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FUL BUT SCARY

평온하고 두려운

BOOK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아르헨티나 개미>

 

PEACEFUL BUT SCARY

평온하고 두려운

‘자연’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평온함, 낭만적, 아름다움 같은 흔하디흔한 인상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액자에 걸어둔 그림처럼 멀리서 본 풍경만이 자연일까. 왠지 삐딱해져서 이 책들을 다시 읽어봤다. 이 책들은 자연에 대한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태어나 자란 도시에는 뒤로는 산이, 앞으로는 바다가 있었다. 나는 유년 시절을 매일 산과 들과 개울가를 뛰어다니며 보냈다. 주말에는 아빠와 바다에 갔다. 아빠가 낚시나 잠수를 해 해삼 같은 걸 잡는 동안 나는 바위에 붙은 말미잘을 건드리며 놀거나 돌로 굴 껍질을 깨 속에 있는 굴을 파낸 다음 바닷물에 씻어 그대로 입안에 털어 넣었다. 아무튼 그때부터 먹는 데 관심이 많았다.

스무 살이 되어 서울에 도착한 후, 자연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20대 중반을 넘어서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어쩌면 이 모든 문제를 자연과 가까운 생활로 치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주말이면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고 자연주의적 삶에 관한 책들을 열심히 읽었다. 화분에 식물을 키우다가 죽이기를 반복하면서도 언젠가는 귀농을 해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인도에 여행을 가서는 오로빌이라는 자연친화적 공동체 마을에 정착해볼 꿈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마을은 덥고 갑갑하고 불편한 장소였고, 우여곡절 끝에 그곳을 탈출해 대도시의 에어컨이 빵빵한 쇼핑몰에 들어서자 그제야 집에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그런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아무래도 나는 진짜 자연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자연이 아름답게 가꾼 분재 화분이나 거실 벽에 걸린 호수의 풍경화, 잘 닦아놓은 산책로 같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트리샤는 힘들고 무서운 하루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그동안만큼 자신이 도시에서 자란 아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이의 눈에는 숲이 마치 단단히 조여드는 것 같았다. 한동안 트리샤는 널찍한 소나무 숲을 따라갔는데, 어느 지점에 이르자 삽시간에 흡사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숲처럼 바뀌어 보였다. 얼마 후 처음으로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을 때 아이는, 자신의 팔과 눈을 할퀴려고 덤벼드는 얽힌 나뭇가지들과 씨름하며 키 작은 나무들과 밀집한 관목이 한데 엉킨 수풀(관목들은 대부분 가시가 있었다)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중략) 그 덤불 숲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트리샤를 개울에서, 사람들에게로 나아가는 통로이자 숲에서 빠져나가는 티켓에서 떼어놓는 것일지 몰랐다. 

– 스티븐 킹,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중에서

스티븐 킹의 소설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는 산에서 길을 잃은 어린 소녀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의 소설은 중편소설 정도의 분량일 때 가장 좋은 느낌인데, 이 이야기도 그렇다. 이 정도 분량의 이야기에서 스티븐 킹은 본인의 장기와 집중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것 같다. 그런데 숲속을 헤매본 적도 없이 어떻게 킹은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걸까. 

주인공인 트리샤는 톰 고든이라는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의 팬이다. 엄마, 오빠와 함께 가벼운 소풍으로 애팔래치아 산맥 트래킹에 나섰다가 오줌이 마려워 잠깐 길을 벗어나고, 문득 길을 가로질러보겠다는 야심 찬, 그러나 두고두고 후회할 판단을 하고 만다. 걸으면 걸을수록 길에서 멀어지자 두려움에 사로잡힌 소녀는 그 자리에서 멈추는 대신 일을 바로잡기 위해 더 빨리 움직인다. 그리고 숲은 더 깊숙한 곳으로 소녀를 끌고 들어간다. 

벌레떼와 늪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과 싸우며 트리샤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에서 미친 듯이 숲속을 헤맨다. 그리고 무언가가 소녀를 지켜보고 있다. 그것은 숨을 죽인 채 잠자코 기다린다. 트리샤가 포기할 때까지. 숲에서 영원히 길을 잃을 때까지. 죽음을 받아들일 때까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소녀에게는 아직 배터리가 닳지 않은 워크맨과 톰 고든이 있다. 소녀는 라디오로 야구 경기 중계를 들으며 공포와 싸운다. 워크맨의 배터리까지 수명을 다하자 새하얀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은 톰 고든이 소녀와 함께 걸으며 길동무가 되어준다. 

가장 선명한 기억은 머리 위에 별들이 차갑게 빛나는 동안 나뭇가지 더미 아래 누워 레드삭스의 시합을 듣고 있던 일이었다. (중략) 라디오는 트리샤의 생명선이고, 야구 시합은 트리샤의 구명구였다. 그것들을 기대할 수 없었다면 어쩌면 그냥 포기해 버렸을지도 몰랐다. 

– 스티븐 킹,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중에서

수년 전에 서울의 한 산에서 아버지와 함께 등산을 하던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실종되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등산로에서 벗어나 길을 잃은 그 아이는 이틀인지 사흘인지 후에 한 등산객에게 발견되었는데, 그 애는 그동안 숲속을 헤매며 밤에는 나뭇잎을 이불처럼 덮고 잤다고 했다.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놀랍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어린아이에게 그런 생존력이 있다는 것이. 지금 그 아이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그 일이 그 아이에게 어떤 것을 남겼을지도 궁금하다. 

산과 들과 바다를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 우리는 두려움을 공유했다. 우리는 산 위에서 어떤 아저씨한테 추행을 당했다는 여자애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주었다. 그 여자애가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그게 실제로 일어난 일일 거라고는 믿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우리의 놀이터가 언제든지 우리를 집어삼킬 수 있는 위험한 장소라는 걸 잘 알았다. 어느 날은 개울가에서 농가의 한 아저씨가 술에 취한 채로 토끼의 목을 눌러 숨통을 끊는 장면을 몰래 훔쳐보기도 했다. 바다에서 우리는 남해의 날카로운 바위들에 수도 없이 베이고 쓸리고 해파리에 쏘였다. 두려움 없이 헤엄쳤지만 가서는 안 될 곳을, 해서는 안 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라 우리의 감각으로 깨우친 것이었다. 모든 아이들에게는 그런 평형추 같은 게 숨어 있는 것 같다. 아주 오래된 유전자 같은 것. 도시에서의 안전한 생활은 그 평형추의 존재를 잊게 만들거나 아예 녹슬어버리게 만든다.

이제 모든 생각을 멈추고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인 상태에서 트리샤는 냉혹한 확신과 더불어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가 있었다. 그 순간 아이의 머릿속에는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가 알지 못했던 자신의 한 부분, 어쩌면 집과 전화와 전등 불빛이 있는 세계에서는 잠들어 있다가 이곳 숲에서 완전히 살아난, 숨어 있던 어떤 특별한 신경계 뿐이었다. 그 부분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생각할 수는 없었지만 감각은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부분이 숲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 스티븐 킹,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중에서 

좋은 이야기는 일차원적이지 않다. 좋은 이야기는 언제나 다차원적이고, 여러 각도에서 읽힌다. 성적이나 교우 관계에 관한 문제로 고민하는 여드름투성이 사춘기도, 인생의 허망함에 사로잡혀 오늘 저녁 식사 준비를 건너뛴 중년의 주부도, 일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하철에 오른 젊은 회사원도, 몇 년째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히키코모리 여자도 ‘이건 바로 나를 위한 이야기야!’ 하고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스티븐 킹이 쓴 무섭고도 좋은 이야기에는 대개 그런 것들이 있다. 킹은 늘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식으로 하고, 좋은 이야기를 쓰는 진지한 작가들은 모두 그렇게 한다.

그렇게 읽으면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속의 숲은 단순한 숲은 아니다. 그것은 외부의 강렬한 힘에 압도된, 길을 잃은 모든 이들이 품고 있는 숲이다. 그 숲에서 소녀를 해치려는 것은 벌레와 배고픔이 아닌, 공포다. 실제로 숲이 품은 위험보다 더 큰 공포. 그리고 비쩍 마르고 엉망진창이 된 소녀는 끝내 그 공포를 넘어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낸다.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집인 《힘겨운 사랑》에 수록된 단편 <아르헨티나 개미>를 읽을 때 나는 우리가 전에 살던 집을 뒤덮었던 개미떼를 떠올렸다. 그 집은 지은 지 30년 가까이 된 단독주택이었다. 집은 낡고 허름하고 어두웠고 춥고 습했다. 그리고 개미가 많았다. 자고 일어나면 어디선가 개미가 기어 나왔고 벽 근처에는 개미들이 뚫고 나온 벽의 잔해들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개미들은 아무리 죽여도 사라지지 않았다. 성실하기로 따지면 개미만큼 성실한 동물도 찾기 힘들 것이다. 여름철 아이들이 과자 부스러기라도 흘리면 곧 바닥이 새까맣게 개미떼로 뒤덮이곤 했다. 언젠가는 자다가 머리 뒤쪽에서부터 시작해 뒷덜미와 등허리까지 개미에게 잔뜩 물어 뜯겼는데(나한테 원한이라도 품은 모양), 정말이지 미친 듯이 가려웠다. 며칠 동안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가려워서 눈물이 줄줄 날 정도로 가려웠다. 개미는 무서운 곤충이었다. 

우리는 방과 부엌에 하나밖에 없는 전등을 켰다. 문틀에서 나온 개미들이 빼곡하게 줄을 지어 벽을 가로지르고 있는 중이었는데 어디서 들어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 우리 손은 개미로 뒤덮였다. 우리는 개미의 생김새를 자세히 보려고 손을 눈앞에 펴 보았다. 그리고 개미가 팔을 타고 내려가지 못하게 계속 손목을 움직였다. 아주 작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개미들이었는데 쉬지 않고 움직여서 우리 몸이 미세하게 가려울 때와 똑같은 자극을 주었다. 그제야 개미 이름이 생각났다. ‘아르헨티나 개미들’, 아니 ‘아르헨티나 개미’라고들 불렀는데 분명 언젠가 이 이름을 틀림없이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이곳은 ‘아르헨티나 개미’가 사는 곳이었다. 그제야 나는 그런 표현이 어떤 느낌과 연결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바로 사방이 스멀거리는 짜증스러운 느낌이었다. 주먹을 쥐어보아도, 손을 비벼 보아도 전혀 멈출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길을 잃은 개미가 늘 어딘가 남아 있어 팔이나 옷으로 달렸기 때문이었다. 개미를 짓눌러 버리면 검은 점으로 변해 모래처럼 떨어졌고 손가락에는 시큼하고 자극적인 개미 냄새가 남았다. 

– 이탈로 칼비노, <아르헨티나 개미> 중에서

어린 아기가 있는 젊고 가난한 커플이 시골집으로 이사를 온다. 그들은 전원생활에 낭만 어린 기대를 품고 있지만 짐을 풀기도 전부터 집 안 곳곳을 기어 다니는 개미들에 질겁한다. 알고 보니 그들의 집만이 아니라 멀리서 보았을 때는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는 이웃집들 역시 개미떼에 점령당한 상태였다. 이웃들은 온갖 해충제를 구비하고 직접 고안한 장치로 개미떼의 습격을 막아보려 애쓰지만 역부족이다. 이곳에는 개미에게서 벗어날 방법도, 장소도 없다. 

나는 이 마을에서 계속 살아갈 길이나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내가 아는 사람 그 누구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보다 훨씬 나아 보였던 사람들도 그 방법을 찾거나 찾아가는 길에 서 있지도 않은 듯했다.
우리는 그렇게 집 앞에 도착했다. 아들은 장난감을 빨았고 아내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개미들이 우글거리는 밭과 관목들, 그리고 레지나우도 씨네 정원에서 올라오는 살충제 가루 너머로 떠가는 구름과 개미들이 계속 죽어가는 고요한 선장 정원의 어둠 너머로 떠가는 구름을 보았다. 이게 내가 살 새로운 마을이었다. 나는 아들과 아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산책 가자. 바다까지 가보자.” 

– 이탈로 칼비노, <아르헨티나 개미> 중에서 

스티븐 킹의 소설 속 숲이 그저 숲은 아닌 것처럼, 아르헨티나 개미도 단순히 전원생활의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삶에 내재한 사소하고도 불가항력적인 균열이나 파멸의 예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이곳을 점령하고 있는, 언제나 우리보다 더 강하고 성실하고 집요하며, 또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나지 않을 어떤 것들에 대한 예감과 그에 따르는 절망.

우리는 늘 그 균열이나 파멸에 대항해 싸우려 하고, 싸울 방법을 찾아 헤맨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사소한 것들에서 위안을 구하고 불운한 이들의 케이스를 연구하고 더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고 그리하여 불운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거나 따라잡는 것을 피하면서. 가끔은 우리보다 먼저 여기에 자리 잡은 이들은, 우리보다 더 나은 이들은 그 방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 균열과 파멸을 피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아르헨티나 개미를 박멸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렇게 우리는 항구에 도착했고 바다가 보였다. 길게 늘어선 야자수들이며 돌 벤치들도 있었다. 나와 아내는 벤치에 앉았다. 아들은 조용했다. 아내가 말했다. “여긴 개미가 없네.” 내가 말했다. “아주 시원한데. 좋아.”
바닷물이 높게 밀려왔다가 부두의 바위에 부딪혀 흩어졌고 그 파도에 밀려 고기잡이배들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검게 그은 남자들이 야간에 고기잡이를 하려고 빨간 그물과 통발 들을 배에 잔뜩 실었다. 물은 잔잔했고 파란색에서 검은색으로 계속 조금씩 색깔이 바뀌어 갔고 더 멀리에서는 검은색이 한층 짙어졌다. 나는 아주 멀리 있는 바닷물을, 파도에 씻긴 하얀 조개껍질들이 바닷물에 실려와 놓여 있을 깊은 바닷속의 무한한 모래 알갱이를 생각했다. 

– 이탈로 칼비노, <아르헨티나 개미> 중에서 

깊은 바닷속의 무한한 모래 알갱이. 아무래도 그것은 우리에게 평온함을 주는,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자연의 비유임과 동시에,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에서 달아날 수 없을 우리라는 존재에 대한 비유인 것 같다. 아무튼 눈을 감고 그런 것을, 아주 멀리 있는 바닷물과 그 속의 무한한 모래 알갱이를 떠올리면 마음이 평온해지기는 한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체념에 가까운 평온함이 아닐까 싶다.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스티븐 킹ㅣ황금가지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의 전설적인 투수 톰 고든을 동경하는 한 소녀가 광활한 숲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추적자와 음습한 숲속의 공포에서 극적으로 탈출하는 스릴 넘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힘겨운 사랑
이탈로 칼비노ㅣ민음사

현실적인 심리 묘사와 함께 신혼부부, 도둑, 사진작가, 군인, 시인, 운전자 등 평범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소통의 부재와 몰이해, 피상적인 관계가 만연한 현대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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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일러스트 김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