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SPECIAL LUNCH

아주 평범한 점심식사

아주 평범한 점심식사

OUR
SPECIAL LUNCH

테이블을 나누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어제 먹은 점심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했는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너무 당연하고 시시해서 쉽게 지나칠 만한 시간들. 매일을 식물처럼 아주 평범하게 밥을 먹는 내게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떠났다. 특별한 누군가와 함께하는 평범한 점심식사를 위하여.

2년 만의 엄니

그러니까 내가 엄마를 엄니라고 부르게 된 다음부터 우리는 같은 식탁에 앉지 않게 됐다. 아니, 반대였던가?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됐건 우리는 식사를 함께하지 않는 반쪽짜리 식구였다. 엄니는 제주도에 살았다. 거기에서 나고 자랐고, 서울로 올라와 나와 동생을 낳았다. 그리고 몇 년 뒤 연어처럼 다시 제주로 돌아갔다. 제주에는 엄니와 함께 자란 삼촌과 이모들이 살았다. 그들의 자식들도 있었다. 거의 백 명쯤? 손가락을 몇 번이나 구부렸다 펴야 모든 이름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친척이 사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엄니는 식구들 중에 표준어와 제주 사투리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내가 제주도에 내려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부러워했다. 그러면 나는 그냥 조용히 웃었다. 그건 긍정이나 부정의 뜻은 아니었고, 그냥 조용히 웃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그저 그런 마음의 표시였다. 제주에는 엄니가 있으니까, 언제라도 내려가면 그만인걸.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숫자를 세보니 엄니와 마지막 식사를 한 것이 2년 전이라는 데 생각이 닿았다.

2년 전 여름,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에서 요양 중이었다. 그 무렵 《어라운드 매거진》이라는 곳에 원서를 넣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최종면접에 와달라는 문자를 받고 기뻐하던 참이었다. 부랴부랴 서울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다시 세 시간 뒤 제주로 내려가는 티켓을 미리 예매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떨어졌다. 왕복 비행기 값 20만 원과 기대 이상의 허탈감은 순전히 덜떨어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날 나는 엄니와 청하 열두 병을 마셨다.

그로부터 다시 2년 후, 오늘의 나는 다시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엄니, 오늘 저녁에 내려갈게요. 밥이나 뜨끈하게 해주슈.’ 나는 제주도 따위 언제라도 티켓 끊고 갈 수 있는 사람인 양 쿨하게 문자를 보냈다. 엄니 역시 당장의 대답은 ‘그래 와.’ 그게 다였다. 그 뒤로 매시간, 언제쯤 내려올 건지, 무엇을 먹을 것인지, 누구와 함께 오는지, 삼촌들을 불러야 하는지, 낚시에 갈 건지, 같은 질문 공세를 받긴 했지만 어쩐지 기분 좋은 시달림이었다.

진짜 집 밥의 추억

‘집 밥’이라는 말이 시장에 나온 후로 더는 집 밥을 집 밥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 홍길동 같은 시대에, 내게 집 밥은 뭘까 혼자 중얼거려봤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한 건 최근의 일이었다. 갓 지은 밥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는 일, 일인분만 배달이 가능한 음식점이 어딘지 찾아내는 일,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최대한 작은 것으로 사는 일 같은 것들이 내 생활에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됐기 때문이다. 혼자서 밥을 먹는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무렵에는 매 끼니 무엇을 먹든 아무 상관도 없었는데, 이제는 밖에서 밥을 먹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찜이나 국, 생선구이 같은 요리를 먼저 찾게 됐다. 함부로 일을 벌일 수 없고, 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게 싸게 먹히는 그런 종류의 음식들. 

그러고 보면 집 밥이라는 건 참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구나, 뒤늦게 엄니의 그림자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에게 진짜 집 밥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역시 엄니가 만들어준 김치 전골이었다. 냄비에 두껍게 썬 오겹살을 해바라기 모양으로 깔고(반드시 이 모양이어야 한다), 그 위에 길게 찢은 김치를 또 한 겹 두툼하게 쌓는다. 마지막으로 납작하게 썬 두부를 지붕을 얹듯 올려 은근히 끓여주면 완성이다. 뚜껑을 열었을 때 순간 코끝을 마비시키는 매콤한 열기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해바라기 모양의 감칠맛이란(꿀꺽).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음식은 나의 초등학교 시절 엄니의 술안주였다. 반 친구들을 불러 생일잔치를 벌일 때도 피자나 양념 통닭보다 엄니의 전골이 상 한가운데 있을 정도였으니 집 밥의 추억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니가 만들어준 집 밥을 2년 만에 먹으며 넌지시 물었다. “엄니에게 집 밥은 뭐요?”, “집에서 먹는 밥이지.”, “그건 너무 당연한 말이고, 평소에 집 밥에 대한 이미지 같은 거 있잖슈.”, “글쎄, 엄마가 해먹는 게 집 밥인데. 또 뭐가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는 엄니를 보며 순간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손톱보다 작은, 아니 아예 이 세상에는 없던 시절부터 엄니는 혼자서 주방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엄니에게 집 밥이란 스스로 해먹는 밥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엄니라는 존재는 늘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었지 대접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집 밥이 뭘까? 순간 그런 질문을 만들어 간 내가 우스워져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둘러 남은 밥을 먹었다.

워런 버핏은 아니지만 우리는

사실 점심식사를 하러 제주까지 내려가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개그맨 유재석과 연락이 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어라운드 식구들과 테이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무렵 내 머릿속에는 유재석과 워런 버핏뿐이었다. 미국의 투자가 워런 버핏과 점심식사가 경매에서 26억 원에 팔렸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그걸 어떻게 하면 기사에 적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워런 버핏은 아니지만(어차피 그는 한국말도 못한다), 그만큼 한 끼를 나눌 만한 가치를 가진 유재석과 점심식사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당시로서는 맹랑하지만 그럴싸한 꿈을 꿨다. 아마 월요일쯤 로또를 사고 토요일이 오기까지 남은 인생을 장밋빛으로 물들이는 마음과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토요일 밤은 무심히 지나갔고, 유재석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의 점심식사 약속을 잡아야 했다. 

그때 깨달았다. 꼭 한 끼의 점심만 먹어야 한다면 나에게 가장 특별한 사람은 누구일까? 핑계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선택은 엄니였다. 2년간 우리는 만나지 못했고, 억지 질문을 준비해갈 필요도 없으며, 다른 무엇을 떠나 우리는 ‘식구’였다.

엄니는 제주에 있었고, 나는 기사를 핑계로 제주로 내려갔다. 그리고 매 끼니 엄니의 밥을 먹었다. 가족과 함께 먹는 따뜻한 점심식사. 우리는 술도 마셨다. 삼촌들도 모였다. 고기를 함께 구워 먹으며 나는 엄니에게 준비해간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엄니, 워런 버핏이라고 아슈?”, “아니, 누군데.” 엄니는 특유의 상기된 목소리로 그렇게 소리쳤고, 나는 그의 활약상에 대해, 경매 시스템에 대해, 그리고 26억짜리 점심식사 메뉴가 무엇이었을 지에 대해 술에 취해 떠들었다. 한라산 소주병이 쌓여갈 무렵 그곳에 모인 가족들에게 물었다. 

“누구든 상관없으니 만약 단 한 끼의 식사만 할 수 있다면 누구와 함께할 건가요?”
불판 위의 고기가 노랗게 익어가고, 가게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 큰 소리로 떠들었다. 연기가 자욱했다. 따듯한 공기, 좋은 사람들, 함께 나누는 식탁. 유재석도, 워런 버핏도 없었지만 문득 그 소란이 좋아졌다. 우리는 아주 평범한 점심을 함께 지나고 있었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끓여준 된장국이 제일 생각나. 그때는 찌개도 없었어. 멸치도 없이 그냥 물에 된장 풀고, 멀건 국에 배추나 무를 넣어서 먹는 거야. 맛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냥 그리워. 먹고 싶은 걸 엄마가 해주니까.” 이제 나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훌쩍 제주로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조만간 날이 풀리면 다시 한 번 제주에 내려가 엄니 표 전골을 먹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또 철없이 입맛을 다셔본다. 그때는 사소한 준비물도 몇 개 챙길 생각이다. 집에서 담근 된장, 국물을 우려낼 멸치 같은 것들. 물론 맛은 보장할 수 없겠지만 엄니에게도 집 밥이 뭔지 한번 단단히 알려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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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