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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일지
대단한 일은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팬데믹 기간 동안 몇 차례 격리를 경험했다. 외국에 있는 연인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 입국 후 자가격리를 불사한 적도 있었고, 회사 전체가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서 직원들 모두 원치 않는 격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머릿속에 콩나물시루처럼 꿈틀대던 것이 이것이 혹시 인생의 대단한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었다. 격리는 절대 반가워할 일이 아니라며 나 자신을 다그쳐봤지만 속으로는 이미 신나고 있었다. 2주라는 긴 시간을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격리 기간 동안 하고 싶은 일들을 미친 듯 떠올리곤 했다.
‘《슬램덩크》 다시 읽기, 이광수 소설 읽기,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 영화 모두 보기, 턱걸이하기, <트윈 픽스>(1992) 보기, 차이콥스키 교향곡 매일 듣기, 쿠팡으로 셀러리 배송받아 마요네즈 찍어 먹기, 브로콜리 삶아 먹기….’
그러고 보면 나는 오랫동안 그런 것을 바라왔다. 일 이외에 무언가 지속해서 반복하는 행위, 흔히들 ‘덕질’이라고 하는 자세, 덕질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튼 그런 지속적인 관심사 하나쯤은 가지고 싶었다. 그런 것을 취미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뭐라도 할라치면 서류에 채워 넣어야 하는 ‘취미’란에 적을 만한 그런 걸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취미에 대해 생각할 때면 ‘독서는 생활이지 취미가 될 수 없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꼰대의 말씀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세상에 독서랑 게임 빼면 무슨 취미가 더 있을 수 있는지… 일주일에 얼마나 자주 해야 취미인지… 축구는 취미인지 특기인지…. 그동안 바빠서 그런 것을 잊고 살았는데, 어쩌면 격리 기간을 거치며 망설일 필요 없는 관심사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중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성공하지 못했다. 쿠팡으로 주문한 몸에 좋은 음식 재료들은 냉장고 안에서 몸에 안 좋은 재료로 변해갔다. 《슬램덩크》를 읽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이걸 재밌어서 읽는 건지, 읽기로 했으니까 읽는 건지. 다른 모든 행위에 의문이 들었다.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는 시간을 잊을 정도로 재밌었지만 세 시간짜리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하루는 21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감독의 또 다른 영화를 이어서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트윈 픽스>는 지루해서 다 보지 못했다. 무엇을 하더라도 나의 생산적인 두뇌는 늘 시간을 인식하고 있었고,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소설을 읽느라 시간이 가는 것이, 영화에서 지루한 장면이 흘러가는 동안 시간이 가는 것이 아까웠다. 이것을 보는 대신 차라리 다른 것을 해보자는 식으로 머리를 굴렸고, 결국은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턱걸이만 너무나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계단 올라가는 것처럼 턱걸이하기, 안 힘든 표정 하면서 턱걸이하기 등 이상한 턱걸이도 개발하게 되었다. 턱걸이 동영상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내줄까 하다가 자제했다. 격리를 통해 발견하게 된 나의 취미는 아마도 턱걸이였다.
팬데믹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두 가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는 우려와 불안이 가득한 현실적인 목소리였고, 이것은 가족과 친구, 자주 들르던 가게의 휑한 풍경 등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진짜 모습이었다. 집에 어린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집에 바이러스를 옮기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고, 어릴 때부터 마스크를 쓰고 자라는 아이들을 안타까워했다. 나 같은 경우는 팬데믹 때문에 여행을 다니지 못하는 부모님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고, 팬데믹과 함께 발길이 끊겼을 우리 주짓수 체육관 관장님을 걱정했다.
팬데믹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전혀 다른 목소리는 이것이 세상의 위대한 전환점이 되기를, 그리고 개인적 성찰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였다. 이런 긍정적인 목소리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인터넷 게시물로, 누군가 쓴 칼럼의 부분을 발췌한 이미지의 형식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한때 관람객으로 몸살을 앓던 도시가 점점 회복되어가는 사진이라든지, 유럽에 페스트가 발병하지 않았더라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글 따위였다 (그들은 모두 전염병을 피해 은둔해 있는 기간에 자신의 업적을 이루어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 이런 식의 긍정으로 가득 찬 사고방식을 무척이나 경계하는데, 첫째는 따스한 위로가 담긴 온정적인 말투 때문이고, 둘째는 이 모든 변화가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팬데믹이 종결됨과 동시에 다시 뿌옇게 변해버린 베네치아 운하의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올 것을 확신한다). 셋째는 세상의 모든 사건을 이런 식으로 좋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세상에 안 좋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전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
코로나19가 바꿀 건축, 코로나19 이후의 세상 등… 코로나19 종식을 기대하는 다양한 매체는 앞다투어 팬데믹에 대한 비전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그런 낙관적인 전망을 조심스레 피해 가며 살고 있다. 재택근무와 화상 미팅 등 코로나19의 많은 점이 사회를 바꾸어 놓았다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난 그것이 근본적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어 놓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어디서든 근무는 계속되었고 원래부터 힘들던 사람들은 더 힘들어졌다. 팬데믹의 이면에는 턱걸이 정도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격리 기간 동안에 유독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 격리된 첫째 날이었다. 유럽에 체류하던 내내 걱정하시던 부모님의 반응은 ‘드디어 내가 나설 때가 됐군!’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반찬을 만들고 아버지는 반찬이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운전했다. 늘 반찬을 가져다준다고 하면 필요 없다며 만류하곤 했는데, 이젠 거부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부모님은 뜨거운 냄비째 한가득 반찬거리를 챙겨서 아파트 현관문 앞에 두고 가셨다. “무사히 돌아왔으니 이제 2주만 잘 버티면 되겠다.” 아버지가 현관 너머로 말했고 작은 소리로 말하라며 아버지를 타박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복도식 아파트에서 다른 이웃이 들을까 염려되었던 것이다. 변화를 갈망하는 한편에는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라보지 않으려 애써보지만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들이 팬데믹을 지나며 가끔 보이곤 했다.
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 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