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ces Around Me

호주 멀럼빔비의 한승무, 그림책 작가 임효영

INTERVIEW

임효영 | 그림책 작가

얼마 전 준지, 준야 형제의 사진으로 남편이신 한승무 작가님 인터뷰가 《wee》에 담겼죠. 형제의 엄마이자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시는 작가님의 이야기도 궁금했어요.

어린이 책에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임효영이에요. 호주 동쪽 끝 바닷가, 멀럼빔비에서 묘임Myo Yim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락다운으로 집에서 아이들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요.

처음부터 온전히 남편과 둘이 해온 육아라 코로나19 기간이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어요. 아이들과 지난 8년 동안 전시나 공연, 심지어 강연까지 함께 했거든요. 울고 보채는 아이를 번갈아 안아주며 무대에 오르던 생각이…. 오롯이 아이들과 붙어 지내는 생활이 서로에게 피로할 때도 있지만 그만큼 아이들 사랑도 온전히 받을 수 있어요.

 

타국에서의 생활이 가족을 더 끈끈하게 만들었네요.

조금은 경계선에서 살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부담이 없기도 해요. 모든 것에서 거리를 두게 되니 온전히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의 울타리를 지킬 수 있는 강점도 있어요. 재작년 요란했던 산불로 큰 재난을 경험한 지 넉 달 만에 홍수가 났어요. 아름다운 바다가 순식간에 우리를 집어삼킬 수 있기에 언제나 립컬Rip-curl을 경계해야 해요. 이쯤 되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관점보다 경외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편이 맞아요. 매번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거든요. 물론 대부분의 일상 속에서 태평양을 유영하는 고래 떼나 밀물에 밀려온 철갑상어를 만나는 선물을 받아요. 대왕 가오리와 함께 수영하고 선홍색의 탐스러운 입을 가진 펠리컨과 눈을 마주치기도 하고요. 삶 속에 판타지가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죠. 심장과 심장을 맞대고 서로의 박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멀럼빔비식 허그를 하고, 대지를 아낄 줄 아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어디에 중점을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주는 곳이에요. 저는 형식이나 룰을 아주 싫어하는데 이런 건강한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스미는 것 같아요.

 

쓰고 그리신 《밤의 숲에서》는 연필로 그린 그림책이죠? 어떤 점에서 선택된 재료인가요?

아주 현실적인 의미로 쓰기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디지털화나 수채화 중심으로 색이 풍부한 작업이 주를 이뤘어요. 어느 날 돌아보니 연년생 아이 둘을 둔 엄마가 되어 있었고, 욕구가 넘치는 엄마는 늦은 밤 일어나 책을 읽거나 스케치를 하는 생활을 했죠. 그때부터 편의상 사용하게 된 게 연필이에요. 작업 후 정리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침실과 놀이방, 남편의 작업방 등을 피하면 결국 엄마가 있을 곳은 거실과 주방이더군요. 주방의 커다란 식탁에서 늦은 밤까지 하고 싶은 작업을 하다가 누가 울어도 걱정 없이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는 연필은 정말 좋은 재료예요. 손가락이나 헝겊으로 연필을 문지르고 지우개로 지워나가며 작업하는 걸 즐겨요. 되도록 톤을 많이 만들어요. 흑연 특유의 부드러움이 배가 돼서 다양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거든요. 다양한 흑연과 목탄으로 실험을 해봤지만, 결국 보통의 연필로 돌아왔어요. 제가 다루기에 제일 쉽더라고요.

 

그림책을 처음 어떻게 만들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요.

여러 매체에 그림 작업을 했지만 제 이야기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이민으로 호주에 10월 말 들어왔는데, 남편이 다니는 회사 전 직원이 모벰버Movember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한 달간 열심히 기른 콧수염으로 누가 멋진가 경연하는 대회지요. 엄청나게 내성적이고, 게다가 아주 어린, 직원들이 열심히 콧수염을 기르는 모습이 호주의 첫인상이었어요. 그리고 ‘헤밍웨이 되기’라는 경쟁 대회를 지역 신문에서 접하게 됐는데요. 수많은 할아버지가 선원복을 입고 수염을 기르고 있는 모습이었죠. 작은 일에 열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제게 큰 미소를 줬어요. 그래서 수염을 길러 그 속에 비밀을 숨기고 다니는 선원들의 이야기를 더미북으로 만들었어요. 남극 탐험가도 연구해 가며 첫 그림책을 향해 열심히 매진했죠. 하지만 사적인 경험의 요소가 부족하니 유기적인 관계성이 떨어지고 계속 보완해 나가기 일쑤였어요. 그러다 육아로 몇 해를 보냈고 와중에 외할머니의 소천이 제게 큰 파장을 일으켰어요. 지난 시절의 경험과 제 감정들이 정리되어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느꼈죠. 그래서 《밤의 숲에서》는 쉽게 구상됐고 머릿속에 있던 그림들부터 차근히 완성해 나갔어요. 할머니와 자연에 대한 소재의 친근함이 제 안에 있었거든요.

작가님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의 가족 안에서 나를 더 찾을 수 있었어요. 나다움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살면서 안정감을 느끼고 있고요. 현실적인 고민으로 엄마 작업자는 한창 일에 몰입했다가도 일어나서 밥을 하러 나가요. 그러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아쉬움이 말도 못 하게 커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며 저 자신의 일상도 지켜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으면 책상에만 앉아있는 사람이 될지도 몰라요.

 

생활 공간인 집에서 일하며 작가, 아내, 엄마, 나로서 균형을 맞추기 쉽지 않겠어요.

아이를 가진 초기에 고민이 많았죠. 그 당시엔 일의 비중이 크지 않았기에 균형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지금은 일부러 균형을 맞추려고 하지 않아요. 제가 맞출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경계 없이 그 사이 어딘가에서 흘러가는, 여러모로 부족한 지금을 즐기려고 해요. 아이들에게 비치는 엄마는 늘 작업하는 사람이지만 그게 저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밤의 숲에서》에서 동박 나무가 할머니에게 질문하는 대목이 나와요. “너는 엄마였어? 딸이었어?”, “너는 한때 적이었어? 편이었어?” 할머니의 대답은 “나는 그냥 나였어.”예요. 어떠한 역할로 잘 해낸다고 한들, 나는 그저 나인 걸요.

 

가족 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무엇인가요?

육아에 일관성이 중요하기에 그 점만은 지켜나가려고 해요.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고 과정 중에 아이들 마음이 다치지 않았나 되돌아봐요. 제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시간이 지났더라도 꼭 사과하고요. 그럼 준지가 등을 토닥여 주는데 여기에 마법이 있는지 마음이 녹아버려요. 남자아이 둘 치고는 굉장히 사이가 좋은데 그 안엔 둘만의 소통 방식이 있어요. 나중에 제가 “Say sorry.” 마법이라 칭했어요. 아이들이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요구하는데 상대가 정당하면 쉬이 사과해요. 그런 점에서 큰 배움을 얻었어요. 아이들의 언어를 훔쳐 가서 미안하지만, 이 소재를 다음 그림책으로 구상하고 있어요. 저희 가족은 주로 “아이고, 이 정도면 됐지.”라는 말을 자주 해요. 사랑이든 노력이든 돌아서면 부족한 것 같은 마음이 늘 들지만 만족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아이들이 제법 커서 이번 여름부터 함께 서핑을 배워보려고 해요. 적은 금액이지만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겠다고 선언하기도 했고요. 벌써 용돈을 모아서 댐을 짓겠다는 꿈을 꾸던데 이뤄질 수 있을까요?

 

와, 고래 똥의 꿈만큼 스케일이 남다르네요. 작가님은 어떤 아이였나요? 준야와 닮은 점이 많다고요.
자기 방식이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게 정확히 자리 잡지 않으면 내면에서 치열히 싸우는 시간을 가져요. 굉장히 내성적이지만 때때로 정확히 의사를 표현하고요. 아…, 때로는 절대 의사를 표현하지 않기도 하는 괴짜 근성을 지녔어요. 준야는 창가를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해요. 예전 준야는 말수가 적었는데 그런 아이를 보며 제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났어요. 나름 여러 생각을 하느라 바빴는데, 많은 이들이 저를 조용한 아이, 착한 아이로 표현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준야가 지금 하는 생각은 뭘까.’ 하며 더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 생각을 그림책으로 만든 것이 호주에서 출판된 《라자 스트리트》예요. 사실 책 속의 주인공은 준야이기도 하면서 저이기도 해요.

 

아이들과 함께 요리를 하거나 밭에서 직접 채소를 기르고, 집을 남편과 수리해 나가는 풍경 등 일상의 조각들이 작품 속에 녹아 있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인가요?

빈 도화지에 그림을 시작하는 과정과 매우 닮아 있어요. 기성품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직접 만들어 쓰는 것을 즐기거든요. 오래 걸리고 완벽한 결과물을 가져다주지 않지만, 그 모든 과정이 즐거워요. 그 안에 이야기가 더 풍부히 담기고요. 한때는 재활용센터나 빈티지 가게들을 탐방하고 다녔어요. 하지만 이런 것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콕 짚을 순 없어요. 영감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요. 오래전 뤽 베송 감독의 ‘창의력은 어떤 근육과 같아서 매일 연습하고 개발해야 한다’는 말을 좋아해요. 매일 근육을 단련하듯 그림 연습을 하려고 노력하거든요.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보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에 메모를 더 하게 돼요. 일상 사이에서 얻어 가는 것들이 있는 게 분명하죠. 좋았던 기억도 나빴던 기억도 작업에 큰 자양분이 되고요.

 

어린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감히 제가 느끼는 감정을 그림책에 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림 속 인물을 보면서 ‘나도 이런 표정을 하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매우 기쁠 것 같아요.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을 한 번 안아주고 ‘지금 너의 그대로가 좋아!’ 하는 마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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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지명

Photography Sem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