 좋은, 그런 무용한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한눈팔지 않고 큰길로 다니면 어디든 빨리 닿겠지만, 나만의 비밀 아지트는 샛길로 다녀야만 찾을 수 있거든요. 취미란 언제든 생각날 때 들어가 콕 박힐 수 있는 마음속 아지트 같은 게 아닐까요?
샛길, 멋진 표현이네요. 그렇다면 육공사 작가님에게 장난감 수집이란?
원하는 걸 쉽고 빠르게 주는 자판기? 행복은 강도가 아니고 빈도라는 말이 있는데 수집을 하면서 작게 자주 행복하니 말 그대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닐 수 없어요. 커리어로 행복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노력이 성취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그런데 장난감은 사면 온다는 보장이 있거든요(웃음). 무엇보다 귀엽고요!
에디터 이주연
사진 육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