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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집에 살고 있나요?

그 집 마당은 넓었다. 은행나무, 대추나무, 목련, 라일락, 단풍나무, 개나리가 돌아가며 계절의 변화를 알려줬고, 마당 한편 장독대에는 할머니의 지시로 정성스레 담근 것들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해가 나면 장독 뚜껑을 열고, 빗방울이 떨어지면 장독 뚜껑을 닫는 것은 가족 모두가 신경 써야 할 일이었다. 봄이 되어 흙이 말랑해지면 텃밭을 가꿔 채소를 키워 먹었고, 가을이 되면 낙엽을 모아 불태우고 김장독을 묻었다. 낙엽이 쌓인 불더미 안에 묻어뒀다가 먹는 고구마는 얼마나 맛있었는지! 가을에는 온 가족이 나무를 털어 얻은 대추를 말리고, 이웃과도 나눠 먹었다. 대추를 담아 보낸 소쿠리에는 으레 그 집 마당에서 난 홍시가 담겨 돌아왔다. 겨울이 오기 전엔 탱크차가 와서 보일러 땔 기름을 채워 넣고, 거실에는 가스난로를 설치하던 풍경과 그 풍경만큼이나 자연스럽게 그곳에 있던 가족들. 내가 태어나 16년을 살았던 집의 풍경이다.

그 집을 팔고 떠나기 전날 밤이 생생히 기억난다. 고등학생인 오빠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고, 나는 일기장에 눈물 자국을 남기며 이별에 아파했다. 내 인생의 한 시절이 끝나는 날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집은 단순히 공간으로서의 집House이 아닌,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은 정서적 의미의 집Home으로 기억되는 유일한 공간이다. 이제는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하던 ‘보금자리’이자 유년의 추억이 모두 머무르는, 영원히 묻혀버린 ‘타임캡슐’이다.

우리나라 가구 중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이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노래 가사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처럼 거의 같은 구조의 집에 살고 있는 요즘 아이들. 겉모습이 같은 아파트라도 그 안에 사는 모습과 써 내려가는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는 걸 알까. 멀리가지 않아도 우리 곁엔 다양한 집에 사는 다양한 모습의 이웃이 있다는 걸 알까. 그곳이 어떤 집일지라도, 어느 아이에게나 공평하게 꿈꾸고 자라고 쉬는 공간이기를, 안전하고 편안하고 머무르고 싶은 곳이기를, 어디에 있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안식처이기를 꿈꿔본다.

임민정
그림책 작가론, 북스타트 부모 교육 등의 그림책 강의를 하고 그림책 잡지 《라키비움J》편집장을 맡고 있다. 열두 살 현이, 여덟 살 윤이와 그림책을 읽으며 일상의 순간순간을 작은 행복으로 촘촘히 채워가고 있다.

작은 집 이야기

글·그림 버지니아 리 버튼 | 옮김 홍연미 | 시공주니어

아파트가 지어진 지 30년만 지나도 재건축 얘기가 솔솔 나오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할머니의 할머니가 살던 집은 사진으로도 보기 힘든 귀한 존재다. 이 책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아주 먼 옛날 시골 마을 언덕 위에 지어진 아담하고 아름다운 작은 집. 작은 집은 낮과 밤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바라보며 도시의 삶을 궁금해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작은 집의 동네도 점점 도시의 모습으로 변하고,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그 집은 빌딩 숲과 전차에 가려져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어느 날, 집을 지은 사람의 손녀의 손녀는 그 앞을 지나가다가 작은 집을 알아본다. 할머니가 어린 시절 살았던 곳이라는 걸 확인한 손녀는 집을 다시 시골 마을로 옮긴다. 원래 작은 집이 있던 곳과 꼭 같은, 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고 사과나무가 자라는 마을로 돌아간 작은 집은 그제야 편안해진다. 1943년 칼데콧 메달을 수상한 이 작품은 산업화로 급격히 발전하던 당시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페이지마다 한자리에 작은 집을 고정해 두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작은 집 주변을 아름다우면서도 역동적으로 표현하여 도시화 과정을 한눈에 그려냈다. 새롭고 화려하고 거대한 스케일이 환영받는 시대에, 오래된 것의 가치와 소중함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숲속의 작은 집에서

글·그림 일라이저 휠러 | 옮김 원지인 | 보물창고

작가 일라이저 휠러의 할머니가 어린 시절 겪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때는 1932년 미국의 대공황 시대,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살던 집에서 쫓겨난 어머니와 여덟 명의 아이들은 숲속의 작은 오두막을 발견한다. 낡고 버려졌지만 새로 시작하기 위해 집을 가꾸고 삶을 일궈가는 가족. 3개월 아기부터 열네 살 아이까지, 지금 기준으로는 너무나 어리지만 각자 해야 할 일을 꿋꿋이 해내고 생활을 꾸려나가는 아이들이 정말 기특하다. 비록 가난하고 고단한 일상이라도 작은 것에 감사하고 가족이 똘똘 뭉쳐 위기를 헤쳐 나가는 모습은 또 얼마나 뭉클한지. 처음 도착했던 오두막은 춥고 텅 비어 보였는데, 사계절을 보낸 후의 오두막은 따뜻하고 밝고 사랑으로 가득한 곳이 되었다. 이 마지막 장면은 결국 집을 채우는 온기가 가족의 사랑에서 나온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아이에게 집이 따뜻하고 사랑으로 가득한 곳으로 느껴진다는 것은 함께 사는 사람이 편안하고 신뢰할 만하다는 뜻. 이 책을 읽고 “우리 집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해?” 아이에게 물으면 어떤 대답을 할지 사뭇 궁금해진다.

다음 달에는

글·그림 전미화 | 사계절

흥미진진한 얼굴로 엎드려서 책을 보고 있는 아이. 표지에 그려진 이 즐거워 보이는 아이는 ‘다음 달에는’ 뭘 하고 싶은 걸까? 페이지를 넘기면 시작되는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다. 아빠는 한밤에 짐을 싸고, 이불 대신 침낭을 챙긴다. 이건 여행이 아닌 이사였고, 도착한 곳은 봉고차였다.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아빠는 내내 눈물을 흘리는 얼굴로 등장하지만, 학교도 가지 못하는 아이는 오히려 그런 아빠를 걱정하는 속 깊은 친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음 달에는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아빠의 약속은 매번 미뤄진다. 어떤 아이는 이 책의 내용이 그저 어리둥절하다. 캠핑처럼 보이는데 학교는 왜 못 가? 친구를 만났는데 왜 숨어? 쫓아오는 사람들은 누구야? 질문을 쏟아낸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이해 안 되는 이야기지만, 현재 대한민국에 여전히 존재하는 아픈 이야기다. 어린이를 위한 책이 아름답고 밝은 세상만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질문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 이야기가 한없이 낯선 아이라면, 그늘진 세상에 있는 친구들에게 다정하게 손 내미는 마음이 친구의 그늘에 온기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알려주어야 한다. 빚쟁이가 찾아오면 바로 도망가기 위해 선택했을 자동차 집이 비록 불편했을지라도 그 안에서 아이는 아빠와 함께여서 행복했다. 아빠는 학교를 보내 줄 수 없었지만 옆에서 지켜주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주인공 아이가 꼭 기억하면 좋겠다.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글 히라타 겐야 | 그림 가토 구니오 | 옮김 김인호 | 바다어린이

추억이 쌓여 떠날 수 없는 집에 관한 이야기다. 제81회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바닷물이 점점 차오르는 마을, 물 위에 지어진 낡은 집에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있다. 물이 차오르면 한 층을 더 짓고, 또 물이 차오르면 그 위에 한 층을 더 짓다 보니 몇 층이 쌓였는지도 모르는 집에서 할아버지는 외롭지만 즐겁게 살아간다. 어느 날, 바닷물에 연장을 빠뜨린 할아버지는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으로 내려갔다가 추억이 켜켜이 쌓인 옛날 집들을 보게 된다. 이제는 바닷물에 잠겨 추억마저 잠긴 듯했지만, 그 집을 보자 추억은 봉인 해제된 듯 마구 떠오른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집, 마을 축제 날 자식들에게 맛있는 파이를 구워 줬던 집, 딸을 결혼시킨 집… 집마다 갖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한동안 할아버지를 과거의 순간에 붙잡아 둔다. 물은 또 차오르고 할아버지는 또 한 층을 쌓아 올린다. 그 집이 물에 잠기면 할아버지는 또 새로운 한 층을 묵묵히 쌓아 올릴 테다. 비록 추억은 물 아래에 잠겨 있지만 새로운 집에서 할아버지는 혼자만의 추억을 다시 만들어 갈 것을 믿는다. 추억은 언제나 힘이 세니까.

키오스크

글·그림 아네테 멜레세 | 옮김 김서정 | 미래아이

신문이나 잡지, 복권 등을 파는 가판대를 의미하는 키오스크. 올가는 키오스크에서 일하고, 키오스크에 산다. 재택근무라고 해야 할까, 아님 직주일치? 하여튼 셔터를 내리면 올가는 쉬고, 셔터를 올리면 업무가 시작된다. 올가에게는 꿈이 있다. 바로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바닷가에 가는 것. 하지만 올가는 키오스크를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한다(이걸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올가를 키오스크에 꽉 찰 정도의 살찐 모습으로 그렸다.) 어느 날, 좀도둑을 잡으려던 올가는 키오스크와 함께 쓰러진다. 다시 일어나기 위해 몸을 일으킨 순간, 올가는 키오스크를 번쩍 들어 올린 채 걸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몇 발자국 걷다가 산책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한 올가는 실수로 강에 빠져버린다. 이제 키오스크와 함께 둥둥 떠다니며 어딘가로 흘러가는 올가. 이윽고 도착한 곳은 그토록 바라던 노을이 아름다운 바닷가였다. 올가에게 키오스크는 세상의 전부였고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이었다. 벗어날 수 없는 공간이지만 벗어나기엔 두려운 공간이기도 했다. 그토록 바라던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올가가 키오스크를 벗어던진 게 아니라 키오스크와 함께였다는 점은 꽤 의미심장하다. 한 사람을 가장 안전하게 머물도록 해주지만 자칫 익숙함과 편안함에 안주하게 만들 수도 있는 장소인 집. 결국 키오스크를 버리지 않고도 자유를 찾아냈던 올가의 단단한 마음에 박수를 보낸다.

오랜만이야!

글 다비드 칼리 | 그림 마리 도를레앙 | 옮김 이숙진 | 킨더랜드

서울의 최고가 아파트는 3.3㎡에 무려 1억 5천만 원에 육박한다는 보도를 봤다. 작은 화장실 크기 정도에 1억 5천만 원이라니, 그럼 변기 하나가 차지하는 공간은 대체 얼마인 걸까?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심란해진다.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해서 벼룩시장에 내다 팔자는 아내의 말에 다락방으로 올라간 남편. 가득 쌓여 있는 물건에는 어느 하나 이야기가 담기지 않은 것이 없다. 악단에 들어가고 싶어 열심히 연습했던 어린 시절의 북, 동네 최고 멋쟁이로 만들어 줬던 페달 자동차 등. 물건을 정리하지 못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버리면 안 돼, 추억의 물건이라고! 여기에 갑자기 대한민국 아파트 가격을 들이대면 좁게만 느껴지는 우리 집의 이런저런 짐들이 곱게만 보이진 않는다. 유행해서 혹은 유행이 지나서 걸려있는 옷가지들과 사계절이 뚜렷한 죄로 창고를 가득 채운 계절 가전, 싸서 쟁여 놓은 두루마리 화장지와 냉동실에 가득한 냉동식품 봉지를 보면 갑자기 불끈하게 된다. “내가 미쳤어!” 사람이 살기 위해 필요한 공간은 얼마일까.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일까, 아님 짐이 차지하는 곳일까. 질문의 답은 알 것 같고 어쩐지 뭘 해야 할지도 알 것 같다. 다만 외면하고 싶을 뿐. 가만있어 보자, 이 책을 다 어떻게 정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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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글 임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