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이야기의 힘이 끝나지 않도록
이야기는 힘이 세다. 긴긴밤, 할머니나 엄마를 졸라 듣던 옛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지금까지 생명력을 이어왔다.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를 말할 때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천일야화千一夜話》다. 《아라비안나이트》라고도 불리는 중동 지역의 구전 문학 모음집인 이 책의 시작에는 샤리아르 왕이 등장한다. 페르시아부터 인도까지 지배하던 샤리아르 왕은 어느 날, 아내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분노한다. 여성에 대한 불신과 증오로 가득 찬 대왕은 아내뿐만 아니라 온 나라의 처녀를 처형한다.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지 길거리에 다니는 여성이 없을 정도가 되자, 대신의 딸인 셰에라자드는 아버지에게 간청하여 자진해서 왕과 결혼한다. 셰에라자드에게는 한 가지 묘수가 있었다. 바로 재미있는 이야기! 왕비는 밤마다 대왕의 귀를 쫑긋하게 하는 이야기로 자신을 죽일 수 없게 만들고, 이 이야기는 1,001일 동안이나 계속된다. 흠뻑 빠져드는 아내의 이야기 솜씨에 감탄한 샤리아르 왕이 증오의 마음을 거두고 현명한 셰에라자드와 해로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증오의 마음을 거둘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의 힘은 강한 것이다.
강의를 다니면 늘 받는 질문이 있다. “아이들이 점점 책에서 멀어져요.”, “핸드폰이나 게임 하느라 책을 안 보려고 해요.” 이 질문의 답을 논할 때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스마트폰을 쥐고 자란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세대에게 종이책의 이야기는 얼마나 매력적일까? 아무리 이야기는 힘이 세다 하더라도, 유튜브의 화려하고 자극적인 영상, 게임의 재미에 푹 빠진 아이들에게 무작정 책을 들이미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제는 멀티미디어와 책을 현명하게 연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굉장히 많고, 그 재미 또한 어디 하나 빠지지 않아 아이들을 유혹하기에 괜찮다. 은근슬쩍 자주 틀어준 노래가 익숙해질 때쯤 이 노래로 만든 그림책이 있다며 함께 보고, 아이가 열광했던 그림책이 원작인 뮤지컬을 보러 가는 수고를 마다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가 책을 잘본다면! 영화를 먼저 보고 나면 책이 시시할 수도, 노래를 듣지 않은 채로 책을 보면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으니, 무엇을 먼저 접할지는 아이 성향과 작품 성격에 따라 고민해 봐야 한다. 원작과 파생 작품의 연결고리와 각색된 부분이 무엇인지 감상 후에 가볍게 이야기 나누는 것도 꼭 필요하다. 아이가 어떤 점이 재미있었는지,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좋았는지도 꼭 물어보자. 책 읽는 아이로 키우기 참 힘들다 싶지만 아이 취향을 탐색하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니까, 지금 소개하는 작품부터 차근차근 접근해 보시길!
염소 4만원
노래 옥상달빛 | 그림 조원희 | 그린북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국민 청춘 위로송을 만든 밴드 옥상달빛의 노래를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옥상달빛의 두 멤버가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을 갔던 경험을 노래로 만들었는데, 4만원이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염소를 한 마리 보낼 수 있고 그 염소 덕분에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내용이다. 노래를 들어보면 멜로디가 굉장히 쉬우면서도 아름다워 아이들도 두어 번 들으면 금세 따라 부른다. 가사를 음미하며 아이와 먼저 4만 원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4만 원은 밥 한 끼가 될 수도, 노래 가사처럼 옷한 벌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의 가격과 비교해도 좋다. 아직 4만 원의 가치를 직관적으로 느끼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이렇게 값어치를 알려주고,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친구들에게는 기본적인 교육을 선물할 수 있다는 얘기도 해준다. 가사가 의미하는 나눔에 대해 대화해 보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이 희망을 선물하는 일임을 알려주는 것도 좋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노래만큼이나 그림도 밝고 귀여워 아이들이 자주 들춰보는 책이다. 이 책의 인세 일부는 굿네이버스에 기부된다고 하니 책을 구입해서 보는 것도 좋겠다.
·
함께 즐기는 콘텐츠 | 옥상달빛 ‘염소 4만원’
내 똥꼬는 힘이 좋아
글 류형선 | 그림 박정섭 | 풀빛
제목부터 대박의 조짐이 보이는 책이다. 이 노래를 아직 모른다고? 유튜브에 검색해 보면 조회수 450만 회가 넘는 인기 동요라는 걸 바로 알게 된다. 유치원생은 몰라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무조건 알게 되는, 초등 교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노래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국악을 연구하고 알리는데 앞장서 온 류형선 작곡가가 만든 국악 동요 중에서도 ‘똥꼬’라는 마법의 단어로 오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림책으로 나온 것은 최근 일인데 가사에 나오는 각종 똥(…)의 종류를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했는지, 노래를 듣고 그림을 살펴보면 더 재미있다. 이 책이 나온 풀빛 출판사에서는 총 7종의 국악 동요 그림책을 시리즈로 발간했다. 이 책으로 재미를 봤다면 이날치 밴드가 재해석하여 유명해진 《범 내려온다》도 추천한다. 수궁가(별주부전)에서 자라는 육지에 올라와 우연히 많은 짐승을 만나게 되는데, 그 짐승들이 서로 자기 자랑을 하던 중에 호랑이가 등장하는 부분만을 다루고 있다. 전체 줄거리를 책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한 대목만 선정하여 집중도를 높이고, 그림도 민화풍으로 그려 판소리 한 대목을 실제로 보는 듯한 생동감을 살렸다. 두 권 모두 국악과의 만남으로 한국인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흥겨운 명작!
·
함께 즐기는 콘텐츠 | 동요 ‘내 똥꼬는 힘이 좋아’
잘잘잘 1 2 3
글·그림 이억배 | 사계절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듯이, 어떤 노래는 작곡자도 모른 채 전해진다. 아무래도 구전의 묘미라면 텍스트가 아닌 사람의 입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전달하는 사람에 따라 변화가 생긴다는 점이다. 그래서 음이 살짝 달라지기도 하고, 가사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인다. 정확한 가사는 몰라도 음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잘잘잘’이라는 노래를 숫자그림책으로 만든 이 작품은, 양육자가 읽는 게 아니라 절로 노래를 부르게 하는 책이다. 내가 알고 있던 가사와 달라도 음과 딱딱 맞아 떨어지는 가사가 흥겹고, 정겨운 색감의 친숙한 동물이나 사물 그림이 등장해 아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온라인 서점 후기마다 “우리 아가가 자꾸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해요!” 같은 간증도 넘쳐난다. 이억배 작가는 우리나라 1세대 그림책 작가로 민화풍 기법으로 우리 고유의 정서를 잘 전달하는 작가다. 이 책이 보드북이라서 아기들만 보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건 금물! 돌쟁이도, 어린이집 다니는 친구들도, 유치원생도 누구나 즐겁게 노래와 함께하는 책이다. 엄마와 아빠도 어릴 때 이 노래를 불렀다고 말해주면 아이들 눈은 더욱 반짝반짝해진다. 세대를 이어 사랑받는 구전 동요의 위엄이 바로 이런 것인가 싶다.
·
함께 즐기는 콘텐츠 | 동요 ‘잘잘잘’
우리 집 꼬마 대장님
글·그림 말라 프레이지 | 옮김 조은수 | 웅진주니어
검정색 슈트를 입고 앉아 인상을 쓰는 아가라니. 표지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다 보면 기시감이 느껴진다. 어디서 봤더라? 이 그림책의 원서 제목을 보고 나면 그제야 무릎을 친다. 《The Boss Baby》! 영화 <보스 베이비>의 원작이 그림책이었다니! 영화 <보스 베이비>는 2017년 드림웍스에서 제작했고 2편까지 나와 있는 데다가 넷플릭스 시리즈로도 제작되었다. 하지만 그림책 《보스 베이비》에서는 기본 설정 정도만 가져왔고 책보다 훨씬 더 풍부한 스토리와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화려하면서도 놀랍도록 귀여운 영화에 비해 오히려 그림책 《우리 집 꼬마 대장님》은 따뜻하고 잔잔한 그림체에 독보적인 설정과 유머가 있어 어른 독자에게 어필한다. 어느 날 나타난 꼬마 대장님(보스 베이비)과 그 앞에서 어쩔줄 몰라 하며 쩔쩔매는 초보 부모의 모습은 아이를 키운 양육자라면 누구나 겪어봤던 어설프고 고단했던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울음만으로도 부모를 쥐락펴락하는 아기의 모습을 ‘보스’로 설정한 작가의 상상력이 기막히게 재미있다. 속편으로 동생을 맞이한 보스 베이비의 모습을 담은 《진짜 대장이 나타났다》까지 함께 보면 육아에 지친 어떤 부모라도 잠시 단비같은 웃음을 짓게 된다. 설정 자체가 은유를 담고있어 너무 어린 유아보다는 7세 이상 정도의 아이들이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
함께 즐기는 콘텐츠 | 영화 <보스 베이비>, <보스 베이비 2>
The Polar Express
글·그림 Chris Van Allsburg | Houghton Mifflin
빠르면 유치원 시기에, 보통은 초등 저학년 시기가 되면 아이들은 어디선가 ‘산타 할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얘기를 듣고 온다. 주로 나이 많은 형제, 자매나 더는 깜짝 선물을 준비하기 힘들어진 부모의 고백 덕분에(?) 이런 ‘루머’가 돌곤 한다. “아니야! 산타는 있어!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트리아래에 선물을 두고 가실 거야!”라고 외쳐보지만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럴 때 바로 이 책을 읽어보자. 작가가 곧 장르라고 할 만큼 독특한 상상력과 특유의 세밀한 그림 기법으로 오래 사랑받고 있는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1985년 작품인데 2004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는 소년이 크리스마스이브에 북극행 특급 열차에 올라타 산타를 만나고 돌아오는 이야기인 원작은 영화화되면서 한층 더 화려하고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눈 내리는 밤 북극을 향해 달리는 증기기관차, 산타의 마을, 선물을 만드는 요정들까지. 상상의 영역이었던 산타의 세상이 아이들 눈 앞에 펼쳐지는 마법의 힘은 대단하다. 작품의 마지막, 산타에게 선물로 받은 썰매의 은방울 소리가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믿는 이에게는 여전히 들린다는 말은 소중한 동심에 든든한 보험이 된다. 원작은《북극으로 가는 기차》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지만 전집에 들어있어 구하기가 어렵다. 원서는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영화와 함께 봐도 좋겠다.
·
함께 즐기는 콘텐츠 |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
눈사람 아저씨
그림 레이먼드 브리그스 | 비룡소
지난 8월 10일, 영국의 펭귄랜덤하우스 출판사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눈사람 아저씨》의 작가 레이먼드 브리그스가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발표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전 세계 독자들이 SNS에서 《눈사람 아저씨》에 대한 추억을 공유했다. 1978년에 초판 발행된 이 책은 글 없는 그림책으로, 눈 오는 날 마당에 만든 눈사람이 밤이 되자 사람으로 바뀌어 아이와 함께 밤새 도시를 여행하고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연필과 색연필의 색체로 표현된 따뜻한 그림, 아이와 눈사람이 나누는 비밀스러운 우정, 그러나 마지막엔 녹아 없어져 버리는 눈사람의 흔적까지, 짧은 분량에 어쩌면 삶의 다양한 모습까지 담았다고 할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출판 후에 많은 상을 받기도 했지만, 출간 4년 후인 1982년에 영국 공영방송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크리스마스 때 방영하면서 더 큰 사랑을 받았다. 마치 우리나라에선 크리스마스에 <나 홀로 집에>를 꼭 방영하듯이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이브마다 이 영화를 방영한다고. 그만큼 영국인들에게는 성장기를 거쳐 어른이 되어서도 일종의 크리스마스 의식이 되는 친근하고도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아이와 눈사람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에 삽입된 ‘Walking In The Air’라는 곡은 우리 귀에도 친숙하다. 유튜브에서 ‘The Snowman’으로 검색하면 볼 수 있다.
·
함께 즐기는 콘텐츠 | 영화 <The Snowman>
에디터 이명주
글 임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