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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옷
ⓒ 엄청나게 근사하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내 모자
아이가 안아달라고 할 때 잘 다림질된 옷이 구겨질까 봐 망설여지면 안 되겠기에 늘 추리닝만 입었다. 아이가 울다 엄마 어깨에 기대어 잠들 때 얼굴 비벼도 괜찮으라고 100% 면 티셔츠만 입다 보니 티셔츠는 금방 늘어나곤 했다. 아이가 실수를 해도 야단치지 않고 오히려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몸이 편한 옷이 마음도 편했다. 아이와 보내는 소중한 시간을 희생시키기보다 옷을 희생시키는 게 나았다. 그래서 망쳐도 속 편한 옷만 입었다. 외모 말고도 나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기저귀 가방 이후로 처음 내 가방을 샀다. 아이가 입학하는데 왜 엄마인 내가 가방을 샀을까? 그 봄엔 모든 게 걱정스럽고 무서웠던 것 같다. 잘할 수 있을까? 아이도 나도 부족하게만 보이던 때. 내가 샀다고 생각한 건 옷이 아니라 자신감이었다. 무엇에라도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감은 더욱 바닥이 났다. “애 낳고 찐 살이 아직도 안 빠졌네.” 아이를 낳은 지 7년이나 됐으면서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애 낳고 부은 거라고. 곧 살을 뺄 거라고.
실크 블라우스를 사던 날, 아 정말 아이들이 다 컸구나 생각했다. 그새 아이들은 10대가 되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흙 묻은 손으로 뛰어와 엄마를 꽉 안을 일도 없고, 외출했다가 잠드는 바람에 엄마 옷에 침 묻힐 일도 없다. 이날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왜, 이제야 내 취향대로 옷을 입을 수 있는데, 문득 그 옛날이 생각날까. 둘째 아이의 애착이불은 나의 겨울 점퍼였다. 누나 어린이집 셔틀버스를 태우러 나갈 때, 둘째를 둘러업고 휙 덮던 커다란 사이즈 점퍼. 유모차에 태우고 이불 대신 덮어주곤 했다. 그 점퍼가 있어야 마음 편하게 잠드는 둘째 아이 때문에 여름에도 겨울 점퍼를 들고 다니곤 했는데…. 문득 그 점퍼의 매끈한 안감 느낌이 생각난다. 새로운 계절엔 옷을 한 벌 사야겠다. 누군가를 배려해주는 옷 말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옷 말고, 나를 미워하게 되는 옷 말고,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옷. 온전하게 내 마음에 드는 걸로 사야지. 어? 그런데… 내 취향이 어떤 거였더라?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
글·그림 키스 네글리 | 옮김 노지양 | 원더박스
19세기 후반, 여자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의사가 되었고, 여자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군의관으로서 남북전쟁에 참가해 노예해방을 위해 활약했던 실제 인물 메리 에드워즈 워커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여자가 바지를 입는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이던 시절, 어린 메리가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간 첫날, 모두가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릴 때 메리는 말한다. “나는 남자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내 옷을 입었을 뿐이에요.” 그런 메리를 응원하고 믿어주는 부모가 있다. 나도 그런 부모가 되고 싶어 메리의 아빠를 유심히 보았더니, 앗? 짝짝이 양말!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사람으로 자식을 키우고 싶다면, 나부터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구나!
참, ‘Wear a trouser, wear the pants’가 무슨 뜻인지 아시는지? 단순히 바지를 입는다는 뜻이 아니다. 네이버 영어사전 검색 결과에 따르면 ‘(특히 여자가)자기주장이 세다’란 뜻이다. 못마땅하다는 뉘앙스를 갖고 있으며, ‘남편을 깔고 뭉개다’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메리처럼 나도 바지를 입고 싶다. 남편을 깔아뭉개고 싶다는 게 아니다. 나의 옷을 입고 싶을 뿐이다.
종이 봉지 공주
글 로버트 먼치 | 그림 마이클 마르첸코 | 옮김 김태희 | 비룡소
드레스를 거부하고, 남과 다른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여기 또 있다. 심지어 공주다! 엘리자베스가 처음부터 드레스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용이 나타나 엘리자베스의 드레스들을 태워버리고 약혼자 로널드 왕자를 잡아가버린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종이 봉지를 드레스 대신 입고 왕자를 구하러 간다. 그런데 왕자는 엘리자베스가 기껏 구해줬더니 공주답게 차려입고 오라고 잔소리하지 뭔가? 엘리자베스는 왕자를 차버리고 길을 떠난다.
이런 멋진 이야기가 출판된 지 벌써 25년이나 되었다니 놀랍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이 이야기가 젠더 감수성을 키워주는 혁신적인 그림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말이다. 출간 25주년 기념호에 로버트 먼치 작가가 공개한 원본 스케치를 보면, 엘리자베스는 왕자를 주먹으로 뻥 날려버린다. 그러고 나서 종이 봉지 옷마저도 내던져 버리고 태양을 향해 뛰어간다. 누굴 위한 여행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다.
이 책을 딸아이 친구들과 엄마들에게 읽어줬을 때다. 한 엄마가 말했다. “용한테 감사 선물 줘야겠네. 이상한 남자랑 결혼할 뻔한 거 막아줬으니까.” “드레스도 태워줬잖아요. 안 그랬으면 평생 그게 예쁜 줄 알고 살았겠죠.” 우리 모두 공감했다. “때론 인생 최대의 시련이 최고의 기회가 되죠. 성장의 기회. 진실을 알 기회!”
원피스를 입은 아이
글 크리스틴 발다키노 | 그림 이자벨 말랑팡 | 옮김 신수진 | 키다리
금지된 옷을 입고 싶은 아이, 이번엔 남자아이다. 모리스는 학교 특별활동실에 있는 주황색 원피스 입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놀린다. “이런 거 입으면 안 돼! 너는 남자애잖아!” ”(넌 우주선에 타지 마)우주 비행사는 원피스를 입지 않아.” 친구들이 놀리자 모리스는 급기야 학교에 가는 게 싫어진다. “배가 아파 학교에 못 가겠어요.” 모리스는 왜 치마를 입고 싶은 걸까? 혹시 성 정체성이 남다른 걸까? 그건 모를 일이다. 모리스가 그 원피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주황색이기 때문이다. 주황색을 보면 용감한 호랑이도 생각나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 다정한 엄마의 머리카락이 생각난다.
하지만 모리스도 엄마도 주황색 때문이건, 치마이기 때문이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모리스가 그 옷을 입기 좋아한다는 것만 신경 쓸 뿐. 왜 머나먼 나라 한국의 이 독자만 왜 하필 그 옷인가를 신경 쓸 뿐이다. 《원피스를 입은 아이》의 옛 판본 제목은 ‘원피스를 입은 모리스’였다. 두 제목의 차이는 무엇일까? ‘모리스’라고 남자아이 이름을 제목에 쓰면 “왜 남자아이가 원피스를 입은 걸까?” 생각하며 읽기 시작하는 반면, 그저 ‘아이’라고 하면 이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신경 쓰며 책을 읽지는 않는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 것이다. “남자였어?”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신경 쓰지 않을 땐 원피스 입은 걸 자연스럽게 보다가, 남자인 걸 아는 순간 불편해진 독자도 있고, 원피스를 입기 좋아하니까 당연히 여자인 줄 알았다가 자신이 ‘치마=여자’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다는 걸 깨닫고 자기 자신에게 불편해진 독자도 있을 것이다
새 옷
글·그림 조예슬 | 느림보
‘어른 그림책’을 표방하고 나온 책이다. 새 옷이라니, 말만 들어도 좋지 아니한가? 하지만 조예슬 작가가 그리는 ‘옷’은 가부장제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다. 내 몸과는 다른 옷에 여성을 가두고, 그 옷대로 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옷 때문에 날개가 꺾인 수진은 이름도 빼앗기고 목소리도 잃어버리지만, 애써 밤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 이 글을 다음 세대인 민주가 발견한다. 민주는 수진의 이야기와 함께 달려나간다. 치타처럼 날렵하고 빠르게. 옷을 벗고 자유롭게 뛰어나가는 여자들. 그녀들은 남들 보기 좋은 S자 몸매가 아니다. 자기를 가두는 새 옷을 찢을 만큼 튼실한 허벅지와 건강한 팔뚝을 갖고 있다. 그녀들은 이제 강제로 옷을 만들어 입혔던 장벽인간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 함께 달려간다.
여성들만이 아니다. 동물들도 함께 달린다. 그렇다면 다 같이 달려가 무너뜨리는 장벽인간은 누구일까? 남자일까? 아니다. 남자 역시 ‘남성다움’이라는 갑옷에 갇혀 있던 피해자인 것은 똑같다. 지훈은 자기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갑옷이 찢겨나간 후에야 자신이 잃어버린 감각을 기억해낸다. 여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옷을 찢고, 남자는 옷을 찢은 후에야 문제를 발견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 차이 때문에 남녀가 서로 싸우는 것이다. 함께 싸워야 할 장벽인간은 따로 있는데!
아이들이 이 그림책을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어른 그림책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늘 어른보다 그림책을 잘 읽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그림책 스승이여. 이야기해주소서.
알몸으로 학교 간 날
글 타이마르크 르탄 | 그림 벵자맹 쇼 | 옮김 이주희 | 아름다운사람들
늦잠을 잔 아침, 피에르의 아빠는 어찌나 정신없었는지 그만 옷 입히는 걸 깜박하고 아이를 알몸으로 학교에 보낸다. 피에르는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 잔뜩 긴장했지만, 다행히 아무도 알몸이라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 비록 눈길은 자꾸만 아래쪽으로 가지만 말이다. 다행히 피에르는 학교 숲에서 자기처럼 알몸으로 학교에 온 또 다른 친구를 만나 함께 놀고, 두 아이 모두 좀더 자신 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교실로 돌아간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불편함을 기억한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이 책, 독자와, 피에르와 피에르 친구 모두에게 일종의 성희롱을 한 거 아니야?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내가 누군가를 이해할 때는, 이해할 만한 경우라서 이해한 것일 뿐, 내가 그다지 타인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선을 넘은 누군가에 대해서는 ‘그래도 배려’하지 않고 오히려 “해도 해도 너무하네. 내가 원래 이런 사람 아니거든? 하지만!”이라며 비난하는 사람인 거다. 과도한 노출, 한겨울에 민소매, 한여름에 털신 다 이해하기 때문에 내가 타인에 대해 관용적이고 배려 있다고 자부심을 갖고 있었건만, 결국은 남을 평가하는 기준이 ‘나’라는 걸 정신 번쩍 나도록 뒤통수를 휘갈겨준 책이었다.
심지어 너그러운 척 해봤자, 결국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건 오십 보 백 보 똑같은데 나보다 기준이 엄격한 사람을 보면 비난해왔다. “왼손으로 밥을 먹건, 머리를 빡빡 밀건 웬 참견이야? 사람이 나이가 들면 포용력도 좀 생기고 그래야지, 너무 자기 기준으로만 생각하는 거 아니야? 그럼 안 돼!” 이랬던 것이다. 부끄럽다.
엄청나게 근사하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내 모자
글·그림 에밀리 그래빗 | 옮김 노은정 | 비룡소
내가 고른 옷을 입을 것인가? 남이 입으라는 옷을 입을 것인가? 혹은 홀라당 벗을 것인가? 모르겠다. 그냥 나는 모자를 쓰련다. Wear a hat.
하지만 모자를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허버트에게는 소중한 모자가 있다. 할머니께서 직접 만들어주신 보들보들 포근하고 귀여운 모자. 귀도 따뜻하게 덮어주는 사랑스러운 모자. 하지만 친구들은 아기 같은 모자라며 놀린다. 허버트는 친구들이 많이 쓰는 최신 유행 모자를 샀다. 온갖 과일들로 만들어진 모자다. 과일 모자? 좀 이상한데? 무슨 얘기야. 과일로 만든 모자가 최신 유행이란 말이야. 몸에도 얼마나 좋다고~ 나한테 좀 안 어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유행이라고! 그런데 웬일인가. 허버트가 살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유행이 바뀌었나 보다. 친구들이 또 놀린다. 그렇게 촌스러운 모자를 누가 쓰냐고. 허둥지둥 새 모자를 샀지만 유행이란 녀석은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그새 유행은 또 바뀌어버렸다.
마침내 새 모자를 사는 데 지친 허버트는 결심한다. 몰라 몰라. 이제 그냥 내 맘대로 할 거야! 그 후 허버트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을까? 친구들이 허버트를 놀리고 비웃었을까?
맨 꼴찌로 달리는 이가 선두를 차지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뒤돌아 달리는 것이다. 달리는 방향을 바꾸면, 내가 선두가 된다. 선두가 아니면 어떠랴. 그 방향은 내가 선택한 방향인 것을. 그것으로 되었다.
에디터 김현지
글 전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