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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있는 생활
고사리가 있는 밤
고사리는 고사리속Pteridium 양치류의 통칭으로, 꽃이 피지 않고 포자로 번식하는 여러해살이풀을 일컫는다. 극과 사막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 분포하며 주로 숲의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자란다. 고사리는 조용하고 은근하다. 고사리를 좋아하는 마음도 그렇다.
‘타잔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 가지는 항구적인 접촉 욕구를 의미하는 것으로 프랑스 식물학자 파트리크 블랑 Patrick Blanc이 이름 붙였다. 창밖에 더 많은 나무가 보이기를 꿈꾸고, 집 안의 식물들이 더 무성히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설명하기에 딱 좋은 말이 아닌가. 자신을 ‘온화한 미치광이’라고 부르는 어느 식물학자가 자기 아파트 전체를 식물로 뒤덮는 동안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가을과 겨울의 내 침실을 떠올렸다. 고사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방. 보일러가 돌기 시작하고 가습기가 필요한 계절이 되면 나는 밤마다 침대 머리맡에 고사리들을 모아놓고 잔다. 물론 그럴 만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가습기 때문이다. 가을과 겨울을 나기 위해 들인 큰 가습기 두 개 중 온전한 내 것은 없다. 건조에 약한 식물들 시중을 들어야 하니 밤이고 낮이고 가습기가 돌아가는 식물 옆에 나도 바싹 붙어 생활한다. 식물들은 대부분 거실에서 지내니 밤이면 그중 몇 개를 잠자리 근처로 옮겨야 하는데, 큰 화분들을 밤마다 이고 지고 하는 것이 힘드니 자연스레 밤의 침실 가습조는 고사리군이 되었다. 그렇게 잠자리 곁에 들인 밤의 고사리는 뜻밖에도 정서적 충족감이 컸다. 매일 밤 잠들기 전 고사리로 무성한 숲에서 잠드는 기분을 상상했다. 그러고 나면 기분 좋은 꿈을 꿀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침대가 놓인 작은방 하나를 고사리로 가득 채우는 상상을 한다. 분명 근사할 것이다. 고사리들 속에 푹 파묻혀 잠들 수 있다면 가끔 찾아오는 불면도 사라질 것이다. 이 고요한 존재들은 일생 꽃 한 송이 피우지 않고 누구도 유혹하거나 해치지 않으며 이 땅에서 누구보다 오래 살아왔다. 그 신비로운 이야기가 내 어린 고사리들 속 어딘가에도 분명 비밀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깊은 밤, 숲에서 포자가 날리듯 잊힌 말들이 소리 없이 방 안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것들은 내 꿈에도 깃들 것이다. 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현실은 가진 고사리 여섯 개를 번갈아 물시중 드는 것만으로도 벅차지만.
집 안에서 자라는 고사리 중 맏이는 묘이고사리다. 고사리목 넉줄고사릿과의 양치식물로, 동아시아에서 자생하는 넉줄고사리를 중국과 일본에서 개량한 품종이라 한다. 흙 위로 드러난 뿌리줄기가 마치 발톱을 숨긴 고양이 발같이 생겼다 하여 이런 재미난 이름이 붙었는데, 비늘이라 부르는 회색빛의 솜털이 촘촘히 난 뿌리줄기는 진짜로 작은 털 짐승의 발 같다. 뿌리줄기란 뿌리 모양을 하고 땅속으로 뻗은 줄기의 일부로, 근경根莖이라고도 하며 양치식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작은 털 짐승의 발을 닮은 이 뿌리줄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흔히 고양이발톱 고사리라 부르는데, 영문명이 흰토끼발고사리White Rabbit’s Foot Fern라는 것을 보니 다들 보는 눈은 비슷한 모양이다.
뿌리줄기가 동물의 발을 닮은 고사리가 또 있다. 후마타고사리다. 상록넉줄고사리, 혹은 거미발고사리라고도 불리는 이 고사리의 뿌리줄기는 묘이고사리보다 훨씬 가늘고 길고 구불구불해서 정말 털이 부숭부숭한 거미발을 닮았다. 당장이라도 화분에서 가느다란 다리들을 움직여 기어 나올 것 같은 기이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 뿌리줄기를 또 약으로 쓴다고도 한다. 넉줄고사리의 뿌리줄기는 골쇄보骨碎補라 하여 햇볕에 말려 찐 후 잔털을 불에 태워 약재로 사용한다는데 효능을 찾아보니 그야말로 약장수의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다. 재미있는 건 관상용일 때 이것은 영락없이 거미발을 닮았는데, 약용으로 쓸 땐 녹용을 닮았다고 한다고. 거미발이든 사슴뿔이든 식물의 일부가 동물을 닮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실제로 묘이고사리와 후마타고사리를 번갈아 보고 있으면 나 없는 사이에 뭔가 재미난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들 고사리는 새순이 올라올 때 특히 시선을 끈다. 봄에서 가을 사이 온도와 습도가 적당하면 은빛 비늘 조각으로 뒤덮인 뿌리줄기에서 높은음자리표 같은 연녹색 작은 순들이 올라온다. 동그랗게 말려 있던 쌀알만 한 이파리가 며칠 사이 길게 줄기를 뻗어 말린 잎을 펼치며 점점 자라나는데, 연중 대부분을 성장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고사리가 실은 살아서 천천히 자라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넉줄고사릿과 식물들은 고사리 치고도 건조에 강해서 적당히 빛이 드는 실내 어디서든 무난하게 자란다. 문제는 좀처럼 까탈을 부리지 않다 보니 소홀해지기 십상이라는 것. 그 바람에 방치하기도 쉽다. 한두 번 실수라면야 사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큰 그릇에 물을 받아 하룻밤 푹 저면관수 하여 시들어버린 잎과 마음을 달랠 수 있겠지만, 그마저도 반복되면 아무리 성격 좋기로 소문난 고사리들이라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무난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고사리가 또 있다. 박쥐란이다. 이름도 생김도 고사리와는 거리가 멀지만 엄연히 고사리목 고란초과의 양치식물이다. 야생에서는 바위나 나무 등에 붙어 자란다고 하니 박쥐란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었는지는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사슴뿔을 닮은 조형적인 잎 모양이 매력적이어서 행잉 플랜트로도 인기가 많은 박쥐란은 파나마, 알시콘, 비푸카텀, 리들리, 그란데 등 종류도 다양한데, 3년 전 어느 온라인 식물 상점에서 주문한 내 박쥐란에는 따로 이름이 붙어 있지 않았다. 내 마음대로 아마도 비푸카텀이겠거니 했다(제일 흔하고 값도 싸다). 그런데 이듬해부터 잎끝이 두 갈래로 길쭉하게 갈라지는 모양이 이거 혹시 알시콘인가 싶더니(두근), 또 그다음 해에는 갈라진 잎끝이 넓어지는 것이 그란데인가도 싶다가(두근두근), 올해 들어서는 새로 나는 동글동글한 잎들이 역시 비푸카텀인가 하는 중이다(SNS에 사진 올려 ‘이거 이름이 뭔가요?’ 묻기만 하면 매의 눈을 가진 식물 선생님들이 곧바로 정답을 알려주시겠지만, 이름이 뭐 그리 중한가요. 그저 건강하게 자라다오, 가끔 나를 두근거리게도 하면서).
성격 좋은 고사리들을 키우며 자신감이 붙는 사이에도 한쪽에서는 까탈스러운 고사리들 때문에 발을 동동 굴렀다. 영원히 내 손으로는 잘 키울 수 없을 것 같은 블루스타펀과 하트펀은 왜 이름도 생긴 것도 그토록 매력적인 것인가. 마치 깊고 푸른 물속에서 흔들리듯 하늘거리는 우아한 이파리 사이로 도도한 청록빛이 은은하게 도는 블루스타펀은 왜 내게만 오면 그 무성한 숱과 싱그러운 잎들이 빠르게 시들고 사그라드는 걸까. 작은 사랑의 고백들처럼 귀엽고 독특한 하트 모양의 이파리들을 다정한 말풍선처럼 오밀조밀 촘촘히 매단 하트펀은 왜 내 손에만 닿으면 거무죽죽하게 마르며 생기를 잃어가는 걸까. 딴에는 분무도 하고 자리도 챙기고 물시중도 부지런히 들어가며 애지중지했건만 정녕 ‘펀’자 돌림 자매들은 이생에 나와 인연이 없단 말인가.
그러나 셀 수도 없다는 수많은 고사리 중에 내 적성에 맞는 고사리가 더 없는 것은 아니다. 나에겐 미역 고사리들이 있었다. 실처럼 가는 줄기 양옆으로 길고 여리고 보들보들한 이파리들을 촘촘히 펼치며 자라는 미역고사리는 넉줄고사리들에 비하면 훨씬 키우기가 까다로워서 직사광선에 두면 잎이 타고 물주기를 놓치면 쉽게 말라서 시들어버리곤 했지만, 그래도 지난 1년 함께 사계절을 나며 어느 정도 몸집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았더니 이제는 어떻게 키워야 할지 감을 잡은 기분이다.
오히려 도통 모르겠는 것은 정확한 이름. 미역고사리들은 유통명이 제각각인데다가 잎 모양도 사진마다 조금씩 달라서 도무지 내가 가진 고사리가 무슨 고사리인지 알 수가 없다. 푸른발고사리라는 이름은 분명 뿌리줄기가 푸른 빛깔을 한 누에의 발 같다 하여 붙여졌을 텐데, 이것을 누구는 북해도 청고사리라고 하고, 또 누구는 누에고사리라고 하고, 어디서는 대만 미역고사리라고도 하는데 정작 어느 이름이 진짜인지, 혹은 진짜 이름이 이 중에 있기는 한 건지 모르겠다. 함께 키우기 시작한 미역고사리 변이종 역시 유통명 이외에는 알 길이 없어서 둘 다 Polypodium Vulgare L.(미역고사리의 학명)의 가까운 사촌들이겠거니 한다.
늦여름을 지나는 동안 고사리들이 자랐다. 미역고사리는 첼로 스크롤 같은 새순을 부지런히 밀어 올렸고, 묘이고사리에서는 새 뿌리줄기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은회색 고양이 발 같은 줄기도 새순만은 연둣빛을 띄고 있었다. 박쥐란은 묵은 옷을 벗고 새 옷을 갈아입듯 큼지막한 영양잎을 두 장 냈다. 몸집이 절반은 줄어 속이 상한 블루스타펀도 이파리 뒷면에 오렌지색 포자낭을 촘촘히 매달았다. 그사이 나는 가습기를 꺼내 두었다. 곧 보일러를 돌리는 춥고 건조한 밤들이 올 것이다. 찻물이 끓고 빨래가 마르는 동안 번지는 습기가 반가운 날들이 올 것이다. 고사리들은 지난겨울보다 조금 더 자랐다. 내 겨울의 침대맡도 지난해보다 조금 더 무성해질 것이다.
글·사진 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