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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고 싶은 도시
ⓒ내 토끼가 또 사라졌어!
뉴질랜드의 캠핑카, 파리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한 달씩 산 적이 있다. 사람들은 여행의 맛을 아는 가족이라고 부러워했지만, 실상은 비행기표가 비싸니까 한 번 갔을 때 오래 있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1박 2일 짧은 여행은 거의 가지 않고 한꺼번에 길게 여행한다. 신용카드로 마일리지를 모아 항공권을 업그레이드하고, 현지식을 먹는다.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아이들과 의논하고 고민하는 게 행복하다. 나는 이왕이면 영어권에 가고 싶다. 《영어 그림책의 기적》 저자로서 하루 종일 영어 그림책이 가득한 서점과 도서관에 파묻혀 있길 원한다.
괜찮은 중고 서점에서 발견하는 ‘상태 최상’ 중고도 좋지만, “사랑하는 나탈리에게. 생일 축하한다. 증조 할머니가”처럼 공들여 쓴 필기체 메모도 좋다. 그리고 시골보다 오래된 큰 도시가 좋다. 바닷가에서만 날뛰던 아이들이 이제 좀 자라서 미술관도, 레스토랑도 갈 만하다. 오래된 도시, 공원의 둥치 굵은 나무들의 운치야 말해 무엇하랴.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타기 좋은 도시면 좋겠다. 이방인이 고작 한 달 살면서 버스를 타고 다니려면 노선 외우기도 빠듯하겠지. 조금 느리지만 풍경과 바람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주차 걱정도 없는 자전거가 더 편할 것 같다.
진지하게 구글맵 항공샷으로 구경해본다. 그 도시엔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로 동네 이름을 넣어보기도 한다. 그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 무엇보다도 그림책을 읽는다. ‘해리포터’ 영화를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에게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가는 기차가 서는 킹스크로스역 9와 3/4 플랫폼은 서로 다른 느낌일 테니까. 아무리 낯선 공간도 내가 스토리를 담고 추억을 심으면 어느새 정다운 곳이 될 테니까.
자, 이제 자전거 타기 좋은 옛 도시로 가서 살아보기로 정했으니, 자전거만 배우면 된다!
내 토끼가 또 사라졌어!
글·그림 모 윌렘스 | 옮김 정회성 | 살림어린이
코끼리와 꿀꿀이, 비둘기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모 윌렘스는(칼데콧상을 세 번이나 수상했다!) 뉴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작가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 토끼 시리즈에서 아예 브루클린 거리 사진을 직접 배경으로 쓴다. 트릭시가 아빠랑 함께 걷는 공원은 프로스펙트 파크고, 트릭시의 학교 주소는 PS 107, 1301 8th Avenue다. 파크 슬로프 도서관 마당에는 아예 토끼 인형 동상이 있고, 뉴욕의 많은 도서관들은 책 속 현장으로 떠나는 투어 행사를 종종 진행한다. 영화 촬영지 투어는 들어봤어도, 그림책 현장 투어라니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언젠가 뉴욕을 배경으로 한 그림책들을 모아서 한꺼번에 기획투어를 하고 싶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서 데이비드 위즈너의 《구름공항》에서 나온 구름을 만드는 공장이 어디쯤 있을지 보고 싶고, 이젠 사라진 쌍둥이 빌딩이 있던 곳,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걸어간 남자》 필립 쁘띠를 추억하련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기 전에는 《그래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의 주인공 돼지 소녀 올리비아를 다시 한번 보고 가는 거야. 아, 상상만 해도 설렌다. BTS 부럽지 않은 나의 그림책 아이돌들!
시골 쥐의 서울 구경
글 방정환 | 그림 김동성 | 길벗 어린이
내 친구들은 대체로 “어디에 사는지 내 마음대로만 된다면야 아이들 어릴 땐 도시(그것도 강남!),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하면 나는 한가롭게 시골에서 살고 싶어.”라고 한다. 나는 외모는 컨트리 스타일이나, 취향은 전형적인 시티걸이라 친구들과 반대로 “아이들이 어릴 땐 시골, 커서는 도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동성 작가의 그림책을 보노라면 “역시 사람은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시골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넋 놓고 보다가 줄거리를 놓칠 정도다.
이 책은 시골 쥐와 도시 쥐가 서로 사는 곳을 바꾸어 방문하는데, 시골 쥐가 고양이에게 쫓기고 나서 “역시 시골이 최고야.”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이솝 우화의 우리나라 버전이다. 시대 배경은 전차가 땡땡 종을 울리며 지나다니던, 서울이 아니라 경성이던 시절. 김동성 작가의 다른 책 《엄마 마중》의 그 시대다. 도시의 바쁜 삶과 시골의 한가로움이 앞뒤 면지만 봐도 확 느껴진다.
파리의 엄마 뉴욕의 엄마
글 플로랑스 마르스 | 그림 폴린 레베크 | 옮김 권지현 | 길벗스쿨
프랑스의 두 엄마가 뉴욕으로 이사하면서 두 나라의 교육 방식과 가치관이 너무나 다른 것에 충격을 받는다. 한마디로 파리에서는 부모의 집에 아이가 살고, 뉴욕에서는 아이의 집에 부모가 산다! 파리 부모들은 엄격하고 칭찬에 인색하되 세련되고 예의 바르다면, 뉴욕에서는 좀더 아이 중심이다. 부모의 주말 일정은 아이 행사에 따라 정해지고, 칭찬과 격려가 퍼부어지는 뉴욕 스타일! 그래서 두 사람은 뉴욕과 파리의 육아 스타일에 대해 책을 쓰기로 했다. 한 명은 뉴욕 스타일에 반했고, 한 명은 “그래도 난 파리가 더 좋아”.
글 작가 플로랑스 마르스는 원색 없이 화사하고 우아한, 전형적인 프랑스 아동복 ‘봉쁘앙’의 미국 부사장을 역임했다. 플로랑스 마르스와 폴린 레베크 중 누가 뉴욕 스타일이고, 누가 파리 스타일일까?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나는 어느 스타일인가 생각하게 된다.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양쪽 다 넘나드는 코리안 스타일!
도시에 사는 우리 할머니
글·그림 로렌 카스티요 | 옮김 이상희 | JEI재능교육
《도시에 사는 우리 할머니》의 원제는 《Nana in the City》. Nana는 할머니라는 뜻이다. 대부분 그림책에서 할머니는 시골에 살지만, 이 책에선 거꾸로다. 시골에 사는 손자가 뉴욕 대도시에 사는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소년은 배를 타고 브루클린 다리 아래를 지나 도시로 들어간다. 소년에게 뉴욕은 거리 곳곳에서 공사 때문에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과 뉴욕의 명물 노란 택시 등 수많은 차들로 시끄러운 곳이다. 단풍이 아름다운 센트럴 파크에서도 무섭기만 하다. 이런 손자를 위해 할머니는 빨간 망토를 만들어준다. 슈퍼맨처럼 용감해지는 망토다. 그제야 아이도 도시가 좋단다. “할머니는 도시가 더 좋단다.” 하긴, 노인에겐 병원 가까운 도시가 나은 것 같기도 하다. 2015년 칼데콧상 수상작이다.
뗏목을 타고
글·그림 짐 라마르크 | 옮김 이주희 | 느림보
시골이든 도시든 그곳에서 사는 것과 놀러 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아마 장단점이 확 바뀌지 않을까. 이 책은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갔을 때의 장점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엄마 아빠 일정 때문에 억지로 시골로 보내진 아이답게 내내 찌푸린 얼굴이다. 하지만 놀 거리가 너무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거닐게 된 강가에서 작은 동물들을 만나고, 어느 아침 우연히 해 뜨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바뀐다. 하루종일 강가를 모험하고 물놀이를 하고, 빈둥빈둥대다 급기야 아이가 새로 만난 동물들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 지루함은 창작의 고향이구나.” 실감하게 된다. 이런 길고 덥고 지루하고, 새로운 여름! 나에게도 기회가 있을까?
리디아의 정원
글 사라 스튜어트 글 | 그림 데이비드 스몰 | 옮김 이복희 | 시공주니어
사라 스튜어트, 데이비드 스몰 부부의 걸작 《리디아의 정원》은 편지글 그림책이다. 《뗏목을 타고》의 주인공은 집안 형편 때문에 도시에서 시골로 가지만, 리디아는 시골에서 도시 삼촌댁으로 간다. 웃지 않는 삼촌 집에서 빵집 일을 도우며 지내는 리디아가 고향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들이다. 리디아는 황량하던 도시의 곳곳을 시골집처럼 화사한 꽃과 싱그러운 초록 나무들로 채운다. 무뚝뚝한 삼촌이 활짝 웃을 것을 기대하며 빵집 버려진 옥상 공간을 초록이들로 꾸민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결국 삼촌은 웃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은 늘 바뀐다. 리디아는 이제 안다. 삼촌이 내민 케이크 한 개가 ‘천 개의 웃음’만큼 마음을 담고 있다는 것을. 진실은 드러나는 것보다 숨어 있고, 그 진실을 알아볼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라는 것을 시골 소녀 리디아가 보여준다. 생각만 해도 울컥해지는, 나의 걸작 《리디아의 정원》.
에디터 김현지
글 전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