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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PICTURE SPEAKS
BY ITSELF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고흐의 자화상 앞에서 나는 우뚝 멈췄다. 그림은 강렬한 흡인력으로 내 발을 붙들었다. 미술관이라는 비일상적인 공간, 번잡스러운 관람객, 미묘하게 울리는 소음, 허공의 냄새. 이 모든 것이 증발하고 나와 그림만이 남았다. 1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나는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다. 반 고흐 앞에서.
삶과 예술의
연결고리
구두, 1888, 캔버스에 유채, 45.7 x 55.2cm
고흐의 그림을 보면 내면에 잠자고 있던 감정이 꿈틀댄다. 치열하게 고뇌하던 한 인간의 절실함이 느껴지기에 그렇다. 그는 매혹적인 자신의 그림들과는 다르게 행복한 삶을 꾸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그림과 편지들은 세상에 남아 섬세한 감정으로 이야기를 건넨다.
“사람을 바보처럼 노려보는 텅 빈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그 위에 무엇이든 그려야 한다. 너는 텅 빈 캔버스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모를 것이다. 비어 있는 캔버스의 응시, 그것은 화가에게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캔버스의 백치 같은 마법에 홀린 화가들은 결국 바보가 되어버리지. 많은 화가들은 텅 빈 캔버스 앞에 서면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에 텅 빈 캔버스는 ‘넌 할 수 없어.’라는 마법을 깨부수는 열정적이고 진지한 화가를 두려워한다.”
–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는 삶도 캔버스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삶의 순간에도 여백이 있으며 텅 빈 캔버스를 마주하듯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때가 있다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더 열렬한 몸짓으로 감정 하나하나를 그림에 담고자 애썼다. 팔레트에서 기쁨을 창조하며 성실하고 진지하게 그림으로 이야기했다.
그림으로
엿보는 가족
감자먹는 사람들, 1885, 캔버스에 유채, 82cm x 1.14m, 반 고흐 미술관
누군가는 이 그림을 ‘무의식의 가족’이라고 설명한다. 맨 오른쪽에 앉아 눈을 내리고 차를 따르는 우울한 표정의 여성이 고흐의 어머니이고 왼쪽에 앉아 그녀의 슬픔을 바라보는 이는 고흐 자신인 것이다. 그리고 자식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는 어머니. 고흐의 유년 시절을 거슬러보면 그림에 담긴 음울한 기운이 이해된다. 그가 태어나기 1년 전 ‘빈센트’라는 형이 어머니의 배 속에서 죽었다. 그녀의 기대와 사랑은 고통으로 변했고, 마치 죽은 아이를 대신이라도 하듯 고흐에게 형의 이름을 그대로 주었다.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추모일을 지킨 그녀는 스스로 불안했고, 복잡한 심리 상태로 고흐에게도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던 거 같다. 부모의 애정을 받지 못한 아이는 그림처럼 끊임없이 엄마의 표정을 지켜보며, 엄마를 웃게 하려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고흐를 유일하게 신뢰하고 인정해준 동생 테오의 존재다. 테오는 고흐를 구원했고 화가의 세계로 인도했다. 형제는 17년 동안 600여 통의 편지를 나눴다. 고흐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그림에 예술혼을 담을 수 있었던 건 테오라는 버팀목 덕분이었다.
그림의
다른 이름, 감정
해바라기, 1888, 캔버스에 유채, 91×72cm, 노이에 피나코텍
고흐가 그림을 그리던 당시 직업 화가가 3,500명이 넘던 시대다. 쏟아지는 그림들 사이에서 관심을 받지 못한 고흐는 자유롭고 자족적인 화가들의 공동체를 오랫동안 꿈꿨다. 화상인 동생 테오의 지원 아래 고갱과 함께 아틀리에를 만들기를 희망했다. 그리하여 그해 고흐가 그린 모든 그림에는 그 기대감이 드러나 있다. 고갱과 함께 살기 위한 노란 작업실을 해바라기 그림으로 장식했다.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이것은 환한 바탕으로 가장 멋진 그림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라고 썼다. 해바라기를 보며 소원했을 그의 꿈을 그려본다. 해바라기를 그리던 그의 마음, 눈빛, 표정을 상상해본다. 새로운 설렘을 안고 해바라기를 캔버스에 담아냈을 것이다. 그림 속 해바라기는 마치 나아가야 할 길을 밝게 비추는 태양 같다. 더불어 종이를 가득 메운 노란색의 활기찬 붓질에서는 흥분마저 전해진다.
“고갱과 함께 우리들의 작업실에서 살게 된다고 생각하니 작업실을 장식하고 싶어졌거든. 오직 커다란 해바라기로만 말이다. 네 가게 옆에 있는 레스토랑이 아주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걸 너도 알겠지. 나는 그곳 창문에 있던 커다란 해바라기를 늘 기억하고 있다.”
–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텅 빈
두 의자
파이프가 놓인 빈센트의 의자, 1988, 캔버스에 유채
93.5 x 73.5cm, 내셔널 갤러리
고갱의 의자, 1888, 캔버스에 유채, 90.5 x 72.5cm
반 고흐 미술관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고갱을 존경하던 고흐는 숙제를 허락받는 학생처럼 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차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간섭하며 생활 패턴도 함께하길 바랐다. 서로가 추구하는 그림의 이상향이 달랐기에 고갱은 테오에게 “우리는 성격이 너무 달라서 떠나야만 한다.”라고 편지를 썼다. 고갱이 아를을 떠날 무렵, 고흐는 불안과 좌절감에 시달리며 자신의 귀 끝을 잘라 정신발작의 멍에를 쓰게 된다.
사진 속 두 의자는 고독의 은유와 대조의 미학을 보여준다. 예전에는 둘이 앉아 이야기하는 곳이었지만 그림 속 의자는 비어있다. 나무로 된 고흐의 의자는 소박하며 그가 사용한 듯한 파이프와 담배 주머니가 놓여있다. 반면에 고갱의 의자는 화려하고 열정과 이성을 보여주듯 촛불과 책이 놓여있다. 자신의 의자에 칠한 노랑과 오렌지색이 밝은 낮과 희망을 의미한다면 빨강과 초록을 칠한 고갱의 의자는 밤과 사라진 희망을 떠오르게 한다. 다른 가치관을 가진 친구와의 불화로 상처투성이가 된 마음을 두 개의 대조적인 그림으로 표현했다.
반짝이는 밤하늘은
나를 꿈꾸게 한다
별이 빛나는 밤, 1889, 캔버스에 유채, 73.7 x 92.1cm, 뉴욕 현대미술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고흐는 스스로 생레미 근처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아를의 사람들은 고흐가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시장에게 진정서를 건넸고, 감시원이 붙은 감금 생활은 그에게 큰 상처를 줬다. 사회에서 소외됐다고 느낀 고흐는 그곳에서 특별한 치료를 받지는 못했지만 혼자 떨어져 지내며 서서히 자존감을 되찾았다. 보호자와 함께 야외로 나가 그림 그리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는데, 주변에 있는 밀밭과 포도밭, 올리브 나무와 사이프러스나무를 통해 자연의 신비로움에 내면을 담고자 했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별이 빛나는 밤’을 보고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빛나는 별과 꿈틀거리는 달, 소용돌이치는 푸른 하늘과 수직으로 솟아있는 사이프러스는 너무나 주관적이다. 감정으로 세상을 파악하고 소통하는 아이들이 자신이 느끼고 마주하는 감정을 손이나 목소리에 담듯이 말이다. 자기 내면을 독창적인 표현으로 담아낸 밤하늘에는 그 시린 마음과 열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고통받는
영혼
자화상, 1890, 캔버스에 유채, 65 x 54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고흐의 자화상을 모아 놓고 보면 이것이 한 사람의 얼굴인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자신의 얼굴과 같게 그리기보다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에 중점을 둔 듯하다. 이 그림은 고흐의 마지막 자화상이다. 희미한 배경 속에서 인물이 파도치듯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처럼 음산하다. 한 곳을 정확하게 응시하는 날카로운 시선과 굳게 다문 입은 고통을 인내하는 예술혼이 지나치게 선명해 가슴이 시리다.
이상과 현실의 혼란 속에서 고흐는 화가의 길을 택했다. 그림을 향한 열망은 고통이 뒤따르는 일이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지만 공감받지 못했고 좌절과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쩌면 그 고통과 외로움을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슬픔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삶의 마지막까지 그림에 영혼을 담아냈다. 그리하여 고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남긴 이 말처럼.
“picture speaks by itself.”
반 고흐에게 영감을 준
화가와 그림
이삭 줍는 여인들, 1857, 캔버스에 유화, 83.82 × 111.76cm, 파리 오르세미술관
장 프랑수아 밀레
고흐는 밀레를 정신적 안내자라고 부를 정도로 존경했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고흐는 모사를 하며 자신의 상상력을 표현하곤 했는데, 밀레의 그림을 즐겨 그렸다. 농부의 아들이던 밀레는 가난하고 지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농민들의 생활에 애정을 품었다. 고흐는 잔잔하고 소박한 밀레의 그림에 영향을 받아 ‘감자 먹는 사람들’, ‘구두’ 같이 평범하고 고된 삶을 그려냈다.
사도 바울의 모습을 한 자화상, 1661, 캔버스에 유채, 77 x 91cm,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램브란트 판 레인
빛과 명암으로 돋보이는 그의 그림들이 많지만,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건 100여 점의 자의식이 담긴 ‘자화상’이다. 청년 시절의 당당함과 노년 시절의 늙고 초라한 모습까지 꾸밈없이 그려낸 자화상을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의 일대기를 본 것처럼 숙연해진다. 고흐와 램브란트는 자아 성찰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걸 자신의 얼굴이 담긴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캔버스에 유채, 260 x 325cm, 루브르박물관
외젠 들라크루아
고흐는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의 색채 기법을 스승으로 삼았다. 들라크루아는 낭만주의 화가로 단테, 셰익스피어, 괴테 등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림을 그렸다. 형태보다 풍부한 색채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요즘 작업하는 방식은 인상파 화가들보다는 들라크루아의 생각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즉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확하게 복제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색채를 더 임의적으로 쓰고 있다.”
–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두여인, 1901, 캔버스에 유채, 73.7 x 92.1cm,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폴 고갱
고갱은 서머싯 몸의 책 《달과 6펜스》로 알려져 있듯이, 36살의 나이로 직장과 가족을 버리고 오직 그림에만 전념했다. 고흐는 고갱을 위대한 화가라고 평가했고, 함께 살며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꿨다. 합숙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 이후로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그림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고갱은 건강한 원시성을 찾아 외딴 섬에서 주로 그림을 그렸다. 단순하고 넓은 색면에 강렬한 색을 사용하여 상징적이고 초자연적인 그림을 그려 독특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갔다.
사이프러스, 1889, 캔버스에 유채, 93.3 x 74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반 고흐를
말하는 예술
러빙 빈센트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맨 | 애니메이션 | 영국 외 | 95분
고흐의 그림을 사랑한다면 꼭 봐야 할 영화다. 영화에 들어가는 63,000여 그림은 2년 동안 캔버스 유화로 그려졌으며, 그의 그림 기법을 재현했다. 흥미로운 스토리를 제쳐두더라도 고흐의 그림으로 그의 삶을 바라보는 건 충분히 특별하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글 빈센트 반 고흐, 옮김 신성림 | 예담
고흐의 그림을 더 애정할 수 있는 건 그가 남긴 편지 덕분이다. 주로 편지를 나눈 대상은 동생 테오지만 어머니, 고갱, 여동생 윌 등에게 쓴 편지도 기록되어 있다. 편지를 통해 그림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 지독한 사랑, 고통과 광기, 삶에 대한 성찰을 전달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진솔한 내면이 담긴 편지들은 마치 자서전 같은 느낌도 든다.
반 고흐
글ㆍ그림 바바라 스톡, 옮김 이예원 | 미메시스
만화가가 쓴 반 고흐의 생애. 파리에서 아를로 떠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고흐가 남긴 편지들을 읽고 인상 깊은 장면과 그의 생각을 선별했다. 이후 고흐가 머문 곳을 직접 방문했고 사용하던 소품들을 고증하며 그림을 그렸다. 작가만의 생생한 그림과 시선으로 담담하게 고흐의 삶을 담았다.
어린이를 위한 반 고흐
글 실비아 뤼티만, 그림 로렌스 사틴, 옮김 노성두 | 다섯수레
고흐를 믿고 지지하던 동생 테오가 이야기하는 형, 반 고흐의 그림. 고흐의 찬란한 작품들을 시간 순서대로 풀어준다. 원화에 가까운 이미지로 고흐의 일상을 따라가며 섬세하게 그림을 설명해준다.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어린이들과 보기에 좋은 책이다.
에디터 김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