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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하시시박!
예쁜 하시시박
하시시박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최면에 걸리는 것 같다. 한 번은 출근 지하철 안에서 그녀의 사진 한 장을 휴대폰 화면을 통해 바라보다 ‘자유롭다’는 기분(혹은 착각)이 들었다. 아침이라 졸린 상태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내 발을 밟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마치 기분 좋은 꿈을 꾸다 잠에서 깬 것처럼 아쉬웠다. 사진 한 장이 그런 기분을 만드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이런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2011 SUNLEE
2011 UNTITLED
2013 UNTITLED
2014 DECEMBER
2014 AARON YOUNG
2011 GUSH
2011 FIREWORK
2013 BOYS
2013 WHOWHOBAND
2013 RYAN MCGINLEY FOR ELOQUENCE COVER
INTERVIEW
하시시박 (32)
이름이 예뻐요. ‘하시시’라는 말을 생소해서 검색해보니 ‘대마, 풀, 인도대마초’라고 나왔어요.
‘하시시’라고 검색하면 ‘HASHISH’라고 나오더라고요. 제 이름은 스펠링이 달라요. ‘HASISI PARK’이에요. 인도 여행에서 편의를 위해 만든 별 뜻 없는 예명이죠.
인도에는 언제 다녀왔어요?
고등학교 때, 잠시 머물다 왔어요.
고등학교 때 인도에 가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1학년 여름 방학 전부터 학교를 잘 안 나가기 시작했어요. 기본적인 예의와 사람에 대한 기준이 있었는데, 교권붕괴라든지 학교의 시스템이 말도 안돼 보였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장소에서 공부한다고 앉아있으면서 가장 중요한 건 다 놓치고 있단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부모님을 설득하고 제 나름의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뒀어요. 그리고 인도로 갔죠.
그 후의 이야기도 궁금해지네요.
인도에 가기 전에 뮤직비디오를 한 편 찍어서 출품하고 떠났는데, 인도에서 상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멀리 인도까지 갔는데, 상을 받으러 굳이 한국에 돌아가고 싶진 않아서 그냥 인도에 있다가 돌아왔어요. 돌아와선 계속 영상 작업을 이어 갔어요. 검정고시도 준비해서 수능도 보고, 대학에 가서 영화 연출을 공부했어요.
영화를 전공했는데 어떻게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영화 연출 4년제를 졸업하고, 광고와 뮤직비디오 쪽의 일을 했어요. 그러다 공부가 더 하고 싶어서 영국으로 떠났죠. 대학원 코스를 밟으며 공부를 하는데, 한 학기 다녀보니까 코스가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제가 딱히 상업영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사진을 시작했어요. 그전부터 취미로 사진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바이스VICE>매거진과 연결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하시시박이 찍은 영상도 봤는데, 사진에서 받은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다 보니 영상과 사진에 어떤 연관이 있을 것 같단 생각도 하게 돼요.
그건 아마 제가 직접 촬영하고 만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보통 영상을 찍으면 찍는 사람, 연출하는 사람, 편집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저는 혼자서 다 하니까 다른 사람의 시선이 들어가는 게 아무래도 적겠죠. 개인적으로 영상과 사진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마음가짐도 다르게 갖고 작업하는 편이고요. 사진에서는 디지털의 얕은 심도를 선호하지 않는데, 또 동영상에서는 그 느낌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사진을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적은 없었나요?
영화과 1학년 때, 사진 수업이 있었어요. 그것 외에 딱히 사진에 대한 교육은 받지 않았어요. 저는 영화도 필름으로 작업했던 세대인지라 16mm 카메라로 처음 카메라의 구조를 알게 되었는데 그때 당시 꽤나 헤맸던 거 같아요. 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사진 수업이 있었던 거고 스틸 카메라가 사실상 연습용이었던 거죠.
필름 카메라를 고집한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사실 말이 가진 뉘앙스의 차이인 것 같은데,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어요. 필름을 고집하지는 않아요. 제 작년까지는 필름 70퍼센트, 디지털 30퍼센트였는데, 지금은 거의 비중이 비슷해졌어요. 개인 작업을 할 때 디지털로 하진 않는데,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일을 하다 보니 디지털이 필요한 때가 있어요. 들어오는 일의 성격에 맞춰서 디지털이 어울리는 경우에는 그걸로 작업해요.
많은 시행착오 있었을 것 같아요.
여러 방향으로 실험을 많이 했어요. 필름은 디지털이랑 같은 매뉴얼을 놓고 찍어도 느낌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여러 상황을 만들어서 테스트했어요. 이 빛에 이런 색을 넣었을 때, 이런 게 나오는구나. 이 필름에는 습도가 중요하구나. 조명을 가지고 이리저리 실험해보기도 하고요. 그렇게 계속 찍고 연습하면서 나만의 매뉴얼을 만들었어요. 사실상 책에 다 나와 있는 매뉴얼이죠. 그런데 그걸 내가 눈으로 직접 보고 실험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어요?
<엘로퀀스ELOQUENCE>라는 잡지의 포토디렉터로 있어서 국내외 아티스트들을 주로 찍고 있어요. 해외 아티스트 촬영은 사실 긴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데, 짧은 시간 안에서 작업하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 같은 경우는 2분을 줬고, 줄리안 오피Julian Opie는 30초를 줬어요. 매체가 여러 개다 보니까 각 매체에 할당되는 시간이 있는 거죠. 그래서 라이언 맥긴리를 데리고 막 뛰어가서 여기 앉히고 저기 앉히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줄리안 오피는 사람들 너머로 카메라를 던지듯이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빠르게 찍었고요.
2분 동안 라이언 맥긴리 손을 잡고 뛰고 앉혀놓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라…. 그게 가능한가요?
저도 가능하지 않을 거 같았는데, 상황이 그렇게 되니 되더라고요. 이런 것들이 새로운 영역의 사진을 경험하게 해주고 있어요. 5분 내외의 시간에 누군가를 파악하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 쉽지 않아서 계속 연습하고 있는데, 재미있어요.
혹시 좋아하는 사진작가 있나요?
헬무트 뉴튼Helmut Newton이란 작가가 있어요. 항상 과도하게 글래머러스한 패션 사진을 찍는 작가예요. <보그Vogue>나 <바자Bazaar>의 화보도 많이 찍는 아저씨인데, 생긴 건 영화감독 우디 앨런처럼 생겼어요(웃음). 이 사람 사진에는 항상 유머가 있거든요. 근데 그게 대놓고 유머러스한 풍자가 아니고, 카메라 너머에서 찍고 있는 사람의 표정을 상상하게 해요. 그런 게 좋아요. 저도 제 사진에 늘 그런 트위스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재치가 될 수도 있고, 비꼬는 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걸 중심에 두고 작업을 하는 편이고요.
작업할 때,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영화를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영화감독이나 영화로부터 영감을 얻을 때가 많아요. 특히 혼자 영화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어떨 땐, 그게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정해진 시간에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직업이 아니라, 계속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머리를 써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영감을 받아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기도 해요. 아이디어를 계속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도 영화를 볼 땐, 내 얘기 같은 건 잊고 영화 속 사람들 얘기만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그래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소설 읽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영화 보는 얘기를 하다 보니, 취미가 궁금해요.
제가 가장 사랑했던 취미가 사진을 찍는 건데, 사진을 업으로 삼고 나서 취미가 없어졌다는 걸 알았어요. 그게 한이 되고 자신이 좀 텅 비어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취미를 가져야겠다’고 결심하고 열심히 취미를 찾아봤어요. 근데 쉽지 않더라고요. 진짜 취미는 내가 나를 놓고 그것에 빠져 즐길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그게 사실상 없는 거예요. 뭘 하든 작업과 연관이 지어지니까 그것조차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일과 전혀 상관없는 취미를 계속 찾다가 제가 어디론가 가고 있는 느낌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요. 음악을 들으면서 운전을 하거나,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그런 것들 있잖아요.
그럼 서울에서 좋아하는 거리가 있나요?
남산 소월길에서 시작해서 남대문 쪽으로 내려가서 시청, 광화문, 서촌까지 걸어가는 거 좋아해요. 그 길이 퇴근길인데, 집까지 한번에 가는 방법이 없어서 날이 좋으면 걸어요. 이태원에서 서촌까지 걸어가면 한 시간 정도 걸려요. 제가 성격이 급해서 걸음이 엄청 빠르거든요. 발이 안 멈춰(웃음).
웃으니까 수줍음 많은 아이 같아요. 텔레비전에서 사진 찍는 모습을 봤을 땐, 마치 용감한 여전사 같았는데말이죠.
사실 실제로 용감하고 그런 성격은 아니에요. 일을 할 땐 몰라도 일상에선 그렇지 못해요. 솔직하고 직설적인 편이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데, 사실 여성스럽답니다(웃음). 부끄럼도 많이 타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그러진 못해요. 요즘은 일을 하면서 전보다 좀 나아지긴 했어요.
요즘 하시시박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 딱 세 가지만 알려주세요.
하하. 뭔가 알고 물어보시는 것 같아. 음, 사랑, 사랑, 사랑?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린 거잖아요. 뭔가를 갖춰서 행복해지려고 하다 보면 더 행복해지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평소에 좀 부정적이다가 마음이 갖춰지면 굉장히 행복해져요. 좀 애매한 말인가요? ‘갖춰서 행복한 것’과 ‘행복한 후에 갖추는 것’. 요즘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많이 느껴요.
앞으로 계획은 어떤 게 있어요?
얼마 전부터 다시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인터넷 영화나 뮤직비디오가 될 수도 있어요. 어떤 식으로든 올해 안에 영상물이 하나 나올 것 같아요.
혹시 꿈 있어요?
저는 꿈은 없는 것 같아요. 꿈이란 걸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고, 의외로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라서 계획은 있지만, 꿈이라……. 글쎄요. 그냥 건강하게 죽는 거? 꿈? 그걸 꿈이라고 해야 하나. 그걸 목표로 후회 안 하고 나쁜 짓 안 하고 사는 거지 뭐. 그게 꿈이라면 꿈이죠. 나한테 떳떳하게 죽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하시시박을 만나러 가던 아침은 어둡고 추웠는데,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거짓말처럼 맑고 따뜻한 점심이었다.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를 걸으며, 여러 번 하늘을 봤고 ‘너무, 예쁘다’는 혼잣말을 몇 번 했다. 사무실에 돌아와 “하시시박 어땠어요?”라는 동료의 말에 나도 모르게 “너무, 예뻤어요.”라고 답했다. 예쁜 날이었고, 예쁜 사람이었고, 참 예쁜 눈을 보았다.
에디터 박선아
포토그래퍼 박소영 사진 하시시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