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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무관심,
재능을 키우는 마법의 약
오후 네 시. 각자 스케줄을 끝낸 아이들이 동네 놀이터에 몰려든다. 북적북적, 피크 타임이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그중 유독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주위를 맴도는 아이가 있다. 멍하니 서 있기도 하고, 폴짝 뛰며 혼잣말하기도 한다. 아이 표정은 좋아 보이는데, 엄마는 속이 타나 보다. 내게 다가온 아이 엄마는 하소연한다.
“외톨이 같은데 자기는 저게 좋대요. 재밌기는 뭐가 재밌다고…. 차라리 학원을 보낼까 싶어요.”
“본인이 그렇다면 정말 괜찮은 거 아닐까요? 아이들이 심심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듯이 보이는 때가 창의력이 가장 샘솟는 시간이라고 하잖아요.”
“하긴, 저러고 집에 들어가면 그림을 그리는데 스토리도 풍부하고 재잘대면서 설명도 곧잘 해요.”
“어머, 그럼 지금 혼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나 봐요! 이런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멋진 그림을 그리는 거겠죠~.”
“휴…. 제가 머릿속으로 완벽한 아이 모습을 그려두었나 봐요. 그거랑 우리 애랑 다르다고 실망하고 말이죠. 그런데 현이 엄마는 어떻게 이렇게 현명해요?”
“내 아이가 아니라서 그래요. 원래 남의 문제는 답이 보이잖아요. 하하하.”
상황은 다를지라도 우리는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너무 관찰한 나머지 종종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아이가 멍하니 있으면 못 참고 말을 걸고, 심심할 새 없이 스케줄을 채워 놓는다. 아이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발휘하려면 ‘심심해야’ 한다는데 요즘 우리 아이들, 심심할 틈이 있을까? 재능을 키우려고 만든 스케줄 때문에 오히려 자신을 탐색할 기회를 놓쳐버린 건 아닐까? 나는 아이들을 내버려 두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일에 당당해졌다. 처음엔 방치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재능을 싹 틔울 기회라고 생각하니 마음도 가벼워졌다. 나는 내가 즐거운 일을 하고, 아이는 마음껏 관심사를 찾아 방황한다. 엄마 등쌀에 다니던 사교육마저 정리하니 어라, 돈까지 굳었다!
내 아이는 커서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재미있고, 잘하면서, 돈도 잘 버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이 바로 아이를 내버려 둘 때다. 나의 다정한 무관심 속에 아이의 재능은 발견되고 꽃 핀다.
줄줄이 꿴 호랑이
글·그림 권문희 | 사계절
여기, 바로 ‘기다림’의 모범을 보여주는 어머니가 있다. 얼마나 게으른지,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 싸기를 반복하며, 일은 안 하는 아들을 둔 엄마다. 나였다면 윗목에서 똥을 싸는 순간 등짝 스매싱을 날렸을 텐데, 이 엄마는 어쩐 일인지 잘 참고 밥을 차려 주었나 보다. 참기를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이제 더는 못 참은 걸까, 혹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걸까? 엄마는 일은 안 하냐며 화를 버럭 낸다. 아들의 대답이 더 가관. “괭이가 있어야 땅을 파지요.” 그런데 여기서 이 엄마의 특별한 점이 보인다. 바로, 괭이를 얻어다 주었다는 것.
이미 한없이 게으른 모습을 보여줬으니 괭이가 없어서 일을 못 한다는 변명 따위는 안 믿을 만도 한데, 배고픈 자식에게 고기를 주는 대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이 엄마는 괭이를 구해 준다. 괭이를 받은 후, 아이는 엄청난 일들을 저지른다. ‘저지른다’라는 말이 딱이다.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동네 똥이란 똥은 다 모아 붓고, 그것도 모자라 거기다 참깨를 심었으니까. 하지만 이러저러하여 이 엽기적인 행각은 결국 엄청난 부를 가져왔다. ‘윗목 똥, 아랫목 밥’뿐 아니라 지저분한 만행까지 참아준 인내심의 여왕 어머니, You Win! 다시 한번 말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뭐다? 바로 멍 때릴 자유 시간! 방에서 뒹굴뒹굴하며 그토록 멋진 사업을 구상한다면, 얼마든지 참아볼 만하다. (윗목에 똥만 싸지 않는다면!)
내가 만난 꿈의 지도
글·그림 유리 슐레비츠 | 옮김 김영선 | 시공주니어
부모로서 결핍을 채워주지 못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가난, 전쟁처럼 즉각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무엇을 꿈꾸도록 해야 하는 걸까. 동서양의 미술을 조화시킨 화풍으로 유명한 작가 유리 슐레비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피난 생활을 하던 작가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한다. 오늘 하루 한 끼를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고단한 피난 생활. 빵을 사러나갔던 아버지는 밤이 되어서야 커다란 지도 한 장을 들고 돌아온다. 빵을 살 돈은 부족해서 지도를 사 왔다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화가 난 아이.
하지만 다음날부터 아이는 그 커다란 지도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 지도 구석구석을 살피고, 종이가 생기면 지도를 따라 그린다. 지도 속 도시들을 따라가며 상상 여행을 떠난다. ‘마법에 홀린 듯이 몇 시간을 보냈어요. 배고픈 것도, 힘든 것도 모두 잊은 채 말이에요.’라는 작품 속 문장은 빵 대신 지도를 사 온 아버지가 결국 옳았다는 것을 알려 준다. 굶주린 그 상황에서도 지도 한 장은 아이를 넓은 세상으로 보냈고, 결국 재능으로 열매 맺어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가 되었으니까. 사랑과 관심이 충분하다면 다른 결핍은 어떻게든 채워지기 마련이다. 결핍이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꿈꾸게 하는가가 문제일 뿐.
발명가 로지의 빛나는 실패작
글 안드레아 비티 | 그림 데이비드 로버츠 | 옮김 김혜진 | 천개의바람
로지 리비어는 발명에 관심이 많아 쓰레기통을 뒤져 재료를 찾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무언가를 만드는 당당한 아이다. 그런데 가장 좋아하는 삼촌에게 멋진 발명품을 선물했다가 삼촌의 반응에 상처를 입은 로지는 그날 이후로 발명가의 꿈을 숨기고 살아간다. 이런 로지의 꿈을 다시 꿈틀거리게 만든 사람은 로즈 이모할머니.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할머니의 꿈을 이뤄주려고 로지는 헬리콥터를 발명한다. 헬리콥터는 잠시 날아오르다 곤두박질쳤지만, 할머니는 이 완벽한 시도를 칭찬하고 두 번째 도전을 응원한다. 사실 로지의 발명품에 대한 삼촌과 할머니의 반응은 ‘숨넘어가도록 깔깔 웃기’로 똑같았다. 하지만 삼촌은 웃음으로 끝난 반면, 할머니는 곧바로 응원과 지지를 독려했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자신의 꿈을 든든히 지켜봐 주고 실패마저 다독여 주는 어른의 존재는 그래서 중요하다. ‘실패’는 도전과 노력의 결과다. 만나기 싫은 결과지만 흔한 일이다.
우리는 아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이가 절망할까 두려워 실패의 기회마저 뺏고 있는 건 아닐까? 수없는 실패의 좌절감을 극복하며 아이는 자신을 믿게 된다. 실패했다면 아이의 도전과 노력을 칭찬하고, 실패를 통해 얻게 된 것을 꼭 찾아주자. 언제나 자신을 응원하는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설 아이들의 ‘빛나는 실패’를 응원한다.
느끼는 대로
글·그림 피터 H. 레이놀즈 | 옮김 엄혜숙 | 문학동네어린이
항상 못된 형제, 자매가 문제다. 여기 《느끼는 대로》의 레이먼도 그저 그림이 좋아서 푹 빠져 그릴 뿐인데 형이 이상하다며 놀리자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하지만 항상 다시 용기를 주는 것도 형제, 자매다. 형과 다르게 동생 마리솔은 레이먼의 그림을 가장 솔직한 방식으로 칭찬한다. 말 한마디의 힘이 크다. 레이먼은 형 때문에 실패작이라고 느낀 그림들을 다시 찬찬히 바라보고, ‘똑같이’ 그리는 것보다 ‘느낌을 담아’ 그리는 것이 훨씬 근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많은 재능 중에서도 특히 예술적 재능은 어릴 때부터 그 싹을 보이기 쉽다. 하지만 아이가 재능이 있다고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예술을 위한 ‘기술’을 가르치려고 한다. 음악적 재능이 있으면 악기를 가르치고, 그림에 재능이 있으면 미술 학원을 보낸다. 예술에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감정의 표현과 창의성이 우선이기에, 자칫 단순 기술에 집중하다가는 반짝이던 감성을 모두 잃게 된다. 아이가 지속적으로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머릿속에서 끝없이 표현하고 싶은 대상이 떠오르도록, ‘느끼는 대로’ 표현하도록 이끄는 일은 중요하다. 피터 레이놀즈 작가는 이 책의 헌사를 통해 “느끼는 대로 그리게 해 주신 미술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남겼다. 아이에게 영향력 있는 가족이나 교사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책 안팎에서 느껴진다.
세상 모든 소리를 연주하는 트롬본 쇼티
글 트로이 앤드류스 | 그림 브라이언 콜리어 | 옮김 정주혜 | 담푸스
좋은 롤모델의 존재는 한 아이를 어디까지 성장시킬 수 있을까? 트롬본 연주자, 트로이 앤드류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재능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이의 도움과 롤모델의 존재로 한 아이가 성장하는 감동적인 과정을 보여준다.
재즈로 유명한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트로이 앤드류스는 매일 브라스 밴드의 리더인 형을 따라 악기 연주하는 흉내를 내곤 했다. 형은 어린 동생이 귀찮을 법도, 때론 방해가 될 법도 한데, 그럴 때마다 “날 따라 해!”라며 동생을 이끈다. 운 좋게 몸집보다 더 큰, 버려진 악기를 주운 동생에게 형은 ‘트롬본 쇼티’라는 별명을 지어주며 동생의 열정을 응원한다. 훗날 트로이 앤드류스가 세계를 다니며 공연하는 연주자로 성장한 세 가지 비결이 그림책 속에 숨어 있다. 첫째, 늘 동생에게 롤모델이 되어주고 응원한 형의 존재. 둘째, 어린아이지만 그 안에 숨은 재능을 간파하고 트로이를 무대에 세워준 음악가 보 디들리. 그리고 밤낮으로 연습하다가 트롬본을 손에 들고 잠들기도 했던 ‘트롬본 쇼티’의 노력이다. 한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기까지, 우리는 성공한 결과만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재능과 노력과 도움과 격려, 열정 그 모든 것의 결정체가 우리가 보는 결과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슬기로운 소시지 도둑
글·그림 마리안네 그레테베르그 엔게달 | 옮김 심진하 | 미래아이
대대로 독특한 가업을 이어가는 가족이 있다. 이 집의 가업은 바로바로 도둑질! 아홉 살 셸도 본인 뜻과는 상관없이 늘 가족과 함께 도둑질해야 한다. 어느 날, 셀의 친구네가 여행 간 틈을 타 온 가족이 그 집의 물건을 훔친다. 하지만 친구에게 그 물건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셸은 다시 되돌려 놓으려 하고, 우연히 자신처럼 하기 싫은 일을 강요당하는 친구들을 만난다. 친구들은 셸을 도와 도둑질한 물건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너무너무 화가 난다. 셸, 너에게 최고의 벌을 내리겠어! 바로 셸에게서 ‘도둑 자격’을 박탈한 것이다! 만세!
종종 우리는 나의 꿈을 아이에게 투사하곤 한다. 나의 꿈을 이뤄다오, 사실은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 아이의 재능도, 취향도 무시한 채 말이다. 진심으로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이 폭력이라는 것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방식과 아이가 살고 싶은 방식이 다를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생각엔 이 길이 맞는데 굳이 어려워 보이는 저 길을 가겠다는 아이를 믿어줘야 할까? 수많은 질문이 머리 위를 떠돈다.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셸 가족의 마음도 이해되지만, 도둑 소굴(?)에서도 자기가 잘 해낼 수 있는 일을 쟁취한 셸은 너무나 기특하다. 꿈은 아이의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이가 그 꿈에 끌려가지 않고 진정 마음이 원하는 것을 좇을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봐 주는 일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에디터 이명주
글 임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