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avril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만든다.’는 모토로 연남동 골목에 작은 공방이 문을 열었다.

연남동의 요술램프 폴아브릴

연남동의 사랑방

지하철 홍대입구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연남동 주민들이 오가는 작은 사랑방이 있다. 작은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고 들어와 그림을 그리며 놀다가 나간다. 또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앉은 노인분이 동네 마실 나왔다가 들러 한참이나 인생에 대한 철학을 논하다 가기도 하는 곳, ‘폴아브릴’이다. 박성윤씨는 올해 1월 그곳에 폴아브릴을 열었다. 그녀는 자신을 ‘물건’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소개한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하는 것to have 과 존재하는 것to be에 대해 논한 적이 있다. 

 

에리히 프롬이 내린 결론도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소유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존재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쪽이 더 ‘이상’에 가깝다. 그러나 그녀는 소유하는 인간이 되기로 결심했다. 물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녀이기에 적극적으로 좋은 물건을 만들어보자고 결심까지 하게 되었고, 폴아브릴이 그 구심점이 되었다. 폴아브릴은 서구권에서 주로 ‘작은 사람’의 이름으로 붙여지는 폴Paul과 4월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아브릴Avril의 합성어이다. 그녀의 말처럼 작지만 옹골차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폴의 이미지와 닮아 있었다.

열두 달, 네 개의 계절 중 애매하게 위치해 있지만, 그만의 색깔을 지닌 4월이본인의 신조가 확실한 그녀와 닮은 듯도 하고. 아브릴Avril은 박성윤씨가 존경하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가 태어난 달이며 동시에 그녀가 좋아하는 달이라고 한다. ‘그녀’와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의 조합이라니, 무척이나 폴아브릴스럽다.

폴아브릴이 처음부터 사람들이 쉽게 드나드는 사랑방과 같은 곳은 아니었다. 골목에 들어선 낯선 공방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사실 어느 번화가에서든 쉽게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숍들보다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 낯선 숍에는 선뜻 들어가기 어려운 분위기가 풍긴다. 

그래서였는지 들어와서 구경하고 가라는 그녀의 부름에도 손사래치며 도망가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고. 아침이면 쇼윈도에는 (용기는 없으나 관심은 지대한) 사람들이 폴아브릴을 염탐한 흔적의 콧망울과 입김 자욱이 가득 남아 있었다. 그 콧망울 자욱과 용기가 모여 현재의 폴아브릴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현재의 폴아브릴은 확실히 연남동의 쉼터로 자리잡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정성스레 만든 사발에 커피를 대접하는 박성윤씨가 있다.

폴의 물건

물건을 사랑하는 그녀가 유독 더 사랑하는 물건이 있다. 바로 하늘색 베스파모형. 박성윤씨는 꽤 묵직한 그 베스파 모형을 현재의 남편과 만나게 해준 물건이라 소개했다. 그녀가 잡지사에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도쿄로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한 인테리어숍(콘란숍Conran shop)에서 그 베스파 모형을 보았고, 사지 못한 채로 돌아와 아른거리는 그것과 씨름하고 있었다. 

 

런데 당시 도쿄통신원으로 근무하던 지금의 남편이 2주 후에 귀국하며 그녀에게 바로 그 베스파를 선물했다고! 그녀는 그에게 베스파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물건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물건을 통해 마음을 확인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하늘색 베스파가 퍽 로맨틱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그외에도 동네꼬마들이 들어와 그녀를 그려준 그림을 버리지 않고 한장 한장 모아둔 그녀는 진정 물건을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소유하고픈 물건

박성윤씨는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1,000개에 달하는 디자인숍을 다니며 100만 개가 넘는 제품들을 보았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본인의 취향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폴아브릴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종류는 한정되어 있지 않다. 노트, 유리화병, 도자기, 소이캔들, 패브릭까지 그 종류는 매우 다양하며 그녀가 직접 만드는 폴아브릴의 오리지널 제품들과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이 함께 판매되고 있다. 내년에는 폴아브릴의 오리지널 타올을 런칭할 계획이라고 하니 관심이 있다면 눈여겨보는 것이 좋겠다. 

판매하는 제품들 중 ‘자작나무’는 박성윤씨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자기시리즈’이다. 분청기법1을 사용하여 자작나무 특유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낸 자기인데, 꿈에서 처음 그 질감의 이미지를 보았다고 했다. 그후로 그녀는 줄곧 꿈속의 이미지를 찾아다녔다. 신호등 기둥의 흠집이 산화된 것, 횡단보도 페인트가 벗겨진 것, 카페의 울퉁불퉁한 하얀 벽 등 이것인가 싶으면 일단 이미지를 촬영해 저장해두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작나무를 보게 되었고 그 이미지가 자작나무였던 것을 알고서는 쾌재를 불렀다고. 그렇게 지금의 자작나무시리즈가 탄생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녀의 휴대폰 사진첩에는 그녀가 길을 가다 발견한,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자연을 닮은 편안함

폴아브릴의 제품에는 유독 자연을 닮은 것들이 많다. 매끈한 돌을 닮은 비누도 그러하고 은하수를 닮은 유리컵도 그렇다. 도심 속 작은 공간에 자연을 전시해둔 느낌을 받았다. 박성윤씨에게 원래 자연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자연을 싫어하는 사람은 보질 못했다는 것이 그녀의 대답.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개그프로그램은 별로라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은 있어도 돌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언제인가 인간은 자연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본능을 가졌다고 들은 적이 있다. 자연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본능 때문이라 생각했다.

폴아브릴의 물건들이

사용하는 사람에게 휴일의 느낌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일하며 달려오다가 탁 늘어져버리는 그런 날이 있잖아요.

집에서 영화도 보고 책도 읽는 그런 휴일과 같은 편안함과 만족감을 주고 싶어요.

 

 

폴아브릴의 두 스태프

박성윤씨와 함께 폴아브릴을 책임지고 있는 두 스태프 래이와 세바스티앙은 각각 치와와와 툭눈이 금붕어이다. 세바스티앙은 박성윤씨를 알아보고 눈맞춤을 하고 몸짓으로 그녀를 반기는 참 신기한 금붕어이다. 세바스티앙을 보면서 혹시라도 나중에 다시 한번 금붕어를 키우게 될 기회가 있으면 그때는 나도 나의 금붕어와 교감을 해보리라고 다짐했다. 래이는 박성윤씨가 일본에서 지낼 때 입양한 강아지로 줄곧 외동아들처럼 귀하게 자랐다. 사료를 한알 한알 손으로 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을 정도로 도도한 왕자님. 

 

한번은 버릇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해 스스로 사료를 먹을 때까지 내버려둔 적이 있는데, 결과는 고집스러운 래이의 승리. 토악질을 하면서도 사료를 입에 대지 않았다고. 그런 래이가 세바스티앙이 온 뒤로는 스스로 밥을 먹게 됐으니 참 신기한 노릇이다. 박성윤씨가 사료를 보여주며 ‘이거 세바스티앙 줄까?’ 하면 래이가 달려들어 허겁지겁 사료를 먹는다는 것. 가끔씩 래이를 들어 세바스티앙을 마주보게 하면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는 그는 질투 많은 왕자님이다. 아쉽게도 현재 세바스티앙은 건강문제로 집에서 요양중이고, 손님들을 너무 격하게 반기는 바람에 당분간 출근금지령이 내려졌다.

폴아브릴을 둘러보는 동안 그곳의 모든 것이 내 것이었으면 하고 얼마나 간절하게 바랐는지 모른다. 사실 어떤 제품을 구매할 때 A/S라던가 제품에 대한 ‘신뢰’ 같은 것을 크게 고려하는 현명한 소비자는 아닌데, 폴아브릴의 제품은 왠지 모르게 믿음 직스러웠다.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서(고를 때도 마찬가지로) 그녀가 보여주는 고집스러움을 직접 확인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폴아브릴이라는 공간 자체가 그녀를 닮아 소박하지만 옹골졌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처럼 폴아브릴은 내게 쉼표로 다가왔다. 지금 이순간에도, 그녀가 내어준 짙은 커피 한 사발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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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여수정 사진 박소영 장소 폴아브릴 사진제공 박성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