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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크는 아이들 덕분에
ⓒ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
아이를 깡시골 시할머니께 맡겨 놓고 일을 하는 후배가 어느 날, 걱정을 털어놓았다. “할머니께서 아이에게 숫자 가르친다고, ‘할매 따라 해바라. 한나, 둘, 서이, 너이, 다스.’ 이러세요. 나 몰라.” 그러자 자녀가 다 성인인 선배 언니가 코웃음을 쳤다. “애들이 어른 말하는 거 듣고 배우는 줄 아니? 행동 보고 배우지.” 그땐 나도 아이들이 어릴 때라,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랐다. 아이들은 내가 말로 가르쳐주는 걸 배우지 않았다. 내가 보여주는 걸 보고 배웠다. 아이를 좋은 사람으로 키우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래도 한 이십 년 가까이 아이를 키우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나만 바라보며 나처럼 크는 아이들 덕분에 옛날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영어도 아이들 영어 그림책 읽어주느라 확 늘었고, 바른 자세 시범을 보이며 살았더니 목 디스크 증세도 훨씬 좋아졌다. 착한 여자가 되고 싶었던 옛날엔 억울해도 참고, 화가 나도 참고, 심지어 먹을 것도 참고 살았는데, 딸 엄마로 살면서 요즘은 화낼 줄도 알고, 기꺼이 손해 볼 줄도 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콜라를 입에 달고 살지 않으며, 세상의 작고 여린 것들에 대해 점점 친절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콱 굶고 될 대로 돼라 하루 종일 자버리고 싶은 날도 억지로 일어나 먹을거리를 챙기고, 일상을 버텨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시 살 만한 힘을 얻곤 한다. 누군가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는데, 내 생각엔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모자란 사람에게 아이를 보내준 것 같다. 인간 좀 되라고!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며 자란 것은 나와 우리 가족이다.
산딸기 크림봉봉
글 에밀리 젠킨스 | 그림 소피 블랙올 | 옮김 길상효 | 씨드북
‘뉴욕 타임스 선정 2015 올해의 그림책’답다. 18세기부터 21세기까지 산딸기 크림봉봉 디저트라는 똑같은 요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여러 지역, 여러 가족을 통해 가르쳐주는 지식 그림책이다. 처음엔 계속 엄마와 딸이 등장한다. ‘엄마와 딸, 노예 엄마와 노예 딸 등이 냉장고도 없이 직접 소에게서 우유를 짜가며, 딸기를 따가며 만든다. 그러다 21세기가 되면 아빠와 아들이 만들고, 다양한 인종의 이웃들이 와서 함께 먹는다.’
이 사랑스러운 책을 이렇게 설명하려 한 내가 원망스럽다. 조리 도구와 집안 살림의 변화, 거리 풍경과 사람들의 옷차림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마치 일러스트집을 보는 것 같다. 그렇게 바뀌면서도 늘 같은 것은 산딸기 크림봉봉을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 얼마나 달콤하기에 저런 표정이 되나 궁금해서 책에 나오는 방법 그대로 만들어본 친구가 있다(아이를 키우는 동안 별걸 다 해본다). 그 친구 가족의 말로는 “다른 간식이 없던 시절에는 달콤했겠어. 쩝.” 미국 남부 농장 장면에서 식탁 위 천장에 뭔가 넓적한 널빤지가 있는 그림을 놓치지 마시길. 노예 소년이 벌레도 쫓고 선풍기 삼아 식사 시간 내내 흔들어대던 대형 부채다!
엄마 왜 그래
글 김인자 | 그림 한상언 | 단비어린이
초등학생 녀석들이 친구 집에 몰려가 우당탕 쿠당탕 놀다가 혼난다. “좀 조용히 놀아!” 아이들은 조용히 엄마 흉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자꾸 엄마 친구 아들과 나를 비교한다니깐.” “우리 집에선 공부 잘하는 오빠가 왕이야. 뭐든지 오빠 맘대로야.” “우리 엄마는 내 꿈이 뭔지 관심도 없어. 아이돌 가수는 절대 안 된대.” “나는 열심히 하는데, 더 열심히 하래.” 누구네 엄마가 더 나쁜가? 그러다 한 친구가 말한다. “느네 엄마는 그래도 말할 수 있잖아. 우리 엄마는… 장애인이야.” 갑자기 숙연해진다.
“그래서 글로 잔소리 한다고!” 보여주는 공책에는 하루 몇 장 문제집 풀기부터 숙제 체크, 영어 단어 외우기, TV는 5분만 보기…. 끝이 없다. 어휴, 어떤 집이건 엄마 아빠 잔소리는 똑같구나! ‘아, 엄마. 왜 그래애애.’ 저절로 한탄이 나온다. 동시에 웃음도 빵 터진다. 개인적으로 ‘장애인’이 나오는 그림책 중에 최고라고 생각한다. 도와주자, 이해하자 그런 태도가 아니다. 그냥, 우리 모두는 똑같다.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
글 구스노키 시게노리 | 그림 이시이 기요타카 | 옮김 고향옥 | 베틀북
표지의 아이는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책에는 이 옆모습이 여러 번 나온다. 아이는 당황했다가, 슬펐다가, 화났다가, 급기야 눈물이 글썽글썽한다. 왜? 아이는 늘 혼나기 때문이다. 엄마에게도 선생님에게도 혼난다. 어떤 상황에서 혼나는지가 줄거리인 셈이다.
그림책 강연을 할 때 이 책을 소개하면 십중팔구 우는 분이 있다. 어른 보기엔 혼나야 할 상황이지만 알고 보면 혼낼 일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는 잘해보려고 애쓴 상황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혼내던 내 아이’가 생각나서 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눈물이 터지는 페이지도 비슷하다. 칭찬을 들은 아이가 이불을 뻥 차고 자는 장면이다. 앞부분에서 혼났던 아이는 이불 속에 꽁꽁 숨어 있었다. 이제 “어휴, 이 녀석아. 엄마가 이불 차면 감기 걸린다고 했지?” 엄마가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 여전히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걸 확신하는 아이는 자신만만하게 이불을 걷어찬다. 아이가 사고를 치는 것은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거나,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어른은 눈물이 난다. 아이도, 어른도 운다. 성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손으로 우리 집을 지어요
글·그림 조너선 빈 | 옮김 유사랑 | 주니어김영사
감히 내가 최고의 육아서라고 꼽는 책이다. 책 줄거리는 단순하다. 한 가족이 일 년 동안 직접 자기네 집을 짓는 이야기다. 직접 설계하고, 땅을 파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작은 집을 짓는다. 그동안 가족은 캠핑트레일러에서 산다. 별 사건이나 위기도 없다. 엄마 아빠가 집을 짓는 공사장에서 아이들은 뛰어놀고, 부모님을 돕기도 한다. 어른이 가족의 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키즈카페에 ‘격리’되지 않고 가족 옆에 있는다. 심지어 엄마는 그 사이에 임신을 하고, 동생을 낳는다(캠핑트레일러에서!).
상황 때문에 가족의 일정이 미뤄지지 않는다. 함께 있고, 함께 살아간다. 책 마지막을 보면 이 이야기는 실제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담이다. 그림책의 장면들과 똑같은 어린 시절 사진들이 있다. 조너선 빈 작가는 이후 이 집에서 다섯 남매가 공부하고 살던 후속 이야기를 썼다. 작가의 영감을 자극하고, 일생을 버텨나갈 힘이 되었던 시간들이다. 특별한 배움이 있지 않았지만 가장 특별한 것을 배운 시간. 부모님은 선생님이 아니었지만, 모든 것을 가르쳐주셨다. 당신들의 삶을 통해. 그리고 나눠준 사랑을 통해. 아이를 교육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물론 재미있다!)
한밤중에 강남귀신
글·그림 김지연 | 모래알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학원에 있는 것이 괴롭다지만, 단언컨대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부모도 좋다. 돈 아끼고, 어딜 보낼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없는 돈 아껴 밤늦게까지 학원에 보내는 이유는 단 하나. ‘너 잘되라고’. 하지만 학원에 보낸다고 잘되는 게 아닌 줄 알기 때문에 부모는 또다시 고민한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건 뭘까?
‘한번 자면 한 오백년 자는 잠귀신 노리’가 문득 잠에서 깼더니, 그곳은 한밤중에도 번쩍번쩍하는 강남! 일하는 사람도 많고, 학원에 아이들도 많다. 눈이 퀭하고 흐느적흐느적 귀신 같은 친구가 있길래 반가웠는데 알고 보니 잠이 부족해서 걸으면서도 졸고 있는 아이 자미였다.
“사람은 낮에 놀고, 귀신은 밤에 놀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밤에 잠을 안 자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잠귀신 노리의 한탄에, 엄마 아빠도 한탄하고 싶다. “이렇게 공부를 시키는데도 성적이 안 오르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잠귀신 노리가 사람들을 재우기 위해 찾아낸 방법은 뭘까?
왜요?
글 린제이 캠프 | 그림 토니 로스 | 옮김 바리 | 베틀북
이 시대 대한민국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아이의 자기 주도성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다. 아이가 세상과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많아 자발적으로 그 호기심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알아서 공부하고 결과도 좋으면 얼마나 부모 자식 윈윈이겠는가. 하지만 때로 호기심은 어른을 괴롭힌다.
여기 궁금한 것이 너무 많은 릴리가 있다. 하루 종일 묻는다.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아빠는 지치지만, 아이의 호기심은 늘 소중하다. 왜? 외계인을 물리치니까! 마을을 침공한 외계인에게도 릴리가 끝없이 물어댄 것이다. “왜 왔어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아이가 물을 때 기꺼이 대답해주자. 사춘기가 되면 그 “왜요?”는 곧 “몰라.”로 바뀔 테니까. 어쩌면 한번쯤 다시 “왜요?” 묻기도 한다. “왜요? 그걸 나한테 왜 물어요? 내 생각이 왜 궁금한데요? 신경 꺼줄래요?”
에디터 김현지
글 전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